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색붕당(노론, 소론, 남인, 북인) 분당 계보도 *
1-1. 학맥/지역별 4색붕당(노소남북)의 분당 흐름
┌ 영남사림파(경상도) : 동인 ㅡ>┌ 조식계열(남명학파, 경상右도) : 북인 ㅡ>┌ 대북 | | └ 소북 | └ 이황계열(퇴계학파, 경상左도) : 남인 | └ 기호사림파(경기/충청도) : 서인 ㅡ>┌ 성혼계열(우계학파) : 소론 | └ 이이계열(율곡학파) : 노론 ㅡ>┌ 벽파(호론, 충청도) └ 시파(낙론,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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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기별 4색붕당(노소남북)의 분당 흐름
고려말기 친明파 신진사대부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조선초기 온건개혁파 역성혁명파 | | | | 9대 성종-13대 명종(1469-1567) 사림파(영남) 훈구파(기호) | : ┐ 10대 연산군(1494-1506)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 | 훈구/척신정치기 11대 중종(1506-1544) 기묘사화(1519) : | (사화(士禍)기) 13대 명종(1545-1567) 을사사화(1545)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영남사림파 기호사림파 <ㅡㅡ┘ | | 14대 선조 초기(1575-1591) 동인 | ┐ ┌ㅡㅡㅡ┴ㅡㅡㅡ┐ | | - 선조 중기(1591-1602) ┌ㅡ┴ㅡ┐ 남인 | | 영남사림파 집권기 - 선조 후기(1602-1608) | 소북 | | | 15대 광해군(1608-1623) 대북 | | | ┘ 16대 인조(1623-1649) └-ㅡㅡㅡㅡ┤ 서인 ┐ 17대 효종(1649-1659) | 서인 | 서인-남인 공존기 18대 현종(1659-1674) | 서인 ┘ 19대 숙종 초기(1674-1680) 남인 ┌ㅡㅡ┴ㅡㅡ┐ ┐ - 숙종 중기1(1680-1689) | | 노론 | - 숙종 중기2(1689-1694) 남인 | | | 환국(換局) - 숙종 중기3(1694-1701) : 소론 | | 정치기 - 숙종 후기(1701-1720) : | 노론 | 20대 경종(1720-1724) : 소론 | ┘ 21대 영조 초기1(1724-1725) : 소론 | ┐ - 영조 초기2(1725-1727) : | 노론 | - 영조 중기(1727-1741) : 소론 ┌----┤ | 탕평(蕩平)정치기 - 영조 후기(1741-1776) └ㅡㅡㅡㅡ┼ㅡㅡ┘ 노론 | 22대 정조(1776-1800) 시파 | ┘ 23대 순조 초기1(1800-1805) | 벽파 ┐ 세도(勢道)정치 - 순조 초기2(1805-1807) 시파 | ┘ 태동기 | | 외척 세도정권(순조7-고종1(1807-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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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고려말기-조선초기의 정치상황
┌ 고려말기 친元파 : 고려 32대 우왕(1374-1388), 최영 => (이성계의 위화도회군(1388)으로 실각) | └ 고려말기 친明파┌ 신진사대부(역성혁멱파) : 권근, 남은, 남재, 변계량, 신개, 이제, 이천우, 정도전, 정탁, 조인옥, 조준, | 하륜, 하연, 허조, (성석린, 우현보, 이래, 황희) (ㅡ> 조선초기의 훈구파(기호)) | └ 신진사대부(온건개혁파) : 이색-정몽주-길재/이숭인(3은), 김자수, 김진양, 민안부, 박익, 범세동, 원천석, 이양중, 임선미, 전오륜, 조의생, 차원부, 채귀하 등 두문동72현 (ㅡ> 조선초기의 사림파(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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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조선중기-조선후기의 정치상황
┌ 훈구파(勳舊派)(1453-1544(단종2-인종1), 92년) - 세조반정 및 중종반정 때의 반정공신들 | (1) 학맥 | - (이색) -> 정도전/권근 -> 변계량 -> 노수신 도통(道統) 추종의 훈구파 | (2) 학풍 | - 4대 세종(1418-1450) 때부터, 집현전(集賢殿)을 중심으로 성장한 관학파(官學派) | - 관인문학(官人文學, 관료문학)을 중심으로, 사장(詞章, 가사/문장 연구) 중시 | - 불교, 도교 등 다른 학문/사상에 비교적 관대 | (3) 정치성향 | - 중앙관권(官權), 부재(不在)대지주 중심의 향촌사회 지배추구 ┌ | - 법치(法治)주의를 추구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1484) 등의 주요법전 편찬 | | - 물질적 공리(功利)주의 및 실용주의를 추구하여, 부국강병책 추진 | | (4) 형성시기 | | - 7대 세조반정(계유정난, 1453) - 정난(靖難)공신 43명 | | - 11대 중종반정(1506) - 정국(靖國)공신 117명 | | (5) 주요인물 | | - 7대 세조(1455-1468) : 권람, 양정, 이예장, 이흥상, 한확 | | - 8대 예종(1468-1469) | | - 9대 성종(1469-1494) : 강곤, 강희맹, 김승경, 서거정, 신숙주, 심회, 양성지, 이석형, 이파, 정인지, 정창손, 최항, 한명회 | | 홍달손, 홍순로, 홍윤성, 홍응 | | - 10대 연산군(1494-1506) : 권주, 노사신, 성준, 어세겸, 윤여필, 윤필상, 이극균, 이극돈, 이세좌, 한치형 | | - 11대 중종(1506-1544) : 고수겸, 남곤, 박영문, 박원종, 변사겸, 변준, 성희안, 신윤무, 신준, 심순경, 심정, 심형, 유계종, | | 유순, 유순정, 유자광, 윤형로, 이계남, 장정, 정광필, 최한홍, 한숙창, 홍경주 | | | | | | | └ 척신파(戚臣派)((1544-1567(인종1-선조1), 24년) - 12대 인종 및 13대 명종 때의 외척(파평윤씨)들 | | (1) 주요인물 | | - 11대 중종(1506-1544) : 김안로-채무택-허항(정유3흉), 홍인, 황사우 | | - 12대 인종(1544-1545) : 윤임-노수신-이언적(대윤(大尹, 파평윤씨-인종외척)) (-> 을사사화, 1545) | | - 13대 명종(1545-1567) : 문정왕후-윤원로-윤원형-이기-홍언필(소윤(小尹, 파평윤씨-명종외척)), 심연원, 심통원, | | 이량, 임백령, 정순붕, 정언각 | | - 14대 선조(1567-1608) : 심의겸(기호사림파(서인)로 전향) | | | | | | | └ => 1575년(동/서인 분열) 이후, 훈구/척신파의 잔존세력은 기호사림파(서인)에 가담 | | | └ 사림파(士林派) - 9대 성종 때부터, 훈구/척신파 견제를 위해 중앙정계에 진출한 영남사림들 | (1) 학맥 | - 이색/정몽주 -> 길재 -> 김숙자 -> 김종직/김안국 -> 김굉필/김일손/정여창 -> 조광조 도통(道統) 추종의 사림파 | (2) 학풍 | - 지방의 서원(書院)을 중심으로 성장한 사학파(私學派) | - 수양론(修養論)-도학(道學)-주자학(朱子學)을 중심으로, 경학(經學, 유교경전 연구) 중시 | - 경학중시 사림계열 : 김굉필, 정여창, 유호인, 조광조 | - 경학 및 사장중시 사림계열 : 김일손, 남효온, 이주, 조위 | - 불교, 도교 등 다른 학문/사상은 배척 | (3) 정치성향 | - 지방사족(士族), 재지(在地)중소지주 중심의 향촌사회 자치추구 | - 덕치(德治)주의를 추구하여, 현량과(賢良科) 및 유향소(留鄕所)-향약(鄕約) 시행을 주장 | - 물질적 공리(功利)주의를 배격 | - 이조전랑(吏曹銓郞)에게, 자천(自薦)-통청(通淸)-낭천(郎薦)권을 부여함으로서, 낭관(郎官)권을 강화 | -> 이조전랑의 3대 권한 - 자천권(후임전랑 추천권), 통청권(삼사(3司) 당하관 추천권), 낭천권(재야사림 추천권) | -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閱)에게, 한림(翰林, 사관(史官)) 회천(回薦, 공동추천)권을 부여함으로서, 언관(言官)권을 강화 | -> 이조전랑(정랑(正郞, 정5품), 좌랑(佐郞, 정6품)) 및 예문관 검열(정9품)은 붕당정치 구현의 핵심장치 | (4) 주요인물 | - 9대 성종(1469-1494) : 김종직, 김안국, 남효온, 유호인 | - 10대 연산군(1494-1506) : 김굉필, 김일손, 이주, 정여창, 조위 (-> 무오사화 1498, 갑자사화 1504) | - 11대 중종(1506-1544) : 조광조, 김식, 김정 (-> 기묘사화, 1519) | - 12대 인종(1544-1545) | - 13대 명종(1545-1567) : 서경덕, 이언적 | - 14대 선조(1567-1608) : 심의겸(척신파출신), 권철, 기대승, 노수신, 성혼, 유희춘, 이이, 이준경, 이황, 조식 | | | | => 1575년(선조8년), 사림파의 동/서인 분열(을해분당) | - 훈척정치 청산파인 후배사림들(동인)과 훈척정치 타협파인 선배사림들(서인) 간의 노선대립 | - 이황, 조식/서경덕계열의 영남사림파(동인)와 이이/성혼계열의 기호사림파(서인) 간의 학맥대립 | - 이조 정랑(吏曹 正郞, 정5품)을 놓고, 김효원(동인)과 심의겸(서인) 간의 감정대립 | - 김효원의 집이 한양 東쪽이라 동인(東人), 심의겸의 집이 한양 西쪽이라 서인(西人)으로 붕당명명 | | | | ┌ 동인(東人)(1575-1591(선조8-24), 17년) - 14대 선조 때부터, 중앙정계에 등장한 영남사림들 | | | (1) 학맥 | | | - 이황 및 조식/서경덕 도통(道統) 추종의 영남사림파(영남학파) | | | (2) 지역기반 | | | - 경상도 : 기호지방에 비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폐쇄적/안정적/자급자족적 지역기반 | | | -> 비타협적 강경성향(조식/서경덕계열)과, 개인적 수기(修己) 및 수양철학(이황계열)의 지리적 배경 | | | (3) 학풍-정치성향 | | | - 지배층의 개인윤리/도덕을 중시하여, 적극적인 훈구척신정치 청산을 요구 | | | (4)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 - 14대 선조 초기(1575-1591) : 이조 정랑(正郞, 정5품)에 김효원(동인) 취임 (-> 최초의 사림붕당 집권) | | | (5) 주요인물 | | | - 14대 선조(1567-1608) | | | - 이황(퇴계학파)계열 : 김명원, 김성일, 우성전, 유성룡, 이경중, 정경세, 한백겸, 한준겸 | | | - 조식(남명학파)/서경덕(화담학파)계열 : 정인홍, 최영경 / 이발, 이산해 | | | - 중도파 : 김효원, 김우옹, 정구 / 송응개, 유영경, 이덕형, 이원익, 정여립, 정지연, 허엽, 홍여순, 홍진 | | | | | | | | | | | | => 1591년(선조24년), 동인의 남/북인 분열 | | | - 조식/서경덕계열(북인)과 이황계열(남인) 간의 학맥대립 | | | - 정여립역모사건(조식/서경덕계열(북인), 1,000여명 북인처형, 1589) 때, 이황계열(남인)의 정치적 비협조 | | | - 세자책봉(건저의(建儲議), 1591)문제로 정철 탄핵 때, 처벌강경파(북인)와 처벌온건파(남인) 간의 노선대립 | | | - 이산해의 집이 한양 北쪽이라 북인(北人), 우성전의 집이 한양 南쪽이라 남인(南人)으로 붕당명명 | | | | | | | | | | | | ┌ 북인(北人)(1591-1599(선조24-선조32), 