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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한라산 관음사 신도회
 
 
 
카페 게시글
법문무량서원학 스크랩 *귀한 기도 법문 / 무여스님
바라밀 추천 0 조회 23 13.05.27 21: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귀한 기도 법문 / 무여스님


신도 여러분, 오늘은 매년 연중 행사로 열리는 유서 깊은 문수산 축서사의 관음기도 입재날입니다. 오늘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광명이 가득해서 여러분이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 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기도를 하시겠지만 이런 기도 기간에는 더 열심히 하시고 더 지극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할 때는 전화도 받지 마시고,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것도 보지 마시고, 특별한 일 외에는 하지도 말고 오직 기도에 폭 빠지듯이 참으로 애써 보시기 바랍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꼭 해야 되고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대단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인간성을 계발하고 인간을 완성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기도(祈禱)란 빌 기(祈), 빌 도(禱), 빈다는 뜻입니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빈다는 뜻으로 기원(祈願)이라고도 하고, 바라고 청한다는 뜻으로 기청(祈請)이라고도 합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이 있습니다. 욕망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또는 우리 육체의 내부에서 일으킵니다. 갖고 싶고, 이루고 싶고, 어떤 행위를 하고 싶은 마음을 끝없이 일으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인간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라고 한 분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전선을 누비면서 좌충우돌하며 전령을 수행하는 전차처럼 온갖 욕망을 일으키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이 지나쳐서 탐욕이라고 합니다. 탐욕은 끝이 없고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평생 돈에 대해서 욕심을 내던 어떤 사람은 죽으면서도 '돈, 돈을 벌어야지.'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99석 하는 부자가 100석을 채우기 위해서 한석지기의 곡식을 빼앗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말 두면 종 두고 싶어한다.' 그런 말까지도 있습니다.

그런 욕망 중에서 내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으니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위신력으로 내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즉, 지장보살님께서는 '지옥 중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 하시면서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 서 계신답니다. 그런 서원을 세우셨어요.

약사여래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질병 치료로부터 무명에 의한 온갖 고뇌를 구원하고야 말겠다.'는 그런 대단한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법장비구로 계실 때 세자재왕 앞에서 48대원을 세우셔서 드디어 서방정토에 극락세계를 세우셨습니다.

부처님이나 여러 보살님들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고야 말겠다는 원력을 세우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음력(陰力)이 아주 커요. 그런 크신 음력에 의지해서 그 가피력으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도의 개념입니다.

다른 한편,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들에게 지극한 신앙심과 간절한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자기의 잠재된 능력, 즉 자기 속에 내재된 능력을 계발해서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기도이기도 합니다. 선(禪)은 자력(自力), 즉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계발하고자 하는 방법이라면 기도는 타력(他力), 남의 힘, 즉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자기를 계발하는 방법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

여러분도 본래는 부처입니다. 본래 부처란 말은 본 바탕은 부처님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스스로 자기는 못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 비록 금생에는 외형이, 겉모습이 부처님처럼 준수하지는 못하고 쓰는 능력도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본래면목(本來面目)은, 즉 본바탕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란 각자(覺者), 깨친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주만유의 진리를 깨달아서 완전하게 인격을 갖춘 사람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완성된 인간, 완벽한 인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부처님처럼 깨칠 수가 있고 그런 인격을 갖추어서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뒤에 첫마디가, "아! 희한하구나. 일체 중생이 여래와 똑같은 지혜와 덕성을 갖추었네." 하셨습니다. '여래'란 부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모든 중생이, 사람은 물론이고 개나 소나 돼지에서부터 저 땅 속에 있는 못난 미물까지도 부처님과 같은 출중한 지혜와 덕스러운 모양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경전을 보면 '아, 이런 분도 있는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 많습니다. 그런 지혜로운 사람이 여러분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덕상(德相)은 32상 80종호의 상을 말합니다. 육체의 모양 중에서 보통사람과는 다른 32가지의 상과 80가지의 다른 점을 말합니다. 가장 완벽한, 완성된 모양입니다. 부처님의 모양은 인간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미남, 미녀대회나 사위나 며느리감을 고를 때 부처님을 얼마나 닮았는지 그 기준에서 고르면 틀림이 없습니다. 가장 완벽한 인간형이기 때문입니다.

덕상은 바로 복상(福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얼마나 복이 많습니까? 저 탁자 위에 놓인 공양물을 보십시오. 우리 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절은 웬만한 곳은 초하루 법회를 하고 공양을 올릴 것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몇 년에 한 번도 이런 상을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저런 상을 차려 주는 아들이 있다면 아마 효자 났다고 소문 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엊저녁에 밤샘 절을 했어요. 천 배 하신 분도 있을 테고 이천 배, 삼천 배 참회기도를 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이 있겠어요? 세상에 부처님처럼 복 많은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본래는 그런 복상(福相)을 가졌다는 거예요. 신도님들 중에서 '나는 외로운 사람이다. 나는 박복한 사람이다. 나는 팔자가 센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오늘 이 시간부터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런 신도님들도 부처님과 같은 복을 갖출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부처님처럼 복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또 본래부처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어떤 소원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본래 부처라는 인간이 무엇을 해도 잘 안 되고 어렵고 괴롭기만 한가? 그것은 끝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육도(六道)를 만행하면서, 육도는 지옥·아귀·축생·천상·인간·아수라세계를 말합니다. 그 육도를 윤회하면서 한 생은 사람으로, 다른 생은 짐승으로, 또는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서 지옥·아귀세계에서 온갖 고통을 받다가 천상세계나 인간세계에 태어나서 복락을 누리다가 온갖 잘못을 저질러서 그 잘못이 쌓이고 쌓여서 두터운 업장이 되어서 복이 엷어지고 혜(慧)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업은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뜻으로 짓는 삼업(三業)이 있습니다. 선행, 좋은 일을 하면 선업(善業)이 되고 악행, 나쁜 짓을 하면 악업(惡業)이 됩니다. 몸으로 짓는 업으로는 우선 살생을 말아야 합니다. 남의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내 몸처럼 아끼고 보호해야 됩니다. 부처님은 다니는 데도 발 밑에 있는 생명체에게 피해를 줄세라 살금살금 다니셨다고 합니다. 옛날 어떤 어른은 자기 몸의 이를 잡아서 죽이지 않고 붓대롱에 넣어서 먹을 것을 주었다는 거예요. 사람은 자비가 뚝뚝 흘러야 됩니다. 남에게 이익을 주고 베풀지언정 아무리 미물이라도, 아무리 하찮은 생명체라도 죽이고 해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 불자들은 도둑질하는 분은 없겠지요. 도둑질을 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도 말아야 합니다.

