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3).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구의 끝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늦은비 성령을 부어 주시는 목적은 이적과 기사 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어떤 헛된 일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늘의 아름다운 진리를 가르쳐 주셔서 변화시키고, 승천시키기 위하심입니다. 그 다음은 세상에서 마음이 상하고 슬픈 자들을 고쳐주고 싸매주기 위해서, 오류에 갇힌 자들을 다 풀어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모든 슬픈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화관을 씌워 주시고, 재를 쓰고 울던 자들에게 희락의 기름과 찬송의 옷으로 입혀 주시기 위해서 늦은비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의 모든 불쌍한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 없는 하늘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영생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교 안에는 침울과 근심과 걱정이 없고, 하늘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 전 참성령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욕과 핍박과 순교의 죽음을 당할지라도 하늘의 기쁨과 행복 가운데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참성령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침울하고, 근심하는 가운데 다니는 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열흘 동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가 같이 성경에서 배울 것을 몇가지만 설명해 드림으로 인사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1. 중생(重生)과 성화(聖化)
하늘의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영생 불사(不死)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온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굉장히 오묘하고, 신비하고, 아무나 깨닫지 못하는 아주 기묘한 진리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6천년 동안 타락해서 키도 오그라들고, 머리도 퇴화되고, 영과 육이 병이 들고, 거의 다 죽기 직전에 겨우 생명만 붙어서 “오늘 죽을 것인가? 내일 죽을 것인가?” 하고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살고 있는데 그러한 우리들에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신비한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얼마나 쉽게 가르쳐 주셨는지 유치원 선생이 유치원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보다 더 쉽고 자상하게 거듭거듭 일러주셔서 모두가 영생 불사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나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도 깨닫고, 배운 사람도 깨달아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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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수님께서 하늘의 진리를 신비하게 가르쳐 주셨다면 이 세상에서 박사들만 천국 가고, 돈이 많아서 성경 개인 강사에게 성경을 배운 사람들만 하늘에 갈 것이고, 돈 없고 배우지 못한 서민들은 못 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육신으로도 돈이 없으므로 가난하고 마음도 가난하고 곤고한 사람들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쉽게 가르쳐 주셨는가? 예수님께서 보통 말씀하실 때는 “내가 네게 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을 일러주실 때는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는 “진실로”를 두번 쓰셨습니다. 창세 이후로 수십억 수백억이 낳고 죽고 낳고 죽고 하여 사라지면서, 왕이든 학자든 천민이든 귀족이든, 이 세상의 모든 수백 종파에 있는 수억, 수십억의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려고 아우성 치고 소리 지르고 줄달음질 치면서 있는 재산 다 바치고, 청춘을 다 바치며 오늘도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해야 하늘에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아주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3, 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예수를 30년 믿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네가 목사가 되어야 또는 평신도가 되어야 들어간다.” 또는 “교회에다 돈을 많이 바쳐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중생 성화되면 하늘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30년을 다녔든지 석달을 다녔든지, 돈을 바쳤든지 못 바쳤든지, 신학교를 나왔든지 못 나왔든지, 누구든지 중생 성화되면 하늘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하늘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 외로는 즉,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거듭나지 않으면 신학교를 열 개 다녀서 신학 박사 학위를 땄든지, 돈을 얼마나 바쳤든지, 교회를 얼마나 다녔든지 하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하늘 나라 가기는커녕 보지도 못하고 땅에서 멸망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중생 성화된 사람만 하늘로 입성시키신다. 10일 동안 이것을 배우고, 실제로 중생 성화될 것입니다.
2. 영생
그 다음 두번째로 성경에서 배울 것은 영생입니다. 우리가 무엇하려고 그 수많은 종파와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녔습니까? 그것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만 종파의 수억의 사람들이 오늘도 가방을 들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뛰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영생은 어떻게 얻게 되는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을 얻기 위해 천주교 교리를 달달 외워야 들어간다고 했습니까? 안식일 교회의 교리를 달달 외워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습니까? 또는 불교의 경전을 외워야 들어간다고 했습니까? 영생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교파의 교리를 외우고 연구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생 얻기가 이렇게도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엉뚱하게 이 교파에 가서 이 교파의 교리를 연구하고, 저 교파에 가서 그 교파의 교리를 연구하고, 또 아무리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공부하여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할지라도 “영생이 뭡니까?”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렵게 어떤 교파의 교리를 연구하지 말고 쉽게 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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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엘리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 6).