9년) - 경상우(右)도에 기반한 영남사림들 | | | | | (1) 학맥 | | | | | - 조식(남명학파)/서경덕(화담학파) 도통(道統) 추종의 영남사림파(영남학파) | | | | | (2) 지역기반 | | | | | - 경상우(右)도(경남 진주/합천) : 기호지방에 비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폐쇄적/자급자족적 지역기반 | | | | | -> 비타협적 강경성향(조식/서경덕계열)의 지리적 배경 | | | | | (3) 학풍-정치성향 | | | | | - 지배층의 개인윤리/도덕을 중시하여, 적극적으로 훈구척신정치 청산을 요구 | | | | | - 부정/부패를 용납치 않는 학풍으로 인해, 다른 붕당과 타협치 않는 강경성향을 형성 | | | | | - 절개/의리를 중시하고 실천적 현실참여를 주창하여, 임진왜란 때 수많은 의병장을 배출 | | | | | (4) 각분야 주요당론 | | | | | i) 정치분야 - 왕권/신권 관계론에 관한 당론 | | | | | - 비교적 미약한 붕당기반(경상右도)으로 인해, 왕권(王權)에 의지한 수직적/집중적 정치를 지향
| | | | | (5) 주요인물 | | | | | - 14대 선조(1567-1608) | | | | | - 이발, 이산해, 이이첨, 홍여순, 허균, 곽재우-김덕령-김면-정인홍(의병장출신) | | | | | - 기자헌, 문경호, 박승종, 유몽인, 유희분, 이경전 | | | | | - 김신국, 남이공, 유영경 | | | | | | | | | | | | | | | | | | | | => 1599년(선조32년), 북인의 대/소북 분열 | | | | | - 세자책봉문제에서, 광해군 지지파(대북)와 영창대군 지지파(소북) 간의 노선대립 | | | | | - 對남인 배제파(대북)와 對남인 연대파(소북) 간의 노선대립 | | | | | - 연장/기성세력 중심이라 대북(大北), 연소/신진세력 중심이라 소북(小北)으로 붕당명명 | | | | | - (대북 중에서도, 인목대비 폐모(계축화옥, 1613) 반대파로서 중북(中北) 분당) | | | | | | | | | | | | └ | | | | | | ┌ 대북(大北)(1599-1623(선조32-인조1), 25년) - 광해군 지지 북인들 | | | | | (1)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 | | - 15대 광해군(1608-1623) : 광해군 즉위로 대북집권 | | | | | (2) 주요인물 | | | | | - 15대 광해군(1608-1623) : 이산해(육북), 홍여순(골북), 구의강, 백대형, 이성, 이이첨, 정인홍, | | | | | 한찬남, 홍식, 허균 | | | | | | | | | | | | | └ | | | | ├ 중북(中北)(1613-1623(광해군6-인조1), 11년) - 인목대비 폐모반대 북인들 | | | | (1) 주요인물 | | | | - 15대 광해군(1608-1623) : 기자헌, 박승종, 유몽인, 유희분, 정온 | | | | | | | | | | | | | | | └ 소북(小北)(1599-1623(선조32-인조1), 25년) - 영창대군 지지 북인들 | | | | (1)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 | - 14대 선조 후기(1602-1608) : 정유재란(1597-98) 문책으로 남인실각 | | | | (2) 주요인물 | | | | - 15대 광해군(1608-1623) : 남이공(남당/청북), 유영경(유당/탁북), 김신국, 박동량, 박이서, | | | | 성준구, 이유효, 이효원 | | | | | | | | | | | | | | | ┌ ㅡ ┘=> 1623년(인조반정) 이후, 소북 등 북인의 잔존세력은 남인으로 흡수 | | | | | | | | | | | | └ | └ 남인(南人)(1591-1694(선조24-숙종20), 104년) - 경상좌(左)도에 기반한 영남사림들 | | (1) 학맥 | | - 춘추-전국시대, 공-맹자의 선진(先秦, 원시)유학을 추종 | | -> 4서(4書, 대학-논어-맹자-중용)보다, 5경(5經, 시경-서경-역경(주역)-예기-춘추)을 중시 | | - (이언적) -> 이황(퇴계학파) 도통(道統) 추종의 영남사림파(영남학파) | | (2) 학풍 | | - 주리(主理)론 - 이기(理氣)2원론을 주장 | | - [이(理) > 기(氣)] -> [왕권(王權) > 신권(臣權)] -> 왕권(王權) 중심의 정치질서 추구 | | - [이(理) > 기(氣)] -> [사(士) > 농(農) > 공상(工商)] -> 유교 원리주의적(>) 경제질서 추구 | | - [이(理) > 기(氣)] -> [남(男) > 여(女), 적(嫡) > 서(庶)] -> 유교 원리주의적(>) 사회질서 추구 | | - 유교원리(= 이(理))에 대한 인식을 중시하여, 유교규범(명분(名分)론) 및 유교적 신분질서 확립에 기여 | | -> 개인적 수기(修己, 이(理))를 중시하는 수양철학적 성격 | | (3) 지역기반 | | - 경상좌(左)도(경북 안동) : 기호지방에 비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폐쇄적/자급자족적 지역기반 | | -> 개인적 수기(修己, 이(理))를 중시하는 수양철학의 지리적 배경 | | (4) 정치성향 | | - 지배층의 개인윤리/도덕을 중시하여, 적극적인 훈구척신정치 청산을 요구 | | - 붕당 간의 상호협력을 중시하는 온건성향 (-> 영/정조 때의 탕평책(蕩平策)으로 연결) | | (5) 각분야 주요당론 | | i) 정치분야 - 왕권/신권 관계론에 관한 당론 | | - 총론 : 사림의 공론(公論, 사론(士論))보다, 군주의 권위를 우선시 | | - 신권(臣權)정치를 추구하는 서인을 견제할 목적에서, 왕권(王權) 중심의 정치를 지향 | | - 사대부(사대부-가례(士大夫-家禮))와 구분되는, 군주(왕-가례(王-家禮))만의 특수성 인정 | | -> 