셋째, 삿된 언행도 말아야 합니다. 삿된 언행이란 출가수행자라면 이성관계를 말아야 하고 배우자 있는 분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관계를 말아야 합니다. 즉, 바른 성생활을 해서 성도덕을 확립해야 됩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성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많아요. 성도덕이 아주 문란해요. 짐승과 다름이 없어요. 그런가 하면 저질 성문화는 위험수위에 육박했어요. 성도덕이 무너지면 인류가 망합니다. 에이즈(AIDS)라는 병이 있는데, 에이즈는 성 문란을 경책하는 좋은 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입으로 짓는 업은 살다가 보면 거짓말을 예사롭게 하는데 우리 신도님들은 오늘부터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설사 이익이 있고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면한다고 할지라도 거짓말을 말아야 됩니다. 부처님 제자라면 거짓말을 안 할 정도는 되어야 됩니다. 옛날 어떤 여인은 거짓말 세 번하고 혓바닥에 암이 걸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스스로 비참해요. 아주 치사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는 안 살아야 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벼락맞아 죽어라!" "가다가 교통사고 나라."와 같은 악담이나 막말은 안 해야 됩니다. 여기서는 이 말을, 저기서는 저 말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 입으로 두 말을 말고, 이간질도 말아야 됩니다. 또 비단결 같은 미사여구를 써서 번지르하게 하는 그런 말도 맙시다.

마음으로는 탐심(貪心), 분수에 넘치게 욕심을 내서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탐애(貪愛)하고 탐착(貪着)하지 말아야 됩니다. 진심(瞋心), 성 내지 말아야 됩니다. 무슨 일이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미워하고 분한 마음을 내는 그런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은 내생에는 뱀이 된다는 거예요. 뱀, 생각만 해도 얼마나 징그러워요? 수행자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담담하게 참을 줄 알아야 됩니다. 진심(瞋心)이 날 때는, 화가 치밀 때는 얼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몇 번쯤 부르고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치심(癡心), 어리석은 마음인데, 삼라만성의 이치에 어두워서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은 부단이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며 무슨 일이든 잘 안 되는 일은 세 번 이상 생각하고 시작하는 버릇을 들여 보세요. 돌아가신 만공스님의 말씀에 '지옥이 무서운 곳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가장 무서운 곳이니라.' 하셨습니다.

탐진치의 화(禍)는 독사보다도 더 독하다고 그래서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삼독심에 의한 슬픔과 근심의 근본을 끊어야 합니다. 이러한 삼독의 불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해탈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바른 행동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됩니다. 바른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 말아야 돼요. 바른 뜻이 아니면 갖지도 말아서 악업이 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업이 두터우니 무슨 일을 해도 잘 안 되고 어렵고 괴로운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입시철이 되었는데 바라는 학교에 척척 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요즘은 고3학년 학생이 있는 집안은 온 식구가 고3병을 앓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해도 재수, 삼수까지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요즘은 경기가 많이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IMF 한파를 겪고 있는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어서 살아가는 데 근심·걱정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거든요.

대우그룹의 김우중씨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분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면서 지구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대우의 신화를 일으킨 분입니다. 그분은 열심히 산 분이라고 해요. 나이에 비해 머리가 많이 빠지고 하얗게 세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하도 열심히 살아서 일찍 늙었다고 한답니다. 그분은 1년의 반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답니다. 그렇게 외국에 많이 나가도 호텔에서 쉬면서 한가하게 관광을 즐긴 적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낮에는 일을 하고 남들이 자는 밤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는 거예요.

부인의 이야기인데, 언젠가는 부부동반해서 아주 오랜만에 오페라하우스에 갔답니다. 부인은 오랜만이라 잔뜩 기대에 차 있는데 김우중씨는 앉자마자 코를 들들 골면서 자더라는 거예요. 코 고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부인이 창피해서 오페라고 뭐고, 나온 적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분은 돈 버는 데는 귀재라 다니면 돈이 굴러다니는 것이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 가서 쉽게 빨리, 많이 버느냐 그것이 문제였지, 돈을 못 번다 그런 것은 생각을 못 했던 분이라는 거예요. 저렇게 허무하게 쓰러지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답니다.

그분은 참 남다르게 열심히 살았답니다. 세일즈에는 귀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데도, 그런데도 회사 운영에는 문제가 많았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느냐? 결국은 좀 뛰어났다고 해도 업장이 두터운 범부예요. 범부는 복과 지혜를 고르게 갖추지 못합니다. 그분도 세일즈에는 대단하지만 회사 운영에는 보통 사람의 수준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은 10%짜리 인간이랍니다. 10%짜리 인간이란, 부처님이 자기 능력의 100%를 계발해서 100점짜리의 완벽한 인간이라면, 수치로 표현하기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만, 범부는 자기 능력, 본래부처라는 능력의 10%에서 20% 정도밖에 써먹지 못하는 미완성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옛 어른 중에 우리 인간을 변소 안에 있는 구더기 신세에 비유한 분이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 운운하면서 큰 소리 떵떵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소 안에 있는 구더기 신세라는 거예요. 변소 밖의 세계가 이렇게 넓고 자기들보다도 크고 훌륭한 동물이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구더기처럼 불쌍하고 못난 존재라는 거예요.

10%짜리 인생이란 아주 보잘것 없는 인생이라는 그런 뜻도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여러 보살님들은 대자대비한 마음을 안 낼 수 없다는 거예요. 10%짜리의 보통인간은 그래서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땅 속에 묻혀 있는 거대한 광맥과 같아요. 10%짜리 보통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을 빙산의 일각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저 남극이나 북극에 가면 큰 빙산이 있는데, 그 큰 빙산도 대부분은 물 속에 잠겨 있고 드러난 부분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보통 인간이 활용하는 능력은 자기 능력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일부분이 10%에서 20%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 거대한 광맥과 같은 잠재력이 부처님과 같다는 거예요. 물 속에 잠겨 있는 빙산 같은 능력을 계발만 하면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 천재도 자기 능력의 30%에서 40% 정도밖에 써먹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참으로 지극히 해서 진리의 세계에 도달해 보면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의 세계가 얼마나 대단하고 범부의 삶이 얼마나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부처님의 세계는 광명의 세계라고 합니다. 중생계는 암흑의 세계라고 합니다. 광명의 세계와 암흑의 세계는 천양지차입니다. 여러분이 수행을 깊게 해서 진리를 체험해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을 어두운 밤에 전등불로 비추어보듯이 비추어 보세요. 그분들의 위치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존경스럽고,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그런 인물도 그 지혜가 드러나면 불교수행의 깊이를 새삼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보통사람의 지능 정도를 실감해서 스스로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지혜롭게 살아야 됩니다. 어떤 분야든 깊게 파고들면 이내 환멸을 느낍니다. 한 분야를 하루 두 시간씩 3년간만 공부해도 거의 전문가 수준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전문가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더 발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서 새로운 발전을 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렵다, 내 능력으로는 한계를 느낀다고 느낄 때에는 일에만 매달리지 마시고 우회적으로 지혜를 계발해야 됩니다.

