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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션 발제자와 토론자
좌로부터 이복재 시인,심재상 교수,김진광 시인, 이광식 소설가, 이진모 교수,이충희 시인, 정연휘 시인.
▲2세션 발제자와 토론자 14:30~15:30
<김영준 연구> 발표 : 김진광 시인 토론 : 정연휘 관동문학회 부회장
<함혜련 연구> 발표 : 심재상 관동대 교수 토론 : 이충희 관동문학회 이사
<원영동 연구> 발표 : 이진모 관동대 교수 토론 : 이복재 문인협회 강릉지부장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회현실 탄식과 풍자와 폐칩의 시학 -김영준 론 김진광(시인, 전 삼척문인협회장) 차례 1. 김영준의 생애와 동예문학회 2.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랑의 시 (1) 아픈 사랑, 그 사랑의 승화로의 되새김 (2) 바다와 어머니 3.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회현실 탄식과 풍자 4.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가 안개로 덮인 폐칩일기(廢蟄日記) 5. 맺음말 1. 김영준의 생애와 동예문학회(東藝文學會) 김영준은 1934년 11월 8일(음 9월 27일)춘천시 동산면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삼척으로 이사하여 삼척국민학교와 삼척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동국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이 사시는 삼척 갈천(현 삼척해변역 마을)으로 돌아온다. 그 후 삼척문화원 설립에 동참하여 실무를 담당하였고, 문화원 사업의 하나인 삼척직업소년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후신인 삼광고등공민학교에서 폐교가 될 때까지 26년 동안 평교사와 교장으로 봉직, 사제동행을 몸소 실천하였다. 폐교이후에는 자신이 소지한 책을 중심으로 새마을문고 <청소년도서관>을 운영하였으며, 교육과 삼척의 문화발전을 이끌어 와서 삼척문화의 대명사로 불릴 만하다. 1972년 시전문지『풀과 별』에 「거리」외 3편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한국예술교육문화상, 새마을훈장근면장, 제1회 삼척시민상을 수상하였다. 그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말년에 명예 봉사직인 삼척문화원장으로 활발히 활동을 하다가 지병으로 1996년 5월 6일 향년 62세로 영면하였다. 성신여대 교육대원장을 지낸 이성교 시인의 추모 시를 읽어보면 그의 모습이 잘 떠오른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이 어글어글하고/ 얼굴이 곱살한 시인.// 항상 죽서루곁에 사신이라/ 바람을 깊은 속에 넣으셨네./ 두타산의 바람, 오십천의 잔잔한 바람.// 그래서 웃는 얼굴도/ 말의 말씨도/ 항상 봄날이었네.// 임이 무엇을 생각할 때/ 임이 걸을 때/ 그 옷자락 밑에도/ 향기가 일었고녀.// 짧은 한 평생/ 얼마나 빛나게 살려고/ 그 험한 고개를 넘었는가./ 숨을 헐떡이고/ 비지땀을 수없이 흘리셨지.(「바다끝에 열린 시(詩)」전문) > 그의 목소리는 미성(美聲)이었고 언제나 호수처럼 잔잔하게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삼척지역의 현대문학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싹트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삼척출신 시인 이성교, 최인희(부친이 삼척 미로면 천은사 스님일 때, 미로면에서 태어남), 수필가 홍영의, 평론가 김영기 등은 중앙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59년 9월경 삼척 항 포구 정라진 ‘동궁(東宮)다방’에서 김영준, 박종철, 김정남, 이경국, 정일남 등이 모여서 <동예문학회>를 창립한다. 1961년 8월 30일에 삼척지역 최초의 현대 동인지 <동예(東藝)>제 1집이 발행된다. 강원도에는 강릉에서 1952년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 ‘청포도시동인회’이다. 『청포도』는 강원도 최초의 시동인지로서 2호(1952, 1953)까지 발간되었다. 청포도시동인회가 황금찬, 이인수, 최인희, 함혜련, 김유진 등에 의해 창간된 강원도 최초의 단체라면, 두 번째 동인지가 삼척지역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라 추측된다. <동예>제 1집에 수록된 작품은 정일남의 「머리말」, 박종철의「상(像)」(소설), 김영준의 「밤의 소고」, 「어느 지역의 변(辯)」(시), 정일남의 「북(北)」, SCHEDULE-해변에서(시), 이경국의 「연륜」(시), 「손짓」(수필), 김정남의「일출」, 「연정 ․ 2」(시), 그리고 회원들의 변(辯)인 여운(餘韻)이 수록되어 있다. 1961년 12월 1일 <동예(東藝)>제 2집이 발간된다. 이경국과 김정남이 빠지고, 대신 이윤자와 김영애와 전영자의 시가 실렸으며, 김영준은 머리말, 「하늘을 향하여」(시), 「잃어버린 언어」(시)가 실렸다. 1962년 5월 30일 <동예(東藝)>제 3집이 발간된다. 