1차(기해, 1659(현종1)) 예송논쟁 때, 3년복(차-장자복(次-長子服)) 주장의 정치적 배경 | | -> 2차(갑인, 1673(현종15)) 예송논쟁 때, 12개월복(차-장자부복(次-長子婦服)) 주장의 정치적 배경 | | ii) 경제분야(농업부문) - 수취제도/토지제도 개혁론에 관한 당론 | | - 총론 : 재지(在地)중소지주/자영농의 안정을 통해, 향촌경제의 안정을 추구 | | - 수취제도(전세-공납-군역) 개혁론에 관한 입장 | | - 농민층의 이익을 중시하여, 대동법(大同法) 시행-확대(1608-1708(광해군1-숙종35))에 적극적 | | - 유교 원리주의적 경제질서[사(士) > 농(農)]를 추구하여, 호포법(戶布法) 논의에 강력반대 | | -> 호포법 대신에, 균역법(均役法, 1751(영조27))을 시행하는 선에서 집권서인과 타협 | | - 토지제도 개혁론에 관한 입장 (-> 남인계열 실학파(중농학파)의 견해) | | - 농민층의 이해를 대변하여, 정전제(井田制) 논의에 적극적 | | iii) 경제분야(상공업부문) | | - 총론 : 서인에 비해, 상공업부문 발전론에 소극적 | | -> 학문적 배경 : 유교 원리주의적 경제질서[농(農) > 공상(工商)]를 추구 | | -> 지리적 배경 : 영남지방의 향촌에 근거한 붕당기반 | | -> 남인계열 실학파(중농학파(경세치용학파))의 학문/지리적 배경 | | - 육의전/시전상인(독점상인층)과 연결된 서인을 견제할 목적에서, 난전(亂廛, 중소상인층)에 호의적 | | ->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철폐한 신해통공(通共, 1791(정조15))으로 연결 | | iv) 사회분야 - 신분제도 완화론에 관한 당론 | | - 총론 : 유교 원리주의적 사회질서[적(嫡) > 서(庶)]를 추구 | | -> 서인에 비해, 노비속량(奴婢贖良) 및 서얼허통(庶孼許通)에 소극적 | | (6)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 14대 선조 중기(1591-1602) : 동인의 남북분열 이후, 남인쪽으로 권력승계 | | - 19대 숙종 초기(1674-1680) : 갑인환국으로 서인(산당)실각 | | - 19대 숙종 중기2(1689-1694) : 기사환국(100여명 서인처형, 왕후 장희빈)으로 노론(서인)실각 | | (7) 주요인물 | | - 14대 선조(1567-1608) : 김성일, 우성전, 유성룡, 이양원 | | - 15대 광해군(1608-1623) : 정구, 한백겸 | | - 16대 인조(1623-1649) : 이광정, 이덕형, 이성구, 이원익, 이준, 장현광, 정경세, 한준겸 | | - 17대 효종(1649-1659) | | - 18대 현종(1659-1674) : 윤선도 | | - 19대 숙종(1674-1720) : 탁남(濁南), 청남(淸南), 유세철, 이서우, 이현일 | | - 20대 경종(1720-1724) : (기호 남인) | | - 21대 영조(1724-1776) : (기호 남인) 이인좌, 홍만조, 홍명보 | | - 22대 정조(1776-1800) : (기호 남인) | | - 23대 순조(1800-1834) : (기호 남인) 정범조 | | | | | └ => 4대환국(갑인(1674), 경신(1680), 기사(1689), 갑술(1694)) 이후, 남인계열 小계보도 | |┌ 탁남(濁南) - 갑인 및 기사환국 때, 송시열(서인 영수) 및 서인 처벌온건파 | | | | - 주요인물 | | | | - 19대 숙종(1674-1720) : 민희, 오정창, 허적 | | | | | | | └ 문내(門內)파 - 갑술환국(1694) 이후, 정계진출에 소극적이게 된 남인계열 | | | - 주요인물 | | | - 21대 영조(1724-1776) : 권중경, 김화윤 (-> 무신란(이인좌의난, 1728)) | | | | |└ 청남(淸南) - 갑인 및 기사환국 때, 송시열(서인 영수) 및 서인 처벌강경파 | | | - 주요인물 | | | - 19대 숙종(1674-1720) : 권대운, 윤휴, 이봉징, 허목, 홍우원 | | | | | └ 문외(門外)파 - 갑술환국(1694) 이후에도, 정계진출에 적극적이었던 남인계열 | | - 주요인물 | | - 21대 영조(1724-1776) : 강박, 권이진, 심단, 이인복, 이중환, 오광운 | | - 22대 정조(1776-1800) : 채제공(남인시파/채당) | | | | | └ => (※ 참고 : 17세기말-19세기말, 남인계열 실학파의 분화-발전) | |┌ 영남 남인(이황정통) - 갑술환국(1694) 이후, 영남향촌으로 낙향한 남인계열 | | | | | | | └ 구한말 위정척사파 | | | | |└ 기호 남인(근기(近畿)학파) - 갑술환국(1694) 이후에도, 중앙정계에 잔존한 남인계열 | | | | | └ 중농학파(경세치용(經世致用)학파) | | | - 학맥 : 이황 -> 정구 -> 허목/유형원 -> 이익(성호학파) -> 정약용 | | | - 주요인물 : 유형원, 이익(성호학파), 정약용 | | | | | └ 성호학파┌ 성호좌파(左派) - 급진적 현실개혁-서학수용 지향 (ㅡ> 남인 시파(채당/신서)) | | | └ 성호우파(右派) - 온건적 현실개혁-서학수용 지향 (ㅡ> 남인 벽파(홍당/공서)) | | | | | └ 중농(경세치용)학파 + 중상(이용후생)학파 = 정약용의 실학 집대성 | | | | | └ 구한말 애국계몽사상 | | | | | | | └ => 1776년(정조즉위) 이후, 시파(노론) 및 소론과 함께 對벽파대항 붕당연합 | | | | | | | └ => 22대 정조정권기(1776-1800), 남인계열(기호 남인) 小계보도 | ┌ 남인 시파(채당(蔡黨), 신서(信西)) | | - 채제공 독상(獨相, 1790-92)체제 비호, 서구과학문명 및 천주교 모두를 수용할 것을 주장 | | - 주요인물 : 권일신, 권철신, 오석충, 유태좌, 윤지충, 이가환, 이기양, 이승훈, 이벽, 이학규, 정약용, | | 정약전, 