지혜는, 참 지혜는 스스로 계발해야 가능합니다. 흔히 현대는 무한 경쟁 사회라고 합니다. 어찌나 경쟁이 심한지 전쟁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는 전쟁보다도 더 심한 상태까지 발전했다고 해요.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면 자기 계발이 필수적입니다. 자기 계발, 자기 완성에 지금까지는 불교적 방법 이상이 없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기도는 부녀자나 할 일 없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는 누구나 해야 될 것이고 젊은 사람이나 남보다 앞서가고 성공을 바라는 사람일수록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면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기적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유명한 기도처 주변에는 믿기 어려운 대단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보통 사람의 사고나 상식을 초월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고 못난이 취급을 하는데, 자기의 근본 당처(當處), 본바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나 능력을 계발하면 불가사의하고 믿기 어려운 기적과 같은 일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주리반특가'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 저능아에 가까웠어요. 부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고 시킬 수가 없었어요. 무엇을 시키면 하다가도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 있고는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하도 답답해서 "너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먼지를 털고 때를 씻으리, 먼지를 털고 때를 씻으리" 그것만 계속하라고 하니 "먼지를 털고" 하다가는 "때를 씻으리"를 잊어버립니다. "때를 씻으리"를 하다가는 "먼지를 털고"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잘 잊어버리는 참 바보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먼지를 털고 때를 씻으리'라는 말은 '마음의 먼지를 털고 마음의 때를 씻으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게 잘 잊어버리더니 계속 열심히 외우고 끈질기게 하니까 일념이 되는 거예요. 그러더니 무심의 경지에 들어서 문득 깨달음의 선근이 일어납니다. 동시에 업장이 소멸되어서 아직 배우지도 못한 그런 묘의(妙意)까지 나타나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됩니다. 이 아라한과란 남방 소승불교의 최고 경지를 말합니다. 즉, 최고의 도덕을 갖춘 그런 스님이 된 것입니다. 그런 주리반탁가가 기특해서 부처님께서 칭찬하는 장면이 경전에 보면 여러 대목 나옵니다.

기도를 잘 하면 육신통(六神通)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신통이란 보통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는 것을 신(神)이라고 합니다. 또 걸림없이 통한다 해서 통(通)이라고 합니다. 여섯 가지 신통에는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신족통(神足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 등이 있습니다.

천안통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에 가릴 것이 없이 어떤 것이라도 잘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몇십 리 밖이나 큰 산 같은 것이 가리고 있어도 그 뒤를 환히 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천안통입니다.

천이통은 무엇인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에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수십 리 밖이나 수백 리 밖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참 신통하지요?

신족통, 공간에 걸림이 없이 왕래하는 그런 능력입니다. 옛날에 도인스님들은 하룻밤에 수백 리 길을 갔다 왔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간에 아무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신족통이라 합니다.

타심통, 남의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그런 능력이예요. 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을 훤히 읽는 거예요.

숙명통, 자기뿐만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과 후생을 다 아는 그런 능력이에요. 그 사람을 보면 전생에는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생명체로 태어났고, 즉 사람이냐 개냐 소냐 짐승이냐 보면 훤히 아는 그런 능력입니다.

누진통, 온갖 번뇌와 망상을 자유자재로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는 부사의한 힘을 누진통이라고 합니다.

기도는 주리반탁가가 아라한과를 증득하듯이, 또 열심히 수행하면 육신통까지 수행하듯이 불가사의한 기적과 같은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는 자기 계발로도 가능해요, 자기 계발로도. 여러분도 이런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자는 무엇을 바라기 전에 먼저 참회부터 해야 됩니다. 참회란 뭐냐?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쳐서 고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지어온 모든 악업은 그 근원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에서 비롯됩니다. 삼독심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아까도 잠깐 이야기를 했지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뿌리가 되어서 한량없는 악업을 지어 왔습니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오늘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삼독심은 바로 무명(無明)으로, 무명은 다시 어리석은 행동으로 옮겨짐으로써 악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갖 망상을 피우며 괴롭고 부끄럽게 사는 까닭은 삼독심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겹겹이 가려진 삼독의 구름을 참회해서 활짝 걷어버려야 됩니다. 기도자는 기도하기 전에 지금까지 지은 잘못이나 그날 하루 동안 지은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한 뒤, 아주 맑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도는 부녀자나 할 일 없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예요. 누구냐 해야 되는 것이 기도이고 학생이나 패기만만하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야심에 찬 젊은이일수록 많이 해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할 수 있는 분이라면 다 하는 것이 좋아요. 기도할 사람은, 잠 잘 준비가 되면 축서사를 향해서 절을 삼 배 하십시오. 즉, 부처님에게 예불을 모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에게는 아주 성의가 지극해야 돼요.

예불을 모시고는 기도하는 온 식구가 나란히 좌복 위에 앉아서 각자 그날을 반성하고 일단 참회부터 합니다. 잘한 점은 무엇이고, 잘못 한 점은 무엇인가? 잘한 것은 더 잘하게 하고 잘못한 것은 다시는 잘못이 없도록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무슨 일이 잘 안 되고 어려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슨 일이든 발본색원해서 고쳐야 합니다. 그 이유가 그날 있었던 것이면 당장 고치고 만약 장기적으로 고칠 것이면 매일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꾸준히 고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는 후하고 너그럽기 쉬워요. 큰 뜻을 가지고 참으로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는 아주 엄격하고 아주 여법해야 됩니다. 아주 냉혹하다시피 되어야 돼요.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큰 일이라도 날 듯이 자기를 경책하고 다스려야 됩니다.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이 지나면 기도자는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세요. 그리고 천수경을 정성껏 외웁니다. 외우는 것은 식구가 합송(合誦)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는 가부좌나 반가부좌로 앉습니다. 하루종일 공부나 일에 시달리고 피로한 학생이나 직장인은 10분에서 30분 정도 하고, 보통 남자들이나 여자들은 한 시간 정도 합니다.

여자들 중에서 낮에도 기도할 시간이 있는 분은 낮에도 물론 해야 됩니다. 기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기도하자고 하면 "할 일 없거든 잠이나 자자." 한다든지, "당신이 하니 나야 안 해도 안 되겠나." 그런 말을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기도하면 아이들이 공부 잘 하게 되고 어른은 능력이 계발이 되어서 돈 잘 버는 법이라고 하세요. 그러면 잠자려고 눕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고 흩어진 자세도 고쳐 앉을 것입니다. 기도는 공부 잘 하고 돈 잘 버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를 완성해서 팔자까지도 고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해라 말아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고 꼭 해야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선 기도자는 기도 대상을 정해야 됩니다. 기도 대상은 목숨 바쳐서 섬길 수 있는 보살 중에서 간택을 합니다. 여기에서는 '100일 관음기도'이니 관음기도를 하십시오. 요즘 신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입니다.