이것을 오늘날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말라기 4장 5, 6절은 침례 요한 때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이 침례 요한 때에 조금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 마지막 때 지금 이루어져야 할 사건입니다. 그렇지 않은가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강의를 들을 때 “강사가 저렇게 말하니까 그저 들어주자.”고 억지로나 동정으로 듣지 말고, 우물쭈물해서 넘기는 것인가, 아니면 저 말씀이 사실인가를 양심적으로 판단하여 틀린 것은 전부 적어서 끝나는 날에 나에게 질문을 하든지, 어떠한 훈계를 하든지, 아니면 욕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맞는다면 자신의 것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보라」라는 것은 정신을 차려 쳐다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했는데,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무슨 날입니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아 놓고 멸망할 악인과 승천할 의인, 곧 하얀 양과 새까만 염소를 구분하듯이 두 무리로 가르는 마지막, 예수 재림의 심판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언제 나타나는가? 2천년 전이 아니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예수 재림 직전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안식일 교회나 장로 교회 같은 어떤 교파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고 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몰래 준비시킨 엘리야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예수 재림 직전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침례 요한 때 이루어졌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침례 요한도 엘리야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나타나는 엘리야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와서 어떤 일을 하는가?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그전에 어떤 신학 교수가 이 말씀을 강의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이 말라기 4장 5, 6절의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킨다는 것은, 이 세상의 가정들이 서로 부자, 부녀지간에 싸우니까 그것을 화목시키는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수천년 전에 아합의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교리에 빠져서 온 이스라엘이 죽게 되었을 때에 그 거짓 교리를 따라가는 아비와 눈 새까만 어린 자식들을 결합시켜서 둘 다 가서 죽으라고 하나님께서 갈멜산상으로 엘리야를 보내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아비가 따라가는 거짓 교리에서 오히려 자식들을 분리시켜서라도 하나라도 살리시려고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검(劍)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하셨습니다. 한 가족이 진리 안에 함께 들어오면 그 가정은 이 세상에 없는 소천국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로 갈등하는 집안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곳에는 이혼하려고 도장 찍기 직전에 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천국을 이룬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때리기를 짐승 패듯 때리면서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게 싸우던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다정한 신혼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70세 된 노인들이 와서 손잡고 이제야 신혼 부부가 되었다고 웃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엘리야를 보낸 것은 오류에 빠져 죽어가는 그 아비를 따라가서 자식과 아비가 같이 죽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고, 오직 불사의 생명을 주실 수 있는 하늘 아버지와, 에덴 낙원에서 아버지가 싫다고 뛰쳐나온 이 땅의 탕자들을 결합시키고, 불사의 생명을 주어서 영생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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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 23:9). 하늘 친아버지께 가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엘리야가 나타나서 하는 일은 탕자가 된 이 땅의 자녀들을 하늘로 데려가기 위해서 하늘 아버지와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두번째 엘리야 침례 요한을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도 똑같았습니다. 그때 유대 제사장들이 인도하는 집회가 시작되면 오늘날 여의도 광장에 모이는 것 못지않게 1, 2백만명이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
세계의 불가사의에 속한다는 예루살렘 도성은 경이롭고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같이 돈 많고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그런 성은 못 짓는다고 합니다. 금으로는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엄청나게 거대한 성안에서 예배 드리는 몇백만명의 군중을 인도하는 유대의 대신학자들이 가르치는 것이 진리였던가, 오류였던가? 새빨간 거짓, 오류였습니다.
엘리야 침례 요한을 보내신 것은 그 눈 새까만 자녀들이 그 오류의 거짓 종교에 끌려가는 아비들을 따라가서 같이 죽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과 뜻을 돌이켜서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 돌이킴으로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때에도 이 세계의 모든 수백 종파가 예수 믿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로서 “우리 교파에 오면 천당에 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의 말대로 그 수백 종파를 모두 천당으로 인도한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까? ‘인자가 세상에 재림할 때는 구원 받을 자가 노아의 때와 같이 없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말 대신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이 지구 거민들이 노아의 때와 같이 지금 모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때에도 온 지구에 종교가 뒤덮여 있었다. 예수님 초림 당시에도 온 지구에 종교가 뒤덮여 있었습니다. 한번 집회를 하면 세계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몇백만명씩 모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거짓의 아비 사단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노아의 때와 똑같이 승천자가 없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 「내가 와서」라고 말한 그 오시는 날이 언제인가? 이 말라기 4장 5, 6절의 엘리야의 사건은 지구 마지막의 예언인 것입니다. 이것은 최후의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와서 그들을 멸하겠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지구의 종말을 고하기 직전에, 지구상에 마지막 엘리야를 보내시고 엘리야의 사건을 이루셔야만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엘리야의 사건이 이 지구상에 터지지 않는다면 백년, 천년이 가도 예수님은 재림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엘리야의 사건이 터졌다 하면 예수님은 곧바로 뒤따라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4장 5, 6절은 틀림없이 예수 재림 전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보내시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교에서 보낸다고 하지 않으시고, 어떤 교파에서 보낸다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직접 준비시킨 엘리야를 내가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수천년 전 갈멜산 위에 나타났던 엘리야가 처음에 나왔을 때에 사람들이 그 엘리야를 알아보았습니까?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디셉 사람 엘리야는 신학은 고사하고 신학교 뒷문도 못 가 보았고, 매일 시골에서 농사 짓던 사람이 나와, 최고 종교 지도자 아합에게 나타나서 회개하라고 호통을 치고,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모아 놓고 호통을 치고, 기손강에다 전부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그가 처음에 나와서 설교를 하자 “저 사람 어느 신학 나왔어?” “신학 안 나왔대.” “어느 교파에 속했어?” “아무 교파에도 속하지 않았대.” “교인이 몇이나 따라다녀?” “하나도 없대.” 이러니 어느 누가 믿고 따랐겠습니까?
침례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신학을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다. 그 아버지는 신학을 나왔지만 그 신학이 다 타락된 것을 알고, 다 집어치우고 산속으로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밭 갈고, 농사 짓고, 김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도록 했습니다. 그 침례 요한이 나와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칠 때에 그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습니까? 오히려 그를 광신자요 이단이요 가짜라고 해서 목 잘라 죽여 버렸습니다. 죽이고 나서 유대인들은 또 다른 엘리야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엘리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까? 그들은 자기들과 같이 신학을 나온 엘리야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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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막 9:13)고 하셨다. 어떻게 대우했는가? 목을 쳐죽이는 대우를 해서 벌써 죽여 버리고, 그들은 또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엘리야가 어떤 신학교나 교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가 친히 준비시킨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죽은 다음에 “아! 그분이 하나님의 사자였구나.”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선지자가 살았을 때 알아보고 따라가야 사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빛과 어두움이 다르듯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엘리야 복음 선교원에서 가르치는 말씀에 대해서 “99%는 진짜이고, 1%는 가짜다.”라고 말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진짜도 모르고 가짜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가짜는 하나에서 백까지 다 가짜이고, 진짜는 하나에서 백까지 다 진짜입니다. 유대 제사장들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에서 백까지 전부 오류요, 가짜였습니다. 그러나 국민학교도 못 나온 무식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하나에서 백까지 다 진짜였습니다. 한 통로 속에 하나님도 계시고 사단도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짜와 가짜를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 내가 어느 아들을 보내서 어떤 일을 성취시키겠다고 하는 계획표를 다 짜 놓으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신학 대학을 나와서 제사장복을 입고 으리으리하게 차리고 나와 설교를 하는데 예수님은 신학 대학도 안 나왔고, 예복도 없고, 예의도 갖추지 않았고, 교회도 없어서 갈릴리 호수로, 연못가로 끌고 다니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보기에 학식이 없는 예수님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 내가 하는 일은 벌써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성경에 이미 작정해 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때에 엘리야가 나타나면 무엇을 할 것이라고 태초에 계획표를 짜 놓으셨습니다.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 결합시켜서 데려간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예수 믿고 예수님께 오라고 하는 사람은 수억이 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와서 아버지 품에 안기라고 하며 실제로 안기게 하는 사건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엘리야만이 하는 일입니다. 누가 되었든지간에 그 일을 행하고, 그 일을 성취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진짜 엘리야입니다.
