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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NBA 원문보기 글쓴이: Duncan&Kidd홧팅
현재 리그의 탑 포인트 가드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제이슨 키드와 스티브 내쉬에 대해서 써봤습니다. 길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참고 읽어주세요. ^^;;
제이슨 키드
풀네임: Jason Frederick Kidd
신장: 193 Cm
체중: 95.3 Kg
생일: 73. 3. 23
출신대학: 캘리포니아 '96
출생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스티브 내쉬
풀네임: Steven John Nash
신장: 191 Cm
체중: 89.5 Kg
생일: 74. 2. 7
출신대학: 산타 클라라 '96
출생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적은 캐나다(주 성장지는 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
Jason Kidd and Steve Nash
1. 어린시절 운동 중에 축구를 먼저 했다.
내쉬의 아버지는 프로 축구 선수였으며, 남아프리카 축구팀에서 소속된 시절 그가 태어난 듯 하다. 형도 프로 축구 선수의 길로 나갈 만큼, 축구 집안의 분위기에서 내쉬도 당연히 어린 시절 축구 선수로 길을 잡았다. 또한 라크로스와 하키 등 스틱을 이용한 구기 종목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가 농구란 스포츠에 눈을 돌린건 8학년(우리 중학시절) 이후였다.
키드는 3학년 때까지 동네 운동장에서 풋볼도 아닌 사커에 빠져들어 여가시간을 활용했다. 그렇지만 미국이란 나라 덕분에 곧바로 동네 형들과 농구를 하며 보냈고, 심지어 자기 나이의 두배나 되는 형들과 플레이를 해야했기 때문에, 그는 오직 패스를 해야 같이 놀아줄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포인트 가드가 되는 운명의 시작이었다.
2. 피닉스 선즈와 달라스 매버릭스에 적을 두었고, 피닉스에서 같이 뛴 시절이 있었다.
피닉스 선즈:
내쉬는 피닉스 선즈에 의해 96년 15순위로 드래프트되어 두시즌 동안 뛰며 NBA를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다시 선즈로 돌아왔다.
키드는 96-97 시즌 중도에 달라스에서 피닉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00-01 시즌까지 선즈에서 활동했다.
달라스 매버릭스:
키드는 달라스 매버릭스에 의해 94년 2순위로 드래프트 되어 두 시즌 반동안 매버릭스에서 뛰며 NBA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내쉬는 98-99 시즌에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03-04 시즌까지 주전으로 뛰며 활약했다.
이 두 선수가 선즈에서 같이 뛰던 96-97, 97-98 시즌 동안, 내쉬에게 있어 포인트 가드로서는 키드와 케빈 존슨이라는 큰 산이 있었고, 스코어러로서도 렉스 채프먼과 웨슬리 퍼슨이라는 벽이 있었기에 주력으로 가용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KJ-JK 라는 산은 그에게 포인트 가드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숙련 기회를 제공했다. 내쉬 스스로도 케빈 존슨과 제이슨 키드가 그의 발전에 있어 큰 도움을 주었다고 회술했다.
매버릭스에서 키드는 이미 루키부터 진가를 드러내었고, 내쉬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 팀이 매버릭스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두 매버릭스에서 3인방 라인업의 일원으로 활약한 공통점이 있다.
3. 약체의 팀들에게 그들의 가세는 너무나도 적합했다.
뉴져지 넷츠 팀의 라디오 방송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Chris Carrino 씨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라는 컬럼이 몇 주 전 넷츠 홈에 올랐었다. 그가 피닉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룹 Radiohead의 'Everytiong in it's right place'('Kid A' 앨범 첫번째 트랙)라는 음악을 들으며 신선한 충동을 받았고, 그 충동의 이유는 바로 내쉬와 키드가 떠올랐기 때문었다고 한다.
