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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청한 일도 없는데
이 세상에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 한 아기는 부모님의 사랑과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성장 성숙해 간다.
아이들은 여러가지 의식과 예절을 거치면서 독립심을 길러나간다.
그러한 의식과 예절들은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돌, 생일, 입학, 졸업, 성년식,
혼인, 회갑, 등등의 다양한 의식과 예절들을 거치면서 인격을 형성한다.
해마다 3월이 되면 새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기쁨으로 학생
을 위하여 새 가방, 새 옷을 준비하고, 학교에서는 새 학생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
고 학생은 입학식을 함으로써 그 학교의 일원이 된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새로운 일이 다가올 때 마다 그에 해당하는 행사
를 갖게 된다. 그때마다 그 행사가 지니는 뜻을 행사에 알맞도록 외부에 나타나게
되는데 교회 안에서도 신앙생활의 성장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성
장할 수 있도록 특별한 예식을 베푼다. 이러한 예식들과 상징적인 행동들을 통하
여 교회에서는 '거룩함에로 나아가는 길' 이라하여 성사라 부른다.
가지 활동을 통해서 행복을 실현시키며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 모두 진
정한 행복과 선과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인간적인 행복들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
다. 나를 영원히 충족시켜 줄 만한 행복은 어디있을까? 부족하고 유한한 우리들
마음 안에서는 찾을 수 없기에 우리 마음은 무한과 영원을 필요로 한다. 즉, 하느
님을 찾아야 한다. 하느님을 찾아 만나는 것이 바로 종교의 핵심이다. 한없는 욕망
에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수고하고 짐진 자와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
라. 나는 너희를 쉬게 하리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모든 인간이 원
하고 목말라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하여,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들을 기
다리고 계신다.
구약성서에서의 일관된 사상은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의 내림에 대한 애타는 기
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은 하느
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되신 분으로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기
쁜 소식을 선포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써 우리 모
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고 한 형제임을 깨우쳐 주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전 인
류를 하느님 아버지에게로 한데 모으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서 하시던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신앙에 의한 성사를 베풀고 있다. 성사
에는 7성사가 있다.
표징을 통해 현존하시어 그 의미를
앎으로써 하느님을 따르고 흠숭하게 하는 거룩함에로 가는 길이다.
표징은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러나 어떤 무엇이 실재로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차길 옆이나 건널목의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다거나 종소리가 나는 것은 기차가 오고 있다는 표지이다. 그리고 건물에 부착되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둥 전등 (3색)은 그 건물의 어딘엔가에 이발소가 있다는 표지이다. 이러한 표지들은 단지 실재로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줄뿐이다. 그런 표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기차, 이발 소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철로변의 신호등이 고장났다거나 이발소 표지의 전등도 빈 건물에 달려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표징은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외면적으로 있는 실물 그 자체를 가르키며, 실물
보다 깊은 의미를 드러 내고 있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 외적으로 보
기에 그저 작은 행동이지만 거기에는 사랑과 우정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 행동은
아름다운 것이 되고 상대방에게는 커다란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표징에는
그것이 상징하고자 하는 것이 담겨져 있으며 또한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는
그 의미를 깨닫도록 해준다.
성사는 하나의 표징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취하신 인성을 통해서 성사가 무엇
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즉, 하느님은 당신의 생명을 인간에게 주시고, 볼
수있는 피조물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고자 활동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신앙
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당
신 제자 공동체에 나타나신 목적은 당신의 지상생활을 연장한다는 것뿐만이 아니
고 당신 제자들과 교회가 그리스도의 구원적 현존(교회헌장 1항)의 새로운 양식을
이어받게 하려는 것이다. 인류를 거룩하게 하고 일치시키는 그리스도의 성사가 바
로 교회이다.
우리가 성사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 그것은 바
로 믿음이다. 예수님은 요한 20장 19절에서 "너는 나를 보고야 아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셨다. 이 말씀은 현재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관련된 말씀이다. 신앙의 뿌리는 신뢰이다. 즉,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
리를 구원하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정하신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공의회 문헌에서도 "성사가 유효하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교회의 신앙이 필수적
인 조건이며, 성사가 결실을 맺으려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받은 구성원들
의 능동적인 신앙이 요구 된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전례 59). 나무에 물을 주는데
도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어버리듯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우리의 신
앙을 요구하는 것이다.
