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부터 수업 시간에 시작한 기도도 한 학기가 지나갑니다.
기독교 학교도 아닌 학교에서 기도로 수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떨까 하
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교사의 신
앙이 기독교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모두 기도하자는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던지라 사실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리라는 믿
음이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학교에서 기도를 결심하게 됐던 가장 직접적인
일화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폭력교사로 전락하고
작년(1999년) 9월말 경이었습니다.
영훈 축제 준비 때문에 온 학교가 매우 분주해 있던 어느 날. 저는 제가
맡고 있는 문예기자부의 '문학의 밤'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가는가를 살피러
시청각실에 갔었습니다. 그곳에는 문예기자부 뿐만이 아니라 방송부, 연극부
등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매우 바쁜 그 아이들, 그러나 얼마나 활기찬 지
젊음의 기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 때 문학의 밤 리허설을 해야 한다고
문예기자부 반장 학생이 말해서, 일하고 있는 방송부 반장 상운이를 불렀습
니다. 시청각실을 여러 부서가 사용하고 있기에 시간 계획이 어떻게 되어 있
는가 알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운이는 1학년 때부터 착실히 방송반 일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제가 개
인적으로 부탁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내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운이는
저에게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힐끗 보더니 마이크를 들
고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불렀습니다.
"상운아! 이리 좀 와 봐"
그러나 상운이는 몇 걸음 오는가 싶더니 또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획 돌아서 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가슴 속에 일어
나는 감정을 죽이며 다시 불렀습니다.
"야! 이리 와 보라니까, 너! 오늘 왜 이러니?"
그러나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세 차례나 반복되었습
니다. 저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극도로 화가 나서 상운이에게 달려 들엇
습니다. 그리곤 뺨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철썩 철썩"
상운이는 양 볼을 움켜 쥐고 몸을 숙이고 있었고 저는 폭발한 감정을 주
체하지 못하고 손으로 목덜미를 내리쳤습니다.
'니가 뭔데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고..' 뭐, 그런 감정으로 말입니다.
'이런 자식은 그저...'
제 가슴 속에는 제자이며 후배인 상운이는 이미 안중에 없었고, 말 안 듣
는 문제아 상운이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미 저는 폭력교사로 전
락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눈이 등잔만해졌습니다.
'체벌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결국 마찬가지로구나'
조롱하는 듯한 눈초리도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잠시 진정을 하고 보니 '내가 무슨 짓을 했나?' 하는 자책감이 일었습
니다. 무엇엔가 홀린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율적이고 평등을 중시하던 저입
니다. 학생들과 친구같은 교사이어야 한다고 항시 외쳤던 저입니다. 체벌이
뭐냐고 반대하며 다녔던 저입니다. 그런 저는 이제 완전히 일그러지고 무너
지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잠시 후 저는 다시 시청각실에 들어갔고 그 때까지도 일어나지 못하는 상
운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어떠니?"
"선생님... 귀가 잘 안 들려요"
"귀가?....."
"그런데... 오늘 왜 선생님한테 그랬니?"
"오늘 기분이 굉장히 나빴어요. ...아침부터 선생님마다 저에게 뭐라 하시고
조금 전에도 야단 맞은 상태였거든요..."
상운이 아버지, 그리고 사직서
상운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고막에 금이 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세
상에, 내가 학생을 때려서 고막을 터지게 하다니'. 병원에 다녀온 후 상운이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좀더 참지 못했던
나 자신을 자책하며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습니다. 상운이 어머니께서는,
"우리 애에게 잘못이 더 있었겠지요..."
하고 이해하려 하셔서 참 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니 교장실에서 올라오라고 하였습니다. 가 보니 상운이
아버지께서 와 계셨습니다. 아! 그 만남은 사실 기억하기도 기록하기도 싫은
것입니다.
"당신은 폭력교사야, 당신 교사 맞아? 당신은 교사적 자질이 없는 사람이
야. 경찰에 고발해 감방에 넣을거야..."
