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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채미선에 대한 글은 이전에도 많이 있어서
그래서 함께 암장에서 운동하고 산에 다니며 썼던 글을 옮겨봅니다.
아래 글은 4년전의 내용입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3개월전에 우이동에 있는 암장에 운동을 하러 나가니 거기 미선이가 있었다.
물론 미선은 오래 전부터 모임에서도 만나고 술자리에서도 만나 알고 있었지만, 암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다보니 더 많이 알게되고 알게되니 앎과 이해의 폭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된 점 중 하나는 등반과 운동에 집착을 버린 것 같은 그녀의 태도이다.
알다시피 대부분 사람들이 운동에 집착하게되면 운동시간(量)은 물론이고, 시간에 비례하는 실력 성취도에 대해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리고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 측면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있다.
그 녀도 한 때 치열하게 등반하던 시절을 잘 알고있는터라 최근의 그 녀의 그런 모습은 ‘변화’의 한 단면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매주 자연바위에서의 등반은 빼놓지 않고 할 만큼 열심인건 여전하다.
미선은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
사람이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게 당연한거 아니냐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배려는 쉬운 것같지만 굉장히 어려운 인간관계에서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따뜻하고, 사람과 사람을 오래 연결시켜주는 소중한 요소이다.
배려심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며, 주위에 사람이 많을 수 없다.
사람이 이기적인 동물가 아닌 이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난 이런 깊은 배려심을 가진 미선이 좋다.
그런 배려는 암장에서 운동을 할 때, 문제를 만들 때도, 다른 사람의 동작을 지적하여 고쳐줄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에 암장에서 함께 문제풀이를 하고 운동을 하고 헤어졌다.
토요일에는 미국서 일시 귀국한 선배와 인수봉등반을 가기로 되어 있단다.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어머님을 모시고 근린공원에 가서 범희와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6시쯤 실렁실렁 우이동 암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암장문이 열려있다.
암장에 들어서니 미선이가 몸을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라? 하며 놀라서 물었더니 함께 등반하기로 한 선배가 다른 팀들과 등반약속을 했는데 함께 하기는 좀 어려운 자리여서 암장에 운동하러 온거란다.
미선이가 범희에게 암벽등반의 기초를 가르친다.
쉬운 문제도 만들어줘서 범희로 하여금 재미를 붙이게만든다.
숫기없는 범희는 '미선이모' 하며 잘 따른다.
함께 문제풀며 운동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내려주었다.
토요일 저녁부터 내린 비는 일요일오전까지 내려 바위하러 가기에는 글렀다.
또 늦은 아침을 먹고 오후에 김밥을 사서 범희와 함께 또 암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미선을 만난다.
3일연속 약속없이 같은 시간에 만난 반갑고도 기막힌 조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그칠 줄 모른다.
막걸리 생각이 난다. 미선에게 족발에 막걸리 어때? 하며 물으니 흔쾌히 좋다는 답이 온다.
우이동에 유명한 족발집이 있다. 하산한 산쟁이들도 많이 찾지만 일반사람들도 많이 오는 식당으로 거기서 족발과 동동주를 마시고는 기분이 알딸딸 해지고 있는데, 최근에 우이동으로 이사온
대훈이가 가족과 함께 영준, 영미와 함께 들어선다.
영미는 최근에 히말라야 고산을 많이 등반해서인지 아직 얼굴이 많이 그을러있다.
자리를 호프집으로 옮겨 한 잔 더 한다.
잠시 후 여느 때처럼 재식형이 들어서고, 기범의 문자가 날아든다. 아직 끝나지 않았느냐며…
이런 친구는 살면서 인생이 내게 주는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인수봉 등반 - 미선 형우 대훈과>
주중에 쉬는 공휴일에 산에 가기는 참 오랜만이다.
전 날 오후에 미선과 문자(SMS)로 비가 오지않는다면 인수봉 등반을 하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회의 후 술자리는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가급적 최대한 조금만 마시자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사람일이 마음대로 되는게 그리 많던가~
1차에서 삼겹살에 소주 폭탄주를 10잔 정도 마신 것같다.