지금 시즌 선즈에 내쉬가 들어간 자리와, 2001-2002 시즌 넷츠에 키드가 들어간 자리는 정말 그들이 들어가기에 너무도 걸맞는 자리였다는 점을 들며, 그들이 변모시켰던 활약을 회상했던 내용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들어간 자리는 바로 그들의 자리였다. 그들의 가세는 항상 기대 이상을 성과를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어간 팀들은 그들이 들어가기 바로 직전까지 약체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 선즈는 최근 최악의 시즌을 보냈던 팀이었고, 지난번 내가 자유칼럼에 올렸듯이 2001-02 시즌 이전까지 넷츠도 줄리어스 어빙의 저주를 너무나도 혹독하게 받고 있었던 '되는게 없는 팀'이었다.
선즈는 내쉬와 퀸틴 리차드슨의 가세로 이전 시즌 0.354의 승률(서부 꼴찌에서 2위)에서 현재 시즌 0.754(서부 2위)의 승률로 뛰어 올랐다.
넷츠는 키드의 가세와 신인 리차드 제퍼슨이 들어오며 이전 시즌 0.317(동부 꼴지에서 4위)에서 0.610(동부 1위)로 뛰어올랐다.
팀의 선수 변동은 저것 밖에 없었지만 너무나도 차이나는 성적의 발전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승률의 큰 폭이 났던 차이는 그들 만의 공(功)이 아니었다. 이 팀들은 키드와 내쉬가 몰고 가기에 딱맞는 경주용 자동차였다는 말로 비유하면 좋을까 한다. 선즈는 팀원들도 엄청난 속도로 코트를 내달릴 수 있고, 그 당시 넷츠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선즈가 그 내용면에서는 더욱 좋지만, 넷츠의 키틀즈, 제퍼슨, 마틴도 속공에 튜닝이 꽤 잘된 부품들이었다.
난 그들이 어느 팀에 가도 성적의 향상은 바라볼 수 있었으리라 믿고 싶지만, 아무팀에나 간다고 저렇게 성적의 변동폭이 있으리라는 믿음에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이전에 매버릭스와 선즈에서의 그들의 위치가 또한 팀의 성공에 있어 큰 열쇠였다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4. 속공의 위력을 증명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성공에 있어 많은 전문가들과 매니아들이 갖고 있는 통설은 훌륭한 디펜스와 하프코트 오펜스이다. 넷츠는 수비는 갖췄지만 하프코트 오펜스가 미흡했고, 지금의 선즈는 하프코트 오펜스는 갖췄지만 디펜스가 미흡하다. 그랬는지 넷츠는 두 번이나 파이널에 올라갔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끈끈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동부 컨퍼런스를 뚫고 파이널에 올라간다는 자체도 대단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선즈는 시즌 초반에 그들이 리그 최고의 팀을 증명한 바 있다.
위 팀들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속공에 있다. 농구에서 일정 시점에서 득점의 차이가 많이 나는 시기를 run이라고 부른다. run은 자기 팀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수차를 크게 벌리는 계기가 되고, 뒤쳐질 때는 상대방의 리드에 급격히 추격하거나 역전시키는 계기도 된다. 이 run에 가장 필요한 요소가 속공이다. 이번 시즌 선즈와 잘나갈 때의 넷츠는 이런 속공을 초반부터 전반에 걸쳐 보여줌으로써 초반부터 위세를 잡고 시작하거나 중반에 점수를 따라잡아 승리를 낚아 가곤 했다.
이 속공의 구심점들이 내쉬와 키드라는 점은 그들이 속공의 성공사례에 있어 어느 정도의 증명을 해줬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키드는 아직 우승을 하지 못했고, 내쉬는 앞으로 우승으로서 완벽한 증명을 보여줄 과제가 남아있다.
5. 사람들이 만들어낸 마버리와의 악연
이 둘의 성공은 자신들의 가치를 제고(提高)시킴과 동시에 마버리의 가치를 낮추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키드는 선즈에서 마버리와 맞 트레이드되어 넷츠로 갔고, 내쉬는 마버리가 떠난 선즈와 FA 계약을 맺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마버리가 있던 시절보다 팀 성적을 훨씬 상승시켰다.
넷츠가 .524의 좋은 성적을 내던 97-98을 보낸뒤 98-99 시즌에 망가진 성적으로 보내던 중 마버리가 트레이드로 넷츠에 들어왔다. 그 뒤 넷츠의 두 시즌동안 마버리는 진짜 되는게 없는 넷츠에서 그도 되는게 없었다.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도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는 경기가 꽤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팀의 에이스 역할까지 하면서 분투해야 했지만 팀은 케미스트리 와해와 더불어 부상에 시달린 탓에 동부의 약체로 주욱 존재했다.
