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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국제협력사업 방글라데시 봉사 캠프 방문기)
우리가 깨치고 돌아온 방글라데시
송라초등학교
교장 황승택
새벽을 깨우는 핸드폰의 벨소리에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계를 본다.
03시다.
이 얼마만인가 학창시절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어른이 되어서는 노는데 정신 빠져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적이 있는 새벽 3시.
2016년 1월 5일 방글라데시 방문단 공동대표로서의 무거운 짐과 남양주마을교육공동체 후원기관 대표 자격으로 우리 학생들의 절대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몸을 바쳐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7박 9일의 여정에 어제 늦도록 줄이고 줄인 여행 짐과 현지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약을 챙기고(당뇨, 감기, 치통, 요통) 서둘러 조용히 집을 나섰다. (3시 20분)
겨울임에도 새벽 공기는 상쾌하고 시원하며 부드럽다.
남양주 외국인 복지관에 도착하여( 3시 33분) 2층으로 올라가니 어제 미리 와서 1박을 한 학생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 와중에 단복을 집에 두고 졸린 눈으로 부랴부랴 그냥 온 학생 여러 명이 눈에 띄었다. 눈동자가 반짝 반짝하는 유은열 (한누리 사회적 협동조합 사무총장)을 비롯한 스텝들과 이정호 신부님이 말은 못하고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직 출발도 안했는데 준비된 물품들을 잊고 그냥 왔다는 것은 긴장하지 않아서인 것이다.
어쨌거나 국제협력사업 방글라데시 봉사 캠프단은 (고교생 1,2년생으로 구성된 20명과 스텝, 지도교사 포함하여 35명으로 구성) 청소년과 함께하는 다문화 인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소년 ‘다문화에 말을 걸다! 라는 주제로 그동안 준비해온 사랑의 나눔을 위해 준비 된 버스를 타고 새벽길을 힘차게 출발하였다.
그러나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짐을 부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여권이 없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캠프단의 핵심이신 다름 아닌 이정호 신부님이다.
다행히 일찍 도착하여 곤히 주무시는 사모님께 전화하여 택시로 여권과 초청장을 공수 겨우 겨우 방글라 행 비행기에 함께 오를 수 있었다. 역시 우리신부님은 힘들게 사시는 분이다. '차카게 살자'는 모토로 ’버려진 땅‘, ’이상한 땅‘ 성생공단에서 26년간 자신을 버리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정호 신부는 한센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로서 자신의 삶을 가열차게 살아온 분이었지만 해외여행에서 여권을 금고에 놓고 그냥 오신 배짱(?)은 앞으로 싱가포르를 거쳐 방글라데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야릇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긴 그정도 배짱이시니 이 사업을 추진하지 어느 누가 손에 쥔 돈 한 푼 없이 35명의 국제협력 봉사 캠프단을 구릴 수 있겠는가? 내가 곁에서 보기에는 물을 부어 포도주를 만들고 오병이어에 가름하는 가히 나눔의 기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6시간 내내 기내식과 화장실 한번 간 것 외에는 자다가 눈 뜨면 밖을 내다 보기를 반복하는 동안 중간 기착지인 31° 의 더운 나라 싱가포르에 도착하였다.
싱가포르의 무더위는 겨울 옷으로 무장하고 나온 우리 대원들에게는 찜질방수준의 고된 행로였음에 틀림없다.
출발 전 카톡 알림방을 통해 방글라데시가 초 가을 날씨라고 해서 맞춤형 짐을 꾸렸다가 인터넷을 살펴보니 현지의 기온이 16°~ 21°란다. 할 수없이 약간의 여름옷과 반바지를 준비하여 새로이 짐을 꾸렸는데 우리의 겨울과 방글라 현지의 온도차는 최소한 30°이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군인들 처럼 집결하여 보딩하려고 모였는데 (17시 20분) 출발시각은 한 시간이 늦추어진 18시 50분이란다. '그래 좋은게 좋은거지 추진하는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 '생각하며 휴식을 취했다. 잠을 설치고 새벽에 출발하여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니 눈이 감긴다 잠들면 안되는데......
