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1592년,이후 60년이 7번 지나 420년이 흘러 흑룡 임진,2012년이다.
1.왕릉에 곡장을 설치한 이유:
북.동.서 3방면에 설치, 조선시대에 왕릉과 왕족에게만 허용.
풍수적으로 살기를 띤 바람이 능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하는 역할을 하며, 좋은 기운을 보존할 수 있도록
그 형태와 높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2.온릉: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조선 중종의 부인인 단경왕후(1487∼1557)의 무덤이다.
중종반정으로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반정공신에 의해 왕비자리에서 물러났다. 자식없이 세상을 떠나자 친정 무덤지역에 장례를 지냈으며 숙종 24년(1698)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영조 15년(1739)에 무덤 이름을 온릉으로 봉하였으며, 무덤에 조각을 만드는데 있어서 장릉을 예로 삼되 죽은 후에 왕비의 무덤으로 봉해진 정릉이나 사릉을 따르게 하였다.
온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원형무덤으로 무덤 주위에 양석과 호석 1쌍을 배치하였다. 동물 모양의 조각을 반으로 줄인 것은 비릉(妃陵)으로 봉해진 무덤의 예에 따른 것이다. 무덤 아래에는 제사지내는 방(재실)이 있었으나 1970년 도로확장 때 없어졌다
참고로 남양주 사릉은 비운의 왕,단종의 부인,정순왕후의 무덤이다.
3.임진왜란 관련 황윤길과 고양 올레길 11구간:
조선중기의 문신.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접견하고 귀국, 부사(副使) 김성일의 보고와 서로 상반되게 일본의 내침(來侵)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라고 복명하였으나, 조정은 동인(東人) 세력이 강성하였으므로 서인인 그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요즘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길.로드들,산책,트랙 다 좋다.고양시에서도 고양 올레길,들메길,누리길 등등 여러이름으로 불려지며 맹글어지고 있다.이중 고양올레길11구간은 구파발역에서 삼송역인데.이곳에서 대봑@@@@을 건졌다.
자세한 구간은 구파발역 2번출구 인공폭포 오름길-->이말산-->북한산 온천-->옥녀봉-->삼막골--->지축동 능선--->삼송역8번출구 sk주유소 뒷쪽 오름길.<---역순으로 가는 경우.
흔히 파주가 낳은 3대인물로 율곡 이이,방촌 황희 ,문숙 윤관을 든다.이들과 관련된 문화유적들이 고양시와 파주시에 산재한다.
오늘 미쳐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발견의 기쁨!!!!
대도시의 허파라고 불리는 녹색지대--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지역.전원의 아늑함과 포근함을 간직하고 다소곳이 눌러 앉아 있는 곳.행정구역상으로는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속칭 요즘은 은평 뉴타운 뒷쪽이었다.
황희 정승의 유적들은 파주 반구정 부근에 있다.그런데,황희의 장남인 황치신의 묘소는 이 구간에 있으며 그의 증손자가 황 윤길이었다.음음음..그 황 윤길의 묘소도 그 근처에 있다고 한다.암튼 황치신의 묘소에서 바라보는 안개 낀 북한산 경치는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나왔다.날씨가 좋거나 아니면 아예 비가 내려서 시야가 조금 깨끗할 때 본다면 감흥은 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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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음택 풍수의 시작점은 모든 근심을 잊게 해준다는 서울 북동쪽 망우리이며, 고양시 벽제..광탄 용미리에서 끝맺음을 한다.
그 축을 따라서 왕릉을 비롯, 여러 음택들이 존재한다.동구릉은 망우리 윗쪽 연장선이다.
광주산맥 곁가지를 타고 뻗어온 용들이 한양을 맹글고 그꼬리가 머물러 있는 고장,용미리에는 세상을 편안케 한다는 미륵불,쌍미륵석불,용미리 석불입상--보물제93호---이 있다.친근하며 토속적인 분위기,고려시대 호족들의 지방화된 불상이다. 용미리 전역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석불은 사자의 아파트라 불리는 용미리 시립묘지에는 더욱 따사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이 석불은 고려 선종과 원신궁주의 왕자인 한산후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를 가지고 있으며,선종은 평양에 기자의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모시게 했다.여기서 기자는 기자 조선의 왕인 기자이다.송나라에서도 기자를 숭상하였으며 기자의 교화를 받은 고려를 예의의 나라라고--당근 사탕발림이다-- 추켜 세워주었다는 야그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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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 전투,혜음령,권율장군묘소,행주산성..아!!전국이 전쟁터였지만,왜란의 상흔은 특히 이곳에 많이 있다.
400 여년이 지나서 다시 돌아온 임진년에 왜란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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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초계탕:
초계탕(醋鷄湯)은 닭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다음 살코기를 잘게 찢어서 넣어 먹는 전통음식이다. 초계탕은 북한의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먹던 별미로서 요즘에는 여름보양식으로 즐겨 먹는다. 초계탕은 1930년대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에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옛 궁중 연회에 올렸던 국으로 일반인에게는 근래에 전해졌다. 닭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신선한 채소와 약재 등 25가지의 양념을 이용하여 담백한 맛과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저칼로리 음식으로 메밀국수를 함께 말아 먹으면 좋다.
초계는 식초의 '초(醋)와 겨자의 평안도 사투리인 '계'를 합친 이름이다
예전 중앙극장 건너편에 있다가,없어지고,작년에 재개점한 명동 평래옥이 유명하다.
중부경찰서 사거리 쌍용빌딩 건너편.중구 저동2가 18-1
파주 쪽에는 파주시 법원읍 법원리 391-3 여기는 사람이 넘 많고, 닭날개 떨어지몬 장사 안한단다.으으
연천은 청산초계탕. 청산면 초성리 7-18 전번 031-835-6447 열두개울 근처..
일산도 찾았다###백석동 평양막국수 초계탕.백석역 5번출구 이마트 방향 안산공원 으로 가다가 빨간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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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파평 용연: 파평 윤씨는 잉어를 먹지 않는다.잉어가 윤관을 도왔다.그렇다면 파평윤씨 시조는???
종 목 파주시 향토유적 제10호
지 정 일 2002.12.21
소 재 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늘노리 385-1
시 대 삼국시대
파평용연은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893~973)이 탄강 설화와 관련된 유적이다. 윤신달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로 이 곳 용연에서 태어나 파평윤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고려 왕조를 세운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통일의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삼중대광태사의 벼슬에 오르고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서라벌에 설치된 동경대도호부의 대도독으로 임명 되었다. 시호는 소양이다. 용연과 관련된 전설로 신라 진성왕 7년(893) 음력 8월 15일 운무가 가득한 용연에 옥함이 떠있어 근처에 사는 윤온 이라는 할머니가 거두어 보니 안에 옥동자가 들어 있었는데 그는 오색이 찬란한 깃털에 쌓여 있고 양어깨에는 붉은 점과 좌우 겨드랑이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으며 발바닥에는 북두칠성의 형상인 7개의 흑점이 있었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용모가 장대하고 재주와 도량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전하며 이 후 윤온 할머니의 성(姓)을 따 윤씨 성과 신달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전한다. 용연은 천연적으로 형성된 자연못으로 총 면적이 2,531평에 달하며 그 중 수호전은 1,530평 이다. 용연에는 1920년에 세운 『파평윤씨 용연비』와 1972년 3월에 세운 『파평윤씨 발상지비』가 세워져 있다.
첫댓글 초계탕^^ 빨리 먹고싶어용 ㅋㅋ...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