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오래전의 얘기입니다.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글로
후배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후에 합격자가 10여명 배출 되었지요...
나이 50이 되어 기술사를 준비하는걸 보고 냉소를 보냈지요 그때는 ㅎ
7/23/01(월)
작은 꿈
D-57!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독히도 더운 여름이 날 괴롭히고 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새삼스럽게 나이 들어 뭔가에 집착한다는 게 그런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싶지만
이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을 번복할 수는 없지만....
몸이 망가지고 있다.
항상 수면 부족에 나른함이 나에게 포기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정신력으로 버틴다는 것도 한계가 있는 듯...
과연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합격하면 뭐가 달라질까?
일순간의 승리감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주위사람들과의 말없는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일까?
번민의 시간들 그리고 자신의 무모한 결심에 회의가 일어난다.
“술 마시자는 사람 있으면 뺨따귀를 올려붙이세요!”
지독하리만치 매정한 한마디가 스쳐지나간다.
한밤중에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자신감이 넘쳐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항상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있는 느낌이다.
그날 공부했던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도통 생각이 나지 않으니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공부에도 나이가 있는거야..
“少不勤學 老後悔!.(젊어서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
아버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왜 좀더 성실하지 못했을까?
어제 신체검사장에서의 간호사 말도 충격적이다.
“아버님! 사랑니를 빼셔야겠어요!”
아니 난데없는 아버님이라니?
엉덩이가 처억 벌어지고 가슴이 불룩한 처자가 내 몰골이 아버지 벌로 보이는 걸까?
아침식사 때 딸년에게 그 얘기를 종잘대니 “그럼 오빠라고 불러? 아저씨라고 불러?”
녀석의 대답 또한 들어보니 그럴싸하다.
하지만 아버님이라니? 곰씹어 보니 그럴 수밖에 없으렷다.
그래 나이가 들었다.
마음은 젊게 살려 애쓰지만 이미 주변에서는 그렇게 봐주지 않으니
어차피 물결 흘러가듯 따라서 흘러 가는게 인생이 아닌가?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 같다.
시험 준비에 촉명탕(?)을 먹었다는데 아내에게 얘기를 해야겠다.
건강이 우선이지 무슨 뚱딴지같은 기술산가?
욕심 없이 살다가 인적 드문 산골 廢家라도 하나 장만해서
백구 한 마리 키우고 닭 놓아먹이며 생 울타리 밑에 꿀벌 두어통 치면 좋으련만.....
전기 불이 안들어 와도 좋다.
아니 그래도 처자식 멀리하고 혼자 살려면 냉장고가 필요할테니 전기불은 들어와야 하겠지?
그리고 손수 빨래를 하려면 앞에는 작은 개울이 있으면 금상첨화일테고..
그래 또 뭐가 필요하지?
라디오는 한 대 있어야겠다.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알테니까.
TV는 굳이 필요 없다. 그놈의 바보상자가 머리 쓰는 걸 막아 버리거든!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이 한개는 있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평소 써보고 싶었던 글을 부끄럽지만 쓸 수 있을테니까.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자전거는 한 대 있어야겠다.
급히 멀리 있는 마을에 라면이라도 한 개 사러 갈려면...
주말이면 멀리서 마누라가 한번 올 것이고
장가든 큰 녀석의 예쁜 며느리가 손주 녀석 손잡고 “할아버지!” 멀리서 부르며
달려오겠지?
그래 그렇게 살다 가자.
작은 꿈을 실현시켜 가자.
근데 그럴려면 농가를 살 돈이 조금은 있어야겠지?
근데 친구 녀석들과 당구를 칠려면 어떻게 하지?
결국은 욕심이 살아나고 만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두 번 다시 이 짓은 안하리라.
[‘01.7월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며]
첫댓글 정보통신기술사 합격수기를 연재해 주신 창강 이주연님은 현재 한전 기술위원, 호남IT기술사 포럼 회장, 수필가 외에 사회 여러분야의 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십니다... 바쁘신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하얀등대 회원님들을 위해 수기를 써 주신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카페지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