걱정과 긴장 속에 어느덧 시간은 흘러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앞으로 3시간 후에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도착(9시50분)하면 그후 통기바리로ᆞ 이동 약 2시간이면 최소한 오늘 중으로 숙소에 당도할듯하다. 거기서 숙소까지는 10분 정도 개인 캐리어를 들고 렌턴을 켜고 야간 행군을 해야 첫 날의 길고도 긴 여정이 마감된단다. 그러나 예정과는 달리 비행기정비 불량(싱가폴 에어라인)으로 2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되어서 다카에 도착(12시55분)하고 그 야심한 밤에 현지인들의 대대적 환영에 우리 모두는 어리둥절했다. 이 모두가 신부님께서 성생공단에서 뿌려놓은 열매들임을 알 수 있었다.
저공으로 비행하는 모기의 공습은 어수룩한 방글라데시 방문객들의 기를 여지없이 꺾는다. 아프리카에서도 못 보던 모기들의 공격이다. 달밤에 체조하듯 모든 환영 행사를 마치고 통기바리를 향해 출발( 1시15분)하여 숙소에 닿았다(새벽 3시) 우리는 그때 까지만 해도 밤에 지나 온 수도 다카는 한적한 도시인줄 알았다. 기대와 설레임 속에 맞이하는 통기바리 생활의 시작이다.
방글라데시에서의 어색한 첫 날 밤이 지나고 아침을 맞으며 바로 입촌식이 거행되었다. 이정호 신부님의 애 제자 비두(10년전 한국에서 추방)의 어눌하지만 분명한 한국어로 구사하는 환영사에 마음이 따듯해진다. 한국에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좋은 일이 더 많았고 공동체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이정호 신부님의 답사는 언제나 비장하다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인권을 짓밟았다. 그래서 우리가 회복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의젓하고 믿음직한 정다원 학생(심석고 2년)의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해온 이정호 신부님의 삶의 씨앗들이 방글라데시에 열매를 이루어 가는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어가고 있으며 그 공동체 이름은 B.P.S(Bangladdesh. Patriot. Society)다. 이 모임의 주축은 과거 성생공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공동체다. 그들이 방글라데시를 바꾸고자 나선 것이다.
어색한 서로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하여 우리 단원들과 bps 대원간의 일체감을 높이고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공동체 놀이가 진행되었다.
점심식사 후 인근의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우리 교사와 학생들이 아이들의방과후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현지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프리카의 학교들과 달리 2층 으로 지어졌으나 시설은 전에 방문했던 아프리카에서의 방문 학교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아프리카 방문시는 그 학교에서 환영 공연이 있었고 노래와 춤 실력이 대단했는데 방글라는 온 주민들이 학교로 나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고 특히 이은미 보건 선생님이 간단한 진료를 하는데도 반응은 뜨거웠다.
처음 계획대로 강동경희대 병원의 의료진이 함께했다면 현지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무척 아쉬웠다. 좁은 운동장 탓에 활발한 활동을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나 서로 언어가 다른 점을 고려하면 첫 수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이정호 신부님의 애 제자들은 끊임없이 찾아와 인사를 드린다. 대부분이 성생공단에서 일하다 강제 출국 당한 사람들.... 그들이 뭉쳐서 통기바리, 아니 방글라데시를 바꾸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다.
이정호 신부님은 이들을 돕기 위한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 중이시다.
돌아오는 길은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8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이동수단이 있어서 그 차를 타고 즐겁게 돌아왔다.
저녁 식사부터 수저가 지급되었으나. 일부 대원들은 맨손으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 좋은데 국 그릇이 없어 국을 먹을 수가 없는 점이 가장불편했으며 그로인해 변비로 고생을 할 것 같았다. 반짝반짝하며 윤기가 흐르는 찰진 밥이 벌써 그립다. 그날 밤 정찬옥, 최은선 부단장과 함께 고향 생각에 잠기며 컵라면을 먹었다. 컵 라면의 맛 중 몰래 먹는 그 맛이 정말 최고다. 아이들도 투정 안하고 현지 식을 잘 먹는데 어른이 먼저 반칙을 하게 되어 약간 민망 했다.
