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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우피골드버그(셀리)
천성적으로 바보스러우리만치 착하기만 하고 오직 복종 밖에는 할 줄 모르는 셀리(후피 골드버그 분)
는 14살 때 의붓 아버지에게 몸을 빼앗겨 아이를 둘이나 낳는다. 그러나 의붓 아버지는 그 아이들을
낳자마자 새뮤얼 목사와 코린 부부에게 갖다 줘 버린다. 셀리는 여전히 타인의 삶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오직 낙이 있다면 두 살 아래인 여동생 네티(아코슈 부시아 분)와 서로 의지하며 다정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의붓아버지는 이제 어린 네티마저 건드리려 하고, 그러는 중에 40대
초반의 미스터(대니 글로버 분)라는 남자가 네티를 자기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하나 의붓 아버지는
네티는 너무 어리다며 대신 셀리를 데려가라고 한다. 이에 미스터는 어린 셀리를 아내로
맞아 데려간다.
그러나 셀리의 삶은 미스터의 전처 쇼생 아이들 등살과 미스터의 난폭한 성격때문에 노예보다 더
참혹한 생활을 하지만 착한 성품으로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준다. 그러던
어느날 네티는 의붓 아버지의 손을 피해 셀리네 집에 와서 살며 학교도 다니고 배운 걸 셀리에게도
가르쳐 주며 행복하게 살아가나 네티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미스터에게 겁탈 당할 뻔했다가
위기를 모변하지만 화가 난 미스터에게 쫓겨나고 그 후 미스터는 네티한테서 온 셀리의 모든
편지를 다 압수해 버린다.
미스터는 어릴 때부터 서로 연모하던 목사의 딸이자 떠돌이 가수 셕(마가렛 에이버리 분)이
공연을 왔다가 병으로 쓰러지자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간호해 주며 함께 잠자리도 같이하나
셀리는 오히려 그러한 셕을 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펴 준다. 이에 감동한 셕은 셀리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눈을 뜨게 만들어 주고 미스터가 없는 틈을 타 집안을 뒤져 네티한테서 온 편지를
찾아낸다. 그 편지에서 셀리는 자기 아이들이 다 살아 있고 네티와 함께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자라고 있으며 곧 미국으로 오겠다는 내용을 읽고 그 모든 소식을 수십년간이나 차단한
미스터에 대한 증오는 분노로 바뀌어 순하디 순하던 성품이 적극적으로 바뀌어 셕 부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셀리가 집을 나가고 오랜 세월 혼자 사는 데 지친 미스터는 차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셕은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미워했던 목사인 아버지께 돌아가 눈물겨운 화해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미스터의 주선으로 아프리카에 가 있던 네티와 셀리의 아들 아담 그리고 딸 올리비아는
미국으로 와 수십년만에 눈물겨운 가족 상봉을 한다.
한편 앨버트의 아들인 하퍼의 아내 소피아는 샐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녀는 살아가는 일이 싸우는 일입니다.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와 싸우고 남자 형제들과 싸우고 남편과 싸우고.
그런데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녀에 대해 고민하는 하퍼에게
그녀를 때리라고 조언하는 샐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은 아는만큼 보이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그녀가 아는 세상에서 말 안듣는 여자는 맞아야 하는게 맞습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비오던 어느날 앨버트가 사랑하는 셕이 집으로 찾아옵니다.
셕은 아름답고 섹시하며 술집에서 노래부르는 가수입니다.
약간의 신경전 끝에 아픈 셕을 돌보는 셀리
그리고 몸이 다 나은 셕은 앨버트의 아들 하퍼의 술집에서
간드러지고 섹시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샐리에게 노래를 불러줍니다.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Miss Celie's Blues.. Celie's Blues.. Celie's.. 's..
처음이었습니다.
나만을 위한 나만의 것이라니.
영화가 시작되면 보라색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들판에서 즐거운 자매의 한때가 보입니다.
지나치게 즐거운 모습은 그녀들의 검은 피부색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쩐지 불길해보입니다.
이윽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벗어나자 샐리의 실루엣이 보이고
나는 어 무슨애가 저리 뚱뚱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것은 의붓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거라는 나레이션이 들리고
14세 소녀와 의붓 아버지 그리고 두번째 임신이라는 전제는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고된 삶을 상상하게 하면서
그녀의 부른 배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녀는 동생 네티를 달라고 찾아온 앨버트에게 동생 대신 시집 비슷한 것을 갑니다.
그녀는 남편을 "미스터"로 부르며 못생겼다고 구박받고
때로는 잠자리의 노래개로 부억의 하녀로 심심풀이 샌드백으로 고단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얘기하죠
난 싸우는 일은 몰라 그저 살아갈 뿐이야.
호시탐탐 노리는 아버지를 피해 샐리를 동생 네티가 찾아옵니다.
앨버트는 엉큼한 속셈을 가지고 네티를 머무르게 하지만
곧 그 욕심이 거부당하자 그녀를 쫓아냅니다.