01-02 시즌 마버리가 키드와 넷츠로 서로의 소속을 교환하고, 선즈는 이전 시즌 .622의 승률에서 .439의 승률로 낮아졌다. 마버리가 96-97 시즌 이후로 처음으로 선즈에서 평균 20득점 이상을 해주는 선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구단주도 이 시즌에 대해서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소감을 표명했다. 14시즌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으니 무리는 아니였다. 이 당시 넷츠는 동부 1위와 더불어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이후 02-03 시즌은 선즈가 플레이오프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비록 스퍼스에 의해 1라운드에서 탈락됐지만, 이 때 성적은 시즌 전 많은 비난을 잠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역시 마버리가 팀의 에이스이자 플레이메이커였고, 메리언의 성장이 정점에 다다르려 한 시기였다. 하지만 서부 8위의 성적으로 마친 이 시즌을 뒤로하고 시작된 03-04 시즌은 선즈 최악의 시즌 중 하나로 남게 되고 마버리도 팀을 떠났다.
마버리가 없어진 자리에 들어온 키드와 내쉬는 팀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약했던 팀을 강팀으로 바꿨다는 점이 마버리의 커리어에 상대적으로 큰 데미지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키드와 내쉬의 성공에 마버리를 곁들이며 비교하기도 했다.
내 생각은 이렇다. 마버리가 속해있으며 실패했던 팀들 속에서 마버리는 에이스였다. 마버리를 사람들이 말하는 포인트가드의 분류로 놓는다면 스코어링 포인트 가드이다. 넷츠와 선즈에 있었을 때 항상 스코어링 리더는 마버리였다. 마버리도 훌륭한 스코어러지만 그가 에이스 스코어러의 위치에 있기에는 그가 짊어진 짐이 너무나 크진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는 에이스의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는 타입이라는 점에선 아쉽다. 이 아쉬운 면에서 더 아쉬운 면이 있다면 그는 팀 운이 정말 없었다는 점이다. 그보다 정말 뛰어난 스코어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와 에이스의 자리를 갖고 마찰을 빚었던 선수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마버리보다 확고한 스코어러가 있다면 그는 위닝 팀 또는 엘리트 팀의 일원이 되리라 생각한다.
반면 키드와 내쉬는 그들의 팀에 있어 리딩 가드의 역할을 맡아 했다. 리딩 가드라는 건 팀원을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기의 득점력이 있어도, 쉬운 득점을 우선에 두고 동료의 움직임을 강조한 전술 운용에 중점을 둔다.
그들도 괜찮은 득점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건 그들이 2인자 3인자의 역할에 있는게 아니라 자기 의지대로 다른 선수를 이용할 줄 안다는 점을 의미한다. 트루 포인트 가드는 어시스트 수도 중요하지만 이런 성향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마버리는 팀에서 자신이 최고의 기능을 가진 부품이 되려고 했다면, 키드와 내쉬는 부품을 효율적으로 가동하는 조작자라고 비유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두 타입 중에 누가 더 좋은가는 여러분의 선호도에 달려있을 뿐이다.
마버리의 좋은 성능을 수치로 이야기하자면, 마버리는 넷츠로 옮겨온 뒤 매번 20득점 이상을 하며 팀의 스코어링 리더였으며, 커리어 평균 어시스트 8.3은 역대 통산 7위이고, 현역중 그 위에 있는 선수는 제이슨 키드밖에 없다.
6. 2000 시드니 올림픽
그들이 같은 국제 대회에서 뛰었던 2000 시드니 올림픽.
키드는 미국의 국가 대표로, 내쉬는 캐나다의 국가 대표로 출전하였다.
미국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드림팀이었다.
샤리프 압둘라힘, 레이 앨런, 빈 베이커, 빈스 카터, 케빈 가넷, 팀 하더웨이, 앨런 휴스턴, 제이슨 키드, 안토니오 맥다이스, 알론조 모닝, 게리 페이튼, 스티브 스미쓰
캐나다의 NBA 선수는 스티브 내쉬와 토드 맥클러프가 있었다.