정약종, 최헌중, 한치응, 홍교만, 홍낙민, 황사영 (-> 신해사옥(신해진산의변, 1791), | | 신유사옥(1801)) | | | └ 남인 벽파(홍당(洪黨), 공서(攻西)) | - 채제공 독상(獨相, 1790-92)체제 비판, 서구과학문명은 수용하되, 천주교는 배격할 것을 주장 | - 주요인물 : 강준흠, 목만중, 박장설, 신후담, 안정복, 이기경, 채홍리, 허전, 홍낙안, 홍수보, 홍의호, | 황덕길 | | | └ 서인(西人)(1575-1680(선조8-숙종6), 106년) - 13대 명종 때부터, 중앙정계에 진출한 기호사림들 | (1) 학맥 | - 남송(南宋)대, 주자의 성리학을 추종(주자-도통(朱子-道統)주의) | -> 5경(5經, 시경-서경-역경(주역)-예기-춘추)보다, 4서(4書, 대학-논어-맹자-중용)를 중시 | - (서경덕) -> 이이(율곡학파)/성혼(우계학파)/기대승 도통(道統) 추종의 기호사림파(기호학파) | (2) 학풍 | - 주기(主氣)론 - 이기(理氣)1원론을 주장 | - [이(理) ≥ 기(氣)] -> [왕권(王權) ≥ 신권(臣權)] -> 신권(臣權) 중심의 정치질서 추구 | - [이(理) ≥ 기(氣)] -> [사(士) ≥ 농(農) ≥ 공상(工商)] -> 비교적 유연한(≥) 유교경제질서 추구 | - [이(理) ≥ 기(氣)] -> [남(男) ≥ 여(女), 적(嫡) ≥ 서(庶)] -> 비교적 유연한(≥) 유교사회질서 추구 | - 유교원리(= 이(理))에 따른 윤리/도덕을 중시하는 동시에, 경험적 현실세계(= 기(氣)) 역시 존중 | -> 사회적 치인(治人, 기(氣))을 중시하는 실천철학적 성격 | (3) 지역기반 | - 경기도(기), 충청도(호서) : 영남지방에 비해, 외부와의 교류가 많은 개방적 지역기반 | -> 사회적 치인(治人, 기(氣)), 경험적/가시적 현실세계(기(氣)), 농상겸행을 중시하는 실천철학의 지리적 배경 | (4) 각분야 주요당론 | i) 정치분야 - 왕권/신권 관계론에 관한 당론 | - 총론 : 왕권(王權)의 거대화를 견제하면서, 신권(臣權) 중심의 정치를 지향 | - 안정적인 붕당기반(기호지방)을 바탕으로, 군주의 권위에 맞서, 사림의 공론(公論, 사론(士論))을 주장 | - 사대부(사대부-가례(士大夫-家禮))와 구분되는, 군주(왕-가례(王-家禮))만의 특수성 부정 | -> 1차(기해, 1659(현종1)) 예송논쟁 때, 1년복(차자복(次子服)) 주장의 정치적 배경 | -> 2차(갑인, 1673(현종15)) 예송논쟁 때, 9개월복(차자부복(次子婦福)) 주장의 정치적 배경 | ii) 경제분야(농업부문) - 수취제도/토지제도 개혁론에 관한 당론 | - 총론 : 남송(南宋)대 주자토지론을 채택함으로서, 지주-전호제(지주제유지론)를 이론적으로 대변 | - 수취제도(전세-공납-군역) 개혁론에 관한 입장 | - 부재(不在)대지주층의 이익을 중시하여, 대동법(大同法) 시행-확대(1608-1708(광해군1-숙종35))에 소극적 | -> 대동법 시행-확대 대신에, 호패법(號牌法) 재시행(1626(인조4))만으로 보완할 것을 주장 | - 세액증진 및 병력강화(북벌론 지지) 목적에서, 호포법(戶布法) 시행에 호의적 | -> 재야남인 등 지배층의 강력반대로, 호포법 대신에 균역법(均役法, 1751(영조27))을 시행하는 선에서 타협 | - 토지제도 개혁론에 관한 입장 | - 부재(不在)대지주층의 이해를 대변하여, 정전제(井田制) 논의에 강력반대 | iii) 경제분야(상공업부문) | - 총론 : 남인에 비해, 상공업부문 발전론에 적극적 | -> 학문적 배경 : 비교적 유연한 유교경제질서[농(農) ≥ 공상(工商)]를 추구 | -> 지리적 배경 : 기호지방의 도시에 근거한 붕당기반 | -> 서인-노론계열 실학파(중상학파(이용후생학파, 북학파))의 학문/지리적 배경 | - 한양의 육의전/시전상인(독점상인층)에게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 | iv) 사회분야 - 신분제도 완화론에 관한 당론 | - 총론 : 남인에 비해, 노비속량(奴婢贖良) 및 서얼허통(庶孼許通)에 호의적 | -> 학문적 배경 : 비교적 유연한 유교사회질서[적(嫡) ≥ 서(庶)]를 추구 | -> 정치적 배경 : 세액증진 및 병력강화(북벌론 지지) 목적 | - 임진왜란(1592-98) 이후, 납속종량(納粟從良) 및 납속책(納粟策)의 지속적인 확대로 연결 | (5)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16대 인조(1623-1649) : 인조반정으로 대북(북인)실각 | - 17대 효종(1649-1659) | - 18대 현종(1659-1674) | (6) 주요인물 | - 14대 선조(1567-1608) : 심의겸(척신파출신), 구사맹, 김계휘, 남언경, 박순, 송익필, 신응시, 심충겸, 윤두수, | 정철, 홍성민, 황윤길, 김천일-고경명-조헌(의병장출신) | - 15대 광해군(1608-1623) : 윤근수, 이항복 | - 16대 인조(1623-1649) : 공서(功西), 청서(淸西) | - 17대 효종(1649-1659) : 산당(山黨), 한당(漢黨) | - 18대 현종(1659-1674) : 산당(山黨), 한당(漢黨), 정태화 | - 19대 숙종(1674-1720) : 노론(老論), 소론(少論) | | └ => 16대 인조정권기(1623-1649), 서인정권 小계보도 |┌ 공서(功西, 훈서(勳西)) - 인조반정 공신파 | | | - 주요인물 : 김류, 김상용, 김자점, 신경진, 신흠, 심기원, 원두표, 이귀, 이시백, 장유, 최명길 | | | | | └ 노서(老西) - 對남인 연대파, 對청 주화파 ㅡ>┌ 원당(元黨) : 원두표 | | └ 낙당(洛黨) : 김자점, 신면 | | |└ 청서(淸西) - 인조반정 관망사림파 | | - 주요인물 : 강석기, 김상헌, 김장생, 나만갑, 이경석 | | | └ 소서(少西) - 對남인 배제파, 對청 척화파 ㅡ>┌ (산당) | └ (한당) | | └ => 17-18대 