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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꾼 꿈의 정체는? (창37:5-11)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 흔히 요셉이 꾼 꿈을 근거로 많은 설교자들은 “요셉처럼 꿈을 가져라”라고 설교합니다.
-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시기를 기대하거나 아니면 개인의 삶에서의 비전의 중요성,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삶의 특성을 설교하는 일이 많습니다.1)
- 그런데 과연 ‘요셉이 꾼 꿈’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까?
-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본문의 의도에서 벗어난 생각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2)
- 먼저, 요셉의 꿈은 dream 입니까 vision3)입니까?
- 1차적으로 요셉의 꿈은 dream입니다. 그렇다면 dream이 vision 일 수 있습니까?
- 역(易)으로는 가능합니다. vision을 dream으로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보통 우리 말에서도 희망사항이나 vision을 가리켜 ‘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어권에서도 vision을 가리켜 ‘dream’으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Dream Comes True.
- 그러나 vision을 dream이라고 하는 경우는 있지만, dream을 vision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나는 어제 꿈 꿨다”라고 하지, “나는 어제 비전을 꿨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할 때에 꿈은 비전으로 사용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 간 밤에 꿈(dream)을 꿨는데 내가 돼지가 되는 꿈을 꿨다고 해서, 그 다음날 “나는 앞으로 돼지가 될 거야. 나는 어제부터 돼지가 되는 비전(vision)을 가지게 되었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 이처럼 꿈(dream)은 비전(vision)이 아닙니다. 요셉의 꿈이 vision 이 아니라 dream 이라고 봐야 할 근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 vision이란 자기가 품는 것이지 남이 자기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자기가 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꾸게 하셨습니다.
- 또한 대개 vision이란 구체적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 만약 vision 이라고 한다면 요셉의 vision은 아주 나쁜 vision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이라고 하는 나라의 총리가 되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와 형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vision은 5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vision을 굳이 형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vision을 간직하면 그만입니다.
- 만일 요셉의 꿈으로 그런 해석을 하려고 한다면, 이어서 등장하는 창40장의 ‘술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꾸게 된 꿈, 창41장의 ‘바로’가 꾸게 된 꿈과 관련해서도 그렇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 이처럼 요셉이 꾼 꿈을 가지고 vision 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요셉의 꿈은 dream 이지, vision이 아니다. 억지로 vision이라고 해석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 그렇기에 dream 이라고 보면 위와 같은 설교는 옳지 않습니다. 요셉이 꾼 꿈(dream)을 근거로 “요셉처럼 꿈을 가져라”고 한다거나,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시기를 기대하십쇼” 혹은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비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요셉처럼 비전을 갖고 사는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식의 설교는 성경본문에 전혀 충실하지 못한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dream 과 vision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요셉의 꿈을 dream이라고 본다면, 이 꿈은 도대체 무엇일까?
- 우리는 구약에 나타난 ‘꿈’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 민12:6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꿈’으로 말씀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삼상28:65)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리심에 대해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구약 시대는 우리와 다른 시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경이 없던 시대입니다. 다시 말하면 계시가 진행 중인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적절한 계시가 필요하였습니다.
- 이러한 계시의 방편으로는 다양하게 있었는데(히1:1), 그 중에 하나가 꿈입니다.
- 그 외에도 하나님은 우림과 둠밈으로 말씀하셨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6)
- 이처럼 구약 시대에 꿈(dream)은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의 한 방편(methods)이었습니다.7)
- 실제로 창40장의 ‘술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꾸게 된 꿈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외에도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꿈(창20장의 아비멜렉의 꿈, 창28장의 야곱의 꿈, 창41장의 바로의 꿈, 왕상3장의 솔로몬의 꿈, 렘31:26의 예레미야의 꿈, 단2,4장의 느부갓네살의 꿈, 단7장의 다니엘의 꿈 등등)들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들을 해석하는 사람들(요셉, 다니엘)이 누군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cf. 단1:17).
- 요셉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요셉은 족장(Patriarch)이었습니다. 족장은 직분자입니다. 선지자가 있기 이전에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서 기능하였습니다(cf. 창18:17; 20:7).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선지자입니다.
- 그러므로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이며, 이 계시는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흥왕케 하실 것이라는 뜻을 드러내는 방법이었습니다.
- 그리고 이 꿈을 다른 사람이 아닌 요셉에게 주신 이유는 37:2과 38장에 나타난 그 형제들의 영적 상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실제로 다른 형제들은 요셉이 꾼 꿈의 참된 의미를 부인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만 그 아비 야곱만이 마음에 두었습니다(창37:11).