미국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무너졌지만, 시드니 때까지만 해도 그 내용은 떨어졌다지만 드림팀의 모습, 무적의(Invincible) 모습은 여전했다. 전승 우승으로 미국 남자 농구팀으로서 14번 중 12번째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25연승의 일환으로 기여했다. 또한 미국 남자 농구팀 총 전적을 109 승 2패로 늘렸다. 특히나 빈스 카터의 상대방 선수를 뛰어넘는 덩크는 그때 키드도 같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넷츠에 와서도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키드는 8경기 출전, 4경기 선발 출장하여 토탈 48 득점, 42 리바운드, 35 어시스트, 1 블럭, 9 스틸을 기록하였다. 평균 6- 5.3 - 4.4 를 기록한 셈이다.
내쉬가 속해있는 캐나다의 입장에서는 12년만에 올림픽 무대에 올라오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본선 진출 예선 토너먼트의 MVP 스티브 내쉬의 활약으로 캐나다는 메달권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B조 1위로 8강까지 오르는데 성공하며 그 희망이 실현되나 했지만 프랑스에게 패해 내쉬는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캐나다는 순위 결정전에서 러시아에게 승리를 거둬 7위에 랭크 되었다. 세계에 캐나다 농구팀을 알리는 계기에서 만족해야 했다.
국가대표 부분 참조사이트
http://www.usabasketball.com/history/moly_2000.html
http://www.canoe.ca/2000GamesTeamCanada/basketball.html
Jason Kidd vs Steve Nash
1. 농구 선수로서의 출발점
아까도 말했지만, 키드는 어린시절부터 농구를 했고, 내쉬는 청소년기 중반까지 축구에 집중하였다. 덕분에 키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농구계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대성할 조짐을 보였다. 그의 고등학교때 91-92 시즌에서 평균 25 득점, 10 어시스트 7 리바운드라는 기록을 보이며 the nation's top high school player라는 영예로 고등학교 농구선수 최고의 명예인 네이스미쓰 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각종 매체에서 그가 탄 상과 타이틀은 많았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도 2년 동안 보여준 그의 위력은 그가 탄 상들과 타이틀들로 증명했다. 대표적으로 네이스미쓰 상과 존 우든 상을 수상했고, 서포모어로서 처음으로 Pac-10 Player of the year(각 대학 컨퍼런스별로 뽑는 우수 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키드의 각종 타이틀들은 그가 글렌 로빈슨에 이어 1라운드 2번픽에 선발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면 늦게서야 농구를 시작한 내쉬에게 남아있는 길은 일반적인 농구선수에 비해 멀게 남았다. 그렇지만 그는 늦게나마 농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자기는 언젠가 NBA에서 뛸거라 고 말했다고 할 정도로 굳은 의지를 가졌다. 이게 뭐 대단한거냐고 묻는다면 미국의 고등학교 농구선수가 NBA에 진출하는데 약 1/7,600 의 경쟁률을 가지는데, 캐나다의 일개 고등학교 농구선수가 NBA 선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농구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내쉬의 농구 인생은 투철한 노력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NBA 선수에게 있어 노력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지만 내쉬의 노력은 정말 탑 클래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노력은 산타 클라라 대학에서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The West Coast Conference Player of the Year를 2회 차지할 정도로 훌륭한 대학 선수 시절을 마친 그에게 NBA 드래프트 픽 15순위는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2. NBA 선수로서의 출발
키드가 드래프트되어 달라스를 .159의 승률 팀에서 .439의 승률 팀으로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하고, 그랜트 힐과 공동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점만 봐도 그의 첫 NBA 커리어가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말해준다. 이전부터 나왔던 매직 존슨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예상을 그가 실현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했다. 비록 득점면에서는 초라할지는 모르나 그의 경기 운영과 올라운드함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3J라는 댈러스의 강력한 멤버에서 짐 잭슨과 여자문제로 트러블을 일으키게 되자 곧 트레이드 되어 들어온 선즈에서는 더욱더 그의 다재다능함이 빛이 났다. 그리고 그는 커리어 전체를 통해 NBA's top point guard 대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반면 내쉬의 경력은 다소 초라하게 시작했다. 그가 드래프트되어 들어온 선즈는 이미 케빈 존슨이 포인트 가드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곧이어 트레이드 되어 온 제이슨 키드가 주전 PG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케빈 존슨과 제이슨 키드가 차지하고 있는 가드 자리에 그가 가용된 시간(10.5분)은 매우 적었다. 그 후에 매버릭스로의 트레이드는 그에게 있어 그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가 달라스로 이적하자 마자 높은 기량을 보여줬던 건 아니다. 내쉬의 기량이 꽃핀 시기는 00-01시즌 그의 NBA 5시즌 째에서였다.