예수님께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허랑방탕하고 다니다가 끝날에 아버지 품에 와서 안겼다(눅 15장)고 예언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누구인가? 하늘의 타락하지 않은 다른 별들에 살고 있는 아들들은 맏아들이고, 우리들은 둘째, 곧 막내들입니다. 막내들이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에덴 낙원에서 뛰쳐나와서 6천년 동안 실컷 제멋대로 먹고 마시면서 병들어 죽다가 마지막 말일에 아버지께 돌아와서 안긴다는, 이 지구 끝에 이루어질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엘리야의 사명, 그 일을 이루는 자가 참엘리야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말 3:1).
중요한 소식을 발표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당신의 이름으로 인을 치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성취되는 일이다.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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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전라도 개척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농사철에 갑자기 동네 이장님이 삽을 들고 나와서 길을 닦으라고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바쁜 농사철에 길을 닦는다고 하는가 하고 나가 보았더니, 도지사님이 지나가니 길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대통령이 그 길을 지나간다고 했으면 아마 아스팔트가 깔렸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조그마한 한국의 임금님이 출두해도 경찰 백차가 사이렌을 불면서 왕의 행차라고 길을 닦으면서 지나가는데 하물며 하늘의 우주 대왕께서 이 지구에 행차하실 때 어찌 길 닦는 자가 없겠습니까?
그 길 닦는 자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지구를 첫번째 방문하실 때도 길 닦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두번째 엘리야 침례 요한이었습니다. 마지막 재림하실 때도 또다시 길 닦는 자가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또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 재림 직전인 마지막 때에 실제로 엘리야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라기 4장 5, 6절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엘리야가 어디에 나타나는가 똑바로 잘 찾아서 엘리야와 같이 승천해야 할 것입니다.
4. 인치는 천사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 3).
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를 몰래 들여다 놓고 “우리 나라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그 나라가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자기 나라를 죽이려고 갖다 놓은 것입니다. 이 세계에 핵 폭탄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적재되어 있는지, 지구를 몇번씩 불태워 폐허로 만들만큼 엄청나게 쌓아 놓고 버튼만 누르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이마에 인치는 시간까지는 이 세상의 어떠한 왕도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결코 용납지 않으십니다.
옛날에 한번은 영국의 해군 대령이 상부로부터 핵버튼을 누르라는 명령을 받고 버튼을 누르려고 했습니다. 군대는 명령에 살고 죽기 때문에 버튼을 누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안간힘을 쓰는데 도무지 손이 안 나가는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니 컴퓨터 고장이라고 신호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령의 손을 누가 잡았습니까? 그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입니다.
하늘로 데려갈 백성을 인치는 시기인 지금 하늘로부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아들과 딸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전쟁의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잡아 멈추게 하라. 내가 내 자녀들을 골라서 하늘로 데려가야 되겠다.”고 엘리야의 하나님, 하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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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 속에서 꾸물꾸물 기어다니는 벌레를 보십시오. 또 땅속에서 꿈틀꿈틀거리며 구르는 굼벵이를 보십시오. 그런 물 속 벌레나 땅속 벌레도 중생 성화되어서 승천하여 하늘을 날며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승천하지 못한다고 합니까? 곤충도 중생해서 하늘을 나르는데,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땅만 파다가 죽어야 합니까? 중생 성화되어 하늘을 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정신없는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틀림없이 잠자리와 매미보다 더 영광스럽게 승천하게 됩니다.
