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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교회 담임 김승욱 목사 |
김승욱 목사(53, 할렐루야교회 담임)는 누가보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목회자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따스한 인상을 가졌다. 말투도 조용하고 잔잔하다. 기자는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실에서 2016년 1월 20일 오후 1시30분부터 1시간여 가량 김 목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바이올렛 계열의 폴라와 진회색 콤비를 입고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 도중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강해지는 법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부드러운 남자였다. 그의 내면도 고요해 보였다.
2015년을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했을 때였다. 그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 영성이 무너지는 모습, 실망스런 모습을 볼 때 힘들었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일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에서 문제를 찾는 모습이었다. 김 목사는 자신의 약함을 성도들에게 고백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목회자도 주님 앞에서 어린양이고 그분의 회복하시는 은혜를 맛봐야 살아 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시종 잔잔한 음성의 그였지만 사역하는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가 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으로 불리는 지 이해하게 된다.
김승욱 목사는 올해로 한국에서 6년째 사역한다. 10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37년 가까이 살았다. 겉은 한국인이지만 사고, 생각, 언어 모두 미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목회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도 ‘소통’이었다. 한국 사람이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미국인처럼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한국인처럼 말은 했지만 언어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한계를 느꼈었다고 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겉과 속이 다르게 표현되는 때였다.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이해하기 바라는 한국인의 특성이 그에게는 낯설었다. 미국에서는 ‘1’이라고 하면 ‘1’로 생각하고 반응하면 됐다. ‘A’라고 하면 ‘A’로 이해하면 됐다. 그러나 한국에선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이해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소통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교회, 복음의 능력 펼쳐야”
▲ 할렐루야교회 예배 모습(이하 사진 할렐루야교회 제공) |
사역 6년째, 김승욱 목사가 느끼는 한국교회, 미국에서 봤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자의 질문에 김 목사는 미국교회 얘기부터 꺼냈다. 기독교적 영성이 쇠락해 가는 미국이라지만 만만찮은 저력이 있다는 게 김 목사의 평가였다. 영성이 죽었다고 하는데도 300년 동안 이어져 온 기독교문화가 미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 그 힘 때문에 사회 전반에 기독교적인 문화와 사고방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에선 사회 전체적으로 기독교적 문화와 복음의 영향력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김승욱 목사는 1978년 미국에서 가족들 중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한인교회를 다니게 됐다. 김 목사가 미국에서 본 한국교회는 ‘로망’ 그 자체였다. 복음의 능력이 뜨겁고 다이나믹하게 역사하는 곳이었다. 2010년, 직접 입국해서 보고 느낀 한국교회는, 영향력이 약화돼도 너무 약해진 모습이었다. ‘혹시 그동안 한국교회가 복음이 아닌, 종교 생활이 활성화됐던 것은 아닐까? 한국인의 부지런함, 열정, 신앙이 결합하며 종교가 활성화됐지 복음이 능력있게 펼쳐진 건 아닐 수도 있다’ 김 목사의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김 목사는 이제부터라도 복음이 깊이 뿌리박혀 성도들의 사고와 생각을 본질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도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 목사는 강단에서부터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2015년 2월부터 사도신경을 18주에 걸쳐 연속 강해를 한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았다. 교회 공동체의 가장 기초적인 복음을 온 성도들이 확실하게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온 위대한 고백을 성도들이 공유할 뿐 아니라 지키며 살자고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순간의 감정을 따라 무작정 믿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토대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워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교뿐만 아니라 임종을 앞둔 성도들에게도 그는 사도신경을 고백하게 한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김 목사는 자신도 임종하는 순간에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사도신경 강해의 마지막을 ‘아멘’으로 끝맺었다. ‘아멘’의 의미는 머리로만 동의한다는 게 아니었다. 삶에서 믿는 바가 그대로 나타나기를 원한다는 고백이라고 해석했다.
할렐루야교회는 ‘제자훈련’이 활성화되고 있다. 신앙의 고백이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자훈련으로 커왔던 김 목사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부임하자마자 처음 시도한 것도 제자훈련이었다. 원로인 김상복 목사도 훈련의 필요를 절실히 공감했다고 한다. 김 목사가 부임할 때, 김상복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할렐루야교회에 제일 시급한 게 뭔가요?” 그때 김상복 목사는 ‘제자훈련’이라고 답했다. 김승욱 목사는 2010년 부임해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자훈련을 시도하고 있다. 4주 과정의 <새가족반>, 평신도를 훈련하기 위한 24주 과정의 <새생명반>, 담임목사의 목회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새소명반>은 새생명반을 수료한 성도를 대상으로 16주에 걸쳐 진행한다. 제자훈련으로 하드 트레이닝을 실행하자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 목사는 말한다.
