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1939~ )
시골집 뒷마당에서 빨래를 거둬 안고 들어오며 서울 며느리, 아까워라 햇빛 냄새! 빨랫줄 허공에 혼자 남아 있겠네 빨래 아름에 얼굴 깊게 묻었다
향기로운 탄내, 햇빛 냄새!
출처 조선일보 (2014.4.11.)
서랍 같은 가슴 속에서 어떤 감탄이 순간 확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경이(驚異)가 샘솟는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가. 바스러질 듯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빨래를 거둬 안고 들어오며 툭 던진 서울 며느리의 말이 일품이다. "아까워라 햇빛 냄새!"라니. 마치 햇빛을 퍼내거나 덜어 내 쓴다는 듯이 아깝다니! 햇빛 한복판에 서서 뱉은 탄복의 말이 속기(俗氣) 없이 썩 풋풋하다.
정진규 시인은 한 시에서 빨랫줄에는 "구름도 탁탁 물기 털어 제 몸 내다 말리는구나"라고 썼는데, 우리네 고향집 널따란 마당 한쪽에 너무 팽팽하지 않게 살짝 아래로 처지게 늘어뜨려 매어 단 빨랫줄 하나가 오늘은 보고 싶다. 빈 하늘에 긴 빨랫줄 하나, 그 게으른 외줄이 보고 싶다. 젖은 빨래처럼 나도 빨랫줄에 널려 볕도 쬐고 바람도 좀 쐬면서 한나절을 살았으면 좋겠다.
문태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