관세음보살이란, 관세음(觀世音), 세상 사람의 소리를 다 들어준다는 의미로서 즉, '죽겠다, 못 살겠다, 날 좀 도와주세요, 공부 잘 하게 해주십시오' 등등 세상의 어떤 소리도 다 들어주는 보살입니다. 그래서 관세음이라고 합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도 하는데 자재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고 자유자재로 행에도 걸림이 없는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아주 대자대비해요. 중생의 어떤 어려움이나 괴로움도 다 구제해 줄 수 있는 대단한 능력과 방편을 가진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이런 대단한 능력과 원력을 가진 관세음보살님께 지극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칭명기도(稱名祈禱)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지극하게 부르는 기도입니다. 대체적으로 초보단계의 기도자들이 많이 하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관상기도(觀相祈禱)입니다. 관상이란 모양을 본다는 뜻인데, 머리로는 관세음보살님의 상호, 즉 모양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관세음보살님의 상호를 자세하게 보십시오. 관세음보살님의 사진을 찍듯이 자세하게 기억하셔서 거룩한 모양을 생각하며 또 입으로는 지극하게 부르는 방법입니다.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이지요.

셋째는 실상기도(實相祈禱)입니다. 실상이란 실제 모습, 본 모습을 말합니다. 즉, 여러분의 주인공, 본래면목이라고도 하는 법신을 관하는 기도예요. 이 기도는 단전(丹田)이나 목전(目前) 즉, 코 끝에 마음을 집중시켜서 실상을 관하며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기도방법으로는 대체적으로 이 세 가지를 말하는데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해야 되는가?

첫째, 기도하는 사람은 큰 믿음이 있어야 돼요. 기도자는 기도하는 공덕과 그 대상을 즉, 관음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관세음보살과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철저히 믿어야 됩니다. 또 자기도 본래 부처라는 것과 자기 능력을 계발하면 부처 즉, 완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해야 됩니다. 기도자는 조금이라도 의심하거나 믿지 못하면 성취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기도라도 확신만 하고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는 믿는 것만큼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믿지 못하면 천불(千佛)이 출연해도 성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일체 선법을 기르나니라.' 선법이라면 불법을 말합니다. 일체의 선법을 기른다는 것입니다.

≪종경록≫이라는 책에는 '불법을 구하려는 이가 큰 신심이 있다면 훌륭한 보배를 얻을 것이나, 만약 신심이 없다면 아무 것도 얻을 바가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도의 문에 들어가려면 철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지극한 믿음이 있는 자만이 자기 계발도 가능합니다. 예불을 모실 때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하고 부처님의 명호나 여러 보살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의 이름을 들먹입니다.

'지심귀명례'라는 뜻은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귀의해서 예의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고도 목숨 바쳐 귀의한다는 것입니다, 목숨 바쳐. 그래서 예의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까지도 바쳐서요. 귀중하다, 귀중하다해도 자기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있겠어요? 그런 목숨까지도 바쳐서 진정으로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에게 돌아가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록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선혜라는 바라문으로 태어난 적이 있었답니다. 선혜 바라문은 인품이 뛰어나서 사람들의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은 분입니다. 그는 세세 생생 참으로 할 일은 오직 수도의 길이라면서 많은 재산을 성 안의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출가를 합니다.

어느 날 연등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나타납니다. 성 안의 주민들은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모여서 여러 가지 공양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고 설법을 듣습니다. 부처님의 높고 거룩한 위엄을 본 선혜는 '오늘 나는 부처님에게 이 목숨을 바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오시는 진흙길에 엎드리면서 말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진흙을 밟지 마시고 여러 제자분들과 함께 제 등과 머리를 밟고 지나가소서. 그것은 저에게 크나큰 영광이요, 곧 영원한 이익이요, 안락이 되겠나이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진흙에 엎드리면서 "등과 머리를 밟고 지나가소서." 하실 수 있겠어요? 이것이 바로 귀명례(歸命禮)예요. 기도 대상자에게는 이렇게 목숨까지도 바쳐서 귀의하고 예의를 갖출 줄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위해서는 자기의 허벅지살이라도 뚝 떼어서 줄 수 있는 자세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답니다. 이런 대단한 마음을 내면 그 이상도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서 명호를 아주 간절하게 불러야 돼요. 아주 간절하게요. 옛 스님 말씀에 기도하는 사람은 간절(懇切) 절(切)자를 이마에 써 붙이고 하라고 했습니다. 간절(懇切) 절자(切)를 이마에 척 써 붙이고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선지식은 기도자는 간절 절(切)자 한 자만이 요긴하다고 한 분도 있습니다. 다른 여러 자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간절 절자 한 자만 요긴하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오직 간절 간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아주 간절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하면 의외로 바로 쉽게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절하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주 절실하게 성심성의껏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절실하게란 아주 긴요하게 꼭 필요하게라는 뜻입니다. 이 기도는 아주 긴요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해야 됩니다. 즉, 며칠 굶은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이 해라 합니다. 며칠 굶어 보세요. 배가 되게 고프면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자나깨나 오직 밥 생각뿐일 것입니다. 며칠 굶은 사람이 밥 생각하듯이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부르세요.

IMF 한파라고 해서 부도난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부도나기 직전의 사장님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오직 회사를 살릴 생각뿐일 것입니다. 회사를 살리는 데는 돈이 필요합니다. 사장님의 머리에는 첫째도 돈, 둘째도 돈, 돈, 돈, 돈 생각뿐일 것입니다. 그런 부도 직전의 사장이 돈 생각하듯이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절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서너 살 된 아이가 있는데, 그아이는 어머니 품에서만 늘 놀던 아이에요.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볼일이 있어서 며칠간 집을 비웠다고 합시다. 그 아이는 잠시만 어머니가 없어도 울고불고하는 그런 아이라면 며칠간 어머니가 없으니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울다가 어머니 생각하다가, 울다가는 또 어머니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아이는 먹을 것을 줘도 먹지도 않아요. 형이 놀아주고 누나가 달래도 소용없이 오직 어머니 생각뿐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죽기라도 할 것같이 오직 어머니를 찾을 것입니다. 절실함이란 아이가 오직 집 나간 어미를 생각하듯이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십시오. 관세음보살께 매달리듯이, '날 좀 살려주십시오.' 하듯이, '당신 아니면 나는 죽습니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절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기도는 성심성의껏 해야 됩니다. 정성껏 해야 돼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야말로 힘껏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지극하게 하는 데서 기적이 일어나고 불가사의한 일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무 성의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건성으로 메아리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불러서는 별 영험이 없습니다. 흔히 '노는 입에 염불하듯이 한다.' 그런 말을 합니다. 즉 심심풀이로 한다는 것입니다. 노는 것보다는 염불하는 것이 낫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인데, 기도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하늘도 아주 감동할 정도로요.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그렇습니다.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어요? 바로 정성껏 하는 기도나 참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데도 정성껏 해야 되지만 부처님에 대한 정성도 아주 대단해야 돼요.
해인사에 계시는 일타 스님의 법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타 스님 부모님은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드렸답니다.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릴 때만 정성을 올린 것이 아니고 농사를 지을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공양미를 짓는 논밭에는 대변을 주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농사에는 대변을 줘야 잘 자라고 맛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럽다고 대변을 안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운 풀만 베어다가 거름으로 사용했답니다. 벼가 다 익으면 제일 먼저 익은 것을 낫으로 베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직접 벼를 훑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아를 잘 찧었답니다. 이렇게 정성껏, 그것도 관세음보살님이나 대방광불화엄경을 부르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되시는 법진 거사는 절에 갈 준비가 다 되면 깨끗한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손수 만든 무명베 자루에 쌀을 담아서 지고 마곡사 대원암까지 가서 불공을 드렸답니다. 집에서 절까지는 80리나 되었답니다. 어느 해는 쌀을 짊어지고 대원암으로 가는데 배가 싸르르 아프더니 방귀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참으며 가다가는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방귀를 "뽕-" 하고 뀌고 말았어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러 가다가 방귀를 뀌다니. 방귀 냄새가 쌀에 묻었을 것 아닌가? 불경스럽기도 하지.' 방귀 냄새가 섞인 쌀로는 공양을 올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타 스님 아버지는 쌀을 도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 다음날 또 다른 벼를 손으로 훑어서 또 방아를 잘 찧어서 또 새로 자루를 만들어서 80리 길을 지고 걸어서 불공을 드리러 갔다는 것입니다.