“훈련없이 되는 건 없습니다. 운전하려면 면허를 따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해요. 운전학교를 가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교회에 다닌 걸로 10년, 20년 그냥 떼우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 제자훈련반에서 강의하는 김승욱 목사(사진 할렐루야교회 제공) |
제자훈련을 넘어 김승욱 목사가 바라보는 것은 ‘3세대 사역’이다. 어른·청년·어린이 목회를 따로하다 보니 교회가 세대별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같은 성령 안에서 어른·청년·어린이 3세대가 한 비전을 품자는 의미에서 비전 부흥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씩 금요일 저녁에 3세대가 같이 예배하는 방식이다.
2015년엔 기도 용사들과 100일에 걸쳐 집중 기도하며 김 목사는 ‘파워풀한 사역’의 기쁨을 맛봤다. 2015년 8월에 기도 용사를 모집했다. 교회의 사역과 기도제목을 놓고 매일 밤 10시에 같은 시간, 같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성도들이었다. 모두 1천500여 명이 지원했다. 담임 목사 이름으로 기도문자가 기도의 용사들의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그러면 1천500여 명의 기도용사들은 밤 10시에 함께 같은 기도제목으로 기도했다. 그는 강조한다.
“주님은 기도를 자신의 생애 중심으로 삼으셨다. 새벽에 기도하셨다. 중대한 일을 놓고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다. 생활이 분주할 때에는 일부러 한적한 곳을 찾아 가셔서 기도하셨다.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잡히시기 전 날 밤 간절히 기도하셨고, 십자가상에서도 기도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주님이신데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우리에게 친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 될 것을 위해 중보하셨다. 그 뜻 안에는 우리가 하나 되어 기도하라는 의미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두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는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가 마음을 합심하여 기도할 때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응답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연합하여 기도하는 것은 능력 그 자체다. 기도 안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기쁨이 있다.”
김 목사는 앞으로도 기도를 통해 많은 능력을 경험할 것이란 기대에 차 있다.
“목사, 예수 따르는 제자·참예배자 돼야”
성도들이 종교적 열정으로 교회 생활을 하기보다 복음에 감동하며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일어나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마음은 ‘목회자의 변화’에도 닿아 있다. 그는 목회자는 먼저 리더가 되기보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매혹돼 그에 빠져 있는 목회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는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물었다. ‘언론을 통해 한국교회, 목회자와 관련한 사건·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을 때 개척교회들은 직격탄을 받는다.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김승욱 목사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 복음의 능력을 믿고 그 사명을 올곧게 감당해 가는 게 답이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개독교’로 불리는 데 대한 대책도 그랬다. 그는 목회자들이 먼저 주님의 참된 제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기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어도 복음은 그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 기도용사들에게 보낸 기도 문자(사진 할렐루야교회 제공) |
김 목사는 지난 1월 독특한 경험을 했다. 경기도에 소재한 소년원에서 1년에 두차례 수련회를 연다. 소년원은 청소년들에게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4개의 종교 중 하나의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이중 자신의 희망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표시한 아이들을 위해 수련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런데 소년원 아이들 전체의 60%가 기독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들을 섬기기 위해 여러 교회에서 온 봉사자들의 열기가 그 수련회에선 가득했다. 김 목사는 “(봉사자들이)자신의 아들들처럼, 그리고 자신의 동생들처럼 애틋하고 간절하게 아이들을 대해 주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찬양의 시간이 시작되자 그 장소는 은혜의 도가니로 금세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 중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와 찬양들로 인해 멍하게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뜨겁게 찬양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김 목사의 마음속에는 소년원 아이들을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뜨겁게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김 목사는 애굽의 감옥에 갇혔던 요셉의 이야기를 전하며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분명히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세워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며 김 목사는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비난하든,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목회자들이 주님 앞에서 참된 예배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예배를 잘 인도하는 기술자(그는 테크니션이라고 표현했다)가 아니라 누구보다 철저하게 예배를 드리며 감격해 하는 참된 예배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한명의 예배자나 천명의 예배자나 똑같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부르신 곳에서 진짜로 살아 있는 참된 예배자가 돼야 합니다. 어디에서 몇 명을 놓고 목회를 하든, 선교를 하든, 그것(예배)부터 잘 하는 게 우리에게 맡기신 소명이지 않습니까?”
김 목사는 선교사들에게도 같은 말을 한다. “무슬림 국가를 가면 1년 내내 한명도 결신자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선교사들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선교사님이 그 자리에 예배하러 간 거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사람이 그 자리에 없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충실한 예배자로 살기 위해 간 거 아닙니까? 하나님 앞의 충실한 예배자로 사는 것, 그것은 선교사뿐 아니라 개척교회 목사들, 아니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소명입니다.”