그전에 어떤 사람이 선교원도 세상 교회와 같이 이상한 집단인 줄 알고 눈에 불을 켜고 살핀다고 하기에 가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가 타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세계의 종교가 아무리 더럽게 타락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계시다.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은 이상 틀림없이 이 지구의 진실한 자녀들을 불사불멸의 하늘의 품성으로 인쳐서 데려가실 것이다. 이 지구의 종교가 다 타락되었을지라도 지구 어딘가에는 참되신 하나님께서 씨 받을 참된 인간 자녀들을 데려가시기 위해서 틀림없이 이 마지막 때에 하늘로 옮기려는 준비 작업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장소가 이 곳이 아닌지 면밀히 살펴서 비난을 하든지, 욕을 하든지 결정하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자녀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인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인데 “너는 내 것이다. 내 영원한 자녀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고 죽음도 너를 건드리지 못한다. 내가 너를 데려갈 것이다.”라고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종교 단체가 크다고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아닙니다. 크면 클수록 대개 더 타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종파 1, 2백만명이 모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굉장히 호화찬란한, 금으로 장식한 성전이었지만 그곳은 귀신의 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국민학교도 못 나온 어줍지 않은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도 없어 호숫가에서 몇백명, 몇천명 모아 놓고 이리 저리 다니며 집회를 하는데, 비 오면 그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진짜 우주 대왕 하나님이 오신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신학교도 못 나왔고 교회에서 직책도 없고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이 하늘에서 인정한 진짜였고, 신학 박사들이 즐비하고 금이 번쩍번쩍 빛나는 교회당에서 예복을 입고 나와서 예배 드리던 것은 가짜였던 것을 그 당시에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숫자를 보지 말고 참진리를 보고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교파에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더라도 선교원에 와서는 10배나 더 기도를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 여쭤 보면서 “저 강사가 가르치는 것이 거짓, 오류, 광신인가? 아니면 살아 계신 참하나님의 역사인가?” 철저히 기도하면서 확실히 판단하여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자기마저 오류와 광신에 빠진다면 이제는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교회의 목사에게는 교인들이 있고, 가장들은 처자식들이 있다. 잘못 빠졌다가는 이젠 나올 새도 없고 큰일납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오, 하나님이여! 저 강사가 외치는 것이 거짓, 오류, 광신이면 나로 하여금 통찰력을 주셔서 밝히 알게 해주시고, 무슨 거짓인지 알아서 쳐부수게 하시고, 참이라면 나도 하나님의 용사 편에 서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듣지도 않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 드릴 것은 어떤 것이라도 마음에 걸린다든지, 거짓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꼭 노트에 기재를 했다가 끝나는 날에 나를 가르치든지 어떠한 책망이든지 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양심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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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그물을 던지는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물을 던지면 못 먹을 것과 먹을 것이 다 같이 따라 올라옵니다. 그러면 좋은 고기는 그릇에다 담고 나쁜 고기는 다시 바다로 집어 던집니다. 아무 것도 안 듣고 욕부터 하고 다니지 말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마음의 그릇에다 담고, 필요없는 것은 버리면 됩니다.
일전에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생애가 바꿔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혼자 “오, 하나님이여! 나 여기에 안 빠지게 해주십시오.”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신학적 교리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설교하고 자기는 밑에서 중얼대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벌떡 일어나서 갈 것이지, 왜 그렇게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 집에 가서 편히 쉬기 바랍니다. 왜 그런 고생을 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예수님 오실 때에 입이 있어도 핑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구원의 비밀을 밝히 공개해 주시지 않고는 이 세상의 종말을 고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국가의 법도 다 공포를 한 다음에 시행하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슬그머니 모든 인류가 다 멸망에 빠져 죽으라고 하시겠습니까?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진리를 충분히 뿌린 다음에 선택은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신 분들은 기왕에 왔으니 한 시간도 빠지지 말고, 텐트에서 자지 말고, 매시간마다 성전에 들어와서 듣기 바랍니다. 서서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편히 앉아서야 잘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왕에 가사와 직장 일을 다 제쳐 두고 열흘, 한 달의 삼분의 일이나 소모하면서 외국에서 차비를 들이며 왔으니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외국에서는 이 말씀 듣기 위해 한 가족이 올 때 여비만 해도 몇백만원씩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가까운 한국에서 와서 듣기가 고역스럽다고 집에 돌아감으로 영원히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겠습니까? 그래서 매시간 참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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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성현은 “日月이 雖明이라도 不照覆盆之下라”(일월이 수명이라도 불조복분지하라)고 말했습니다. “달과 태양이 아무리 빛을 강하게 비출지라도 엎어놓은 동이 속은 비출 길이 없다.” 아무리 하늘의 놀라운 구원의 진리와 하늘의 축복을 쏟아 주어도 엎어놓은 동이같이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은 살릴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모두 엎어놓은 동이가 되지 말고 젖혀놓은 동이가 되어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가지고 가서 자신의 것으로 삼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거기 가면 한 시간도 빠지지 말라고 한대. 세뇌 교육을 시켜서 미혹시킨대.”라고들 합니다. 내가 사람들을 세뇌 교육시키고 미혹시켜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교주로 추대한다고 해서 내가 교주 노릇을 할 것입니까? 이 지구의 왕으로 삼는다고 해서 왕이 될 것입니까? 교주로 추대하고 왕을 시켜도 교주와 왕위를 누릴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정신 없는 사람들이 종교를 팔아서 영광 누리고 돈 벌려고 하지, 세상은 다 끝나 버렸습니다. 탁상만큼 돈을 준다고 해도 돈 쓸 시간도 없을 뿐더러 내겐 돈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텐트에서 수천명이 낮잠 자고 성전에 몇백명만 참석한다면 나도 신경 덜 쓰고 좋습니다. 다 와서 들으라고 하는 것은 청중들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기왕에 한 달의 삼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희생하고, 많은 돈을 희생해서 왔으면 온 목적을 이루기 바랍니다.
이 집회가 왜 세계적으로 여론이 분분하고 왜 난리가 일어나는가, 그리고 왜 여기서는 변화가 되는가를 알아보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일생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기를 ‘일생 예수 믿을 필요가 없다. 며칠만 믿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인사하는 시간이고 내일부터 강의가 시작되는데 내일, 모레, 글피까지는 속이 상하고 자꾸 울화가 치밀어 올라올 것입니다. 음식을 잘못 먹은 것같이 비위가 상하고 울컥하는 감정이 속에서 치밀어 올라 자꾸 가방을 챙겨서 가고 싶을 것입니다.