그녀들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지만 앨버트의 완력 앞에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언니 죽지않으면 편지할게!
그녀는 웃지못했습니다.
항상 얼굴을 돌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그대로 웃지 못하는 그녀에게 셕이 웃으라 말합니다.
셕에게 손을 잡힌채 비로소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남들이 요구하는 모습으로 살던 그녀가 드디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달라는,
그렇게 살겠다는 선언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은 너무나 정당합니다.
그녀는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이제 누구보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우며 항상 자신에 차 있고 당당한 셕에게도 아픔이 있습니다.
셕의 아버지는 마을의 목사였고
세속의 가수로 사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셕은 언젠가 샐리에게 얘기했죠.
그는 나를 사랑해. 한번도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어쩐지 하늘에 계신 그분과 많이 닮았습니다.
셕이 떠납니다.
샐리는 떠나는 그녀를 따라 가겠다고 결심하지만
마지막 순간 보고 싶을거라는 인사를 하고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 그대로 기절해 버립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되고
그것을 이해하고 견디게 해준 그녀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알고나니 기막히게 막막한 현실.
그러나 고민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희망을 알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죠.
모르면 고민도 없고 절망이란 더더욱 없으니까요.
그녀는 이제 생각할 줄 알고 절망할 줄 알며
무엇보다 살아있습니다.
샐리 뿐만이 아니라 더 기구하다면 기구한 소피아의 삶도 있습니다.
그녀는 시장부인의 하녀가 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시장의 얼굴을 때리는 사고를 칩니다.
1930년대의 시점에서 흑인이 백인을 그것도 흑인 여자가 백인 남자를
게다가 시장을 때렸다는 하늘이 무너질만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8년간 구금되지만
정작 소피아가 감옥에서 고생하는 시간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결국 소피아가 시장 부인의 하녀가 되어 쇼핑하던 장면에서도
난데없는 샐리의 우렁각시 같은 도움이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건지 잠시 혼란스럽게도 하고
말도 안되는 시장 부인의 앙탈로 소피아는 8년만에 찾아간 집에서 10분도 채 머물지 못하지만
나는 소피아가 지낸 감옥에서의 8년 보다
요정같이 가게에서 그녀를 도와주는 샐리와 만나던 짧은 순간과
8년만에 집에 머무른 10분 "밖에" 보다 머무른 10분 "이나" 쪽에 마음이 갑니다.
많은 것을 잃은 그녀에게 그나마 허용된 따스함과 감격의 순간들 말이죠.
잃은 것들에 대한 연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 같은거 말입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결혼한 셕은 그녀의 남편과 함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셕은 우연히 수십년간 앨버트가
셀리에게 오는 네티의 편지를 숨겨왔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샐리에게 알려줍니다.
편지에서 네티는 샐리의 두 아이들과 아프리카에 살고 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소식을 전합니다.
샐리의 가슴 속은 이제 네티와 자신의 두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편지를 숨겨온 앨버트에 대한 분노로 가득찹니다.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단지 살아갈 뿐이 아닌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이유 말입니다.
아프리카에 그들이 살고 있어
죽이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들은 양이 한계에 이르면 질이 달라집니다.
임계점. 그리고 폭발.
샐리의 자아는 이런식으로 찾아옵니다.
걸어서 앨버트를 따라왔던 길을 따라 셕의 자동차를 타고 그녀가 떠납니다.
그리고 샐리는 죽은 의붓 아버지의 집을 물려받고
시내에 바지가게를 열고 몸빼를 만들어 팔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갑니다.
갑자기 일사천리로 잘 풀립니다.
물려받은 의붓 아버지의 집을 찾아갈때 화려한 옷차림으로
이를 환히 드러내면서 언젠가 셕에게 배웠던 몸짓으로 흔들던 그녀를 보았습니까?
나는 그 모습이 완전한 자아복원을 이룬 사람의 자신감처럼 보였습니다.
어이없지만 내겐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이었습니다.
볕 따뜻하던 봄날의 어느주일. 셕은 목사인 아버지와 화해를 합니다.
또 알버트는 숨겨두었던 돈을 찾아 네티의 귀국을 위해 이민국으로 갑니다.
끔찍하게도 전형적이지만 언제나 전형적이란 말은
진부함을 알면서도 보편적임을 인정하게 되는 단어이죠.
감동하라는 장면이니 감동합니다.
감동을 결론으로 잡은 채 영화는 감동의 수위와 감동할 장면만을 남기고
이제 당연한 결말에 다다릅니다.
아프리카에서 네티와 샐리의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빨갛게 물든 배경처럼 인생의 황혼에서 다시 만난 두자매는
마치 서로의 암호를 확인하듯이 그 옛날의 그 들판에서 옛날처럼 쎄쎄쎄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슬픈 손짓.
그녀들을 비추는 석양 뒤로 전쟁같았던 그녀들의 삶이 지나갑니다.