효종-현종정권기(1649-1674), 서인정권 小계보도 (-> 최초의 경기-충청(호서) 서인분열) | - (청서) ㅡ>┌ 산당(山黨, 충청(호서) 서인) - 충청(호서)산림-非척신 세력 | | | - 명분-사의(私義)를 중시하며 청의 지향, 대동법(大同法) 확대(충청도) 시행반대 | | | - 주요인물 : 김경여, 김익희, 김집, 송시열, 송준길, 윤문거, 윤선거, 유계, 이기조, 이유태 | | | | | └ (노론) | | | └ 한당(漢黨, 경기 서인) - 경화사족(京華士族)-척신(청풍김씨-숙종외척) 세력 | - 현실-공의(公義)를 중시하는 관료 성향, 대동법(大同法) 확대(충청도) 시행주장 | - 주요인물 : 김육-김좌명-김우명-(김석주), 조익 | | ㅡ ㅡ ㅡ> 송시열의 산당(山黨)을 중심으로 서인정권 분열수습 | | | | => 1680년(숙종6년, 경신환국), 서인의 노/소론 분열 | - 학문/사상에서의 관용을 중시하는 소장파(소론)와 주자절대론의 노장파(노론) 간의 학풍대립 | - 대청(對淸) 현실외교의 소장파(소론)와 친명반청(親明反淸, 북벌론) 외교의 노장파(노론) 간의 정책대립 | - 회니시비(懷尼是非, 1673-78) 이후, 윤증(소론)과 송시열(노론) 간의 감정대립 | - 남인실각(경신환국, 1680) 때, 처벌온건파(소론)와 처벌강경파(노론) 간의 노선대립 | - 임술고변(1682) 때, 對남인온건-對척신청산파(소론)와 對남인강경-對척신타협파(노론) 간의 노선대립 | - 조지겸/한태동 중심의 少장파라서 소론(少論), 송시열 중심의 老장파라서 노론(老論)이라 붕당명명 | | | | ┌ 소론(少論)(1680-1776(숙종6-정조1), 97년) - 성혼 및 윤휴계열의 기호사림들 | | | (1) 학맥 | | | - 성혼(우계학파) -> (윤황) -> 윤선거 -> 윤증 도통(道統) 추종의 기호사림파(기호학파) | | | (2) 학풍 | | | - 성혼(서인-주기(主氣)론) 및 윤휴(기호 남인) 중심의 비판적 주자학 이해(주자상대론) | | | - 이황(주리(主理)론)의 남인학설에 호의적이며, 양명학에도 관심 (-> 강화(江華)학파로 연결) | | | (3) 정치성향/주요당론 | | | - 관용중시의 학풍으로 인해, 다른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는 온건성향을 형성 | | | - 서인의 주요당론 바탕에, 남인계열의 당론을 수용 | | | - 전반적 국정혁신을 추구하는 진보적 입장 | | | (4)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 - 19대 숙종 중기2(1694-1701) : 갑술환국(인현왕후 복귀)으로 남인실각 | | | - 20대 경종(1720-1724) : 경종즉위로 노론실각 (-> 신임옥사(1720-21), 60여명 노론처형) | | | - 21대 영조 초기1(1724-1725) | | | - 21대 영조 중기(1727-1741) : 정미환국으로 노론실각 | | | (5) 주요인물 | | | - 19대 숙종(1674-1720) : 나양좌, 남구만, 박세당, 박세채, 박태보, 오도일, 윤증, 윤지완, 조지겸, | | | 최석정, 한태동 | | | - 20대 경종(1720-1724) : 준소(埈少), 완소(緩少), 청류(淸流), 유봉휘-이광좌-조태구-최석항(경종 때 | | | 소론 4대신), 한배하 | | | - 21대 영조(1724-1776) : 탕평당, 反탕평당, 심수현, 최규서 | | | - 22대 정조(1776-1800) : 벽파(僻派), 시파(時派), 서명선, 이복원, 이재협(강화학파), 정홍순 | | | - 23대 순조(1800-1834) : 이만수, 이시수 | | | | | | └ | └ => 20대 경종정권기(1720-1724), 소론정권 小계보도 | |┌ 준소(埈少) - 신임옥사(1720-21) 때, 노론 처벌강경파(관련자 전원 처형주장) (ㅡ> 反탕평당 계열) | | | | - 주요인물 : 김일경, 박필몽, 박필현, 유수원(중상학파(이용후생학파, 북학파)), 이종성 | | | | | | | └ (강화학파) | | | | |├ 완소(緩少) - 신임옥사(1720-21) 때, 노론 처벌온건파(주모자만 처형주장) (ㅡ> 탕평당 계열) | | | - 주요인물 : 박문수, 오명항, 이광좌, 조태억 | | | | |└ 청류(淸流) - 신임옥사(1720-21) 때, 왕세제(연잉군 : 영조) 보호파 (ㅡ> 탕평당 계열) | | - 주요인물 : 조문명, 조현명 | | | | | └ => 21대 영조중기(1727-1741), 소론주도-노론참여 완론탕평정권 小계보도 | |┌ 탕평당(蕩平黨) 계열 - 소/노 완론-척신 세력, 균역법(均役法) 시행주장 ㅡ>┌ (남당) | | | └ (북당) | | | | |└ 反탕평당 계열 - 소/노 준론-非척신 세력, 탕평당의 전횡비판, 균역법(均役法) 시행반대 ㅡ>┌ (동당) | | └ (중당) | | | | | └ => (※ 참고 : 17세기말-19세기말, 소론계열의 양명학 연구) | | - 강화(江華)학파 - 준소(埈少) 계열, 교조화된 주자학 연구의 대안으로서, 조선적 양명학을 연구 | | | - 1세대 : 정제두 / 정후일 | | | - 2세대 : 이광려, 이광명, 이광사, 신대우, 심악, 심육, 윤순 (-> 나주괘서사건(을해옥사, 1755)) | | | - 3세대 : 이긍익, 이영익, 이충익, 신작, 유희, 정동유, 정문승 | | | - 4세대 : 이면백 / 이시원, 이지원 | | | - 5세대 : 이상학 / 이건방, 이건승, 이건창 | | | | | └ 구한말/일제강점기 국학(韓國學, 민족주의)운동 | | - 주요인물 : 김택영, 박은식, 신채호, 이능화, 정인보, 주시경 | | | | | | | └ => 1776년(정조즉위) 이후, 시파(노론) 및 남인과 함께 對벽파대항 붕당연합 | | | └ 노론(老論)(1680-1776(숙종6-정조1), 97년) - 이이-송시열계열의 기호사림들 | (1) 학맥 | - 이이(율곡학파) -> 김장생 -> 김집 -> 송시열 도통(道統) 추종의 기호사림파(기호학파) | (2) 학풍 | - 송시열 중심의 명분(名分)론-예(禮)론 정리, 절대적 주자학 신뢰(주자절대론) | - 이이(서인-주기(主氣)론)의 서인정통학통 계승 자부, 양명학 배격 | (3) 정치성향/주요당론 | - 주자절대론의 영향으로 인해, 다른 붕당과 타협치 않는 강경성향을 형성 | - 철저하게 서인(송시열)의 주요당론을 계승 | - 부분적 제도개선을 추구하는 보수적 입장 | (4)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19대 숙종 중기1(1680-1689) : 경신환국(경신대출척, 100여명 남인처형)으로 남인실각| - 19대 숙종 후기(1701-1720) : 무고의옥(장희빈 사사)으로 소론실각 | - 21대 영조 초기2(1725-1727) : 을사처분으로 소론실각 | - 21대 영조 후기(1741-1776) : 신유대훈으로 소론실각 | (5) 주요인물 | - 19대 숙종(1674-1720) : 김구, 김수항, 김수흥, 김익훈, 김만중, 김춘택, 김환, 민정중, 민진후, 송시열, | 이사명, 김만기-김석주-민유중(숙종 때 3척신) | - 20대 경종(1720-1724) : 김창집-이건명-이이명-조태채(경종 때 노론 4대신) | - 21대 영조(1724-1776) : 탕평당, 反탕평당, 민진원-이관명-정호-홍치중(영조 때 노론 4대신), 김재로, | 민백상, 이병태, 정휘량 | - 22대 정조(1776-1800) : 벽파(僻派), 시파(時派) | - 23대 순조(1800-1834) | | └ => 21대 영조후기(1741-1776), 노론주도-소론참여 완론탕평정권 小계보도 |┌ (탕평당 계열) ㅡ>┌ 남당(南黨, 공홍(攻洪)파) | | | - 노/소 완론-척신(경주김씨-영조처가) 세력, 홍봉한 공격파 | | | - 주요인물 : 정순왕후, 김귀주, 김상로, 김한구, 송환억, 정이환, 조영순, 홍계희 | | | | | └ 북당(北黨, 부홍(扶洪)파) | | - 노/소 완론-척신(풍산홍씨-사도세자처가) 세력, 홍봉한 비호파 | | - 주요인물 : 혜경궁홍씨, 홍인한, 홍봉한, (화완옹주, 정후겸) | | |└ (反탕평당 계열) ㅡ> 동당(東黨, 청명(淸名)당) | | - 노/소 준론-非척신 세력, 사도세자-정조 보호파 | | - 주요인물 : 김시묵, 김종수, 김치인, 송인명, 심환지, 유언조, 유언호, 유척기, | | 윤급, 윤숙, 윤시동, 이천보, 정민시, 정존겸, 홍국영, 홍낙성 | | | └┌ (정조즉위(1776) 이후, 남당의 잔존세력과 연대 ㅡ> 호론-벽파) | └ (정조즉위(1776) 이후, 북당의 잔존세력과 연대 ㅡ> 낙론-시파) | | └ => (※ 참고 : 18세기중-19세기말, 노론계열 주기(主氣, 기호사림파)론의 분화-발전) |┌ 호론(湖論, 충청(호서) 노론) | | | - 주기(主氣)론만을 추종하는(주기(主氣) > 주리(主理)) 주기(主氣)론을 주장 | | | -> 이이(주기(主氣)론)의 서인정통학통 계승자부 | | | -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 -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에서의 차이점(= 기(氣))에 주목 | | | - [인성(人性) ≠ 물성(物性)] -> [사(士) ≠ 농(農) ≠ 공상(工商)] -> 조선의 기존질서 유지론 | | | - [인성(人性) ≠ 물성(物性)] -> [화(華) ≠ 이(夷)] -> 화이(華夷, 북벌, 소중화)론 | | | - 주요인물 : 권상하, 김창협, 윤봉구, 채지홍, 최징후, 한원진 | | | | | └ 구한말 위정척사파 - 존왕양이(尊王攘夷)론을 주장 | | - 주요인물 : 김평묵, 이강년, 이지호, 최익현, (기정진, 이항로) | | |└ 낙론(洛論, 경기 노론) - 경화사족(京華士族) 세력 | | - 주리(主理)론까지도 수용하는(주기(主氣) ≥ 주리(主理)) 주기(主氣)론을 주장 | | -> 이이(주기(主氣)론)의 서인정통학통에, 이황(주리(主理)론)의 남인학설을 수용 | | - 인물성-상동론(人物性-相同論) -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에서의 공통점(= 이(理))에 주목 | | - [인성(人性) = 물성(物性)] -> [사(士) = 농(農) = 공상(工商)] -> 조선후기 사회변화 수용론 | | - [인성(人性) = 물성(物性)] -> [화(華) = 이(夷)] -> 북학(北學)론 | | - 주요인물 : 김창흡, 어유봉, 이간, 이재 / 김매순, 김원행, 박성원, 박필주, 송명흠, 오희상, 이현익, | | 홍직필, (임성주) | | | └ 중상학파(이용후생(利用厚生)학파, 북학(北學)파) | | - 주요인물 : 박제가, 박지원, 서명응, 서유구, 서이수, 서형수, 성해응, 신작, 유득공, 이덕무, | | 유수원(소론계열), 이서구, 홍대용 | | | └ 구한말 개화파(開化派) :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이규경, 최한기 | ┌ 급진개화파 - 여흥민씨(고종처가) 정권 청산파, 일본식 변법자강(變法自彊)론을 주장 | | - 주요인물 : 김옥균, 박영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홍영식 (-> 갑신정변(1884)) | | | └ 온건개화파 - 여흥민씨(고종처가) 정권 타협파, 청나라식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을 주장 | - 주요인물 : 김윤식, 김홍집, 어윤중, 이조연 | | | | => 1776년(정조1년), 노론/소론/남인의 벽/시파 분열 | - 호락(湖洛,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논쟁에서, 호론(벽파)과 낙론(시파) 간의 학맥대립 | - 사도세자 폐출/사사 