저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 일로 인해 교사가 학부모와
만나면 교사가 이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이와 같은 경우 학생이 교
사에게 맞아 다친 경우에는 그 학생의 잘잘못을 떠나, 때린 책임이 교사에게
따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가뜩이나 고막까지 터져버렸으니요. 자신의
아들이 교사의 말을 안 듣고 무시해서 그랬다면 이 아버지는 이해할까요.
그러나 상운이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은 조금도 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교사에게 그런 식으로 대들 아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표면적으로 드러난 폭력 교사 아닌가'.
알지 못할 자괴감과 10년 동안 자신 있게 아이들을 사랑했노라고 외쳤던 교
사 생활이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의 뜻도 다른
데 있는 거야. 10년 동안의 교사 생활, 후회 없이 했노라고 자신 있게 생각
해왔는데 하루 아침에...
집에 돌아와 사직서를 썼습니다. 제 신념 속에는 교사는 교사적 자질이 있
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생계 유지를 위해 밥
벌이 차원에 있는 교사는 사실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옳습니다. 저 또한 언
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교사로서의 의미가 퇴색된 줄 안다면, 그리고
교사적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과감히 학교를 떠나는 것이 미래의 교육을
위해서도 옳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직서를 가슴에 담고 출근했습니다.
교장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사직서를 꺼내기도 전에 교장 선생님께서
는 별 일 아니니까 염려하지 말고 그저 경위서 하나 써 내라고 하셨습니다.
교무실로 내려 오니 교감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엉뚱한 마음 갖
지 말고 교사 생활 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니까 순조롭게
넘기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일까. 당신도 지난 날의 아픔을
회상하는 듯 학부모와의 갈등을 넌지시 언급하시며 넓게 생각하라고 하셨습
니다.
얘들아, 수업 시간에 기도하게 해 줘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이렇게 밑바닥으로 추락시키셨을까. 나는 더 이상
유능한 교사도 아니다. 아이들을 때리는 폭력 교사다. 고막을 터뜨린 교사
다.'
이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부부 성경 공부반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러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함께 공
부하는 부부들과 목사님은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제 마
음의 상처는 한국교육자선교회의 겨울연찬회가 오기 전까지는 치유되지 못
했습니다. 다만 사직서는 내지 않기로 했고, 이제 교사로 계속 있는다면 그
동안의 전교조적 교사가 아닌 다른 모습의 교사로 탈바꿈되어야 한다는 막
연한 생각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상운이는 치료를
받았고 학교에 아무 탈없이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아주 소중한 분을 만나며 생각을 나누게 됩니다. 한국교육
자선교회의 경동호 장로님.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독교사가 되는데 이
분을 사용하셨던 듯 싶습니다. 경동호 장로님은 지난 2월 서울사대부고 교감
으로 명예퇴직을 하셨고, 지금은 한국교육자선교회에서 간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육현장에서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
었습니다. 온화하고 따뜻한 그 분을 보며 저의 생각도 하나하나 정리되어 감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1월 한국교육자선교회의 겨울연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상운이와의 만남과 상실된 아픔을 안고. 그리고 모든 학생들을 어떠한 시
각에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간증, 말씀,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저는 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고, 새롭
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사로, 기도하는 교사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학년과 2학년 수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실
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기도하는 중에 '영훈고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근육병을 앓았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됐던 문석이와 현욱이 이야기
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지난
학기에 있었던 상운이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며,
얼마나 교사라는 이름이 한때나마 싫었었는지...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기도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너희들의 영혼을 보는 교사, 단순히 지
식만을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삶의 진실과 진리를 찾고 사랑과 정을 나눌
줄 아는 교사, 너희들 설마 기도하는 교사에 대들지는 않겠지? 설마 기도하
는 교사가 너희들을 그렇게 때리겠니?...... 그래서 소원이 있는데... 얘들아!
들어주겠니?"
아이들은 엄숙한 분위기를 뚫고 말했습니다.
"뭔데요? 선생님, 말씀해 보세요......"
"나... 수업 시간에 기도하게 해 줘..."