그리고 2차에서 또 폭탄주를 마시게되어 결국 집에 들어간 시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다음날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새벽 2시쯤 되었다고…
아침에 집사람이 범희와 수영장 가야하는데 태워달란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안되겠으니 운전해가라고 하고 약도를 그려주었다.
그러고보니 전날 미선과의 약속이 생각나 문자를 보냈더니
버스를 타고 우이동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대훈이가 웬 촌스럽게 생긴 자건거를 타고 내려온다.
누구거냐고 물었더니 엑셀시오에서 근무하는 (
매장에서 대훈이가
하지만 이미 안면이 있다고 했더니
자신과 트랑고 원정을 다녀온 사이이며 친한 선후배 사이인데, 많이 아끼는 후배이고
그 당시 트랑고 원정대원이
"이번 원정이 마지막이 될지 또 함께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후회없는 등반, 즐거운 등반을 하고 원정이후에도 우리들의 우정은 변치말고 오래토록 유지하자" 는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역시 대훈이는 후배들을 잘 챙기고 이끄는 맏형 기질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훈이는 ‘사람과 산’에서 오랜 산악전문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월간 ‘마운틴’에서 차장으로 지내고 있다.
마운틴의 남선우사장과는 사람과산 재직시절에도 함께 근무했던 사이라 자연스레 마운틴으로 합류하게 된 것.
대훈은 겉모습은 개구장이 얼굴이지만 속도 깊고 사람들을 좋아하며 사람과의 관계들을 잘 조율하는 능력을 가졌다.
또한 대훈은 권위의식이 없는 성격을 가졌는데 이 점은 나랑 같아서 좋아한다.
권위의식이 없는 소탈하고 장난스런 모습들은 다른 사람 눈에는 다르게 보일 소지도 물론 있지만,
엑셀시오 매장에 대훈과
대훈이가
“형, 저랑 트랑고 원정을 함께 갔었던 성욱인데, 제가 참 좋아하는 후배에요. 뭐 나이로는 후배지만 친구죠.” 라고 한다.
“친구? 친구라고 한단 말이지?”
하는 내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아, 예전에 라이온 킹 이라는 에니메이션 영화가 있었잖냐, 난 그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멋있던 대사가 기억나, 하나는 주인공 심바가 밀림에서 쫒겨났을 때 만난 소중한 친구 티몬과 품바가 들려준 ‘하쿠나마타타’ 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심바가 태어난 후 왕인 아버지 무파사와 풀밭을 거닐면서 했던 말 중에 심바가 아빠에게 ‘아빠, 아빠는 나와 친구죠?’ 했었잖아… 그랬더니 무파사가 그렇고 말고 하고 수긍을 하지. 바로 그 나이와 세대를 초월한, 아버지가 아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공감이 되었는지 몰라… 네가
나 역시 후배지만 대훈과 미선 등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음은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부자관계를 넘어 친구같은 감정을 같게 해줘야지 하는 다짐도 그 영화를 보고 했었다.
대훈이는 무파사가 어린 사자 심바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기분을 지금 느끼고 있는데,
딸 수연이를 낳은지 9년만인 작년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으니 말이다.
얼마나 기뻐했고 좋아했는지 작년에 아들 턱을 내기도 했었다.
아침에도 배낭을 메고 나오는데, 매달리는 아들 은교 때문에 힘들었다고...
조금 있으니 미선이가 도착을 하고 그 뒤에 형우가 온다. 형우는 암장에 가서 암벽화를 가져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도선사입구 주차장까지 간 다음 인수봉을 향해 걸었다.
난 그 때까지도 술에서 깨지를 못해 비몽사몽간이었는데, 무거운 배낭까지 맸으니 무척 힘이 들었다. 눈치가 빠른 미선이가 스틱 한 개를 건네준다.
그 스틱 덕분에 하루재까지 그나마 어렵사리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형우가 내 걸음걸이와 보조를 맞추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는데 그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땀은 비오듯 흐르고, 인수산장 뒤 계곡에는 맑은 물이 엄청 흐르고 있다.