일타 스님 일가가 41명이 출가를 했답니다. 그런 지극한 신심이 아마 41명이 출가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비구니 스님은 재나 불공을 올리려고 공양물을 사러 가면 반드시 단층 건물의 가게에서는 과일이나 과자 같은 것을 산다고 합니다. 2층이나 3층집은, 2층이나 3층에서 온갖 잡일을 하는 가게에서 공양물을 사면 부처님께 불경스럽다는 것입니다. 살 때도 주인이 보면 신경질이 날 정도로 하나하나 고르고, 조금만 흠이 있거나 모양만 안 좋아도 사지 않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한 걸망 사서는 버스나 열차를 타면 선반이 있으면 선반에 올려놓지만

선반이 없으면 아무리 무겁더라도 무릎 위에 올려놓지, 절대로 바닥에 두지 않습니다. 산을 넘다가도 쉴 때 깨끗한 풀이나 바위 위에 두고 쉬면 좋을 텐데 꼭 무릎 위에 놓는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올릴 것을 어떻게 땅바닥이나 바위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구니 스님은 부처님께 올릴 마지를 뜰 때에도 반드시 마스크를 하고 손수 아주 정성껏 뜬답니다. 법당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옷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고 들어간답니다.

기도자는 일타스님의 부친인 법진거사나 이 비구니 스님 같은 그런 정성이 있어야 됩니다. 기도자는 옛날 새색시가 처음 시집와서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앞에 아주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정성을 다해서 시중을 들듯이 그렇게 하세요. 흔히 법당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기도 하고 심지어 먹을 것을 먹기도 하는데, 법당은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곳입니다. 살아 계신 부처님을 모신듯이 정성을 다해야 기도다운 기도가 됩니다.

이렇게 아주 간절 간절한 그런 기도가 끝나면 반드시 축원(祝願)을 하십시오. 축원은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은 축원을 해야, 하고 싶은 생각을 더 내시고 간절한 마음을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축원은 평생의 소원과 일상의 소원으로 나뉩니다. 평생의 소원은 일생의 목표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목표를 설정해서 그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과 막연하게 의식주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하고는 훗날 결산을 하듯이 인생을 마무리해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일생의 목표가 평생의 소원입니다. 불자의 평생소원이라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본래부처인 자기를 계발해서 부처님과 같은 인격과 도덕을 갖추는 것입니다. 불자뿐만 아니라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완성이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 어떤 길을 걷느냐? 즉,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아주 대단히 중요합니다. 현대사람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런 오욕(五慾)은 살아가는 데 수단이고 방편이지 목표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목표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사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재평가가 활발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은 훌륭한 분입니다. 우리 조국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장본인입니다.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잘 살 수 있는 데는 누가 뭐라 해도 그분의 힘이 가장 큽니다. 그런데 그분은 너무 욕심이 많았어요. 대통령 노릇을 꼭 자기가 해야 되고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신 분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누구나 바라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를 독점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런 좋은 자리일수록 남에게 베풀 줄도 알고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너무 오래 했어요. 18년간이나 했어요.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10년하고도 8년이나 했어요. 선행도 오래 하면 싫어질 수도 있고 잘 해도 미워질 수도 있습니다. 너무 연연하고 집착하면 사람이 추해 보이고 덕이 상실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취하고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박정희씨는 너무 권력지향적이었어요. 문제는 그 권력이 인격에서 나와야 되는데 5·16 총구에서 나왔어요. 권력은 물과 같습니다. 물이 낮은 곳만 있으면 흘러가듯이 권력은 무상합니다. 그래서 흔히 절대강자는 없다고 합니다. 리더십이 좋다는 분인데, 김재규라는 같은 고향사람이고 또 육사 2기 동기생이고 가장 믿었던 심복에게 쓰러졌다는 것은 바로 인과요, 권력의 속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허망한 것이 권력입니다. 재물이나 명예도 비슷해요.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의 아성을 쌓는다고 해도 또 명예가 하늘을 찌를 것 같다고 해도 한 때 뿐이에요. 그 허망감을 메꿀 길 없고 어떤 부귀나 어떤 영화도 뜬구름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발심(發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발심이란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준말입니다. 보리(菩提)란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말합니다. 견성, 즉 자기의 성품을 보아서 성불,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과 같은 인격과 도덕을 갖추고야 말겠다는 큰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발심입니다. 그런 발심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부처님이 출가하지 않고 가비라 성 임금자리를 계승했다면 부처님의 존재란 가비라 성이라는 조그마한 지방의 역사책에나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신의 권세나 명예를 버리고 중생의 근본문제를 위해서 위대한 출가를 하셨기 때문에 불교가 존재하게 되었고 가신 지가 2,500여 년이 되었는데도 점점 절이 많아지고 신도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가장 성스러운 열반의 길을 걸었고 해탈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근기에 따라서, 그 그릇에 따라서 소인(小人)과 대인(大人)으로 나누고 범인(凡人)과 성인(聖人)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인은 어떤 분이냐? 자기와 내 아이, 내 마누라 즉, 내 가족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소인입니다. 대인은 자기와 가족뿐만 아니라 남이나 지역사회, 크게는 국가와 민족까지도 위해서 크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범부는 오욕락(五慾樂), 재물과 색(色)과 먹는 것과 명예와 수명에 온갖 춤을 추면서 자기 분수를 잃고 사는 보통사람인데 성인은 어렵고 괴롭더라도 진리의 길을 걸으며 중생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하는 길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 바로 성인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크게 대승적(大乘的)으로 살아야 됩니다.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말합니다. 나도 타고 남도 태울 수 있는 큰 수레가 대승입니다. 소승(小乘)은 뭐냐? 자기만 탈 수 있는 1인용 조그마한 수레예요. 대승적으로 나도 위하고 남도 위할 수 있는 큰 삶을 살아야 돼요. 대인처럼, 성인처럼 말입니다.