3. 각종 타이틀
키드
Rookie Of the Year 94'
올스타 7회 1996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1995-All-Rookie (1st)
1999-All-Defense (1st)
1999-All-NBA (1st)
2000-All-Defense (2nd)
2000-All-NBA (1st)
2001-All-Defense (1st)
2001-All-NBA (1st)
2002-All-Defense (1st)
2002-All-NBA (1st)
2003-All-Defense (2nd)
2003-All-NBA (2nd)
2004-All-Defense (2nd)
2004-All-NBA (1st)
내쉬
올스타 2회 2002 2003
2002-All-NBA (3rd)
2003-All-NBA (3rd)
올해는 적어도 2005 All NBA 1st Team에 낄 것이며, MVP도 노릴 수 있다.
4. 그들의 라이벌?
제이슨 키드는 스스로 게리 페이튼을 자기의 라이벌로 생각해왔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게리 페이튼과 1 대 1 게임을 해오기도 했고, 게리 페이튼이 숱하게 이겼다고 한다. 키드는 이제 자기의 팀 성적과 커리어로 그를 눌러야한다.
스티브 내쉬에게 돋보이는 라이벌은 누구일까? 지난 시즌까지는 마이크 비비였다고 할 수 있다. 매버릭스와 킹스는 최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맞붙은 적이 있고, 팀의 스타일도 비슷한 상황에서 둘은 모두 스코어링과 빅 샷에도 큰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원치 않아도 사람들은 스티브 내쉬와 제이슨 키드를 포인트 가드 자리를 놓고 라이벌로 여기려 하고 있다.
5. 포인트 가드로서
득점
이 부분에서는 내가 아무리 키드의 팬이지만 내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트루 포인트 가드가 아무리 득점에 과욕을 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포인트 가드가 가지고 있는 득점력 자체는 작전을 짜기에 유리한 점을 준다. 포인트 가드는 또한 박빙의 승부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데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다.
키드에게는 자기 스스로 득점을 만드는 능력에 있어서는 특출나지가 않다. 그의 야투율은 4할을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고, 다만 3점슛에 있어서는 지금 4할에 접어들만큼 발전했다는 점이 위안이다. 대신 그의 90퍼센트를 넘나드는 자유투는 박빙의 승부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할 수 있다. 그래도 점프샷에서 있어서 ASON(Jason에서 Jumper의 J를 뺀, 키드 팬에게는 달갑지 않은 닉네임)이라는 딱지는 뗄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에 비해 내쉬는 득점력에서 신기에 가까운 오프-밸런스 샷이라는 무서운 무기와 높은 3점 성공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슛 릴리즈는 매우 빠르다. 그리고 경기마다 그가 보여주는 돌파에 이은 오프-밸런스 샷은 속칭 후룩에 가까울 정도로 상대편 선수와 팬으로 하여금 허탈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3점슛에 있어서도 높은 성공율을 갖고 있고, 매버릭스 시절에 빅샷의 책임이 노비츠키보다는 내쉬에게 크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심잠을 갖고 있다.
