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교 목사 가정 이야기
신성호 선교사
부친은 예수를 믿기 전 한 가문의 종손으로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가정에는 평안함보다는 우환이 많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을 믿을 결심을 했을 때,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의지가 강하신 어머님의 결단으로 우리 가족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보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강변 우물가에 큰 당산나무가 있었고, 겨울마다 나무 아래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부친은 예수를 믿은 뒤 우상 섬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교인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한 후 나무를 불태워 버렸고, 그 후로부터 마을에는 동제가 없어졌습니다. 그 당시 부친은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온 동민이 두려워하며 섬기던 그 나무를 불태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부친에게 큰 믿음의 담력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귀하게 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에 이웃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그 교회 성도의 집에서 자면서 은혜를 받던 문화가 있었습니다. 필자와 부친을 비롯하여 위중교회 성도 여러분이 다인 행현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부친은 그 부흥회에 강사로 오신 김용구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부모님은 늦게 신학을 하셨고, 어려운 시골교회나 개척교회에서 섬기셔서 목회의 길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목회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께서 목회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자녀들이 교회 중심, 신앙 중심의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두 아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사로 나가는 준비를 해주게 됩니다.
제가 어릴 때 집에서 부흥회 강사로 오신 한부선(Bruce Hunt) 선교사님께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부선 선교사님이 식사 기도를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형제가 모두 선교사가 후에 한부선 선교사님이 혹시 자녀가 선교사가 되도록 기도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를 미얀마, 태국으로 보내시고 그레이스 선교부를 만들고 동생 신정호 선교사를 포함 여섯 가정과 함께 팀으로 사역하게 하시면서 교회가 없는 지역에 7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필자가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기까지 크게 영향을 준 두 곳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중교회입니다. 유년부부터 중등부까지 위중교회를 출석했는데, 그때 교회학교 교사 선생님들에게 배운 성경 말씀이 저의 가치관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교회가 너무 좋았던 필자는 시간 날 때마다 예배당에 가서 풍금을 치고, 탁구 치며 놀았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필자는 아이들이 교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축복을 누리도록 오직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둘째로 제게 영향을 준 곳은 기독교 학교인 거창고등학교입니다. 거창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삶과 인격은 제가 큰 도전이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 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선생님들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사랑하게 되는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동생 신정호 선교사는 2002년부터 태국에서 필자와 함께 팀으로 미얀마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다가 2022년에 사역지를 미얀마로 옮겨 현재는 미얀마 따웅지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교회 개척 사역과 어린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위중마을에 사시던 부친의 친구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우상을 섬기고, 술 담배를 하면서 건강을 잃고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셨지만, 현재 86세의 연세에도 부친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버렸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위중교회는 비록 시골의 작은 교회이지만 주의 종들을 많이 배출하는 등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큰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