성사는 하느님이 사람을 축복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상징이고
표지이다. 7성사에 대해서는 성사편에 있기에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 교회
안에서 이루어 지는 성사를 우리 인생의 과정과 비교해 볼 수 있다. 태어나면서
죽기까지 거쳐야하는 사건들, 즉 입학식, 혼인식, 회갑, 죽음 등등의 기쁨들과 아픔
들이 인생을 메꾸어 간다. 인생에 있어서 한번뿐인 것들 즉 탄생, 성년, 혼인, 죽음
등이 있고, 반복되는 것들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사도 한번 밖에 받을수 없고
또 반복해서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세례, 견진, 신품, 혼인등은 한번 밖에 받
을 수 없고, 성체, 고해, 병자성사는 반복해서 받을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의 새 탄생은 세례성사로써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뜻안에 머물게 된다. 이제 '묵은 인간'은 죽고 '새로운 인간'
이 되살아나 온 삶이 변화 된다. 새로운 '인호'를 받고 그리스도의 길에 동참하게
된다. 세례성사를 통해 점차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거룩해 지며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고 그분을 닮게 되어 더욱 더 그분께 동화 된다(요한 3,5; 로마 6,3-4).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 선포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을 고백해야 한다. 신앙고백에 있어서 핵심적 신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
이다. 이 신앙은 완전한 회개를 요구하며 생활 전체를 변화시켜 그리스도께 온전
히 자신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죄에 죽고 하느님을 위해 사는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 투신하여 세
상을 그리스도화 하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 안에서 자란 자녀들은 점차 성숙되어 남자는 군복무를 하고 여자는 어
머니로서 자격을 갖추어 가듯, 견진성사를 통해 성인으로서의 임무을 갖고 그리스
도인으로서의 증거 의무를 지게 된다. 견진은 하느님 나라와 구원의 메세지를 전
파하라는 부르심이다. 우리는 이 부르심에 따라, 즉 견진성사로 성령과 그 은혜를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혜(성령칠은, 갈라 5,22)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의 성숙과
교회 사명에 충실하겠다는 의무를 고백하며, 자신의 기쁨을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나날의 양식으로 몸을 유지 시켜 나가고 건강하게 하듯이, 매일 미사
때 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형제들과 일치를 이루는 성체성사가 있다. 7 성사들
중에서 성사적 활동과 그리스도교 전체의 중심이 되는 것은 성체 성사이다. 모든
이들을 구원한 단 한번의 제사, 이 제사가 예배 중에 가장 완전한 이 행위가 교회
에 맡겨졌고, 예수님 자신이 모든 성사의 원천이고 구원의 표지이다 (전례 7).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22,19).
우리 중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산다면
주님과 남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어간다는 사도 바울로의 외침대로
성체성사는 우리 인간의 삶과 죽음의 성사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
여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죽음의 기념인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을 모셔 더욱 풍부한 생명의 친교를 얻는다. 성체성사는 흠숭을 받을
대상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삶으로 옮겨져야 할 신비이다. 우리가 함께 음식을 나
누는 성찬에는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그 생명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타인들과 진정으로 친교를 나눌 희망과 힘을 얻는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죽고 타인을 위해 사는 우리의 삶이 더욱 깊은 뜻을 지니게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하나됨의 원천뿐만 아니라 전인류의 하나됨이 이루어지는 인간애의 근원도 된다. 우리가 매일 받아 보시는 그리스도와 진정 일치한다면 눈을 크게 뜨고 가난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 안에 살고 계시는 그분을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며 우리가 바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힘을 주신다. 이런 사랑을 나눈다면 주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가슴속에도, 여인숙 식탁에서도, 주님께서 사람을 사로잡는 은혜인 성체성사로 써 인간애에 불을 놓으신다(요한6,51.56-57).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며, 특히 사회 공동체
를 이루어 나가면서 죄는 더욱 다양하게 나타나고 갖가지 형태로 저질러 지고 있
다. 우리는 죄중에 살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옛말에 죄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듯이, 죄를 짓고 아무리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려고 변명을 늘어
놓아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 속박되고 자신을 구속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죄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며 동시에 미움과 질투와 교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이며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
신의 무너짐이다. 공동체 차원에서 보면 사회성의 상실이고 창조사업의 역행이며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여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큰 죄
악은 죄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인 우리는 하느님의 사
랑으로 밖에 달리 용서 받을 길이 없다. 우리가 회개로 돌아서는 것만이 용서받고
사랑을 받는 길이며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회개는 전인격의 변화이다. 개신교에서
는 통회로써만 죄가 사해진다고 하지만 고해성사는 내적 회개가 없는 통회로써 죄
를 없애는 세탁기계는 아니다. 우리는 바리사이적 신앙생활에 주의를 해야 한다.