사건(임오화변, 1762)을 놓고, 강경파(벽파)와 동정파(시파) 간의 노선대립 | - 정조의 시책(준론탕평-왕권강화)을 놓고, 반대파(벽파)와 지지파(시파) 간의 정책대립 | - 당론에만 집착한단 뜻에서 벽파(僻派), 시류에만 편승한단 뜻에서 시파(時派)라 붕당명명 | | | | ┌ 벽파(僻派)(1776-1807(정조1-순조7), 32년) - 충청(호서)지역 노론 | | (1) 학맥/학풍 | | - 호론(湖論, 충청 노론) -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을 주장 | | - 이이(주기(主氣)론)의 서인정통학통 계승자부 | | (2) 지역기반 | | - 충청도(호서지방) | | (3) 정치성향 | | - 조선의 기존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 | | - 신임의리(신임옥사, 1721-22(경종1-2))에서, 소론의 책임 주장 └ | - 임오의리(임오화변, 1762(영조38))에서, 사도세자/시파의 책임 주장 | - 영조식 완론탕평(緩論, 탕평(蕩平)당-척신 중심의 온건한 탕평책)을 지지 | -> 노론 탕평(蕩平)당, 소론 완소(緩少)가 영조식 완론탕평의 중심세력 | - 영조식 조제보합(調劑保合)론 지지 - 분등설(分等說, 노/소론간 신임의리 절충), | 쌍거호대(雙擧互對, 노/소론간 균등인사), 양치양해(兩治兩解, 숙종식 환국(換局)정치 지양) | (4)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23대 순조 초기1(1800-1805) : 정순왕후 수렴청정으로 시파실각 (-> 신유사옥(1801)) | (5) 주요인물 | - 22대 정조(1776-1800) | - 노론 청명(淸名)당 계열 : 김관주, 김노충, 김달순, 김상로, 김종수, 서용보, 심환지, 윤시동, | 이노춘, 정존겸, 한용구, (서매수, 이병모) | - 남인 벽파 계열 : 강준흠, 목만중, 박장설, 신후담, 안정복, 이기경, 채홍리, 홍낙안, 홍수보, | 홍의호, 황덕길, 허전 | | | └ 시파(時派)(1776-1807(정조1-순조7), 32년) - 경기지역 노론 | (1) 학맥/학풍 | - 낙론(洛論, 경기 노론) - 인물성-상동론(人物性-相同論)을 주장 | - 이이(주기(主氣)론)의 서인정통학통에, 이황(주리(主理)론)의 남인학설을 수용 | - 22대 정조(1776-1800) 때, 규장각(38명) 및 초계문신제(138명)를 중심으로 성장 | -> 사림-도통(士林-道統)론 대신에, 정조의 군주-도통(君主-道統)론을 지지 | (2) 지역기반 | - 경기도 | (3) 정치성향 | - 조선후기의 사회질서변화를 수용하려는 입장 | - 신임의리(신임옥사, 1721-22(경종1-2))에서, 노론의 일부책임 인정 | - 임오의리(임오화변, 1762(영조38))에서, 노론(벽파)의 책임 주장 | -> 영남만인소(萬人疎, 사도세자의 복권을 주장했던 최초의 만인소, 1792(정조16))와 연결 | - 정조식 준론탕평(埈論, 청류(淸流)당-非척신 중심의 적극적 탕평책)을 지지 | -> 노론 청명(淸名)당, 소론 준소(埈少), 남인 청론(淸論)이 정조식 준론탕평의 중심세력 | - 정조식 의리(義理)론 지지 - 우문정치(右文政治, 학문정치), 작인지화(作人之化, 인재양성), | 우현좌척(右賢左戚, 사림등용/척신배제), 이열치열(以熱治熱, 숙종식 이수치열(以水治熱) 지양) | (4)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22대 정조(1776-1800) : 정조즉위로 노론(벽파)실각 | - 23대 순조 초기2(1805-1807) : 정순왕후 사망으로 벽파실각 | (5) 주요인물 | - 22대 정조(1776-1800) | - 노론 청명(淸名)당 계열 : 김치인, 박제가, 박지원, 서유구, 서이수, 유득공, 유언호, 윤행임, | 이덕무, 이재학, 정민시, 정동준, 홍국영, 홍낙임, 김이교-김이도-김이익-김명순-김문순- | -김조순-김희순(안동김씨-순조처가) | - 소론 준소(埈少) 계열 : 서명선, 이복원, 이성원, 이만수, 이시수, 이재협(강화학파계열), | 정홍순 | - 남인 시파 계열 : 유태좌, 이가환, 이기양, 이익문, 이승훈, 이학규, 정약용, 정약전, 채제공, | 최헌중, 한치응, 홍낙민 | | | └ => 외척 세도(勢道)정권(1807-1863(순조7-고종1), 57년) | | | ┌ 안동김씨(安東金氏) 세도정권(순조-헌종-철종처가) | | (1)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 - 23대 순조 중기(1807-1827) : 벽파숙청 완료로 안동김씨 집권 (-> 최초의 세도정권) | | - 23대 순조 후기2(1830-1834) : 효명세자(익종) 사망으로 풍양조씨 실각 | | - 25대 철종(1849-1863) : 철종즉위로 풍양조씨 실각 └ | (2) 세대별 주요인물 | - 1세대 : 김명순, 김문순, 김조순, 김희순 | - 2세대 : 김교근, 김문근, 김유근, 김조근, 김좌근, 김홍근, 김흥근 | - 3세대 : 김병국, 김병기, 김병덕, 김병시, 김병학 | - 기타인물 : 남공철, 심상규, 이상황 | | └ 풍양조씨(豊壤趙氏) 세도정권(효명세자(익종)처가) (1) 집권시기 및 집권계기 - 23대 순조 후기1(1827-1830) : 효명세자(익종) 대리청정으로 안동김씨 실각 - 24대 헌종(1834-1849) : 헌종즉위로 안동김씨 실각 (2) 세대별 주요인물 - 1세대 : 조득영, 조만영, 조인영, 조종영 - 2세대 : 조병구, 조병기, 조병현 - 기타인물 : 김노경-김로-이인보-홍기섭(익종 4간신), 권돈인, 성해응, 이기연, 이지연, 김정희(실학파-실사구시(實事求是)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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