일생(一生)의 목표는 설사 어렵더라도 또 괴롭더라도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길을 가야 하고, 그것이 평생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상(日常)의 소원은 신변에 일어나는 잡된 일이나 가족의 소원을 정해서 원력을 세워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 꼭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또 기도 전에 그날 하루를 반성하고 참회한 것을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것을 맹세를 하고 자기의 부족하고 못나고 어리석은 점을 꾸준히 시정하고 보완해서 일신일일신(日新日日新)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날로 새롭고 나날이 새로운 하루하루가 되도록 해서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야 됩니다. 내일보다는 다음날이 더 발전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날로 좋아지고 나날이 발전해서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축원이 끝나면 이불을 펴고 누워서도 기도를 하면서 잠을 청합니다. 기도를 하다가 보면 일체 망상이 없어지고 괴로움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숙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숙취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 새벽이 될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건강이 안 좋은 분도 기분 좋은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 또 축서사 부처님을 향해서 삼 배를 올리세요. 즉, 예불을 모십니다. 그러고는 맑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기도가 잘 되는 사람은 천수경도 말고 기도에 바로 전념하시고 초보자나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천수경부터 시작합니다. 무릎을 꿇고 천수경을 합송하고 하는 분 여러분들이 같이 합송하세요. 가부좌 자세로 바꾸어서 엊저녁처럼 학생이나 직장인은 한 10분에서 30분 정도, 보통 여자나 남자들은 한 시간 정도, 아무리 안 해도 이런 정도는 꼭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반드시 축원을 하십시오. 엊저녁처럼 잘못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맹세를 부처님과 보살님께 지극하게 하고 소원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겠다, 꼭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원력을 세우십시오.

큰 소원은 일생을 세우고 세세생생(世世生生) 세워야 합니다. 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지금은 못난 전직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별로 대접을 못 받는 김영삼씨는 중학교때부터 책상머리에 '미래의 대통령 김 아무개' 척 써 붙여 놓고는 매일 아침 맹세를 하고 원력을 세워서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분의 일생은 대통령을 향한 그런 일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념이 대단합니다. 그분은 비록 훌륭한 대통령은 못 됐지만 자기로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100여 년 전에 영국의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y)라는 수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이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의 직업은 거의 세습제였답니다. 아버지가 구두수선공이면 아들도 구두수선공으로서 비천한 직업을 가져야 했답니다. 아버지가 농부면 아들도 농사를 짓는 것이 불문율처럼 전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이드 조지는 사회적인 관습에 구애되지 않고 수상이 되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매일 아침 학교 갈 때면 지나가는 큰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난간에 '로이드 조지'라는 이름의 머리 글자 'L'자와 'G'자, 두 자를 새겨놓고 매일 맹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꼭 영국의 수상이 되고야 말겠다.' 매일 그렇게 맹세하면서 큰 공부를 하더니 훗날 그 뜻과 같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수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L'자와 'G'자 그 두 글자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돌아가신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그리스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양사람으로는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도 가무잡잡한 볼품없는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일세(一世)를 풍미하다가 사라진 인물입니다. 선박왕이라고 불리어지듯이 그의 선박이 항상 5대양을 누빈 그리스의 재벌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을 뿐만 아니라 여복(女福)도 많아서 50년대, 60년대에 세계 오프라계의 프리마돈나로 명성을 날리던 콧대 높기로 유명한 마리아 칼라스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을 마음대로 한 것은 오나시스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뒤에는 비운에 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미망인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을 해서 미국 남성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다는 그런 대단한 사람입니다. 오나시스는 학력은 중학교밖에 졸업을 못한 사람이지만 항상 희망과 용기가 충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갑부가 되려면 20살 전에 100만 달러는 벌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세의 어린 나이로 매일 원력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미지의 세계인 남미로 건너가서 원력처럼 100만 달러를 번 뒤에 세계적인 선박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100만 달러는 지금은 그리 큰 돈이 아니지만 1920년대에는 아주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게 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몫입니다. 목표를 세워서 불보살님에게 맹세를 하게 하고, 일생의 원력을 세워서 성취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계발하게 하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게 해서 남다른 일생을 살게 한다면 그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어디 있겠어요? 위대한 자식 뒤에는 현명한 부모가 있습니다. 자식에게는 부모 이상의 스승이 없어요.

아침기도를 하고 학교나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은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선 몸은 가볍고 상쾌합니다. 몸을 움직이고 싶고 장난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텔레비전 약품 선전에 "위풍당당.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런 선전이 있데요. 그런 약 안 먹어도 아마 그 이상 될 것입니다.

어제 좀 피로하고 괴로운 일이 있었던 사람이라도 기도를 지극하게 하고 나면 희망찬 출근길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맑고 편안해서 어서 가서 공부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그런 설레임까지 일어날 것입니다. 차 타고 가면서 학생은 어제 배웠던 것을 기억하면서 복습을 하는 것입니다.

들을 때는 이해가 잘 안 되던 과목도 이해가 잘 되고 또렷또렷하게 기억이 될 것입니다. 직장인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도 어제는 잘 안 풀리고 괴로워하던 일들이 잘 될 것 같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툭툭 튀어나와서 신기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에 도착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니 이내 일에 푹 빠지고 독서삼매에 들게 됩니다.

이렇게 기분 좋게 열심히 일하니 안 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내 힘으로 어려우면 나의 배경에는 언제라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백보다 더 좋은 백이 어디 있는가? 용기백배하고 의기충천하니 나폴레옹의 말씀처럼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늘 이렇게 기분좋은 출근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 사실상 웬만한 것은 안 될 일이 드물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닦는 사람은 설사 일이 잘 안 되고 공부가 어렵더라도 정신력이 강화되어서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참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평소에 나약해서 여자 같다, 내성적이라 무슨 일을 하겠느냐 싶은 사람도 남성적으로 변하고 아주 강직한 정신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성을 개조해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좋은 수행법입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7, 80년 전까지만 해도 딸을 낳으면 시집보내기 전에 남의 집 식모로 보내서 가정 일을 배우게 하고 부잣집 딸들은 가난한 집의 체험을 하게 하고, 또 가난한 집의 딸들은 부잣집에서 익히게 해서 일생 동안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그런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도시사람보다는 가난한 시골사람들이 다투어 가면서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부잣집으로 딸자식을 보냈답니다.

일본에 화가현이라는 시골의 빈농가에 딸을 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쿄에 있는 부호 집에 딸을 하인 같은 식모로 보내게 되었는데, 집이 아주 빈한해서 떠나가는 딸에게 아무 것도 기념으로 줄 것이 없었어요. 그러나 그는 아주 불심이 강한 사람이라 '나무관세음보살' 이 일곱 글자를 써서 얇은 종이에 정성껏 싸서 또 그것을 오색헝겊으로 싸서 조그마한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서 조그마한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서 그 속에 넣어서 그것을 옷깃 깊숙이 넣고 바늘로 꿰매주면서 그 딸에게 말합니다.