그들의 열심이라는 것은 하느님께만 의존한다기보다는 자기자신의 힘 만으로 율법
을 지킨다든지 공로를 쌓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위선자 혹은 세심주의나 엄격주의
에 빠진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하고 요긴하며 정말 중요
한 것은 사랑이다. 고해성사는 사랑의 표징이며 우정과 화해의 성사이다. 요한 20
장 23절과 마태 18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사죄권을 위임하셨다. 죄
에 떨어지는 나약한 우리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과의 화해로
친교를 이룬다. 하느님과 양심을 거스린 자기 잘못과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고 죄
를 용서받았다는 확신과 기쁨을 맛보게 되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
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잘못과 죄에 대해서 우리는 자
신을 자주 돌아보고 양심에 꺼리끼는 일이 없이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하느님
과 이웃 앞에 떳떳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종신토록 공동운명체를 이루어 그 본성상 배우자들의 선
익, 자녀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영세자들 사이에서의 혼인 서약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사의 품위에로 올려지는 혼인 성사가 있다.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부부생활과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로 이루어지며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 내며 전달 해야할 사명을 지닙
니다. 가정공동체의 사랑의 결핍은 사회적인 탈선풍조와 비행을 날로 증가하게 하
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가정은 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며 또한 모범적
인 생활로 일관되어야 할 것이다. 부부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사회의 유능한 인간
으로 양육하여야 하며 특히 하느님의 착한 아들 딸로서 자라나게 해야 할 크나큰
의무가 있다.
만일 자녀의 출산을 배제하는 부부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창조의 질
서, 즉 하느님의 뜻에 위배 되는 것이다. 부부들은 자신들이 낳을 자녀의 수에 대
하여 참으로 신중히 숙고해야 하며, 그들의 처지에 적합하고도 치밀한 가족 계획
을 세워야 한다. 원칙적으로 부부들은 교도권이 금하는 방법, 즉 모든 형태의 인공
산아제한을 배제해야 한다.
교회의 사목직에 종사하려는 이들을 축성하고 권위을 부여하는 신품성사가 있
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최후의 만찬 때에 사도들에게 신품을
주셨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
는 당신의 구속활동이 사제직을 통하여 가시적으로 계속 되도록 신품성사를 세우
신 것이다. 사제의 모든 존재와 활동의 원천은 그리스도이기에 사제직은 그리스도
를 대신해서 활동하도록 불리운 직책이다. 그리고 사제란 주교의 휼륭한 협력자로
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자신들을 도야하여 그리스도를 닮도록 불리운
사람들이다.
사제는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표지이다. 사제들은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산 연장이 되어 천상 효력으로써 온인류 사회를 재건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계속하며, 백성들을 성화 하고 가르치며 다스리며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된다. 우리들은 고귀한 사제직에 부름 받은 신학생, 수도자, 사제들을 위해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보다 더 잘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느님 나라와 이 세상에 봉사하는 특별한 직무를 맡게 되는 사제직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병 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병자의 성사가 있다. 이 성사는
병자에게 성령의 은총을 받게 해줌으로써 하나의 인간으로서 구원을 받도록 도와
주며, 죽음의 세력과 악마의 유혹을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써 이겨내도록 도와 주
는 성사이다. 이 병자성사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의 성사이다(2 고린 4,16-18).