김영준은 「백설」(산문시)1편을 발표한다. 2집부터 이경국과 김정남이 빠지고, 이윤자(시, 수필)와 김영대(소설)의 작품이 실렸다. 당시 김영준과 정일남과 박종철은 삼척직업소년학교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동인지 3회 끝까지 참석하였으며, 김영준은 삼척문화의 대명사로, 정일남은 시로, 박종철은 동예동인에서는 소설을 썼으나 나중에 수필로 등단하여 각각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이윤자(1938~1975년)는 서울 출생이지만 유년기를 삼척에서 보냈고 삼척여고를 졸업하였으며, 유치원 보육원에서 근무하여서(삼척, 대전) 충청일보에 동시와 동화가 당선되고, KBS TV 인형극에 「눈사람의 고향」외 20여 편이 방영되고, KBS TV 어린이 동화경연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역시 아동문학 분야에 일가를 이루었으나 38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아쉽다. 제3집에 김운학 평론가의 편신(片信)이 기고되어 있는데, 김영준의 문학관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명의 발달은 점점 지역사회의 의미를 더 새로이 해주는 것 같소. 그것은 그 많은 인종들이 오직 중앙에서만 권위가 세워진다는 낡은 관념도 이제 멀어지기 때문이요. -중략- 오히려 지금의 형들처럼 그러한 불모지에서도 스스로 개척하며 스스로 가꾸어가겠다고 손수 괭이를 들고 미미한 팸프릿이나마 계속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갸륵한 일이 아닌가 생각되오. -중략- 우리는 누구의 인정을 받기위한 문학보다 스스로 자위하는 학문을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중앙지가 아닌 지방문단에만 발표를 하며 중앙문단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생전에 본인의 작품집 한 권도 발간하지 아니하여서, 1997년 1주기를 맞아 가족(독신)과 삼광고등공민학교 제자들과 문학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유고시집 『누가 무엇을 숨길 수 있으랴』(제1시집), 『길‧세월‧밤』(제2시집), 유고산문집 『빛나는 아침의 땅에서』(1997년, 혜화당)를 발간한 바 있다. 이러한 강직한 성품과 문학관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김영준은 동예 제2집 ‘신념(信念)’이라는 제목의 ‘머리글’ <우리는 기쁨을 슬픈 노래로 덮어서 영롱한 꿈으로 조화(造花)시켜 보려고 한다>에서 보면 그의 작품의 이미지는 기쁨조차도 슬픈 색깔의 렌즈로 바라보게 됨을 예상할 수 있겠다. 동예동인 활동을 함께하고 문학 활동과 만남을 계속하여온 정일남은 1996년 갈산(葛山) 김영준의 작품세계를 추모 특집에서 <비정(非情)과 부정(否定)의 시학(詩學)>이란 제목으로 다룬 바 있으며, 강원대 남기택 문학평론가는 정일남의 지적대로 ‘비탄의 정조를 반복하는 동시에 엄결한 시 정신을 표출하기도 한다.’고 평했다. 본 고에서 필자는 6‧25의 동족상잔의 아픔을 오래 간직하고 남에게 자신에 관한 청탁을 못하는 성품, 좋아하는 여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경제적 삶의 뿌리를 확실히 내리지 못하고 평생 봉사 직에 종사, 평생을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지병과 싸운 독신, 불의의 사회와 타협을 하지 못하고 말년에는 외롭게<폐칩일기>를 쓰며 생을 마감하였기에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회현실 탄식과 풍자와 폐칩의 시학>이란 주제로 세미나 자료를 준비하였다. 2.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랑의 시 (1) 아픈 사랑, 그 사랑의 승화로의 되새김 첫 만남에서 사랑은 타고 있었다/ 그날의 입맞춤으로 강산은 변했고/ 기쁨만이 우주에 가득했다.//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분홍빛 가을/ 현란한 광채를 안고/ 나의 사랑은 여인을 울리고 있었다.// 아름답게 우는 여인은/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벗는다./ 천지에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얘기가 또 있을까//감동의 나날이 눈덩이가 되고 엿가락처럼 끈적거렸다/ 식지 않는 열정은 강물이 되고 새로운 바다로 열리고/ 조용한 아침의 물새 울음 같았다.