이 집회는 어떤 특정한 교파의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인만 오는 곳도 아닙니다. 불교의 스님들도 많이 오고, 유교를 믿는 분도 오고, 천도교 믿는 분들도 오고, 몰몬 교인들도 오고 …, 오고 싶은 사람들은 다 옵니다. 올 때는 제각기 다니던 교파의 신분으로 오는데 갈 때는 그 교파의 편견과 담이 싹 없어져 돌아갑니다. 그러면 무슨 교파가 되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여자여! 이제는 사마리아에서도 예배 안 드리고, 예루살렘에서도 예배 안 드리고, 이제 아버지 앞에서 예배 드릴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감리 교회에서, 절에서, 향교에서 예배 드리지 않고 이제 하늘 아버지 앞에 직접 예배 드리고, 그 아버지와 함께 살 때가 되었습니다.
그전에 장로교 목사님, 안식일 교회 목사님, 감리 교회 목사님, 순복음 교회 목사님, 성결 교회 목사님, 미국에서까지도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이 집회가 참 좋다고 하니까 온 것입니다. 와서 듣는데 얼마나 목사들을 책망하고 들이치는지 평생 주의 종이라고 해서 대우만 받았는데 여기 와 보니까 주의 종 대우를 얼마나 안 좋게 하는지 모릅니다.
주의 종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목사님들이 저녁 때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 다 갑시다. 우리가 왜 신학교도 못 나온 저 시시한 사람한테 이렇게 모욕을 받고 두들겨 맞고 있어야 됩니까? 기분 나쁘니 갑시다.” “그럽시다.” 그래서 전부 속이 상해서 가방을 챙겼습니다.
가려고 하는데 날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이 산중에서 날이 어두웠으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시 같으면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 버리겠는데 어두웠으니 캄캄한 밤에 저벅거리고 가다가 어디서 구를지도 몰라서 “어두웠으니 오늘 저녁만 지내고 내일은 아침 먹고 갑시다. 기분 나빠서 못 듣겠습니다.” 하고 회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날 저녁 중생 성화 시간에 아주 꼬부라진 눈으로 “이것만 듣고 내일은 가리라.”고 마지막 시간을 들었는데 다 듣고 나서 목사님들이 다시 회의를 했습니다. “자, 오늘 밤에 들어보니까 이것은 저 인간 박명호의 소리가 아니고 그 속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니 우리 끝까지 들어 봅시다.” “아, 목사님도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나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각 교파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가방을 다시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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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난 다음에 목사님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랬던 목사님들이 그 후로도 계속 오십니다. 며칠이 지난 다음에 각자 자기 교파들을 걱정하면서 “우리 교파가 큰 문제라.”고 땅이 꺼지게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번은 목사 조사단들이 와서 막 울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불타는 참진리 앞에서는 회개치 않을 영혼이 없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 글피까지는 자꾸 가방을 들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라도 그 목사님들과 같이 사흘만 꾹 참아주기 바랍니다. 이렇게 부탁해도 다 잊어버리고 “간다.”고 하면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안들을 분들은 잘 가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절대로 사람을 붙잡는 곳이 아닙니다.
이 집회를 하는 동안 가는 사람들의 가방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가면 붙잡고 안 보내는 줄 알지만 나는 한 사람도 붙잡은 역사가 없습니다. 정문에서 안내하는 형제들이 “제발 참으시고 듣고 가십시오.”라고 하면 나는 “빨리 보내지 왜 붙잡느냐?”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선교원은 사람을 미혹해서 잡아 놓고 이상한 짓 하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교원은 세상 교회같이 “당신, 왔으니 여기에 이름을 올리시오. 다음부터 십일조를 가지고 오시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참석한 사람들의 신분이 목사인지, 대학 교수인지, 스님인지, 신부인지, 도둑질하다가 온 사람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물어 보지도 않고 이름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계층에서 왔을지라도 기왕에 왔으니 열흘 동안 듣고 은혜 받고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다음 집회는 안 와도 좋고, 올 필요도 없습니다. 구구하게 사정해서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왕에 희생하고 왔으니 온 김에 기왕이면 영생을 얻으라고 열흘 동안 한 시간도 빠지지 말고 참석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배우는 중생과 성화, 영생, 엘리야, 인치는 천사 등 모든 말씀은 신학을 두세개, 열개를 나왔을지라도 세상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말씀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질문과 대답이 성립이 안 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그 교과 과목을 가르치지도 않고 “질문할 사람 손 들라.”고 합니까? 다 가르쳐 준 다음에 질문할 사람 손 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질문거리가 있으면 무언의 마음으로 질문하기 바랍니다. 나는 강사가 아니고 이곳에 계신 강사님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한 분이시니 예수님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강사는 예수님뿐이십니다. 나는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조수입니다. 그래서 이 강사님은 청중의 마음속의 비밀을 다 꿰뚫어 보시고, 청중이 아무리 많아도 그 마음속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학을 나와서 깊은 교리의 의문이 있을지라도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각자가 마음으로 무언(無言)의 질문을 하면 여기서는 유언(有言)으로 정확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집회는 희한하다. 나 하나만 놓고 설교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의 질문이 다 해결되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설교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각기 한 사람만 놓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속이 상해서 “뭣도 이상하고, 뭣도 이상하고 ….” 10, 20가지의 질문거리를 적어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다 보면 질문이 해결되고, 또 해결되고 끝날에는 아무 질문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의 도를 다 통한 우등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목사님들과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사흘만 참기 바랍니다. 사흘 참으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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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삼일 동안 호통을 치시지만 이틀 후에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셔서 살려내실 것이고, 삼일 후에는 그 하늘의 행복을 가지고 뛰어놀게 하실 것이다.”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1일은 1년이라고 했으니까 3년을 예수 믿어야지.” 그것이 아니라 3일만 참석하면 하늘의 행복으로 뛰게 될 것입니다. 3일만 참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산다고 하면 살고, 죽는다고 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일생 믿어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만 믿어도 깨끗이 구원 받습니다. 참말같이 들리지 않고 믿어지지 않습니까? 믿어지지 않더라도 앉아 있기만 하면 믿어질 것입니다. 왜? 실제로 모든 말씀이 내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 1:6). 이 하늘의 놀라운 진리가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복음을 참양심으로 받아들인 그날부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달린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일생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양심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날부터 중생, 성화의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생 동안 천당에 간다고 성경을 들고 다닙니다. 그 성경 말씀과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말씀과 다릅니까? 똑같습니다. 그런데 태초에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매, 사흘 후에 빛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세 시간 후에 빛이 있었습니까? 3초 후에 빛이 있었습니까? 0.3초도 기다리지 않고 “빛이 있으라.”고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이루어졌습니다. “나무들아, 나와라. 새들아, 나와라.” 하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새가 날아다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요, 창조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과 우리가 일생 동안 천국에 들어간다고 들고 다니던 이 말씀이 같습니까, 틀립니까? 똑같은 말씀인데 왜 일생 예수를 믿어도 나 하나 중생, 성화시키지 못합니까? 