학생들은 마을 주민 초청 잔치에서의 모듬별 댄스 발표를 위해 연습에 몰두해있으며 우리들은 모처럼의 여유에 그동안의 강행군에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둘째 날도 마감을 하였다.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김이찬 다큐 작가의 합류로 우리 대원의 수는 36명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어제 탄 이동 수단의 이름은 오토릭샤 8명 까지 탈 수 있도록 제작되었는데 시골 길을 달리기에는 아주 적합한 이동 수단인 듯 하다.
어제 이어 오늘은 2개조로 나누어 쓰레기 수거와 그들에게 분리수거 교육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로 갔다. 전교생을 모아놓고(약 150명) ppt를 통한 분리수거교육을 학생대표가 하고 대표로서 나도 그들에게 쓰레기 분리수거의중요성을 말하고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후 운동장의 휴지를 줍는데 그 학교의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줍는다. 그래 이게 바로 교육이다.
몇몇 남학생들이 대화는 안되지만 손짓을 하며 자신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보여주며 연신 설명을 한다.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몇 년전 다녀온 아프리카 학교의 교실과 거의 같다. 아니 선풍기가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니 조금 있으면 형광등도 설치 될 것이다.
배드민튼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있어 아이들과 고르게 배드민튼을 치며 잠시 즐겼다. 기념촬영 후 어제 방문했던 초등학교로 가서 운동장이라기에는 너무 작은 모래터에 산재해있는 쓰레기를 주웠다.
쓰레기를 주우며 문득 '이 나라는 아직 쓰레기 줍기를 안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쓰레기를 주우면 소각을 하는 소각장이 있어야 하는데내가 가 본 두 학교에서 소각장을 보지 못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분리수거는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수거 단체나 공장이 있어야지 공연히 우리 입장에서 상대에게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환경정화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왠지 뒤통수가 뜨끈하다. 학교에 축구공이나 배구공 등 그 학교에 기념품을 주지 않고 돌아서는 것이 어제 이어 너무 민망하였다. 마치 우리가 귀한 교육을 가르쳐주고 돌아가는 듯이 ...
이건 아닌데.... 후에 스텝들에게 확인하니 추후 B.P.S 에서 고르게 나누어 준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래도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방문을 통해서 그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은 예의인데 너무 B.P.S에 대한 배려로 우리의 예의를 각추지 못함이 미안했다.
이틀째 방과후 교육을 하러 학교로 가는데 오늘은 오토 릭샤를 타고 간다. 퉁기바리는 현재 농경중심 대가족 사회로 감자가 주요 농산품 인듯하다.
비가 오지 않아 개울은 말라가고 저수되어 있는 물도 점차 혼탁해간다. 젊은 청년들이 딱히 할 일이 없어 우리나라에 들어와 안산, 김포, 성생공단으로 들어와 불법 이주자로 숨어 살다 적발되면 추방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곳 다카와 통기바리 지금 우리를 돕는 이들의 대다수가 성생공단에서 일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이정호 신부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친구들로 신부님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자하비티 초등학교에서의 2차 방과후 교육중 학교에 수업료를 내지 못하여 교실로 못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유은열 사무총장이 마음 아파하며 필통과 연필을 주자며 사무실로 갔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운동장에서 기차놀이와 박수치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표장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하긴 내가 어릴 적에도 교회에서 레크레이션할 때 행복했던 시절이 오버랩 되며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지금은 게임기와 컴퓨터 , 스마트폰 앞에놓인 어린이들 그들에게 행복한 공동체 놀이생활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고 즐거운 공동체 활동을 마치고 선물을 나누어 주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사실 학용품을 모든 학생들에게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신부님의 영향력으로 가져온 선물은 풍부하다.
나누어 주는 횔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대원들의 기분들이 너무 좋다. 역시 나눔 활동은 나누어 주는 사람의 기분까지도 좋아지게 하는 사랑의 묘약이다.
bps회원들의 활동상황과 조직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여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ngo 단체이다. 이 단체의 대표인 '비투'는 성생공단에서 일을 하다 강제 출국당한 인물이며 국내에 머물 때 이정호신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어렵게 살아가는 방글라데시에서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자주적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성생공단에서 일을 배우고 강제 출국당한 인물들로 주축이 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한 일이다.