// 길고 긴 날의 포옹에서 달빛이 죽고/ 침실에서는 별똥이 뒹굴었다/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얘기는/ 감동과 포용의 시간으로/ 흘러가는 강물 같았다. ( ‘사랑이야기’ 전문 ) 사랑을 알고 나서/ 사랑을 만들면서/ 사랑이란 아픔에 얽혀서/ 우리는 차갑게 돌아섰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서로를 슬퍼하며 울어야 할 것인가/ 차라리/ 어느 곳에 살더라도/ 사랑하리라/ 이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라도/ 그리워하는 마음이리라 ( ‘잃어버린 것’ 일부 ) 우린 만났네/ 마주친 눈길에 서로 놀라며/ 서로 확인하기에 바빴네/ 세월만큼 엉뚱하게 휘청거리던/ 옛 그림자 찾지 못하여 울었네/ 검은 머리에 서리 내리고 맑은 두 눈에 안개가 지나지만/ 전신을 휘감은 우아한 곡선 따라 거문고 소리 들리듯/ 삶의 짙은 향기마저 뭉게뭉게 퍼져 오르듯/ 낙엽이 밟히는 적막한 공터에 불던 바람처럼/ 조금씩 조금씩 한기를 느끼게 하는 당신이었네/조용한 아픔을 깔아놓고 사십년을 외면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억척스럽게 긁어모으며 잘 살더라는 꼬리표가 달린/ 풍문이라도 들려왔을 때는 그리도 그리도 좋았었는데/ 하얀 소복이 잘 어우리는 당신의 침묵 앞에서/ 소리없는 통곡만을 바람에 날리며 울어 줄 것밖에 없네 /나는 어머니를 찾아뵙자고 여기에 왔고/ 당신은 지아비를 찾아서 여기에 왔을 뿐/ 무심히 불어주는 산바람만 반겨주는 공동묘지에서/ 우린 말없이 서로의 가야할 길로 돌아가고 있었네. ( ‘추석’ 전문 ) 갈산의 유고 제2시집 『길‧세월‧밤』의 말년에 쓴 연작시 「폐칩일기‧1」 1연에 ‘잃어버린 생각을 찾아라’는 폐칩으로 들어가는 단서가 되는 시구가 있는데, 같은 시집에 <잃어버린 것>이란 시가 있다. 그 내용은 사랑하던 여인에 관한 시로, ‘전쟁이 끝나던 해/ 굶주림보다도 더 무서웠던 추위도/ 우린 이겨냈었건만’ 찬바람처럼 헤어진 아픔을 노래하며, 이루어질 수 없음으로 차라리 사랑하고 그리워하자는 아이러니한 사랑이야기이다. 아픈 사랑, 그 사랑의 승화로의 되새김의 아픔이 보인다. 그러나 위의 시「사랑이야기」는 잘 익은 포도주처럼 감미로운 사랑의 이야기가 담긴 서정적이고 열정적인 연시(戀詩)이다. 그는 시 표현법으로 의문형어미를 즐겨 사용한다. ‘천지에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얘기가 또 있을까’하고 자기들의 이야기를 제 3자의 이야기처럼 객관화하여 독자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3연과 4연에서는 비유법으로 직유와 은유와 상징과 점층법을 사용하여 시를 잘 형상화한 연시 중에 유일한 밝은 시이다. 동예 제2집에 실린 1956년(만 22세)에 쓴 일기를 보면 ‘순아’가 사랑하는 여인으로 나오는데, ‘순’자를 가진 실명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껴안았다. 으스러지도록 부둥켜안았다. 입술을 빨았다. 얼굴을 마구 부벼댔다. 그녀는 할딱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행복한 웃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거나 <길고 긴 날의 포옹에서 달빛이 죽고/ 침실에서는 별똥이 뒹굴었다>는 시의 구절로 보아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진 사이로 발전하였던 것 같은 데, 무슨 사연이 있어 차갑게 돌아서게 된 것일까? 그 이별이 그가 독신으로 사는 일과 슬픈의 렌즈로 바라보며 시의 쓰기와 무관하지 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우리들 후배에게 속 내용을 잘 털어놓지 않은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는 슬픈 빛으로 더 물들어 간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 중년과 노년 사이에 쓴 위의 시 「추석 」을 보자. 추석 성묘를 공동묘지에 갔다가 옛 애인을 만났다. 삼척에는 나중에 삼척공원묘지가 생겼지만, 지역의 공동묘지라고 보면 증산리와 갈천리 사람들만 산소를 쓸 수 있는 와우산(현재 리조트가 들어서고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얀 소복을 입고 성묘를 온 옛 애인의 남편은 갈천리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가 사랑하던 사람과는 한 여인을 두고 삼각관계가 있어서, 헤어진 가슴 아픈 추억의 응어리를 삭히며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며 독신으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2) 바다와 어머니 후진은 나의 고향./ 고향의 바다는/ 마음의 조각들을/ 삼켰다 토해내는 미움의 물결/ 절망과 야심의 싸움터였다.// 무능과 티없이 맑았던 사랑이/ 병들어 가던 그 마을에/ 가난이 야윈 모습으로/ 움막을 짓고/ 싸움에 지친 바다를 쉬게 했다.// 비만 내리면 물구렁이 된/ 텃밭에서/ 어머니의 한숨/ 호미 끝을 떠나/ 바다로 가로질러/ 보릿고개 너머로 사라졌다.// 그날로부터/ 어머니의 기력은/ 나의 소망에서 벗어나/ 바다로 밀려갔다.( ‘후진 바다’ 전문 ) 갈천동 앞 바다에/ 겨울맞이는 통곡으로 시작한다./ 무슨 한이 그리도 많은지/ 겨울내내 소리치며 울고 있는/ 바다와 어머니/ 중략 / 어머니의 바다, 비 내리는 바다에서 뛰노는/ 철없는 아이들은 어머니의 바다처럼 고왔다.