하프코트 오펜스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요즘 제이슨 키드는 종종 포스트업을 선택 하기도 한다. 팀 오펜스가 정리되지 않거나 시간을 이용해야 할때, 그는 곧잘 포스트 업을 이용해 인사이드로 접근해서 자기가 마무리를 짓거나 팀원들을 주시하며 기회를 찾곤 한다. 그리고 이제 나이와 함께 전에 있던 부상전력 탓에 상대 수비수를 휙 제끼거나 코트를 휘젓는 드라이브의 모습은 많이 없어졌다. 포스트업을 하지 않으면 되도록 빨리 공을 다른 선수로 넘기고 선수들이 움직여 주길 원하거나 자신의 3점슛을 날린다. 다시 그가 코트를 휘젓고 수비를 교란하며 찬스를 만드는 모습을 자주 보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내쉬는 상대 수비수와의 몸 접촉을 되록이면 피한다. 상대방을 드리블로 제끼거나 돌파하면서 공간을 만들고 패스하기도 하며, 되도록 공을 오래 끌지 않는다. 축구가 자신의 풋워크와 드리블에 도움을 주었다 말했고, 그는 지금껏 내내 드리블에 대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루키 시즌부터 계속 드리블에 대한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 그의 움직임은 충분히 상대 수비수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두 선수 모두 넓은 코트 시야를 갖고 기회가 오기면 한다면 주저없이 정확한 패스를 찔러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킬패스를 내내 기다려선 안된다. NBA 수비는 킬 패스를 종종 허용할 만큼 허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비
넷츠의 수비가 높이보다는 움짐임에 의한 수비에 높은 비중을 두는데는 키드의 역할이 크다. 그는 항상 다른 선수들에게 헬프할 준비가 되어있고, 재치스런 움직임으로 상대방 공격의 활로를 막아낼 수 있다. 또한 보드 가담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 튄 공의 방향에 대한 탁월한 인지 감각을 이용해 리바운드를 잘 따낸다.
내쉬의 수비를 두고 그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긴 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속했던 팀이 수비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빠른 공격, 즉 업템포 바스켓를 구사하던 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비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에 비하면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1 대 1 마크보다는 공간의 수비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리딩
키드는 루키 시절부터 자신의 운영으로 팀의 성패를 짊어져왔다. 타 팀에 비해 강력한 go-to 옵션이 없었던 팀에서 보낸 커리어가 많았던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인시절부터 그는 코트 위의 운영자 역할에 빠르게 익숙해져 왔다. 포인트 가드가 자기의 리딩 능력을 검증 받는데는 키드같은 유형의 팀 경력을 갖고 있는 것이 꽤 유리하다. 지금 커크 하인릭이 그러할 것이다.
파이널까지 올라갔던 넷츠의 선수들은 코트 위의 다섯 명이 모두 1 대 1에서 필살의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이지 스코어링 찬스에서는 좋은 마무리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유재석이 말한 '스피드'였다. 스피드를 갖추고 움직이는 선수들에게 적재적소의 패스를 건네주며, 경기를 셋팅하는 키드의 리딩이 가장 크게 검증된 시기였다.
내쉬가 지금까지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매버릭스의 시스템을 말하자면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TV판 'Stand Alone Complex'에서 나온 공안 9과 아라마키 과장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들 사이에서 팀플레이라고 하는 근사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독자적인(Stand-alone) 플레이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팀워크 뿐이다.'
즉, 돈 넬슨의 매버릭스는 허울좋은 팀워크라는 말보다 선수 개개인의 좋은 플레이가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로 그들을 입증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팀에게 포인트 가드가 경기 운영에 기여하는 입지는 상대적으로 적다. 내쉬도 팀 전체의 운영을 맡았다기 보다는 하나의 독자적인 공격수 역할에 꽤 비중을 두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Scoring point guard'로 여겨지는 예가 많다.
하지만 지금 선즈에서 내쉬의 입장은 다르다. 그가 선즈와의 계약이 결정되고 팬들의 질문에 답하는 채팅에서 내쉬는 달라스에서 보여줬던 스코어러의 모습이 아닌 팀을 리드하는 점에 집중하겠다고 답한 적이 있다. 물론 현재 그의 득점은 달라스 시절보다 그리 낮은 것도 아닐만큼 선즈의 득점에 일조하고 있지만, 그가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항상 패스가 우선인 자세를 갖고 플레이를 한다.