심석고 학생10명, 평내고 9명, 진건고 1명으로 학생20명, 교사 심석 2, 평내교사1명, 송라초 교사1명, 강동경희대 병원 수 간호사 1명, 대학생 2명, 조정혜 심리 당당 소장 1명, 한누리 다문화사회적협동조합 사무총장 1명, 외국인복지센타 직원 3명, 이정호 신부와 나를 포함 포함 35명으로 구성된 어찌보면 대규모 방문단이다. 우리는 매일 그곳 주민들의 노력에 의하여 건강하고 신선한 현지 식을 먹을 수 있었다.
늦은 시간 까지 bps 회원15명과 방문단의 상호 이해를 위한 소개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구촌정류장 활동가(김이찬) 까지 참여하여 약 50여명은 다문화에 말을 걸기를 넘어 다문화인들과 어깨를 겯고 함께 나아가는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교생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이글어 가다니 놀라울 뿐이다.
통기바리에서 머문 삼일째 날( 1월8일)이다. 매일 똑 같은 아침식사 메뉴가 이제는 지루하다. bps회원들이 생활하는 사무실 주변의 시장을 청소하는데쓰레기를 줍는다는 개념조차 없는 곳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스티커를 붙이며 왁자지껄 , 재잘재잘, 셔터소리와 함께 역동성있는 시장의 모습이다.
휴지를 줍다가 깜짝 놀란 사실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모두 남자인 점이다. 하긴 장보러 다니는 이들도 거의가 남자이다. 이곳 여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한 숙소에서 시장을 오고가며 색다른 점은 냇가에 물은 말라있으나. 곳곳에 물 웅덩이가 많다 아마도 가정마다 사용하기 위한 물을 확보하고 있는듯하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친절하고 상냥하다. 초면인데 와서 인사하고 자기도 한국에서 살았다고 설명한다. 오늘도 이정호 신부님을 만나러 성생공단 출신들이 찾아온다. 다카에 아파트가 여러 채있고 백화점도 운영한단다. 농처럼 한마디 하는데 " 신부님 다카에 오시면 언제든지 아파트 사용하세요" 하며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러면서 이정호 신부가 성생공단에서 자신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아주신데 감사한다. 가진 자들의 교만과 착취에 도와줄 사람 하나 없던 시절 자신을 내 던지며 외국인들의 인권과 봉급, 권익을 지켜준 이정호 신부의 결과물은 머나먼 이국 땅 방글라데시 통기바리에서 열매 맺혀 영글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열정은 쉼이 없다. 오후 시간은 bps 활동가들에게 사랑의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기위한 계획을 수립한다.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경제 성장에 관하여 20여명의 bps회원들과 우리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유은열 사무총장의 강의가 준비 중에 정전이 되어 혼란의 시간에 할 수없이 내가 하모니카로 세번째(첫 번 째 공연은 베트남, 두 번 째는 러시아) 국제 공연 '홀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 아리랑 노래를 알려주었다. 시간이 충분하면 더 재미있게 해 주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유은열 사무총장의 강의 내용이 다소 지루할텐데 방글라데시 bps 회원들은진지하게 경청하였다. 질의 응답시간이 예상외로 길었다.
토요일의 아침은 휴식시간 종치듯이 스피커에서 건조하게 흘러나오는 모슬렘 사람들의 기도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오늘은 인근 초교와 마을 주변 청소하기이다. 멀리 와서 겨우 이것 밖에 할 일이 없나 하면서도 딱히 휴지줍기 만큼 쉽고 어필하기 좋은 일도 없을 것 같다.
인근의 대학(Serajabad rane shafiullah collage)을 방문했는데 우리 방문단을 위해 조회와 국기게양식을 하는데 정말 진지하다. 모슬렘 사람들이라 그런가 조회에 대표기도를 하고 착한 일을 하겠다는 선서도하고 국기게양을 하는데 국가인 듯한 노래를 참 길게도 부른다. “너희 방글라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따 그 이유는 국가가 너무 길어서 메달을 따면 연주 시간이 오래 걸려” 라고 말씀한 이정호 신부님의 농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처음 방문이라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bps회원들과 우리 방문단과의 족구시합이 있었다. 몸을 푸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결과는 뻔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은 신부님 이외에는 족구실력이 시합을 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중에도 기특한 일은 자신의 실력이 모자람에도 시합을 하겠다고 출전한 학생들의 용기가 정말 가상하다.