( ‘어머니의 바다’ 일부 ) 남자 시인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갈산의 시에도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가 2편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은 아버지가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쓴 시 「아버지 병실에 어둠이 내리다」이고, 다른 한편「추상․2-죽서루에서」는 아버지의 가슴 아픈 죽음을 시화한 작품으로 <막걸리 몇 잔 드시고/ 바람처럼 나가신 아버지/ 죽서루 벼랑 아래로 투신했습니다/ 영원한 아픔만을 남겨두고/ 아버지의 고집 하나로/ 닦아온 길을 버리셨습니다/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버리셨습니다// 살아온 시간 위해/ 고무신 한 켤레를 올려놓고서/ 흔들리는 마음잡고/ 얼마나 울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은 다시 그의 가슴에 견디기 어려운 바위를 올려놓았고, 슬픔은 더 진해지고, 폐칩의 길로 들어서는 원인의 하나가 된다. 갈산은 어머니를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썼다. 후진 바다, 어머니의 바다 외에도 성내동 어머니, 당저동 어머니, 어머니의 황지 등 어머니가 살았던 마을의 이름으로 어머니의 힘든 생활 속에서도 견디며 자식을 키운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을 시로 형상화 하였다. 어머니의 모습은 하늘과 어머니, 모상, 출생지에서도 나타나 있다. 갈산(葛山)이라는 그의 호는 아마도 자기가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한 여인을 사랑했던 갈천(葛川)마을의 산을 상징하는 듯하다.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과 산속에 아무렇게 살겠다는 뜻이 담겼으리라. 그러나 그는 칡넝쿨처럼 아무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않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었다. 갈천리사람들은 어업은 하지 않고 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어렵게 유지하며 철둑길 너머에 살았고, 실제 그의 바다는 어촌계와 해수욕장이 있는 ‘후진 바다’롤 말한다. 위에 시 「어머니의 바다」에서 갈천동 겨울 바다와 어머니는 동격이다. 무슨 한이 그리도 많아 겨울 내내 통곡을 한다. 그 이유가 뒤에 나온다. ‘두 손이 갈퀴처럼 뒤틀리도록 가을걷이를 했건만 죽 한 그릇 배 불리 먹을 수 없고, 고기잡이라도 후진 어항으로 가서 고기잡이라도 떠나야하지 않을까?’, 위에 함께 제시된 「후진 바다 」3연에서도 나온다. <비만 내리면 물구렁이 된/ 텃밭에서/ 어머니의 한숨/ 호미 끝을 떠나/ 바다로 가로질러/ 보릿고개 너머로 사라졌다.>(갈천의 옛 이름은 갈대와 억새가 많은 ‘갈래’마을이라서 지대가 낮음)에서도 겨울철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 힘든 어머니 마음을 겨울철 늘 파도가 높이 일어나는 후진 바다에 동격으로 비유한 것이다. 겨울철 어머니 마음과 파도는 한이 많아 통곡을 하지만, <어머니의 바다, 비 내리는 바다에서 뛰노는/ 철없는 아이들은 어머니의 바다처럼 고왔다.>처럼 철없는 아이들은 어머니와 바다의 품에서 곱게 꿈을 먹고 자랐다. 갈산의 추모시 중에 정일남의 「칡넝쿨 산이 무너지다」의 일부를 보아도 시의 배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후진 바다임을 알 수 있다. <후진 바다에 가서 물어보라, 거기 햇빛의 누이가 젖어있소/ 바다가 뭐라고 말하는데/ 그 말귀 알아듣던 귀 하나가 어디갔나/ 비정한 현실이 우뢰소리로 꿰뚫어서/ 귀를 앓던 그가 위로받고 살았던 바다/ 때로는 바다마저 비정하고 모멸차기도 했겠지만/ 그대 결국에는 후진 바다에 뉘었구려> 갈산이 사랑하고, 현실 사회의 아픔에서 위로 받고,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던 후진 바다에 그의 뼈를 뿌렸다. 갈산은 이제 자유인이 되어 갈매기가 날고 태양이 떠오르고 대양을 누리는 바다가 된 것이다. 3.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회현실 탄식과 풍자 정일남 시인은 ‘그의 초기 시의 특징이 비정하리만치 자학적인 요소를 품고 있음이 한 특징으로 인식된다. 그가 삶에 대한 확실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섰을 때 느끼는 현실에의 비정한 인식, 세속적인 것으로부터의 이탈이 결국엔 현실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음을 깨닫고 안타까운 몸짓으로 돌아앉는다. 그는 시로서 현실을 고발하지 못했다. 다만 현실의 부조리를 탄식하거나 풍자하기에 이른다.’고 말한다. 필자도 유고시집과 그 외 작품을 찾아 모두 몇 번이고 읽으며, 동예동인 시절부터 생전에 함께 만남을 가졌던 정일남의 언급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둡다/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거미줄에 엉키어/ 갈피를 못 잡고/ 가야할 길은 무너져 내린다.// 분명한 명분을/ 찾지 못하면서도/ 쫓고 쫓기는 게임을/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셋이 앉으면 해내고야 만다.