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p.1)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며 복지의 바탕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 잘 가고 있는지, 사람을 사람답게 돕고 있는지, 제구실하고 있는지, 이런 이치와 향방과 맥락을 살피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남들 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얼마동안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으나 오래 하지는 못할 일입니다. 생각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때에는 혹 그렇게 했을지라도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 사회복지사로서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사회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고민 속에서 강독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과 바램과 같아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2. 사회 관점 사회사업(p.13)
1) 사회로써 하는 사업
사회사업은 사람을 돕되 ‘사회’로써 하는 사업입니다.
예산·시설·기술로써 직접 돕는 물적 사업 물리적 사업 기술적 사업도 하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사회사업 핵심은 사회로써 돕는|돕게 하는 사회적 사업입니다.
2) 사회를 만드는 사업
사회사업은 사람을 돕되 그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약자도 살 만한 사회,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누구나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 ‘사회’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약자를 따로 떼어 돕는 ‘복지 별천지’도 만들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사회사업 핵심은 사회 자체를 약자도 살 만한 곳으로, 누구나 정붙이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지역사회 일반 공간·시설·제도·제품·서비스·조직·문화 속에 복지가 흐르게 하는 일입니다.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 자기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속에서 약자를 만나고 배려하고 도우며 더불어 사는 사회, 공생사회, 이런 ‘사회’를 목표하는 일입니다.
-> '사회사업이 사회로써 하는 사업이라는 것과 사람을 돕되, 그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사업'이라는 말에 큰 배움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배우고 들었던 관계, 네트워크, 환경, 지역사회, 등의 말들이 결국은 사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역사회 일반 공간·시설·제도·제품·서비스·조직·문화 속에 복지가 흐르게 하려면 어찌해야하는지,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에서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찌 도와야할까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더불어 현 시점에 다양한 복지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복지관, 등의 공간들이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사회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제 마당 제 삶터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도 해 보았습니다. 제 마당 제 삶터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3. 사회적 복지와 비사회적 복지(p. 20)
사회적 복지를 살리면 비사회적 복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관계가 살면 사람과 함께 지혜•지식•기술, 재화•인맥, 공간•시설까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사회적 복지를 위주로 하면 사회적 복지를 놓치거나 오히려 해치기 쉽습니다.
비사회적 복지를 외면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비사회적 복지라도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비사회적 복지가 더 급하고 절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사회적 복지를 사회사업가 몫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 있어서 당장의 단편적인 욕구(비사회적인 복지에 대한 욕구)에 대한 지원을 하며 당사자의 의존성에 대한 고민을 가졌었습니다. 당사자의 사람다움(자주성, 사회성)을 도와주기 위해 어떠한 기준을 가져야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질문>
p.4 '사람과 사회' 마지막 문장 '말단은 상황과 사안과 사람에 따라 응하겠거니와, 근본은 이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으로써 일관할 뿐입니다.'라는 문장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첫댓글 선생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제 마당, 제 삶터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복지와 비사회적 복지면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사회사업을 이루는 과정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구나 염려 됩니다.
질문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사회사업의 근원은 그 실천 상황과 문제, 여러가지 주변 현실여건 등에 따라 다르고 그 사회사업을 실천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근본의 가치는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으로 일관되어 풀어가야하는 것이라는 의미일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혹, 달리 해석해야하면 알려주세요. ^^
저도 김창희 선생님 말씀처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현장이 다양하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니 그때 그 사안과 그 사람에 따라 실천이 다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그 실천이 향하는 건 사람다움과 사회다움.
이번 학습여행 곡성으로 떠나는 길,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걷기도 하고 기차를 타기도 하지만 우리 여행의 종착점은 '곡성'.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 뜻이었군요. 뜻을 알고 읽으니 문맥전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 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얼마동안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으나 오래 하지는 못할 일입니다. 생각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때에는 혹 그렇게 했을지라도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 저도 이부분에서 공감합니다. 이전까지는 잘 알지 못하여 그렇게 했을지 모르지만...알아버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옵니다.
그래요. 이미 알아버렸으니 책임이 무겁습니다. 또 가볍습니다. 어찌해야 할 지 방향이 보이니까요^^
저또한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책의 한구절입니다. "알고있으니 괴롭고 그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지 못해 더욱괴롭다. 두 발을 진흙탕 속에 담근 채 맑은 형혼과 몸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쉬울리가 있겠는가. 성공의 비결은 단하나 깨어있음이다." 깨어있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뜻으로 사는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말단은 상황과 사안과 사람에 따라 응하겠거니와, 근본은 이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으로써 일관할 뿐입니다.'에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무엇인지요?
'말단은 상황과 사안과 사람에 따라 응하겠거나와'라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문장 전체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네, 그렇다면 위 김창희 선생님과 김세진 선생님의 댓글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사회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고민.. 저 또한 같은 고민으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이 안에서 해답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고민하시는 부분들, 아마 모두의 고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연을 통해 조금 더 발전하는 저, 그리고 모두가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