그것은 그 교리가 가짜라서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성경 놓고 배웠는데.” 그러나 성경이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2천년 전에 사단 마귀가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을 미혹하려고 나타났습니다. 그때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나타났습니까? “기록되었으되”라는 두루마리 성경 말씀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예수님도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나타나셨습니다. 사단도 성경을 가지고 나타났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리에서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창기가 천사가 되고, 강도가 아름다운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나왔을지라도 신학 대학을 나와서 박사 학위를 딴 유대 제사장들은 일생을 가르쳐도 자기 하나 변화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예루살렘 성에서 종교란 이름 아래 종교를 팔아서 도둑질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트럭으로 몇트럭씩 실려 나갈 엄청난 연금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강도들이라. 내 아버지 집은 변화되어서 승천시키는 곳인데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이 강도들아, 다 나가라.”고 다 내쫓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도 비참하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의 각 교파마다 성경을 안 가르치는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모두 이 성경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남을 가르쳐도 자기 하나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애를 바꿔서 창기를 천사로, 강도를 성자로 바꿔 놓는 종교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있다면 그곳으로 다 가기 바랍니다. 이 집회에 참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신학 박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영국 신학 박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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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회는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곳에서 이 무식한 나무꾼이 가르치는 것이 홀로 산 속에서 등잔불 켜 놓고 연구한 인간의 것이라면 열흘 아니라 백일을 가르쳐도 청중은 고사하고 자기 하나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못난 사람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이 하나님의 통로로 대언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곳에서 열흘 집회를 마치고 떠나가기 전에 모두 중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으로써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바랍니다. 그 대신 말씀드린 대로 열흘 동안 한 시간도 빠지지 말고 모두다 들어야 합니다. 만약 시간에 빠지고서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를 원망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초창기에 대전 시내의 어떤 집에서 집회를 하는데 어떤 교단의 목사들이 들어와서 집회를 못하게 얼마나 방해를 하는지, 그것도 보통 목사들이 아니라 목사 중에서도 부장급 목사들이 와서 난장판을 만들고 날마다 쫓아와서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이 말하기를 목사님들이 너무 방해하니까 대문을 걸어 잠가야겠다고 하며 다음 날 걸어 잠그려고 했더니 대문을 부수는 소리를 하고 뛰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문 잠그려고 했다고 막 흥분하면서 난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난리를 치니까 “목사님! 왜 그러세요?” 하고 거기 있던 신자들이 말리다가 넥타이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의 종의 멱살을 잡았다고 막 덮어씌우니까 신자들이 겁이 나서 말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말리다 보면 넥타이도 만지게 되고, 양복 자락도 붙잡게 되는 것인데 주의 종 멱살을 잡았다고 나한테 와서 “박명호! 당신이 그렇게 가르쳤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일생 동안 가르쳐 온 사람들이 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것이요,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부모님 같은 노인들한테 새파란 목사들이 “이랬어? 저랬어?” 하면서 반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의 종의 권세가 그렇게 큰 것인 줄 거기서 처음 보았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난리를 치는데 보니까 완전히 이성을 잃어서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그리고서 그 이튿날 또 쫓아왔습니다. 아주 악착같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들의 교회 버스로 가자고 했습니다. 교회 버스로 가서 부장 목사들에게 “내가 가진 것이 거짓 교리이고, 목사님들이 가진 것이 참진리, 참복음이라면 참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얘기를 좀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참복음의 능력을 체험을 해 보았어야 얘기를 할 수가 있지, 아무 소리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가진 것이 참진리요, 참복음이라면 목사님 자신은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목사님 가정 식구들은 얼마나 변화시켰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아무 소리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한테 물어 보십시오. 내가 얘기해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참진리, 참복음의 진리가 무엇인가? 일생 동안 죄를 물 먹듯 짓던 죄인들의 생애를 완전히 의인으로 바꿔 놓는 것이 참복음의 능력입니다. 일생 동안 남을 가르쳐도 자기 하나 변화되지 못하는 것이 무슨 복음입니까? 참도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 치국평천하)입니다. 참도라는 것은 먼저 자기가 변화되고, 그 다음 가족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참도입니다. 자기는 마귀 형상을 가지고 다니면서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하면 그것은 광신인 것입니다. 자기 병도 못 고치는 약이 어떻게 남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겠습니까? 자기 병을 먼저 고쳐야 남의 병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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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동해시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그 청중 가운데 얼굴이 고운 어떤 가정 주부였는데, 남편도 살아 있는데 소위 바람이 나서 아들딸 4남매를 두고서 다른 남자를 따라가서 사는 여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당신, 집으로 돌아가라.”고 아무리 교인들이 권했어도 이 남자와 정이 들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나는 그런 분이 참석한 줄도 모르고 하나님 사랑만 가르쳤습니다. 다 끝난 다음에 그 여인이 나한테 오더니 “참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부인에게 “당신,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라고 한 마디도 안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청중 가운데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참진리는 인간을 정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륜의 관계의 정이 다 떨어져 버리고 마음이 본남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또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선생님! 내가 돌아와서 친아빠 모시고 행복하게 남편 섬기고 잘삽니다.” 그 편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생소한, 엄청난 하늘의 빛이기 때문에 이 집회는 첫날부터 오라고 합니다. 온상의 채소들이 갑자기 온상을 벗기면 다 타 죽습니다. 서서히 하루에 몇시간씩 비닐을 걷어 주다가 그 다음엔 반 나절, 한 나절, 그러다가 다 벗겨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태양빛에 다 타 죽습니다. 이 빛이 바로 그렇습니다. 첫날부터 와서 잘 들어야지 중간에 오면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며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 전에 포항에서 집회를 하는데 첫날부터 오라고 했더니 내일은 강사가 가방 챙겨서 집으로 가야할 텐데 오늘 온 것입니다. 청중들이 말씀을 듣다 보면 혼자 듣기가 아까우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이 나서 중간에 자꾸 끌어들여서 그런 것입니다. 기왕에 듣게 하려면 첫날부터 잘 듣게 해서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두 분이 새로 왔는데 한 분은 배 타는 선장님이고, 한 분은 달러 놀이하는 고리대금업자였습니다. 이 두 직업이 다 어려운 직업입니다. 배 선장님 노릇하려면 술도 잘 마셔야 하고, 주먹도 세야 그 거친 바다와 싸우는 선원들을 부려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센 사나이가 되어야 됩니다. 또 고리대금업을 하려면 아침거리가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쫓아가서 이불이라도 끌어내야만 그 직업을 해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험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들어 왔습니다.
