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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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메트리오(Demetrius)
성 호노라투스(Honoratus)
성 플로루스(Florus)
축일 12월 22일
성 데메트리우스(또는 데메트리오)와
성 호노라투스(Honoratus)는 그리고
성 플로루스(Florus)는 이탈리아의
오스티아(Ost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 중에서 성 데메트리우스와 성 호노라투스는
11월 21일에 기념하는 성 데메트리우스와
성 호노리우스(Honorius)와 동일인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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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리아노 스코투스(Marianus Scotus)
축일 12월 22일
아일랜드 북부 더니골(Donegal)에서 태어난
마리아누스 스코투스(Marianus Scotus, 또는 마리아노)는
미소년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며 자랐다.
부모들은 그를 사제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자신은 은수자가 되고 싶어 했다.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그는 로마(Rome)를 향하여
아일랜드를 떠났으나, 독일 남부 밤베르크(Bamberg)에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오토 주교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독일어를 몰라서 고생하다가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그는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느냐고
자주 성령께 기도드렸는데, 꿈을 통하여 응답이
오기를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처음으로 보는 곳에
머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레겐스부르크에 정착하였다.
그가 남긴 사본으로는 성 바오로(Paulus)의 편지가
수록된 것으로 빈(Wien)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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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담(Adam)
축일 12월 22일
아담은 작센의 로쿰(Loccum) 수도원의 사제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하였으나 두 번이나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투철하였다. 그에 대한 기록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세상의 모든 약을 다
구하더라도 복되신 동정 성모님보다 효과 있는
약은 없다. 땅이 살아 있는 창조물들을 끊임없이
내놓듯이, 마리아께서는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낳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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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유타(Jutta)
축일 12월 22일
그녀는 독일 스팬하임(Spanheim)의 메긴하르트
공작의 자매로서 성 디지보드(Disibod)가
디센베르크 강에 세운 수도원 옆의 조그마한
집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성녀 힐데가르데(Hildegardis, 9월 17일)의
교육을 받았다. 이리하여 그녀 주변에 제자들이
모여들자 20여 년 동안 원장으로서 그들을
지도하였다. 그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은
디센베르크의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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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이레몬(Chaeremon)
성 이스키리온(Ischyrion)
축일 12월 22일
성 카이레몬(Chaeremon)과 성 이스키리온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이집트에서 순교하였다. 이집트 내에 황제의
박해 극심해지자 수많은 교우들이 사막으로
피신하였으나 기아와 맹수들로 인하여 고생은
더욱 심하였고 또 많은 이들은 다시 체포되어
노예로 팔려갔다. 이때 피신했던 동료들 중에서
성 카이레몬은 이미 연세가 높은
닐로폴리스(Nilopolis)의 주교였다.
그는 아라비아의 어느 산으로 들어갔으나
그 후에 그의 행방이 묘연했고 또 시체도
찾을 길 없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는 또 다른 한 명은
성 이스키리온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행정장관 밑에서 일하던 관리였다.
그는 행정장관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제물을 바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갖은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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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노(Zeno)
축일 12월 22일
소아시아 지방 니코메디아의 군인이었던
성 제노는 체포되어 로마의 신 케레스
(Ceres, 농업의 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요구를 비웃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턱뼈가 깨지는 고문을 받고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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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프란치스카 사베리아 카브리니
(Frances Xaveria Cabrini)
축일 12월 22일
농부인 아고스티노 카브리니(Agostino Cabrini)와
스텔라 올디니(Stella Oldini)의 13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인 카브리니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Lombardia)의 산탄젤로 로디지아노
(Sant'Angelo Lodigiano)에서 1850년 7월 15일에
태어나 마리아 프란치스카 사베리아
(Maria Francisca Xaveria, 또는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성녀 프란치스카는 학교 교사가 될 꿈을 꾸었으나
18세 때 고아가 되자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건강상의 문제로 두 공동체로부터
입회를 거부당하였으나, 1874년에 안토니우스 세라티
(Antonius Serrati) 몬시뇰의 초청을 받고
곤란한 상태에 빠진 섭리의 집이란 고아원을
관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집의 설립자인
안토니아 톤디니(Antonia Tondini)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토디(Todi)의 주교는 프란치스카로 하여금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녀는 7명의 동료들과 함께 코도뇨(Codogno)의
버려진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으로 이주하여
소녀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성심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1880년 주교의 승인을
받은 즉시 그루멜로(Grumello), 밀라노(Milano)
그리고 로마(Rome)로 퍼져나갔다.
1889년 성녀 프란치스카는 미국 뉴욕(New York)의
대주교 코리건(Corrigan)의 초청으로 뉴욕으로 가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프란치스카가 설립한 성심의 선교 수녀회는
미국에까지 확장되었으며, 1892년 뉴욕의
콜럼버스(Columbus)에 첫 번째 병원을 개설하였다.
그 후 중남미와 영국으로 진출하였고, 1907년에는
성좌로부터 회헌의 승인을 받았다. 1917년 12월 22일
그녀가 시카고(Chicago)에서 운명할 즈음에는
이미 50개 이상의 병원과 학교, 고아원과 수도원 등
괄목할만한 발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1909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고,
1938년 11월 13일에 복자품에 올랐으며,
1946년 7월 7일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시성됨으로써 미국 시민으로는 첫 번째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하여 이주민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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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라비아노(Flavian)
축일 12월 22일
5세기 때 로마(Rome)에
성녀 비비아나(Bibiana, 12월 2일)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Dafrosa, 1월 4일)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비비아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콰팡당트로 추방당한 로마의
전 지사인 성 플라비아누스
(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의 딸이었다.
성 플라비아누스가 죽은 뒤에 그의 아내
성녀 다프로사도 참수를 당했고, 그들의 딸인
성녀 비비아나와 동생 성녀 데메트리아
(Demetria, 6월 21일) 역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다시 체포되었다. 성녀 데메트리아는 이때 바로
죽었고, 성녀 비비아나는 후에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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