"사다꼬야, 너의 옷깃 속에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니 그리 알고 자나깨나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불러라. 그러면 너의 몸이 편안하고 장차 귀한 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합니다. 사다꼬라는 딸은 아주 순진한 사람이에요. 때묻지 않은 사람이라 부모가 시키는 대로 아주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 부자집에는 식모살이하는 여종아이가 하나둘이 아니고 한 십여 명이 있었어요.

그 십여 명 중에 먼저 들어 온 사람도 있고 늦게 들어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먼저 들어온 아이들이 늦게 들어온 사다꼬를 아주 업신여기고 놀리면서 하기 어려운 일은 모두 사다꼬에게 시키는 것이에요. 그러나 착한 사다꼬는 어렵고 괴로운 일도 조금도 싫어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며 관세음보살만 외우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 반년이 지나서 그녀는 하루 생각합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을 몸에 지닌 채 변소에 드나드는 것이 불경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옷깃 속에 있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꺼내서 말라터진 나무기둥 틈바구니 속에 끼어 놓습니다. 그 후 사다꼬는 밤마다 다른 아이들이 잠자는 틈을 타서 그 기둥을 향해서 지극하게 기도를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다른 아이들에게 그만 발각되고 맙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어느 하루는 사다꼬를 먼 곳으로 심부름을 보내고 기둥 속에 끼어 있는 종이를 꺼내 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쓴 종이쪽지가 나왔어요. 그 심술쟁이 아이들은 그것을 다른 곳으로 내버립니다. 그러고는 거기에 조그마한 멸치대가리를 대신 끼워 넣었습니다.

그러나 사다꼬는 그것을 모르고 낮이나 밤이나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지극하게 염불하고 기도합니다. 어떤 날은 밤을 지새우면서 열심히 기둥을 향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사다꼬의 얼굴이 환하고 편안하게 변해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인데 사다꼬는 기둥에 끼워 넣은 멸치대가리를 향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짓궂은 아이들은 사다꼬를 놀려주려고 나와보니 멸치대가리를 끼워 넣은 구멍에서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어요.

그 아이들은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는 기둥에 불이 난 줄 알고 "불이야!"하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보니까 불이 아니고 방광(放光)을 했어요. 빛이 나는 줄 알고 혼비백산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이 척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런데도 사다꼬는 오직 염불에 빠져서 더없이 행복하게 보이는 거예요. 사다꼬는 서서히 얼굴이 변해요. 새 사람이 되어 가는 거예요. 이 사실이 주인에게 알려집니다. 신심이 장한 주인 내외는 사다꼬를 며느리를 삼게 됩니다.

이때까지 촌뜨기, 바보라고 업신여기던 아이들은 사다꼬를 이제는 주인상전으로 모시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일본의 항간에서는 멸치대가리도 신앙심이 절실하기만 하면 관세음보살로 화현하기도 한다는 그런 말이 유행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삼십여 년 전에 지리산 실상사에 객으로 하룻밤을 유숙한 적이 있었습니다. 객실 옆방에 자기 나이도 모르는 한 12, 3세 가량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나이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거의 못 하고 겨우 밥이나 먹고 그저 변소나 다니는 참 어리석고 둔한 불쌍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지스님이 "너는 관세음보살님만 써라."고 해서 하루종일 관세음보살을 쓰고 있었습니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라 관세음보살을 쓰는데, 쓴다기보다 그린다고 할까요? 그 글씨는 자세히 보아야 알아볼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그렇게도 흉내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둔재 중의 둔재라 사람이라기보다 때로는 짐승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둔한 사람이지만 전혀 때묻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뭘 시키면 기억하는 한 시키는 대로 아주 끈질기게 하는 그런 장점이 있었어요. 시키는 그것밖에 모르는 아이예요. 그러나 성의는 아주 대단해서 하루종일 관세음보살을 쓰고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만 할뿐이었어요.

그런 바보지만, 그렇게도 못 쓰는 관세음보살이지만 계속쓰면서, 염하고 쓰면서 염하고 끈질기게 하니까 일념이 되었는 거예요. 3년만에 머리가 터져버렸어요. 아주 명석한 두뇌가 되어서 기억력도 좋고 창의력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우수한 머리가 되었어요. 훗날 수계(受戒)를 합니다. 즉, 스님이 되었어요. 스님이 되고는 강원(講院)이라고 스님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어요. 그러고는 전라도 어떤 절의 주지노릇을 잘 하다가 스님답지 않게 여자복이 있는지, 두 보살하고 인연을 맺어서 두 여자몸에서 아들딸을 5남매나 낳고 복많은 중님, 팔자좋은 중님으로 살다가 지금은 미국인가 어디로 이민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사다꼬처럼, 그 실상사의 행자처럼 지극하게, 성심성의껏 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그것뿐이듯이, 최선을 다하듯이 해야 돼요. 좋은 일도 생각하지 말고 나쁜 일도 생각하지 말며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거든 일체를 다 놓고 쉬어서 마음을 텅텅 비워서 오직 기도만 지극하게 하십시오.

기도는 가급적이면 쉬지 말고 하시고 끊임없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거나 말이 없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히 있거나 항상 관세음보살님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기도는 방법을 한 가지를 꾸준히 하십시오. 어떤 분은 아침에는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시고 낮에는 관음기도를 하고 저녁에는 조상을 위한다면서 지장보살을 부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아침에는 기도를 하고 낮에는 참선을 하고 밤에는 독경을 합니다.

또는 사경(寫經), 경전을 쓰기도 하고요. 기도는 관음기도면 관음기도, 한 방법으로 하세요.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만 할 것이지, 기도했다 참선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한 방법으로 해야 되고 짧은 것을 자주 하고 여러 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자 중에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축원을 하는 분도 있어요. 절대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분은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고 축원을 한 번 하고, 또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고는 또 축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는 소원이 있을수록,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있을수록 일체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텅텅 비워서 오직 기도에만 애쓰기 바랍니다.

축원은 마지막에 하되, 그것도 기도가 잘 되면 할 필요가 없어요. 잘 안 될 경우 더욱 신심을 내고 발심을 하기 위해서 아주 간절하게 한두 번 하되 또 바로 기도를 계속할 수 있으면 계속하세요. 소원은 기도만 잘 되면 축원을 안 해도 이루어집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르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망상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놈의 망상 왜 그렇게도 떠오르는지, 어떤 때는 가마솥에 물 끓듯이 해요. 망상이 아무리 떠오르더라도 일체 개의치 말고 기도만 더 지극하게 하면 망상은 어느 사이에 없어질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기도가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무 재미나 기분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가 되고 안 되는 데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기도에서 어떤 재미나 기분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오직 애쓰고 애쓰기만 하세요. 즉, 기도하는 자체에 큰 뜻을 부여하고, 되고 안 되는 데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말고 안 될수록, 아무 재미가 없을수록 더 열심히 하고 더 지극하게만 하십시오. 지금은 안 되는 것 같고 심지어 '이것 해 가지고 무슨 이익이 있을까?' 싶은 그런 기도라도 그 한 번 한 번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아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학생이 점수에만 연연하면 공부가 잘 되기 어렵습니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하고 지극하게 하다 보면 점수는 올라가지 말라고 해도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듯이 기도가 되고 안 되고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열심히 하고 지극하게만 하십시오.