어쨌거나 족구시합은 신부님 혼자만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인 결과였다. 족구를 하는 사이에 여학생들 주위에는 지역 초등학생들이 모여 대화도 안될터인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같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에게도 유치원 정도 되는 아이 3명이 오더니 연신 질문을 한다, 손을 내민다 악수를 하며 뭔지 모를 이야기를 한다. 세사람이 돌아가며 나와 악수하더니 이제는 왼손까지 잡아주며 이야기한다. 하! 이거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
통기바리 지역은 집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물 웅덩이를 만들어 저수하여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상수도가 없으니 식수로도 사용하는 것인가? 물 상태로 봐서는 건강에 좋지 않을 터인데, 하긴 내가 가본 케냐 보다는 물이 풍부하다.
오늘 점심은 우리 방문단 여성분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지역주민들을 초청해서 한국의 음식을 대접하는 날이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미역, 잡채, 튀김, 김치 등으로 맛난 음식을 차려 마을 주민 150명 정도를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과연 현지인들이 맛나게 먹을 수 있을까?’ 심히 염려되었다.
예전에 몽골인들과 함께 대부도로 가서 그들을 위해 조개구이를 준비했는데 전혀 입에도 대지 않고 삼겹살만 먹어 무척 당황한 경험이 있기에 오늘의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역시 그들은 잡채를 잘 먹지 않고 몰래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본 비투가 민망해서인지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마을 사람들을 나무란다.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한국 음식 초대의 시간은 지나갔다.
Fun, Fun한 마을 잔치가 대학 강당(Serajabad rane shafiullah collage) 을 빌려 열렸다. 이정호 신부님의 인사말씀은 늘 하시던 대로 “여러분들에게 미안해서 위로해 주고 싶었으나 도리어 환대를 받음이 미안합니다. 우리는 하나이고 서로의 다름은 없습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B.P.S와 샬롬의집이 공동체를 구성하여 방글라데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댄스와 방글라 팀들의 발표가 이어지는데 별안간 기도시간이라며 2분간 중지하고 다시 시작한다. 재미있고 열심인 나라이다.
프로그램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 방글라 인 두 사람이 전통춤을 추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춤을 정말 온몸으로 즐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연습하는 장면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할 줄이야 정말 놀라웠다. 우리의 마무리는 역시 강남스타일로 모두가 하나 되는 춤이다.
끝으로 방글라 출연진과 우리 학생들과의 일치를 위한 춤을 추면서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행사장에서 마을 주민들과 B.P.S 대원들의 이정호신부님에 대한 감사의 말이 점점 크게 부담으로 들려온다. 이제는 하나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협력하며 도울 수 있을까?’
오늘은 통기바리에서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현지인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고 대화를 나누는 날이다. 우리는 방문 선물로 준비해 온 전통 부채와 탈을 가지고 4개조로 나누어 가정 방문지를 향하여 떠났다.
감자를 재배하는 농경 산업이 주요 수입원이어서 예상대로 대가족이 모여살고 있었다. 집안은 깨끗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었으며 아프리카와 베트남 현지에서 가정을 돌아본 것 보다는 위생상태도 좋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고 긍정적이다. 맛있게 생긴 과일과 다과를 내오는데 구김살이 없다. 방문한 집의 5세쯤 되는 손녀가 우리 학생의 품에 꼭 안긴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만큼이나 반갑게 맞이한다. 이것저것 맛난 음식을 제공하며 주인이 꼭 전하고픈 말이 있다며 통역을 해 준다. “우리는 비록 잘 살지 못하지만 손님 접대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준비된 다과는 다 먹고 가야한다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다 먹었는데 과자도 정말 맛이 좋은 것으로 준비한 듯하다.
떠나오면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약 25명 정도가 모여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이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우리의 선물이 너무 약한 것이라 느껴졌다. 아이들 과자랑 맛난 과일 다 먹어놓고 부채와 탈이라니 현실 인식이 너무 부족했다고 느꼈다.