// 어둡다./ 이렇게 어둠이 벽을 쌓는데/ 나뭇가지를 잡고 살려 달란다./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나무는 흔들리고/ 떨어지는 목숨은 낙엽이었어라. ( ‘길‧세월‧밤’ 전문 ) 달과 별이/ 죽어버린 자정(子正)이 흐르는데,/ 망무애반(茫無涯畔)의 경계선이/ 검게 채색되고/ 어느 날,/ 낮과 밤이/ 한 지붕 밑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은.// 중략 // 어둠의 산회(散會)./죽을 때 부르는 노래 같이/ 죽을 때의……/황홀히 뜬 여인의 동자(瞳子)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의 기쁨을 바라는/ 초라한 전설인양……/검은 성황(城隍)이 성지(城址)마다 서성거리고 있다.( ‘밤의 소고小考’ 일부 ) 앞의 시 「길‧세월‧밤 」은 유고 제2시집 제목인 시로, 얼핏 보면 화투놀이인 ‘고돌이’ 장면을 보는 듯하지만, ‘분명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쫓고 쫓기는 게임을 하는 자신을 포함한 사회현실의 어둠을 탄식하고 있다. 어둠 속에 그리고 거미줄에 엉키어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의 분위기는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가 곳곳에 깔려 있다. 제시된 시 「밤의 소고小考」는 동예 제1집에 실린 시로 그의 초기 시들은 한자어가 많아 좀 난해한 면이 있으며, 그의 초기 시부터 ‘달과 별이 죽어간 자정’, ‘낮과 밤이 한 지붕 밑에서 울고 있고’, ‘죽을 때 부르는 노래 같이’, ‘검은 성황(城隍)이 성지(城址)마다 서성거리고’ 등에서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가 이미 잠재해 있었다. 동예 제1집에 2편이 실렸는데, 함께 실린 시「어느 지역에의 변(辯)」에서도 ‘여름밤의 백사(白沙) 주변에서/ 피를 본 여우’, ‘아낙네가 죽어간 지역./ 괭이와 호미로/ 생명을 가꾸고/ 웃음을 야윈, 체념해버린 넋두리가/ 오막을 헐며, 미래로 가는 오솔길에/ 검은 모래로 담을 쌓습니다.’ 등에서도 역시 같은 이미지가 깔려 있다.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행동을 못했습니다./ 더더구나 사람을 사로잡는 말을/ 할 줄 몰라 못했습니다./ 그냥 선처를 바란다고 말 했습니다./ 그러면 참 고맙겠다고 말했습니다./ 마냥 선처를 기다리며/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선물을 해야 한다는데/ 흰 봉투를 건네주어야 한다는데/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주제에/ 상납하는 위대한 정신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살아온 뒤안길에/ 토종닭이 울고/ 앞으로 살아갈 길은/ 똥개가 가로 막고 짖어댑니다./ 서러워 눈물도 나오지 않는 아침/ 나의 삶이 나의 것이 아니기에/ 나는 당당히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하늘보다 넓은 그대여/ 선처를 바랍니다. ( ‘선처를 바랍니다' 전문 ) 세상을 망가뜨리는 놀이가/ 방바닥을 후려친다./ 낱장마다 그려진 운명이란 그림에/ 농락당하면서도/ 지루한 여름밤을/ 때려잡고 있었다. ( ‘화투’ 일부 ) 위의 시 2편은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어두운 면을 반어와 풍자로 쓴 시이다. 시 「화투」는 일제가 물려준 화투놀이를 소재 하였다. 요즘은 가족이 모여서 얘기 중에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 명만 모이면 ‘고돌이’ 화투를 한다고 하였다. 화투로 싸우고 폐가망신 하는 일이 많았기에 시인은 우리 사회의 한 병폐를 탄식 풍자하였다. 「선처를 바랍니다」는 그가 말년에 봉사직인 삼척문화원장으로 있을 때 쓴 시라고 추측된다. 삼척문화원에서 전국규모의 삼척정월대보름제 큰 행사를 맡아 주관을 하였는데, 그 때 행사진행을 맡았던 사람 중에 큰 돈을 자기가 착복하여서, 무척 힘들어한 사건이 생각난다. 그 일로 지병이 더 악화되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시적자아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행동, 사람을 사로잡는 말, 봉투를 건네주는 일을 못하고, <그냥 선처를 바란다고 말 했습니다./ 그러면 참 고맙겠다고 말했습니다.>만 말하는 깨끗한 인물이다. 서러워 눈물도 나오지 않지만, 아침에 당당히 출근을 시도한다. 이러한 비정한 사회 현실의 부조리를 탄식하거나 풍자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처럼 과장된 비유와 걸직한 사설과 기상천외한 풍자와 해학이 있는 시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반어와 역설을 통한 어두운 현실비판과 사회풍자시를 나름대로 쓰려고 노력한 점이 보인다. 그의 대부분의 시가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가 덮인 사회현실 탄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인을 애써 찾아내면 큰 놈은 숨어버리고 송사리들만 무리지어 햇빛을 즐긴다. 