김 목사는 기회가 되는 대로 신학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신학생이 된다면 더욱 공부에 매진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목회 현장에선 ‘신학적 지식으로 목회하는 게 아니라 영성으로 하는 거다’는 말이 많이 돌고 있다. 그러나 김 목사의 생각은 다르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신학의 깊이는 더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학은 목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성도들도 목회자들에게 ‘성경의 전문가’, ‘신학적 깊이’를 요구한다고 강조한다. 성도들은 목사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싶어하고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 역사적 배경과 원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싶어하는데 목회자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목회 트렌드를 시도하고 이벤트를 해서 성도를 자극하는 엇박자를 일으키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마음에는 목회는 역시 복음의 능력, 성경 말씀으로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 할렐루야교회 3대 담임 김승욱 목사(오른쪽)와 2대 김상복 원로 목사(사진 할렐루야교회 제공) |
전 담임 김상복 원로 목사에 대해 김승욱 목사는 “한마디로 복음적인 분이다. 성품이 복음적이고, 목회철학이 복음적이다”고 말한다.
“그가 은퇴하시는 날, 목사님은 ‘오늘부터 할렐루야교회 담임은 김승욱 목사다’라고 말했다. 목사님은 자신이 말한대로 진짜 나를 담임목사로 인정하고 따라주셨다. 내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게 있었다. 원로와 후임이 관계가 좋은 게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아버지가 물러나며 자녀를 담임목사로 세워도 양자간에 파벌이 형성되고 분쟁이 생길 정도의 현실을 알면서다.”
김승욱 목사는 원로와 담임 간의 분쟁의 ‘키’는 원로목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후임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정적 책임은 원로 목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승욱 목사는 김상복 목사가 ‘칭송 받을 정도로 존경받을 목회자’라고 감사해했다. 김승욱 목사는 김상복 목사를 원로목사로 모실 수 있는게 자신에게도 축복이고, 나아가 아내에게도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김상복 목사는 은퇴한 이후 단 한번도 목회와 관련, 이런 저런 주문을 넣은 적이 없다고 한다. 김승욱 목사가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는 이상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상복 목사 또한 김승욱 목사에 대해 극찬한다. 김상복 목사는 “김승욱 목사님은 할렐루야교회와 한국교회, 오늘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라며 “저와 저의 사역에서 부족했던 영역들을 다 채울 수 있는 은혜와 은사를 하나님께서 김승욱 목사님에게 허락하셨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 목사는 자신을 1.5세대 이민자라고 소개한다. 미국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민을 가서 이민목회를 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게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민자’들과 관계가 깊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김 목사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요셉도 그렇고,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모두 이민자였다는 설명이다. 바울도 디아스포라를 찾아다니며 목회를 했고, 교회를 세웠다. 이민자들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꿈이 있다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그는 이민 1.5세대, 2세대들이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아픔, 그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 콤플렉스가 오히려 하나님의 강력함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민자들의 영성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민자들의 영성은 디아스포라의 영성이고, 디아스포라의 영성은 성경의 영성이라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김승욱 목사는 3월 11일부터 12일까지 진행하는 호주 시드시성시화대회 10주년의 강사로 초빙됐다. 영적으로 부흥이 필요한 호주에서도 김 목사는 한인 디아스포라가 부흥의 불씨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을 전달할 계획이다.
김승욱 목사는?
1964년생, 오를 승(昇), 성할 욱(郁)자를 쓴다. 1974년, 초등학교 4학년인 만 10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온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다. 그리고 1978년 가족 중에 예수님을 처음 믿고 그 후 가족들이 예수 믿는 것, 가정이 복음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큰 감격에 빠졌다. 김 목사는 ‘한통의 전화’ 때문에 목회자가 되기를 결단했다. 결정적 계기는 생각지 못한 데서 왔다. 바사대학(Vassar College)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뉴욕에 살았기 때문에 UN에 취업할 계획을 차근차근 세웠다. 그런데 자신이 자란 교회의 담임목사가 전화를 했다. 복음적인 목회자로 평소 존경하던 그가 심각하게 말했다. “승욱아, 네가 신학을 했으면 좋겠다. 온 교회 교인들과 함께 이것을 놓고 함께 기도하겠다.” 어린 나이에 김 목사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존경하는 전 담임목사님이 이렇게 기도하고 권면하실 정도면 뭔가 받은 게 있으신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결국 신학을 하기로 결단한다. 비블리컬신학교(Bib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와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신학생 2학년이 됐을 때에야 비로소 김 목사에게도 ‘이 길이 나의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퀸즈장로교회 교육전도사(1987~1992), 데이비스한인교회 담임목사(1992~1999),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1999~2004)로 사역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오정현 목사가 개척한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2대 담임목사로 청빙받았고 46세가 되는 2010년 가을, 할렐루야교회의 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가족은 김종선 사모와의 사이에 성일, 은비, 찬일 3자녀가 있다.
<기독교포털뉴스> <호주 크리스찬리뷰>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