-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으며, 계시가 진전되고 있던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하여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으며, 그 꿈의 해석을 선지자에게 맡기셨습니다.8)
- 실제로 신약시대에 완전한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꿈’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요셉의 꿈을 가지고 vision을 가지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고 해도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감동만 주면 그만이라는 실용주의적인 성경해석은 성경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 오히려 요셉의 꿈은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의 계시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는지, 그리고 요셉을 제외한 다른 형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얼마나 둔감한 자들이었는지를 나타냅니다. 실제로 요셉이 꿈을 꾼 뒤에 그 말을 들은 야곱의 말을 보면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창37:11)9)
-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이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15:18-21)을 성취해 가실 것임을 알리셨고, 그 내용은 요셉을 애굽에 보내시고,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 전체를 애굽으로 인도하시며 그리하여서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10)
- 이렇게 이해해야 성경이 제대로 해석됩니다. 요셉의 꿈을 잘못된 해석으로 보게 되면 나머지 부분의 해석에 막히게 됩니다.
- 오늘날은 더 이상 꿈을 통한 계시가 없습니다.11) 왜냐하면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히1:1-2).12) 계시의 진전이 그치고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입니다.13) 요셉에게 있어서 ‘계시’가 꿈이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계시’는 오직 성경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계시의 종결’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방법들은 그 당시의 필요에 의해서 있었던 것이며 이제는 그 모든 방법들을 대신하여 성경이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꿈꾼 요셉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한 다른 야곱의 자녀와 같지 않고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고 하는 개혁주의의 모토를 따라 성경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참된 계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꿈 꾼 요셉의 신앙을 본받는 것입니다.14)
- 성경의 완전성, 충족성, 필수불가결성, 명백성, 완결성을 무시하는 것이야 말로 요셉의 다른 형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 오늘날 설교자들이 “꿈꾸는 자가 되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다서 8절은 말합니다. “꿈꾸는 사람들15)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2009년 6월 27일)
1)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승구 교수도 지적하고 있다. 이승구, “요셉 기사의 구속사적인 의미”,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서울: SFC, 2005), 247.
2) 이승구 교수는 “이 얼마나 본문의 의도에서 벗어난 생각인가?”라는 말로 오늘날 일반화되어 있는 해석에 대해 한탄한다. 이승구, “요셉 기사의 구속사적인 의미”, 247.
3) Vision 이라는 말은 때때로 ‘환상’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비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4)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5)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6) Bruce K. Waltke, Finding the will of God: A Pagon Notion? (Grand Rapids: Eerdmans, 1995), 임원주 옮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서울: 도서출판 누가, 2006), 62-77.
7) 이에 대한 좋은 지적으로는 이승구, “요셉 기사의 구속사적인 의미”, 247; 김성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0), 253; 김홍전, 『하나님의 백성 3: 이삭, 야곱, 요셉』(서울: 성약, 2000), 330; Gordon J. Wenham, Genesis 16-50, WBC (Waco: Word Books, 1994), 351을 참조하라.
8)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Genesis Foundations for a Covenantal Worldview (Kansas: Two age Press, 2000), 김구원 역, 『하나님 나라의 서막』(서울: P&R, 2007), 446.
9) 이점을 잘 의식하면서 지적하고 있는 주석가들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18-50,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95), 411f; Derek Kidner, Genesi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OTC (Leicester: IVP, 1967), 181.
10) 필자의 주장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계시의 구속사적 의미’에 대한 좋은 지적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승구, “요셉 기사의 구속사적인 의미”, 248.
11) 이와 관련한 개혁주의적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Phillipsburg, N. J.: Presbyterian and Reformed, 1979), 65-67; R. Fowler White, "Richard Gaffin and Wayne Grudem on I Cor. 13:10: A Comparison of Cessationist and Nocessationist Argumenta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35, no. 2 (1992): 173-81; idem, "Gaffin and Grudem on Ephesians 2:20: In Defense of Gaffin's Cessationist Exegesi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54 (Fall 1993): 303-20; O. Palmer Robertson, The Final Word (Carlislie, Pa.: Banner of Truth, 1993), 85-126; Edmund P. Clowney, The Church (Downers Grove, Ill.: IVP, 1995), 257-68;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homas Nelson, 1998), 55-59, 84.
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13) 오늘날에도 예언의 은사가 계속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Wayne Grudem 조차도 오늘날 그런 은사를 가진 이들이 절대적 신적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며, 그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Wayne A. Grudem, The Gift of Prophecy in I Corinthians [Lanham, M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2], 78-790. 그러나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조차도 바르지 않은 것이다.
14) 김홍전, 『하나님의 백성 3: 이삭, 야곱, 요셉』, 330f.
15) 유다서 8절의 본문에서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체험’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의 형태를 가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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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셉의 꾼 꿈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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