주범을 찾아낸들 무엇하랴 세상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화투장처럼 주무르면서 자신만은 무관하다고 발뺌한다. (‘무제‧1’ 일부) >와「조간신문을 보면서」와 동예동인들을 찾아와 위로해준 박남수 시인이 미국으로 이민 간 이유를 다룬「사연」등 몇 편은 ‘사회참여시’로 볼 수도 있겠다. 4.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가 안개로 덮인 폐칩일기(廢蟄日記) 갈산은 1993년부터 연작시 폐칩일기(시)를 쓰기 시작하여 영면하던 1996년 5월초까지 24편의 시를 쓰고 펜을 놓는다. 폐칩일기는 < 창문을 열어라/ 봄빛이 모여앉아 짐을 꾸리는/ 산자락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생각을 찾아라// 무엇을 잃었길래/ 너는 세상을 싫어하는가// 중략 // 너는 이 아침의 기쁨을/ 두려워하며 창문을 닫아라. ( ‘폐칩일기‧1’ 일부 ) >로 시작된다. 인생의 말년을 맞은 시인은 죽어서 돌아갈 봄 산자락을 보며, 잃어버린 추억인 생각을 찾아서 자기를 스스로 가두어 폐칩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그는 <무엇을 잃었길래/ 너는 세상을 싫어하는가>하고 반문한다. 그 답이 나온다.- ‘잃은 것들을 기억 못하는 목숨, 출발이 없었던 삶의 찌꺼기. 그냥 허둥거리며 걸어온 게으른 시간’들이다. 그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청춘도 사랑도 건강마저 잃었다는 생각에 벌레처럼 몸을 움츠리고 다음 세상의 봄을 꿈꾸었으리라. 바다가 말라가고 있다/ 그토록 열정에 몸부림치던/ 너의 바다// 화사했던 얼굴에 기미가 끼고/ 투명하고 보드랍던 가슴엔/ 반점이 늘어났구나// 중략 // 너는 어딘가에 출구를 찾아라 ( ‘폐칩일기‧2’ 일부 ) 밤마다 강탈당하는 것은/ 어찌 나만의 일이라 할 것인가/ 허우적거리며 건너온/ 고독한 역주를 누군들 모를 것인가// 악수할 때의 다정한 눈빛/ 돌아서면 죽일 놈으로/ 어물쩡 살아가는 사람들의 땅에서/ 동행하는 발걸음을 배워야할 것인가. ( ‘폐칩일기‧5’ 일부 ) 나는 지금 내가 올라가야할 저 산을 바라보듯이 생애의 곳곳을 둘러보며 어지럽혀진 언어의 쪼가리들을 간추리고 있다. - 중략- 내 생애의 붕괴된 길 위에서 한때의 영화를 뒤로 감춘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위한 연습을 하는구나. 차라라 빛나는 생애로 꽃길을 걸을 수 있어야 즐거울 것이련만 무너진 고성 밑에 쪼그리고 앉아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살리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 ‘폐칩일기‧17’ 일부 ) 나는 지금/ 내 심장을, 두들겨 패고 있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한 아름 퍼부으며// 내 심장이/ 독기로 가득하도록/ 독소를 먹이듯이/ 매질을 가하면서// 피를 토하게 하고 있다/ “용서하십시오”/ “잘못했습니다”/ 가슴은 열병을 앓는 소녀가 되어// 땀을 쏟아내며/ 세상이 알려준 미움을 읽으며/ 진정으로 참회를 하고 있다/ 이제 내 심장은 무서워지고 있다. ( ‘폐칩일기‧24’ 전문 ) 날 저물어/ 어둠이 깔려도/ 목련은 피어 있었다.// 나비들 꿀벌들을/ 그리워 할 줄 몰라라 하는/ 외로움이 가지를 뻗어/ 하얀 슬픔을/ 짧은 숨결로 날리면/ 상큼한 내음을 나만이 맛볼 수 있었다.// 두루미 날개깃 되어/ 떨어지는 삶의 시작이/ 멀리 흩어져 가는/ 어둠의 몸부림처럼/ 너를 지킬 수는 없는가// 꽃샘 잎샘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너의 고운 날개를/ 어찌 밟고 지날 수 있으랴.(‘목련을 본다’ 전문) 갈산은「폐칩일기‧1」에서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을 닫고 벌레처럼 몸을 움츠리고 동면에 들어가며, 일생에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나선다. 앞에 제시된「폐칩일기‧2」에서는 그토록 열정에 몸부림치던 자신의 바다가 말라가고, 기미가 끼고, 반점이 늘어남을 본다. 오만했던 시적 자아를 향해서 용서의 물결이 오열하는데, 해조음의 해죽거리는 비난이 따른다. 사회비난에 대한 출구 찾기가 시작된다. 「폐칩일기‧3」싫어하는 것들-병실에 누워있기, 청소차에서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 검정 승용차에서 튀어나가는 담배꽁초- 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의 기법으로 시화한다. 그러한 부류로 ‘백지처럼 가벼운 입으로 미풍에도 입술을 나부끼며 거짓소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폐칩일기‧6」), 세상을 못살게 하는 사냥꾼의 총질(「폐칩일기‧8」), 무언가 늘 강탈당하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와 뒤에서가 다른 사람들, 그 속에서 역주행하는 시인의 삶, 그런 사람들과의 동행하는 발걸음을 배워야 하는가? 