다음 방문 가정은 방과후에 학교에서 무료로 학생들을 지도해 주는 청년의 집이다. 방과후 지원 활동은 bps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한다. 준수한 시골 청년인데 총각이란다. 이곳도 장가가기 힘든 곳인가 보다.
우리나라로 치면 1960년대와 2016년의 시대가 공존하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외제 고급승용차와 이층버스, 삼륜 자전거차, 낡디 낡은 고물 버스, 오토 삼륜 동력차 와 오토바이가 공존하며 달리는 전쟁터 같은 도로에서 세 시간을 타고오니 정신이 몽롱하다. 아무튼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다카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한국 방글라데시 친선교류 사무실 현판식을 거행하고 그곳에서 방글라 아이들에게 한글교육을 시키고자 아파트를 구조 변경하여 책걸상과 칠판을 설치하여 학원같이 만들었다. 알면 알수록 bps회원들의 활동이 다양하다. 아마도 이들의 활동이 머지않은 장래에 방글라데시를 살기 좋은 나라로 도약시킬 것이다. 아니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bps에서 나올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다카의 소란함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날이다. 어제의 차량 행진에도 코가 탄광에서 일한 듯 시커먼데 오늘은 또 하루 종일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전환하고 치킨과 구운만두로 점심을 먹으니 더 바랄 것이 없이 행복하다.
다카에 있는 미완성의 랄발게라궁과 국립 박물관 관광을 하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으로 간다. 마치 우리 단원들이 국빈 대접을 받는 것 같다. 공항 가는 길이 꽉 막히자 약 2Km를 역 주행하여 버스가 달린다. 앞자리에서 보니 시동과 핸들 브레이크만 멀쩡한 버스에 우리의 온 생명을 담보하고 달리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현지인의 설명을 들으니 국회의원이나 급한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역주행을 허용한단다. 하긴 우리도 교통경찰이 제지하지 않고 안내를 해주는 것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다카의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08시에 나온 우리들은 오후 12시에 싱가폴 행 비행기를 타고 04시에 내려 오후 12시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2박3일에 할 수 있는 관광을 20시간에 다 하였다.
그리고 1월 13일 07시 50분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남양주시 외국인 복지관 샬롬의집에 한사람의 낙오도 없이 도착하여 기다리는 학부모님들과 가족들의 품에 학생들을 돌려주면서 방문단 공동대표로서의 나의 역할을 감사함으로 내려놓았다.
물설고 낯 설은 땅 방글라데시 통기바리에서의 봉사활동은 우리 25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앞으로의 삶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인내하며 극복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특히 다문화 사람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들을 이해하고 그들도 우리와 차이가 없는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임을 깨닫는 큰 자산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다문화에 말을 걸다’라는 주제로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계획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진두지휘하신 이정호 신부님의 원대한 상상력과 세밀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곁에서 많이 배웠으며, 학생들과 춤까지도 함께 발표하여 놀라움을 안긴 강동 경희대병원 최은선 수간호사님, 현지인과 학생들의 치료와 상담에 헌신하신 이은미 보건선생님, 강규영, 박상현, 정찬옥 선생님과 조정혜 소장님의 은근히 힘이 들고 자기 생활이 없는 담임 교사 역할, 김영환, 김소연의 일반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스텝진으로 유은열, 백진우, 김설이, 김인성의 미소를 잃지 않으며 조그만 사고라도 방지하기위한 끊임없는 잔소리는 앞으로의 나의 삶에서 큰 가르침으로 남으리라 생각된다.
끝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다문화 인식개선 프로젝트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과 방글라데시를 연결하여 교류와 발전을 위한 노력이 지속가능하기를 기대한다.
참 즐겁고 소중한 아이들과의 여정이었다.
글 말미에 떠오른 생각은 방글라데시에 지속가능한 교류와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를 모으고 사회적 기업과 협력하여 재생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전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가 영국 성공회 사제 출신이었다는 새로운 정보는 이번 봉사의 길에서 얻은 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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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문화에 말을 걸다'
'다문화에 말을 걸다'...
일찌감치 다문화에 관심을 가지시고 개척하신 그 길이 있기에
지금 다양하고 복잡한 다문화와 그 가정들이 우리와 잘 소통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말을 건다는 건,소통을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거라는 걸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