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수 장로/ 전도왕/ 대한교회/ 전도칼럼/
1부 맛볼수록 빠져드는 전도의 바다
1장 전도 좀 하라고 세워주신 자리, 전도부장을 맡다
목사님! 금년 전도 목표 600명 세우시지요!
초신자들은 교회 안에서는 직분을 갖고 열심히 봉사하는 일꾼들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그들의 행동을 닮아가게 됩니다. 교회 안에는 꼭 닮고 싶은 모델 직분자(믿음의 선배)가 몇 분씩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본이 된 사람과의 교제 속에서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떤 직분이 있다고 반드시 그 직분에 합당하게 성숙된 인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성격과 성품을 가진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서 어떤 친교를 맺어가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에 처음 등록하고 나서 교회에 대해 곧잘 불평을 늘어놓는 집사님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저도 그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사정도 잘 모르고 특별히 어떤 불편함을 격어본 것도 아니면서 괜히 그 집사님의 말에 동조하는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제가 집사가 되고 보니 그때의 저의 모습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교회에 대한 불평불만을 듣게 될 때면 저는 교회 내 부족하고 약한 부분에 제가 쓰임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1983년 서리집사 직분을 받고 교회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막연하게나마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목사님을 교회 입구에서 개인적으로 처음 뵈었습니다. 마주친 목사님과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목사님을 불러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금년 전도 목표 600명 세우시지요!"
그러자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딱 한 말씀, 집사님 마음대로 하십니까?라고 하시며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저를 이듬해 초대 전도부장으로 임명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교회에는 전도부가 없었기 때문에 전도부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이끌고 관리해야 할지 몰라 전도는 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전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뿐이었습니다.
마침 교회에 남은 달력 몇 부가 있어서 그것을 교회 주변 이. 미용실, 학원 병원 등에 돌렸습니다. 어느 학원에서 고맙다며 교회로 연락이 왔고 교회에 나오겠다는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전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전도지(전단지)가 없어 전도지를 급히 만들었습니다. 인쇄된 전도지를 보니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밖에 나가 나누어주면 바로 전도가 될 줄로 알았고 당시에는 그렇게 정공법 전도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도하겠다는 굳은 결심은 있었지만 전도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전도할 장소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전도부에서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전도하는 일이었기에 먼저 길거리에 나가 전도지 나누어주는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전도할 때마다 막연하게 하다보니 어떤 때는 자발적으로 하지 못하고 떠밀려 억지로 하곤 했습니다. 때로는 전도하는 날이면 짜증이 먼저 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일거리를 만들어서 늑장을 부리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전도하러 나가면 발걸음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천근만근이나 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전도대상자의 기분과 심리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전도지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저에게 하나님은 해가 바뀔 때마다 전도부장, 새신자 관리 담당, 전도위원장 등을 맡겨주시면서 2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전도 분야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사용하셔서 지혜를 주시기에 더욱 전도의 열망이 간절해졌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병영생활에서 만난 주님
저는 1972-1974년 군 복무 중에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날 아침이면 부대 내 확성기에서 찬송가가 들려옵니다. 당시 천주원 사단장님과 군종 배야섭 목사님의 신앙지도 덕분에 저는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초년병 때에는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중대 내무반에서는 저 혼자 예수를 믿었기에 교회에 가려면 선배 전우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군 교회에서 주는 전도요원 십자가 명찰을 가슴에 달게 되었습니다. 마치 전도대장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자유롭게 교회에 다닐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입니다. 그때 저의 믿음은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전우들 모두 예수 믿게 해달라고 중대원의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특히 보초 서는 시간이 저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상관(고참)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었는데 보내는 편지마다 회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대필전문이 되었고, 상관으로부터 중대원들을 교회에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후배 전우들은 앞 다투어 "우리도 교회에 나가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전도요원 군종 역할을 하게 되었고, 중대원 140여 명 중 한 명씩 믿는 전우의 수가 늘어가더니 100여 명 이상이나 저를 따라 교회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우들이 너무 많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저에게는 오히려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여러 전우들 앞에서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야 했고 병영생활에도 모범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우들을 사랑으로 돌봐주고 신뢰를 얻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었습니다. 병영생활 동안 저는 그런 거룩한 부담을 안고 하나님께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떠돌이 신자에서 알곡 신자로!