하고 자신과 독자에게 묻는다. (「폐칩일기‧5」) 시인의 건강과 사건으로 불안한 심리를 시화한 작품으로는, 새벽에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를 소재로 한 (「폐칩일기‧5」), 텔레비전과 전등을 끄면 열차(시적자아)의 분노의 함성처럼 들려오는 마찰음 소리는 귀신의 울음 같아서 다시 벌떡 일어나 전등을 켠다 (「폐칩일기‧14」), 찾아올 리 없는 한 밤중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폐칩일기‧16」), 서서히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삶 (「폐칩일기‧18」), 열정의 추억과 차가운 현실 사이의 거리감 (「폐칩일기‧19」), 마음의 방문을 닫아도 열어젖히는 비정한 세월을 잡을 수 없다 (「폐칩일기‧21」), 비정한 까마귀 소리, 너가 보고 싶다 (「폐칩일기‧23」), 갈산의 시에는 장시와 산문형태의 시가 많다. 위에 소개된 산문형태 시의 하나인 「폐칩일기‧16」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가야할 상징적인 산을 바라보며 언어의 쪼가리(자신의 작품)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위한 연습을 하는구나.’ 하고 독백한다. 삶을 정리하면서도 그도 인간이기에, ‘눈을 부릅뜨고 살리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반문한다. 그의 시 표현의 특징의 하나로 풀기 어려운 숙제가 생기면 자신과 독자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하고 묻는다.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 참회의 시를 썼다. 「폐칩일기‧20」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막걸리 마시는 것, 빈주먹을 휘두르며 걷기, 얻어만 먹으며 말이 많은 것, 주책을 부리는 것’ 이런 내가 부끄러워서 ‘신문지로 거울을 가리는 일은/ 어쩔 수 없는 나의 탈출이다.’ 이라고 한다. 「폐칩일기‧24」에서 ‘용서하십시오/ 잘못했습니다’ 하고 참회를 하며 일생 잡았던 시의 손을 내려놓는다. 폐칩일기 모두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눈 내리는 날을 사랑한 「폐칩일기‧12」, <만나고/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살아온 길// 그 길에/ 눈이 내린다/ 중략 / 아직도 살아 있음이/ 그리움처럼 아름다워서다>「폐칩일기‧13」은 눈을 배경으로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예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눈 오는 날이 배경이 된 작품이 더러 있는데 아름다움, 아픔과 죽음조차도 깨끗함이나 그리움으로 미화되고 감정이 증폭된다. 앞에 제시된「목련을 본다」는 동인지『두타문학』에 게재된 시로, 폐칩일기 기간에 쓴 시지만 그와는 다른 이미지로 시의 작품성에서 가장 뛰어난 그의 대표작품 중 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1연에서 <날 저물어/ 어둠이 깔려도/ 목련은 피어 있었다>는 참신성이 돋보인 발견의 재미, <외로움이 가지를 뻗어/ 하얀 슬픔을/ 짧은 숨결로 날리면>과 <두루미 날개깃 되어/ 떨어지는 삶의 시작이/ 멀리 흩어져 가는/ 어둠의 몸부림처럼/ 너를 지킬 수는 없는가>에서의 참신한 메타포, <너의 고운 날개를/ 어찌 밟고 지날 수 있으랴>에서의 시적자아의 지순한 사랑과 순결을 읽을 수 있다. 백목련의 지는 모습을 두루미 날개짓으로 보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으며, 어찌 보면 백목련이 그가 바라던 여성상이거나 독신으로 사는 자신일 수도 있다. 5. 맺음말 갈산의 유고산문집 『빛나는 아침의 땅에서』(혜화당)는 지면상, 내용상 본고에서 제외한다. 그 내용은 강원일보 ‘오솔길’란에 청탁을 받고 게재한 5편(화목한 가정, 매미, 독백, 사랑이 있는 도시, 강원도민의 예술공간)을 제외한 글들은 삼척문학, 삼척문화, 문화원 발간 서적의 머리글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삼척 출신이 쓴 갈산의 화갑축시, 추모시, 갈산 회고담, 갈산 시세계 등이 실려있다. 갈산은 평생을 독신으로 봉사직으로 살며 세상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동예 제2집 ‘신념(信念)’이라는 제목의 ‘머리글’에서 <우리는 기쁨을 슬픈 노래로 덮어서 영롱한 꿈으로 조화(造花)시켜 보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작품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쁨조차도 슬픈 색깔의 렌즈로 바라보게 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갈산의 시는 대체로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어둠과 죽음과 폐칩과 탄식의 이미지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지순한 사랑의 시와 사회 참여 계통의 시와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기를 갈망하는 밝은 이미지의 시도 일부 있었다. 