밑바닥까지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기도의 효과는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교육을 통한 복음 전파의 대명제 뿐만이 아니라 정말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
다는 것입니다. 힘들어 조는 아이의 옆에 가서 손을 잡고 기도하고, 떠드는
아이의 곁에 가서 기도하고, 수업 시작 전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아 나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봉사
와 헌신의 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니, 사실 기도를 통한 내용은 백 마디 말
보다 한 번의 기도가 더 효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
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학생이 보내 온 편지 속에 이런 내용
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는 기도로 시작하니까 마음이 차분해지고 피곤하
지가 않아요......그러니까 더 공부하고 싶고요"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꼭 응답하시
지요.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계획에 합당하게 이루고야 마시는 분. 하나님
께서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기도로 간구한 내용을 절대로 잊
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상운이 이야기를 잠시 더 해 보도록 하죠.
상운이는 3학년에 올라갔습니다. 귀는 사고 이후 2주 후쯤에 다 나았고,
별로 저와는 교분 없이 그저 마주치면 인사하고 지나가는 그런 정도로 지나
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와 제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앞
의 칸막이 안 쇼파에 어떤 학부모와 학생이 김ㅇㅇ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
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 그 아버지도 어쩔
줄 모르며 그 선생님께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김ㅇㅇ 선생님은 번갈아 가며
아버지와 학생을 야단쳤습니다. 뒷모습만 보이는 지라 그 학생이 누군지 그
아버지가 누군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할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았
는데 이윽고 그 학생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바로 상운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저 분은... 바로 그 아버지...
이윽고 그 아버지는 제 앞을 지나가다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작년 저를
몰아세웠던 그 때의 당당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황급히 제 손을 잡으며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 선생님. 상운이 애빕니다. 그 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 자식이 그렇
게 문제가 있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상운이가 또 선생님께 대들었던 모양입니다. 불손하게 행동했던 모양입니
다. 비로소 상운이 아버지는 상운이에게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던 것
입니다. 그런데 6개월 남짓 후 저에게 들려 준 이 소리는 결국 무엇이란 말
입니까. 이미 저를 폭력교사로 만들어 놓고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이 무슨 의
미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참으로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
는 뜻. 결국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기독교사로 변화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독교사로 탈바꿈시키시기
위해서 상운이와 상운이 아버지를 사용하셨다는 것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겠지요.
아! 하나님의 계획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 능력과 제 자
랑으로만 여겼던, '나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교사는 없다'고 자만
했던 지난 10년의 교사 생활을 밑바닥까지 내려 놓게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사로 탈바꿈 시켜 놓으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어찌 경외하지 않
을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기독 교사로
이런 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교실에서 계속 기도를 하며 아이들과 수업
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뿐만이 아니라 복도, 음악실, 교무실, 교정,
학교 밖 분식집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서나 가능합니다. 기도를 하면 하
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복음 전
파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복음 전파입니
다. 아직도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이 땅의 많은 청소년들을 교육을
통하여 전도할 수 있다는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저에게 부여해 주신 사명입
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충실히 순종하는 주의 제자로 살고자 결단합니다. 저
를 이토록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 드립니다. 아멘.
청소년을 위한 교사의 기도
주님!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함을 받은 우리들은
세상의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며 살기를 원하는데
나무처럼 자라는 청소년들 뿌리 없이 자라니
진정 세상의 마귀 판치는 곳에서
주님을 멀리 하고 순간적 즉흥적 우상을 좇는
모습이 참으로 많아 마음의 조급함을 느낍니다
주님!
이들을 만나는데 있어서
주님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하게 하시고
주님 말씀을 전달할 때 힘이 넘쳐나는
생명의 말씀을 전달케 하시어
이 민족의 청소년들을 주님의 장중에
꽉 붙잡아 주시옵소서
말씀을 알게 하시고 찬양케 하시고
기도하게 하셔서
세상의 지식과 우상에 치우치지 말고
오로지 주님 가르치시는 지혜로
슬기롭게 공부하며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 청소년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먼저 성령의 은사를 주시사
지치지 않도록 하여 주시고
사단 마귀 틈타지 않는 강한 믿음을
더욱 허락하시옵소서
이 나라를 통하여 영혼 구원 이루어지고
청소년들을 통하여 이 땅에 복음 선교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세상 끝까지 전파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이 땅의 청소년에게 힘을 주소서
주여! 이 땅의 청소년을 지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