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避暑百景
한여름의 한더위가 한창이다. 불볕더위를 피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에로의
피서인파도 절정을 이루고 있다.
한더위를 나타내는 단어도 여럿 있다. 暴炎(폭염), 暴暑(폭서), 酷炎(혹염),
酷暑(혹서) 등은 일반적인 무더위를 가리킨다. 불볕더위는 불화자가
두 개 겹치는 炎天(염천), 장마 때의 무더위는 溽暑(욕서), 푹푹 찌는 듯한
찜통더위는 蒸炎(증염), 불꽃과 같은 삼복더위는 庚熱(경열 : 복날이 庚日(경일)이기 때문),
庚炎(경염), 伏炎(복염)이라고 한다. 이 모든 더위를 종합해 표현한 사자성어로는
돌이 녹고, 쇠가 녹아 흐른다는 鑠石流金(삭석유금)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더워도 어떻게 돌이 녹고 쇠가 녹아 흐른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테지만
한여름에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고(鑠石) 철로 레일이 더위를 먹고 휘는 현상(流金)을
보면 이 말이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인들은 이런 불볕더위, 찜통더위, 삼복더위를 어떻게 피하고(避暑)
이겨(克暑 : 극서)냈을까? ‘선인들의 避暑百景(피서백경)’을 통해 알아보자.
당나라 康騈(강병)의 전기소설집인 『劇談錄(극담록)』에는 신라 스님이 만든
피서용구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스님으로부터 들여온 白龍皮(백룡피)는 天麻(천마)의 일종으로,
방안에 깔고 물을 뿌리면 냉기를 뿜어 방안이 시원해 진다고 한다.
오늘날의 에어컨이나 선풍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 책에 보면 당나라 부호 王元寶(왕원보)는 손님이 오면 龍皮扇(용피선)이라는
부채를 내 놓았는데, 이 부채에서 시원한 바람이 절로 나와 냉기가
방안 가득 찬다고 한다. 이 용피선은 당나라로 유학온 신라 스님이 들여온 것으로
신라 근해와 동해에서 나는 고기의 가죽, 즉 魚皮(어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명인 송나라의 대문호 蘇東坡(소동파)도
부치면 향내 나는 白松扇(백송선 : 고려선이라고도 함)을 예찬하고 있다.
신라와 고려에서 만든 부채가 중국으로 건너가 避暑韓流(피서한류)바람을
일으킨 증좌라 하겠다. 오늘의 삼성, LG의 전자제품이 중국대륙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이 천 수 백년 전부터의 한류 덕분임을 알겠다.
흥부가 박을 타 대박을 터뜨린 진귀한 보물 속에는 이 용피선과
紫綃帳(자초장 : 서해에서 나는 특수한 상어 껍질로 만든 발로,
밖에서 들어오는 더운 바람이 이 발에 닿으면 찬바람으로 변해
온 방안을 시원하게 했다고 함)도 나왔다고 한다. 이 용피선과 자초장으로
피서하고 극서했기 망정이지 더위에 나가 떨어졌다면 흥부에게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랴!
동양의 클레오파트라요, 중국의 4대 미녀에다가 傾國之色(경국지색)인
楊貴妃(양귀비)의 피서법은 어땠을까? 그녀는 氷屛(빙병 : 얼음병풍)을 치고,
扇車(선거 : 물레방아 부채)로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빙잠옷(대설산 눈 속에서 자란
누에고치 실로 짠 잠옷. 더위가 3척 앞에서 물러갔다고 함)을 입고
凉殿(양전 : 시원한 궁전)이라는 여름 왕궁에서 호사스러운 피서를 했다고 한다.
양귀비의 6촌 오빠로 현종 때 재상을 지낸 楊國忠(양국충)도 피서에서는
황후인 양귀비에게 뒤지지 않는다. 얼음으로 병풍을 만들고 냉사 두 마리를
목에 두르고 하는 피서법인 氷屛冷蛇(빙병냉사)란 말은 그를 두고 한 말이다.
양국충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방안이 너무 추우면 婢妾(비첩) 열 명으로 하여금
알몸으로 병풍을 만들어 그 열로 방안의 냉기를 가시게 한 살병풍, 육병풍도
치게 했다니 그의 호사, 부도덕한 피서 행태에 열을 받아 더위 먹을 지경이다.
이들 6촌 남매의 극에 달한 사치와 부패, 수탈, 농단으로 ‘安史(안사)의 亂(난)’을 유발,
이들은 도망치다가 백성들에 의해 타살되거나 자살을 강요받아 생을 마감한다.
이들은 한때의 피서는 잘 했는지 몰라도 불구덩이 奈落(나락)으로 떨어짐으로써
영원한 피서는 끝내 하지 못하고 만다.
호사스런 피서를 즐겼던 양귀비와는 달리 우리네 양가집 규수들의 여름나기는
그야말로 소박하기 짝이 없다. 한여름에 그녀들은 허리춤에서 다리 쪽으로 구멍을
여러 개 뚫은 여성 속바지를 입고서 무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평소에는 치마 속에
속속곳, 다리속곳, 단속곳, 속마 등 네 개의 속옷을 껴입어야 했던 그녀들이었다.
반바지가 아니라 정말 핫(hot)한 팬티가 넘쳐나는 오늘의 거리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 백성들은 자연에 적응하는 피서를 즐겼다. 苦竹葉(고죽엽)처럼 생긴 풀인
仰凉之草(앙량지초), 또는 迎凉草(영량초)를 문간이나 창가에 놓고 시원한 바람을
불러들여 삼복더위를 식혔다. 花草冷房(화초냉방)의 피서법이다.
碧筒飮(벽통음), 象筒飮(상통음)이라는 피서법도 있다. 연꽃 잎줄기 속에
술을 담갔다가 코끼리처럼 굽혀 마시면 그 취기가 더위를 발산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피서도 하고 복중 풍류도 즐겼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청마루에 井字(정자) 상을 만들어 거기서 기거하며 마루 밑
바람을 끌어 올려 더위를 쫓는 凉臺(양대)라는 피서법도 있다.
선인들의 피서백경 가운데는 竹夫人(죽부인), 등거리, 藤(등)토시를 이용한
피서방법도 등장한다.
이밖에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돈 안 들이고 맨몸으로 하는 피서법도
개발해 냈다. 이름하여 風櫛(풍즐 : 바람빗질)이 그것이다. 산에 올라 상투머리나
총각머리를 풀어 바람에 날려 더위를 날리는 피서법이다.
산 위에 누워 국보 1호(?)인 국부를 꺼내 바람을 쐬는 擧風(거풍 : 정력과
질병 예방에도 좋음. 남자만 하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여자라고 못 할 것 없음),
냇물이나 계곡물에 발 담궈 온몸을 식히는 濯足(탁족 : 足浴(족욕)과 같음),
등목(또는 목물), 여자들의 등목인 乳房瀑(유방폭 : 등목한 물이 젖꼭지를 타고
두 줄기 폭포처럼 쏟아 내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 등의 피서법은 너무나 서민적이다.
선인들의 피서백경 지혜를 좇고, 자연에 동화되어 부작용 하나 없는 일석이조의 피서법,
이 여름 산천에 나가서는 거풍과 탁족을, 집에서는 등목과 유방폭으로 찜통더위를
이겨 내기를 권한다.
단기 4347년 7월 29일 대구에서 抱 民 徐 昌 植
첫댓글 형님 올여름 피서는 산에가서 산행하면서
즐겨볼까합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