그의 마을에는 간이역인 후진역(근래에, ‘삼척해변역’이 되어 바다열차가 정차함)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불이 꺼졌고( ‘간이역’ ), 그의 바다 시의 배경이 되는 후진 바다는 등대가 없었다.「내 고향에는 등대가 없다」에서 <나는 가로등이 명명한 보도에 서서/ 이순의 파도를 넘어 바다에 몸을 던지며/ 등대로 불 밝히는 나그네이고 싶다.>고 시를 맺었다. 그래 그는 이제 후진 파도가 되었다. 삼척문학의 등대가 되었다. 현재 강원대 삼척캠퍼스에 근무하는 남기택 평론가의 「오십천 」의 평을 보면 그의 시 세계를 좀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온갖 풍상 다 겪은/ 외줄기 삶/ 굽이굽이 얼룩진 상처 감추며/ 자연의 젖줄로 남고 싶다.// 넝마를 벗고 알몸이 되어/ 아득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사슴의 무리가 날뛰는/ 들판에 이르러 노래도 부르고/ 숱한 사연에 휘말려/ 울고 싶다.// 엎어졌다 자빠지고/ 취한 듯 뒹굴다/ 조용히/ 돌아온/ 청상의 눈물이고/ 청아한/ 사랑의 흐름이고 싶다. ( ‘오십천’ 전문 ) - “이 작품은 김영준 시의 지역에 대한 관심과 서정의 경향을 잘 드러낸다. 정일남의 지적대로 ‘비탄의 정조’를 반복하는 동시에 엄결한 시정신을 표출하기도 한다. 죽서루를 끼고 시내를 관류하는 오십천은 삼척의 상징물 중의 하나이다. 화자는 오래된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오십천의 품성을 강조한다. 이는 곳 오십천에 투사된 자아의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면 마지막 연에서는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로 견주어지는 부분으로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돌아온 원숙하고 고고한 사랑의 삶을 살고 싶은 시적자아의 마음이 담겨있다. 역시 슬픔의 렌즈로 살짝 걸러져 있지만, 희망이 보이는 그의 대표 시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갈산은 삼척문화의 대명사였고 삼척문화원장을 지냈기에 삼척문화원 마당에 <김영준 문학비>건립을 제자들에 의해 추진 중이다. 그가 몸담았던 삼척 최초의 <동예>동인이 삼척 현대문학의 샘이 되어서, 바로 뒤를 이어서 ‘문학의 밤’ ‘동인시화전’ ‘시낭송’으로 일찍이 발전시킨 <불모지(不毛地)>동인(김익하, 정연휘, 최홍걸, 이종한, 박학래), 그리고 큰 강물로 합쳐서 2013년에 제36집의 동인지와 금년 2월로 293회 시낭송을 갖는 우리나라 최장수 시낭송회의 하나인<두타문학회>와 <삼척문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지역의 문학사를 정리한 『삼척문학통사』(2011년)를 낳았다. 이제 삼척의 문학은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나라 단군을 떠올린 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지은 이승휴와 명승고적 죽서루를 낳은 큰 물결 오십천이 되어 태양이 떠오르는 대양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1. 김영준, 1997, 누가 무엇을 숨길 수 있으랴, 혜화당 2. 김영준, 1997, 길‧세월‧밤, 혜화당 3. 김영준, 1997, 빛나는 아침의 땅에서, 혜화당 4. 두타문학회, 1996, 두타문학 제19집, 문왕출판사 5. 정연휘 편저, 2011, 삼척문학통사, 도서출판 해가
출처/2014 제1차 강원도 작고문인 재조명 세미나 2014년 강원도민일보·관동문학회
첫댓글 강원도 작고 문인 세미나 발제로 집필된 [평론] '슬픔의 렌즈로 바라본 사회현실 탄식과 풍자와 폐칩의 시학 -김영준 론을 잘 읽었네. 읽고나서 삼척문학사를 한층 더 두터이 했다는 느낌이 들었소. 수고 했소.
익하 형님! 덕담 감사합니다. 정연휘 형님! 세미나 가는 날 차 몰고, 사진 찍고, 세미나 내용과 사진 올리고...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세미나 내용을 지금 얼핏 보니 끝에서 둘째 줄에 <『삼척문학통사』(2011년)낳았다.>를 <『삼척문학통사』(2011년)를 낳았다.>로 퇴고해 주세요. 그리고 바쁜 시간을 내어 함께 참석했던 조관선 작가와 김일두 삼척문협회장, 서성옥 작가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해서 좋은 일 많았습니다.후배들이 작고 문인 선배들을 재조명할 수 있어 귀중한 시간이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말하자면 잠재적 '작고문인'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배들의 문학을 기릴 때에 뒷날 우리 후배들 또한 우리의 문학을 조명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문화의 진보요 문명의 진화라 믿습니다" 이광식 관동문학회장 인사말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