4명의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은 같은 피부색과 서로다른 삶의 색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흑인 여성상인 샐리
그녀는 조용하면서 순종적인 성격으로 스스로를 억누르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권위적인 남성관에 젖은 앨버트의 핍박과 폭력속에서도 묵묵히 견뎌갑니다.
그런 샐리의 동생 네티는 의붓 아버지와 앨버트로 대표되는
욕정으로 가득찬 남성들을 피해 언니와 헤어지고 아프리카로 갑니다.
어쩌면 흑인인 그들에게 아프리카란 유토피아의 다른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이라는 문명사회에서 받았던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샐리에게 자아를 깨닫게 도와주는 술집가수이며 마을목사의 딸인 셕과
같은 폭력과 억압의 상황에서 샐리와 전혀 다른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소피아가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같은 억압과 차별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길을 찾아 걸어갔지만
그녀들 모두 그들의 세상에 의한 희생자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그렇게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견디고 버티고 혹은 싸우며
서로의 삶의 궤적을 엇갈리면서 "감동"이라는 결론으로 갑니다.
모든 삶의 끝은 결국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역시 아쉬운 점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락성을 탈피한 스필버그의 최초의 연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다고 해도
샐리를 비롯한 인물들의 갈등이 화해되는 과정이 때로는 비약적이고
때로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스필버그는 눈물빼는 지지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무언가를 잃고 빼앗기는 장면보다는
그 고통 뒤의 장면들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리고 잃어가는 것들보다는
무엇인가를 잃고 난 뒤에 남은 것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말이죠.
결국 인생이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이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연민보다는
소중한 것들을 잃고 난 뒤에 자신에게 남은 것들이 더욱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며
결국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섣부른 레이시즘이나 페미니즘 보다도
그 모두를 함께하는 휴머니즘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컬러 퍼플은 피부색을 이야기하는 컬러가 아니라
같은 세상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인 동시에
그것은 바로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그래서 컬러 퍼플의 컬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고 할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같은 세상이지만
오늘도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들과 마주치며
무엇인가를 얻고 혹은 잃으며 때로는 버티고 혹은 싸우며
안그런척 하면서도 내 손에 남은 것들을
속으로 꽁꽁 세어가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녀들을 생각하며 불현듯 나의 색깔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색이든 부디 내게 남은 것들을 소중히 하는
보기 좋은 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흑인 여인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그린 앨리스 워커의 퓰리처 수상작을, 헐리웃 최고 흥행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극화한 화제작으로 1986년 내셔널 필름 보드(National Film Board)에서
'이 해의 작품'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카데미 작품상 등 11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도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주연 우피 골드버그는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Color Purple.
헐리우드의 대표적 흥행감독이던 스필버그가 돌연 퓰리쳐상 수상작이며 1900년대 초반에서 1940년대까지 미국 흑인 여성들의 고단한 이야기를 일대기 형식으로 쓴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때 기대도 많고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었고 많은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수상이 예상될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지만 결국 "Color Purple"은 11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뿐 "Out Of Africa"에 밀려 단 하나의 상도 수상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기네스 기록으로 남아있죠.
당시엔 말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필버그라는 흥행감독을 인정하지 못하는 끼리끼리 해먹는 헐리우드의 보수적인 시선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이미 대배우의 반열에 올라있던 경쟁작 "Out Of Africa"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에 비해 지금은 헐리우드의 슈퍼스타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신인들이었던 주연배우들의 이름값과 결정적으로 백인과 흑인이라는 아카데미의 인종주의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준거라는 비판까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캐스팅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죠스, ET, 인디애나 존스 같은 블록버스터 오락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필버그 감독에 그의 영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우피 골드버그와 현재 최고의 여성 아이콘인 오프라 윈프리, 그리고 신인시절의 대니 글로버.
물론 당시에 이들은 지금 같은 슈퍼스타들은 아니었고 오히려 듣보잡의 신인들에 가까왔습니다. 이 영화는 우피 골드버그의 데뷔영화였으며 20년 전인데도 지금보다 훨씬 더 늙어보이는 오프라 윈프리는 당시 지역 방송국의 리포터로 오디션과 우여곡절 끝에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대니 글로버 역시 신인이었죠. 또한 셕 역에 캐스팅된 마가렛 에이버리 역시 티나 터너의 대타였구요.
의미있는 배역들은 전부 흑인으로 채워지고 여성들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흔히 흑인들의 영화로 얘기되기도 하고 페미니즘 영화로도 얘기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맛배기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얘기도 담고 있고 한 여성의 자아찾기가 표면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요소를 부인할순 없지만 나는 오히려 억압받고 차별받는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휴머니즘 영화로 보고싶습니다. 차별받는 흑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이라는 코드는 세상에서 가장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장치라고 여겨지거든요.
한 흑인 여인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그린 앨리스 워커의 퓰리처 수상작을, 헐리웃 최고 흥행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극화한 화제작으로 1986년 내셔널 필름 보드(National Film Board)에서 '이 해의 작품'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카데미 작품상 등 11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도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주연 후피 골드버그는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