샘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우리는 대슬랩아래에 모였다.
땀을 닦고 휴식을 취하며 정리를 하는데, 공터에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색소폰 연주를 한다.
감미로운 곡들을 많이 연주하는데 그 소리와 어울려 등반을 하니 색다른 맛이 있었다.
어느 코스로 갈까 서로 의견을 내놓는데, 대훈은 남측으로 가서 한 피치짜리 등반을 하자고 하고,
형우는 밥먹고 한 숨 잔 뒤에 느긋하게 등반하자고 한다.
내 제안은 일단 오아시스까지 오르고, 거기서 점심을 먹은 후 적당한 코스 한 두개를 등반하자는 것이었는데, 다 들 동의를 한다.
먼저 미선이가 등반을 시작해서 오이지 오른쪽 쌍볼트에 1피치 종료를 한다.
대훈이가 줄 하나를 더 깔겠다며 선등채비를 한다.
내가 먼저 오르겠다며 미선의 확보를 보며 올랐다. 등반하는 대훈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대훈에게 조금 늦게 출발하라고 이르고는 미선에게 까지 가서 대훈과 형우의 사진을 찍는다.
오아시스에서 모인 일행은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먹는데,
출발할 때 점검하기로는 형우와 미선네가 도시락과 제육볶음, 수박, 떡 등이 있었고 내게 사과 세 개가 있었다. 대훈은 김밥을 몇 개 사려고 했는데 말렸다.
이유인즉, 조금 모자라게 먹고 하산해서 뒤풀이 때 맛있게 먹자는 것이었는데...이 작전(?)은 뒤에 잘 맞아 떨어지게 된다.
암튼, 오아시스의 너른 바닥위에서 도시락과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경치감상과 재미있는
이야기꺼리 등을 나누면서 낄낄거렸다.
의대길은 사람이 꽤 붙어있었고, 민남길에도 한 팀이 붙어있다.
영길을 보니 상단에 물이 조금 흐르고 있었지만 등반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그 곳을 먼저 등반하기로 합의를 했다.
우리의 톱쟁이 미선이가 용감하게 등반에 나선다.
미선이는 지금이야 우리와 실렁실렁 등반을 즐기지만,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등반했던 여성 톱클라이머 중 한 명 이었다.
우리 ER 동문회장이신 우헌기회장께서 몇 년전 인수봉에서 등반하던 미선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여자 등반자가 저렇게 멋지게 등반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받으면서 등반도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몇 년전 대훈이가 사람과 산 기자로 있을 때, 정승권등산학교의 강사진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장소는 겨울 토왕폭이었다.
등반자는
나는 이 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대훈의 맛깔스러운 글솜씨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한계령을 넘어가는 차안에서 승권형의 휘파람 노래소리까지 글로 담아내었다.
노래는
나중에 대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토왕폭에서 날이 어두워졌고, 밤이 되자 대훈은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승권형은 오히려 그 상황을 더 기뻐하며 만끽하며 즐겼다고 한다.
진정한 산사람이자 수퍼클라이머의 한 일면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그 후 얼마뒤 장군봉에서
심적으로 힘들었을 그 시기에 명절을 앞두고 고향집을 내려가기 전에 지리산을 찾았고, 지리산 종주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 형우를 만난 것이다.
그 때 형우는 벽소령대피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하루를 묵은 미선이 다음날 세석쪽으로 향할 때 형우가 자신도 세석산장에 볼 일이 있는데 함께 가자며 동행을 하게 되고, 함께 걸으
며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 두 사람은 그 인연으로 연인이 되게 된다.
화엄경에
일천 겁의 같은 인연으로 해서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이천 겁의 같은 인연으로 해서 같은 하루를 동행한다는 말이 있는데,
일겁의 시간은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버선발로 승무를 추어 바윗돌하나가 다 닳아 없어지는 장구한 시간을 말한다고 하니
인연이란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
Any way, 미선이가 영길 슬랩을 거의 다 올라갈 무렵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직상을 해야 원칙인데 물이 흐르고 있어 진행이 안되고 오른쪽으로 트래버스 하여 민남길로 오르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고, 왼쪽 고구마바위의 언더크랙으로 붙어서 가자니 캠이 없어 곤란하다.