이 성사로 희망의 약속을 주시어 우리를 모름지기 하느님의 자녀, 백성이 되도록
돌보아 주시며 가꾸어 주시니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 ? 병자성사의 제 1 효과는 굳
셈의 은총을 주는 것이고 제 2 효과는 죄의 사함이다. 치유의 성사로 여러번 받을
수 있고 하느님께 신뢰로써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악마의 유혹과 죽음의 번민으
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야 하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7 성사를 세움으로써 우리와 접촉하여 하느님의 뜻을 이루
십니다. 모든 성사는 상호 연관 속에서 작용하고 성체성사 안에서 총괄된다.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은 하나요 또 그리스도와 성령이 주시는 새 생
명도 하나이므로 성사들은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이 성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신비스러운 자신의 힘(성령)으로 오늘도 구
원사업을 인간 사회에, 인간조건에 맞게 이루어 나가시고 계시는 구원사업 활동인
것이다. 모든 성사가 거행될 때마다 신앙인과 공동체 전체가 그리스도, 곧 완전한
인간의 충만한 성장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장의 걸음걸이를 내딛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생겨나고 성사의 거행으로 말미암아 성숙되는 신
앙은 생활의 증거를 통하여 온전하게 표현된다.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은총을 상징하고 또한 은총을 주시는 외적 표시로
서, 주님과 위격적 만남의 생활 자체이다. 성사는 교회 안에서의 구원행위이고 인
간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목적으로 한다(전
례헌장9항). 그리스도인의 생활자체는 그리스도와의 성사적 만남으로 완성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교회 안에 특히 전례 행사 안에 항상 현존하신다. 전례는 교
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전례 10). 이 전례 안
에서 예수님 자신이 모든 성사의 원천이고 구원의 보이는 표지이다. 우리는 성사
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며 그분에게서 은총과 생명을 받다. 7
성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이다. 성사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전례행위를 통해
서 성사로써 상징되는 은총을 실제로 주시는데에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우리가 성사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하는 일상
적인 표지을 통해서, 바로 그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은총이 힘있게 활동하신다는
것을 믿고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사를 통해 궁극의 목표를 향해 순례한다. 성
사적 노정은 엠마오로 가는 숨겨진 길이며, 우리는 우리의 주님과 함께 그 길을
동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그분을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우리
겉에 감추어진 그분의 현존을 의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성사를 통해서 우
리에게 말씀을 하실 때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 마음과 열의가 뜨거워져 즉시 그
리스도교적 생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볼 수있는 은총이다. 보이는 성
사가 효력을 낼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현존하신다. 성사의 중심인 성체
성사는 모든 운동의 시작이며 심장부에 위치한다. 성체성사는 우리 가운데 머무시
는 그리스도의 참 현존의 촛점이다. 이 주위로 다른 여섯성사가 있다.
웅대한 자연을 보자. 그 안에서 흐르고 있는 물은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 주는 표지가 된다. 들판에 영글어 있는 곡식을 보자. 그
곡식으로 만들어진 밥은 우리의 배고픔을 없애줄 뿐 아니라, 바로 그 곡식을 먹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와 일치됨을 나타내준다. 또한 우리는
늘 말을 하고 삽니다. 우리의 말은 좋은 말도 있지만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말, 그
리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고해성사에서
는 우리가 평범하게 사용하는 말이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는 하느님의 말씀
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 하나가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
되고 있다. 바로 성사가 지니는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표
지로 사용되는 고귀한 것이고, 그래서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연
에 대해서 그리고 이웃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운 감정을 가져야 하다는 것을 나타
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세상사를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자
신은 손해를 보며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무슨일에나 최선을 다
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맞갖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
하고자 힘쓰는 성사적 삶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 세상에 실망하고 이 세상에 짓눌려서
살아왔고, 그래서 이자리에 피신해 온것은 아닌가 ? 물론 이 세상에 악의 요소는
정말 많다. 그반면 아름다운 것도 많다. 아니 오히려 아직까지 아름다운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하느님과 인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하느님과 인간을 떠나서는 인간의 최고 목표에 도달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도움없이, 인생 행로의 최고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
가능하고 인간과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성사적 삶은 자주 성사의 예식에 참례하는 것만으로 충족될 수
없다. 성사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느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얼마만큼 그분을 따르며 복음적 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
인은 두가지 사명을 지니게 된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요 둘째는 그리스도의 도구로써 이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
께서 하느님의 성사이듯 우리 신앙인들도 이 세상을 성화하기 위한 작은 그리스도
의 성사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뜻이고 교회의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오로지 전례나 성사에 참여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
다. 그리스도인은 성부께 기도해야 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끊임없이 기도하
며 하느님과 일치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일치시켜주는 십자가상의 제사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
를 모시는 신앙생활의 원천인 성체성사에 참여해야 한다. 신자들은 자신의 신심생
활을 통하여 성사들의 표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지극한 열성으로 자주 미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신앙인은 점차 그리스도를 발견하
고 거룩해지며 그분에 속하고 그분을 닮게 되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갈라2,20)라고 말 할 정도로 더욱더 그분과 동
화되어야 할 것이다.
1.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등.
2. R. 로울러 외, 오 경환 역, 그리스도의 가르침, 성바오로 출판사,19772.
3. 주여 당신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성바오로 출판사, 1986.
4. 이순성 역, 현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 , 독일 가톨릭교리교육 협의회편,광주 가톨릭 대학 1990.
5. 안충석 편저, 성사생활,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87.
6. 김윤주, 성사와 그리스도인의 삶, 분도출판사 (분도소책 45),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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