선즈의 내쉬를 제외한 주력 선수들은 모두 뛰어난 피니쉬 능력도 지니고 있고, 1 대 1 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내쉬가 부재(不在)했던 경기를 보면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이용하는데 다소 막막한 모습을 보여줘 왔다. 그들을 이렇게 끌어냈다는 점을 보면 선즈는 내쉬의 리딩 능력을 충분히 검증해 주었고, 앞으로 그를 리딩 가드로 칭하게 만들기에 적합한 팀 커리어다.
6. 그 외 특이사항
키드는 자유투를 던지기 전에 손에 가볍게 키스하여 바스켓에 건넨다.
내쉬는 자유투를 던지기 전에 혀로 손가락을 핥는다.
키드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미국에서는 흑인-백인의 혼혈에 대한 판단의 관례때문에 그를 흑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영화에 나오는 백인 범죄형 얼굴과 너무나 매치가 잘된다.
키드의 아내의 이름은 Juoumana이며 그의 아들 TJ(Trey Jason)와 함께 경기장을 즐겨 찾는다. 이 아이는 요즘 벤치 뒤에서 아빠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또다른 코칭 스태프라 할 수 있다. 키드는 또한 쌍둥이 딸도 있다. 몇년전 양육권을 갖고 다툼을 갖던 시기도 있었는데, 사람 관계는 밖에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내쉬의 개인 프로필에는 'Girlfriend, Alejandra, is due to deliver the couple’s twin girls in November'이라고 적혀있다. 이것이 최근의 내용이라면 그는 가을에 쌍둥이 딸들의 아빠가 될 것이다. - (* 작년 내용이랍니다. ^^;;)
제이슨 키드는 어린 시절부터 매직 존슨의 팬이었고, 그를 보며 농구 스킬을 연마했다고 한다.
스티브 내쉬는 가장 존경하는 선수에 대해 주저없이 아이재이아 토마스를 말한다.
정리하며....
제이슨 키드의 토탈 어시스트는 역대 토탈 어시스트 12위(7,083)이며 조금 있으면 팀 하더웨이(7,095)를 제치고 11위로 올라갈 것이다.(아마 당신이 읽고 있는 시점에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스티브 내쉬는 토탈 3,925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키드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올 타임 리더 어시스트 분야에 그의 이름을 올리려면(30위 안) 앞으로 약 1,700개 정도의 어시스트를 더 해야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두 시즌 정도 탈없이 뛴다면 가능할 것이다.
토탈의 입장에서는 내쉬는 키드의 상대가 안된다. 하지만 지금 내쉬는 가장 화려한 포인트 가드로서의 시즌을 보내고 있고, 이번 시즌에는 키드의 인정을 받아냈다. 매직 존슨과 아이재이아 토마스는 우승을 일궈냈지만, 이후로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 제이슨 키드 와 같이 주역의 위치로 파이널까지 끌고간 포인트 가드들은 우승을 얻어내지 못했다. 이들의 토탈 어시스트에 반 또는 반의 반밖에 되지 않는 내쉬가 우승을 일궈낸다면 우린 그의 가치에 새롭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럴 가능성이 그에서 상당히 가깝게 다가왔지만 넘어야할 벽도 높다.
그리고 내쉬의 리딩 가드로서 위치를 지금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 평가할 이유는 없다. 지금 그는 현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서 위치해 있고, 이것은 나와 같은 키드 팬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안 할 분들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역사의 수직적 관점에서는 내쉬는 좋은 포인트 가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수평적 관점에서는 내쉬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이다. 물론 제이슨 키드도 수직적 관점에서는 좋은 포인트 가드 중 한명이라는 것 이상으로 가기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다음 시즌에 키드가 속한 팀이 어떤 방식으로든 전력이 정비된다면, 다시 리그의 리딩 가드 지존을 맞붙을 날이 올 수 있다. 그 날이 기다려질 뿐이다.
농구공을 갖고 키드와 내쉬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가장 득점하기 쉬운 선수에게 패스를 찔러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또한 우리 팬들 입장에서 한 선수가 득점하는 순간에도 기쁘지만, 그 선수가 멋진 패스를 하는 순간이 더 기쁜 순간이 되는 포지션이 리딩가드이다. 30을 훌쩍 넘은 그들의 새로운 리딩 가드 라이벌리를 계속 즐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