언더크랙도 평소같으면 가볍게 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물이 줄줄 흐로고 있어 아주 부담스럽다.
할 수 없이 미선이가 하강을 한 후 캠 몇 개를 챙겨서 다시 올라간다.
대훈과 형우 그리고 나는 밑에서 음담패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내가 “야, 연약한 여자 한 명을 올려놓고 남자 세 명은 밑에서 이게 뭐냐, 쩍팔리게...”
했더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세 남자들.
미선은 캠을 설치한 후 언더크랙을 지나고 있으나 오른쪽 쌍볼트로 진입하려니 여간 불안한게 아니다.
물도 흐르고 슬랩도 만만치가 않은데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전전긍긍
다행히 위에서 하강하는 클라이머 한 명이 자일을 건네주어 그 줄을 잡고 건너는데 성공한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형우는 "아니 미선이가 저렇게 어렵게 등반할 정도면 나는 두시간 걸리겠네" 하며 엄살을 피운다.
조금전까지 자기가 두 번째로 오르겠다며 큰소리 치더니 바짝 쫄은 모습
형우는 암장에서 운동은 잘 하지만 실제 바위에서의 등반경험은 몇 번 되지 않고, 특히 슬랩등반은 많이 어려워한다.
겨우겨우 협박도 하고 달래기도 해서 형우를 올려보낸다.
형우의 등반모습을 보던 대훈은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며 오아시스로 내려가서 담배를 꺼내 문다.
어렵게 등반을 끝낸 형우의 뒤를 이어 대훈이가 오른다.
대훈은 2년전 등반하다가 추락하여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는데 그 뒤로 암장훈련을 잘 못하고, 특히 하드프리 등반은 부담스러워 한다.
기존바위야 밸런스와 발위주의 등반이고 바위 경험이 많으니 그나마 무리가 없다.
영길도 슬랩으로 된 루트이므로 대훈은 어렵지 않게 등반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대훈도 마지막 언더크랙에서 발이 조금씩 떨리는데, 그 모습을 본 형우가 “대훈 형, 다리가 오토바이를 타요” 한다.
마지막에 내 차례였는데, 되도록 우아하게(?)오르려고 애를 썼다.
밑에서는 형우와 미선이 내 카메라를 가지고 내 모습을 담고있으니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으랴.
몇 군데 어려운 구간에서 발을 쉽게 찾지 못해 망설이다가 등반을 한다.
나 역시 마지막 크랙구간에서 애를 먹는데, 특히 트래버스 구간에서 좀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확보를 보는 대훈이는 낄낄대며 즐거워하고, 진땀을 흘리던 나는 대훈의 타이트한 확보에 겨우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영길 등반을 마친 난 의대길을 등반하자고 제안했지만, 형우의 시간 약속 때문에 하산을 해야 했다.
이번 주 일요일 지리산으로 발령이 난 형우는 오후에 송별식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시간이 이미
인수봉 아래까지 오를 때보다 하산할 때 땀이 더 나는 것 같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우이산장앞에서 만난 민석형이 차를 태워주겠단다.
덕분에 우이동까지 수월하게 내려온 우리는 뒤풀이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대훈네 식구들과 우리 식구까지 불러서 함께 먹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식당에서 모인 우리 일행은 미선의 고향 이야기를 하다가 내년 여름에 미선네 커플, 대훈네 식구 그리고 우리 식구까지 미선의 고향인 전남 장흥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합의한다.
섬여행과 송아지 이야기와 해수욕장 등의 이야기를 듣다가 좋아하던 범희가 “아빠 내년 여름이면 아직도 일년이나 남았잖아요”하며 뾰로퉁해한다.
내년의 장흥 바닷가에서의 좋은 시간을 상상하면서도 그 때까지의 남은 시간이 너무 멀다는 느낌은 나도 아이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For the good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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