군대생활을 마치고 나자 저의 신앙생활에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군 생활 이후 한동안 떠돌이 신자로 지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흩어진 마음으로 매주 순회하듯이 이곳 저곳 다른 교회에 나가보았습니다. 떠돌이 신자는 나그네 신자요, 방랑신자입니다. 목적 없고 정처 없이 발길을 부산하게 옮겨 다녀보지만 실속 없는 신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쳐봐도 뜻대로 되지 못하고 확신없는 신앙고백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모습에 스스로 안타까움과 조급함을 느꼈습니다. 지금 돌아 보면 그나마 떠돌이 믿음이기는 했지만 주일이면 교회로 발길을 돌리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자는 분명히 자신의 교회가 있고 직분이 있고 목자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가는 교회마다 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떠돌이가 되어갔습니다. 목자 없이 방황했던 부끄러운 시절에 저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가 가야 할 교회를 정해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때로는 높은 옥상에 올라가 사방의 교회 십자가 불빛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이 많은 교회 중에서 내가 가야 할 교회는 어디인가?" 하는 답답한 마음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떠돌이 신자에서 알곡 신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드디어 교회에 등록하는 날
제가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무렵, 이웃에 살고 있는 세탁소를 경영하시는 집사님이 가끔씩 우리집에 들르셨습니다. 제가 그곳에 세탁물을 맡기면 꼭 직접 가져다주셨습니다. 집사님의 친절함과 성실한 모습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차에 어느 날 그 집사님이 "제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안 가실래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볍게 "그렇게 하지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집사님은 그 다음주에 바로 교회에 가자고 저를 이끌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일이 지난 후에야 다시 한 번 교회에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집에서 조금 멀기는 했지만 저는 그 집사님을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1980년 첫 주일에 나간 그 교회가 바로 대한교회입니다.
예배시간 전에 등록카드를 작성하여 예배시간에 새신자 이름이 호명되었고 저는 일어서 환영박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왔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저는 교회에 등록한 것이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매우 불안했습니다. 한 주간의 갈등 속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후 집사님은 또 다시 교회에 가자고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내키지 않았지만 끌려가듯 어쩔 수없이 그 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은 교회에 나가주는 것만으로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듯 착각하곤 합니다. 저는 저를 교회로 인도하신 집사님께 불순하고 교만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나름대로 마음을 정돈하려고 해도 떠돌이 신자가 갑자기 알곡 신자가 되는 것이 힘겨웠는지 그 때 제 마음은 언제나 풀려 있었고 흩어져버리는 모습이었습니다..교회에서는 새가족인 저에게 친절한 관심을 갖고 접근해주셨는데, 저는 교회에 등록한 일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매번 주일이 오면 갈등하는 것이 괴로워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매주일 기다려지는 믿음을 주십시오!”
이후 저의 믿음은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따라 조금씩 믿음이 성장했고, 여러 교우들과 교제하면서 제 삶에 감사와 기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집사 되고 싶습니다!
저는 교회에 등록한 이후 초신자의 마음으로 교회생활에 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새신자의 입장으로 가끔씩 ‘누가 나를 알아주고 챙겨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여린 마음을 갖게 되엇고 그런 마음에 믿음이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중 믿은 자가 먼저 된다", "교회에서는 꼭 하나님께 영광 기쁨 되는 일만 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와닿습니다. 저는 그런 말씀을 새겨들은 이후 "하나님! 저도 집사 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간구했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통성기도를 하고 합심 특별기도를 할 때마다 제 기도는 일분도 안 되어 모두 끝이 났기에, 저는 지루하게 고개만 숙이고 시간만 보내곤 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도 언젠가는 꼭 집사 직분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1983년 드디어 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다렸던 직분을 받고 보니 어느 순간 감격보다는 떨리고 부담되는 마음으로 주일이면 다른 집사님들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집사라고 하면서 교회에 도움도 되지 못하고 봉사하는 방법도 모르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기만 하는 직분자가 아닐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배 집사님이 성가대에서 함께 봉사하자고 제안하여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서 적응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잠도 오지 않을 만큼 셀렌 직분을 맡다.
집사 직분을 받은 이후부터 저는 예배를 비롯하여 교회 일들 모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각자의 사명을 주실 때는 사역의 부르심도 포함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확장 사역을 위해 저를 부르셨고 저와 함께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특별한 사역의 부르심을 간구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무렵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도부장 직분이었는데 막상 그 직분을 맡고 보니 제 안에 기대감이 넘쳤습니다. 이후에 저는 너무나 설렌 마음으로 밤에도 깊은 잠에 들지 않고 전도만 생각했습니다. 빨리 날이 새는 아침이 오기를 기다려집니다.
1984년 대한교회 전도부장으로서 저는 나름대로 어떻게 전도부를 운영할까 기도하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양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시 79:13).
이 말씀으로 하나님은 제게 전도의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역을 위해 부르신 저에게 반드시 책임을 다하도록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저에게 주신 전도의 은사와 사역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말씀 중에 담임목사님께서 “교회의 일도 못한 성도가 밖에 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시면 때로는 저 혼자 교만한 마음으로 불평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할수록 그 말씀이 이해가 갔습니다. 먼저 몸 된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에 충실하고자 했을 때, 교회 밖에서 하는 일들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섬기는 교회 일을 다하지 못하면서 교회 밖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맡은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사역을 따라 "착하고 충성된 종" 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를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역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만 사역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가를 늘 고민하며 계획성 있게 진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은혜와 권세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직분과 사역의 알파와 오메가를 전부 책임지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저는 능력이 없어서 못해요"라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 대한교회 초대 전도부장과 새신자 관리부장, 이슬비전도부장, 양육부장, 그리고 전도위원장으로 부족한 저를 세워 써주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전도의 부담을 날려버리는 전도의 열정
전도부장 몇 년을 섬겨오던 어느 해였습니다. 저는 전도부장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당장 제 개인전도가 문제였습니다. 전도부장이 그래도 한 명은 전도해야 될 것 아닌가 하고 언제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조직을 세워 전도부원으로 지원한 신의남 집사님을 전도부 차장으로 세웠습니다. 저는 전도부 차장 집사님과 짝이 되어 강서구, 양천구 일대의 가정마다 전도지를 돌리는 방법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먼저 교회 주변의 가정을 돈 다음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더 멀리 오류동, 방화동, 문래동, 영등포까지 신나게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전도지는 약 20만 장쯤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써 전도는 했지만 당장 교회에 등록시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 저는 새신자 관리부장의 책임도 맡게 되었습니다.