내일 끝나는데 오늘 들어왔으니 이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초부터 해야 하고 그렇다고 그 둘 때문에 더 많은 청중들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를 위해서 대를 희생할 수는 없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키자고 그 사람들이 온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냥 최고봉의 진리를 다루고 마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눈을 까막까막 뜨면서 두세 시간 듣더니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정말 천사입니다.”라고 그 선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리대금업 하는 분은 안식일 교회에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천사입니다. 우리 집안이 예수를 믿어도 선생님 같은 분은 못 보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면서 나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도 채 못 들은 두분이 나중에 소문 들으니까 선장은 술, 담배, 고기를 다 끊고 아름다운 생활을 한다고 하고, 고리대금업 하시던 분은 “내가 이런 직업을 해서 되겠는가?” 해서 다 집어치우고 요구르트 배달원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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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몇시간 만에 그렇게 무서웠던 사람들을 그렇게 바꿔 놓았는가? 그것은 바로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이 복음은 어떤 죄인도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증거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변화시킨 부끄럽지 않은 복음을 가지고 부끄럽지 않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하나 변화시키지 못한 가짜를 증거해서 남을 망치고 돈이나 버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양심적으로 자신과 남을 변화시키고 구원시켜 놓은, 하늘로 이끄는 부끄러움 없는 참복음을 사도 바울같이 외쳐야 합니다.
한번은 청주시에서 개신 교회에 나가는 훌륭한 여집사님이 오셨는데 그 남편은 교회에서도 훌륭한 수석 장로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국가 유공자라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훈장과 상장을 많이 받았고 사회 사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훌륭하다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훌륭한 장로님을 깡패들이 술을 먹고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로님이라도 칼에 맞아 돌아가셨으니 슬피 울어 보았자 돌아가신 분을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모님은 난데없이 남편이 돌아가셨기 대문에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사를 치르고 난 다음에 이 집사님의 가슴에는 남편을 죽인 칼과 똑같은 칼이 자기 가슴에 박힌 것입니다.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목사님! 나에게 안수를 해서 이 칼 좀 빼 주십시오.” 했는데 아무리 목사가 안수 기도를 해봤자 칼이 안 빠지는 것입니다. 철야, 금식 기도를 해도 안 되고 이 기도원, 저 기도원 다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서울 큰 병원에 가서 “박사님! 내 가슴의 칼 좀 빼 주십시오.” 하고 애원해도 이 세상의 의학 박사가 아무리 다 모여도 그 집사님 가슴에 박힌 칼을 빼 줄 길이 없고, 어떤 안수 기도도 칼을 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그분에게 가서 “집사님! 그러지 마시고 저 강원도 원주에 가면 엘리야복음선교원이라고 있는데 거기 가시면 집사님 가슴의 칼이 빠질 것 같습니다.” “응?” 그것이 무슨 교파인지, 이단인지 알아 볼 필요도 없고 그저 칼만 빼 주면 어디든지 좇아갈 판이었습니다. 돈도 귀찮고, 자식도 귀찮고, 교회도 이제는 다 귀찮아서 정말 자식만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인데 칼을 빼 준다고 하니까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번쩍 열려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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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회를 열흘 동안 참석했는데 그 많은 목사들이 안수를 하고, 그 많은 교파, 기도원, 서울의 유명한 병원에 가도 안 빠지던 칼이 이곳에 참석하고 쑥 빠졌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얼굴이 환해 가지고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니까 동네 사람들이 “집사님! 집사님 얼굴 보니까 생기가 돕니다. 매집회 때마다 거기 가십시오.” “아, 집사님은 이제 살았어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와 신자들이 들고 일어나더니 “저 집사가 어디 오류 집회를 참석하고 오더니 팽 돌았다. 이단에 빠졌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당신은 미쳤으니까 입도 열지 말라. 얼굴을 보니까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죽었던 얼굴이 살았는데 이단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 집안 대소가도 교회에서 그들에게 충동을 하니까 같이 일어나서 “그런 말 듣기 싫다. 그 이단 말은 하지도 말라.” 하면서 염병같이 밀어붙이며 입도 못 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대소가들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좋아서 엎드려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 내 가슴에 박혔던 칼이 빠졌어. 그것은 진짜였어.” 하면서 행복해 했다고 합니다.