교회 중심으로 온 지역을 전도하기로 신 집사님과 약속하면서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1월부터 시작해 무더운 7월까지 매번 주일예배가 끝나면 해질 때까지 도보로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멀리까지 전도하러 다니는 데 신이 났었습니다.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졌고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주일에는 신 집사님과 새로운 전도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늘 주일예배는 새벽기도를 예배드린 것으로 대신하고 전도하러 나갑시다" 하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낮 예배도 드리지 않고서 아침 일찍부터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저녁 예배시간까지 점심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전도계획에 대해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아무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여러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당시 우리는 전도에 미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낮 예배를 드리지 않고 전도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장로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오해없이 참고로 들어라고 하시며 ‘전도도 중요하지만 주일예배를 꼭 드려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 봉사를 할 때는 예배를 꼭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봉사도 전도도 헛수고라고 하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미숙한 신앙생활을 돌아보면서 예배와 전도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 깨달음 이후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도할 수 있는 열정과 힘을 더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매주일 10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우리는 서둘러 전도의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전도의 전략을 다시 세우자 전도의 발길에은 더욱 힘찬 동력이 붙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지난날 어렵게 전도했던 그때를 새삼 그리워하곤 합니다. 그때의 전도 열정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금의 전도위원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역을 주셨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달려갈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오늘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충성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이슬비전도대장>>
이영수장로 프로필 (대한교회/ 전도위원장)
* 시무교회: 대한교회 윤영민 담임목사/ 김삼봉 원로목사(예장합동 95회 총회장님)
* 교회주소: 서울시 양천구 은행정로 29 (신정4동981-12)
* 교회활동: 대한교회 새가족관리 전도위원장 (현재)
* 부서관리: 전도부/ 이슬비전도부/ 새신자관리부/ 양육부/
전도대팀/ 차대접전도팀/ 이슬비통신교육전도팀/ 바나바섬김팀/ 양육교육팀/
영접환영관리팀/ 지하철전도팀/ 군선교전도팀/ 미래교인관리팀/ 뒷문관리팀/
* 개인전도: 대한교회 2018=41명 2017년=51명 2016년=36명 2015년=35명 2014년=31명 2013년=12명
2012년=15명 2011년=32명 2010년=36명 2009년=41명 2008년=42명 2007년=53명 2006년=55명
2005년=33명 2004년=31명 2003년=38명 2002년=34명 2001년=48명 2000년=37명
* 대한교회방문: 전국2500교회 교회별 교역자 및 교회지도 사명자. 대한교회 전도탐방
* 자료제공: 전국 5000교회 전도자료 제공(우편물포함)
* 전도집회: (전도간증/ 전도특강/ 전도부흥회/ 주일헌신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기도회/
전도대원훈련/ 새생명초청주일/ 전도주일준비 및 후속관리/ 태신자관리특강/
이슬비전도세미나) 초교파 2300교회 전도집회 인도/
한국식 전도방법 280종류를 하나로 접목하는 관계전도 방법/
태신자작정 생산 초청 후속관리 한시간예배로 아주쉽게 동기부여 전수시켜 드림/
* 전도활동: 이슬비전도학교 강사 (목회자훈련/ 평신도훈련/ 지도자세미나/) 지교회 전도집회
전국교통문화선교협의회 임원/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모델교회 양육관리담당/
* 대한교회주보: ("전도와 양육" 칼럼 글씀) 1995년 부터 2009년까지 15년 동안 매주일주보
* 출간저서: 이슬비 전도대장/ 이슬비전도 강의안/ 이슬비전도의 모든것/ <규장>
* 방송출연: CBS-TV 라디오 기독교방송국<새롭게하소서> 및 각종 프로그램 25회 방송출연
CTS-TV <오늘도임마누엘, 내가매일기쁘게, 우리교회 전도왕> 출연
GOODTV 기독교복음방송<매일주와 함께, 주님사랑해요, 평신도전도간증>방송출연
* 교계신문: 국민일보 기독신문 기독공보 기독교신문사 장로신문 외 25여곳 교계신문 언론보도
* 검색창 : 이영수장로/ 이슬비전도대장/ 대한교회 이영수장로/
* 연락처 : 휴대폰 010-8925-9571 (02)2603-0054 대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