속담에 “꿩 잡는 것이 참매라.”고 했습니다. 매일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 하나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기 하나 구원시키지 못하는 것은 참진리, 참복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참복음입니다.
이런 참복음이 지구 어딘가에 있다면 그 진리를 따라가기 바랍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나 하나 변화되지 못하고, 매일 부인이나 때리고, 남편을 들볶고, 가정 불화가 있고, 교인끼리 물고 뜯고, 교파끼리 싸우는, 변화되지 못한 생애였고 심령이 곤고하였다면 이곳에서 참복음의 능력으로 중생의 경험을 하기 바랍니다.
일생 동안 배운 교리가 나와 내 가정, 내 교회를 변화시키지 못한 교리였다면 이판사판입니다. 죽을 바에야 이왕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이곳에 왔으니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끝까지 들어서 영생 얻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강화도에 결혼 생활 23년 동안 가장이 매일 술을 마셔서 별명이 술독인, 매우 불화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온 식구들이 마음과 육신으로 다 병이 들었고 가장은 매일 술을 마셔서 병이 들고 몸도 바짝 말라서 행패만 부렸습니다. 그 사람의 가족은 안식일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따라다녀 보았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되니까 또 술 먹고 소리를 지르고 아내를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원에 와서 한 집회 참석하고 갔는데 “강화 술독이 깨졌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들이 와서 부인 보고 “당신 남편은 오류, 이단에 빠졌소! 그러니 절대로 못가게 붙잡으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이 “오류고, 육류고 그만두시오. 당신네 교회에 가도 변화되지 않던 남편이 열흘만에 새 사람이 되어 나왔소.” 하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렇게 인자한 남편이 되어서 가정이 소천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 목사들이 “두고 보시오. 또 술 먹을 것이오.”라고 말했는데 그 말한 때로부터 벌써 몇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술도 안 먹고 성실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복음입니다. 모두가 이 복음으로 가정을 되찾고, 자신을 찾고, 천국을 얻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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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교원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아빠 크신 은혜라 ….” 고 찬양을 합니다. 젊은 청년도 아빠라고 하고, 80이 넘으신 할아버지도 아빠라고 하고, 또 친아버지라고 하고, 별소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다 큰 사람들이 도대체 아빠가 뭐야? 아빠파 이단이 또 하나 생겼구나. 가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누가 나를 죽인다고 해도 두렵지 않은데 말씀을 안 듣고 돌아간다는 데는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면 죽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엘리야 복음 선교원에서 박명호가 아빠라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아바’는 한국말이 아니고 아람(시리아)어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할 때 아바를 한국말로 번역하지 않고 아람어 그대로 따다 놓은 것입니다. 요새 새로 번역된 공동번역 성경을 보면 이것을 전부 한국말로 번역해서 ‘아빠’라고 바꿔 놓았습니다. 아바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빠입니다.
요새 새로 번역된 공동번역 성경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기를 불러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박명호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아버지,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본이시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 20:17)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새 모든 종교는 어떤 교파고간에 성경에 하나님이 어떻게 가르쳐 주셨을지라도 자기 교리에 맞지 않으면 오류라고 안 받아들입니다. 교리가 따로 있습니까? 성경이 우리의 교리이고, 교리가 우리의 성경입니다. 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성경을 교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가 부자가 되어서 훈련병들의 대우를 잘 해줍니다. 옛날에는 눈만 흘겨도 찢어질 작업복을 기워 입으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 떨어진 운동화를 받아 신으면 앞부분과 뒤꿈치가 구멍이 나 있어 발가락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훈련소 생활을 마칠 때쯤이면 번쩍번쩍한 새 워커를 하나씩 지급 받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부자가 부러울 것이 없고, 세상 천지에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뛰다가 번쩍번쩍한 워커를 받으니 얼마나 좋은지, 그것을 닦고 또 닦습니다.
그런데 어떤 훈련병에게 발보다 더 작은 워커가 지급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들고 “내무반장님! 내 발보다 더 작은 워커가 왔습니다.” 그랬더니 내무반장이 하는 말이 “워커에다 발을 맞춰!”라고 하는 것입니다. 발에다 워커를 맞춰야지, 어떻게 워커에다 발을 맞출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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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이 이와 똑같습니다. 모든 교리는 성경에다 맞춰야 합니다. 이 성경을 교리에다 맞추려고 하니 그 조교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교리를 성경에다 맞추고, 성경에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따르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친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은 우리 아버지와 예수께서 직접 가르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 … 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릅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해야 한다. 3살, 5살짜리가 아버지 앞에서 수염을 훑으면서 “에헴” 하고 책상다리하고 앉았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아이는 정신 이상인 아이입니다. 우리가 백살, 천살, 만살을 살지라도 영원한 나이를 가지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포대기 속의 아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백살도 못 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른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신이 돈 행동입니다. 우리는 돌이켜 정신이 온전하고 단순한 하나님의 친아들딸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진리이고, 아빠라고 부르면 오류라고 합니다. 얼마나 우스운 교리입니까? 아버지는 뭐고, 아빠는 무엇입니까? 달걀은 뭐고, 계란은 무엇입니까? 김은 뭐고, 해태는 무엇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모두 이곳에서 6천년 만에 친아버지를 찾기 바랍니다. 그토록 무섭게 심판하며 나를 유황불에 던지려는 하나님이 아닌, 사랑스러운 친아빠 품에 안겨 6천년 방황의 세월이 끝나는 행복한 하나님의 친자녀들이 되기 바랍니다.
첫댓글 조용 조용하신 음성속에
여호와의 신이 임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