기도자 중에는 될 만큼 하지도 않고 "안 된다", "어렵다"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극하게 하고 간절하게만 하면 되지 말라고 해도 언젠가는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가 안 되고 몸은 아프고 시간이 안 가던 기도도 마음을 비우고 오직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기도에만 애쓰다가 보면 기도가 점점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기도가 된다는 것은 마음이 모아지고 집중이 된다는 것입니다. 온갖 잡생각으로 어지럽고 괴롭던 마음이 어느 날 망상이 사라져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아집니다. 연신 몸을 흔들고 다리를 바꾸면서 시계를 쳐다보면서 괴로워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몸도 편안하고 가볍기까지 해요. 그 흩어진 자세도 꼿꼿하게 바르게 앉게 됩니다. 더 지극하게 애써가니 몇 시간이 잠깐 지나가는 것 같아요.

공양을 안 해도 별로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조금도 다리가 아프거나 피로한 줄도 모릅니다. 심지어 기도하는 곳이 방인지 법당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기도에만 빠지게 됩니다. 이럴 때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고 맑습니다. 몸도 지극히 가볍고 편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즐거움까지 느낍니다. 흔히 '몸도 마음도 편한 것이 제일이지,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느냐.' 그런 말을 합니다.

이때는 편안한 정도를 지나서 너무 고요하고 편안해서 자기 몸을 꼬집어야 자기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몸이 가볍기도 해서 10대 그 팔팔하던 시절,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아서 자신을 억제하기 어려워서 마구 뛰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부림쳐야 직성이 풀릴 때보다도 더 몸이 가볍고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어디 부딪치고 피가 흘러도 별로 아픈 줄 모릅니다.

이때는 기도한다고 기도에 빠져서 하루 이틀 굶어서 힘이 없을 것 같은데,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지 힘이 넘치는 것 같고, 그렇게 많던 졸음도, 앉으면 졸던 사람도 하루종일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앉아 있어도 거의 피로를 모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아니, 그 이전 몸과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질 때부터는 건강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한때 중병을 앓고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도 약도 안 쓰고 치료를 받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낫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다니던 병원에 안 갔더니 죽은 줄 알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니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건강하니 믿기지 않는다. 무슨 치료를 했느냐?'고 아주 귀찮을 정도로서 묻더라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도로 병을 고쳐 본 사람은 기도가 명약 중의 명약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 몸이 가볍고 편안해질 정도로 해 보시면 누구나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는 그렇게 들끓던 번뇌망상도 다 사라지고, 사실은 번뇌망상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옛날입니다. 망상을 일부러 피우려고 해도 망상이 되지 않아요. 그간 살아오면서 무수히 겪었던 온갖 괴로움과 그 슬픔도 다 사라지고 '근심걱정을 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아득하고 실감이 나지를 않아요. 애들 말로 '고생 끝!'이라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늘 즐거워요. 보리죽을 먹으면서 천막생활을 한다고 해도 조금도 싫지 않고 괴롭지가 않아요. 즉, 극락세계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실상사의 행자처럼 스스로 '나는 둔한 사람이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괴로워하고 학교 다닐 때는 늘 꼴찌만 하던 그런 사람도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그렇게 외우기가 어렵던 것도 몇 번 읽기만 해도 저절로 외워져요. 평소에 안 되어서 늘 고민하던 일이 싱거울 정도로 해결책이 생각이 나고, 주변에서 어렵다는 것도 별것 아닌 것같이 쉽게 보이고, 마음만 먹으면 안 될 것이 없을 것같이 매사에 아주 자신만만해지고어렵던 일도 의외로 쉽게 슬슬 풀리게 됩니다.

이때 얼굴은 환해지고, 늠름하고, 위엄 있고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돼요. 눈을 비비고 상대할 정도가 돼요. 그래서 늘 같이 살던 사람도 즉, 한집 식구도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져요. 고개를 수그려라 말아라 해서가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고개가 수그려져요. 말이 없어도 따르게 되고 신비하기까지도 됩니다. 신비하게 보여요. 아내가 그렇게 기도를 잘 하면 식모취급을 하면서 막 대하던 남편도 아내 눈치를 슬슬 살피게 되고,

주방이라고는 평생 안 들어가던 분이 주방에 들어가서 손수 밥을 짓기도 하고, 곤드레만드레되어서 밤중에 들어오던 사람이 제법 일찍 들어오기도 합니다. 쉬는 날도 방안에서 코만 들들 골면서 일체 집안 일에 무관심하던 그런 사람도 집안 소제를 한다든가 관심을 갖게 돼요. 평소에 어머니를 우습게 보던 아이들도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심지어 문제아이도 어머니의 그 거룩한 위세에 눌려서 서서히 고쳐지게 됩니다. 그래저래 가정이 화목하게 되고 좋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기도를 잘 함으로써 가족 전체가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공덕입니다. 기도는 어리석은 사람이 똑똑하게 되고 능력이 없던 사람이 능력을 갖추게 돼요. 박복(薄福)한 사람이 복덕(福德)을 구족하게 돼요. 그래서 속된말로 팔자까지도 고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그 바보 주리반특가가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아주 훌륭한 스님이 되듯이, 저능아 실상사 행자가 아주 명석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스님이 되고 사찰운영을 잘 해서 팔자 좋은 중님이 되듯이, 사다꼬 같은 촌뜨기 처녀가 도쿄의 부호집 며느리가 되듯이,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64세 된 기업체 사장이 사장직을 사임하고 삭발을 하고 스님이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일본 재계에서 아주 존경을 받는 입지전적인 그런 인물이었다고 해요. 가정도 원만하고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노후에 인생을 즐기시면서 편안히 사실 나이인데 돌연히 스님이 되어서 주위를 크게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평생꿈이 가장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나면 즉,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서 아이들을 다 키우고, 그리고 자기 부인을 먹고 살 만큼 해주고, 사회적으로 할 일을 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가야 할 길은 도를 닦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왔다는 것이에요. 사실 바른 생각입니다.

스님이 되든 세속에 살든 인생의 마무리는 도를 닦아야 됩니다.
도(道)란 길 도(道)자 도인데 즉, 부처님의 경지 즉, 진리의 세계, 깨침의 세계를 말합니다. 공자님께서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란 무엇이기에,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고 했겠어요?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그야말로 마지막이 죽음입니다. 그렇게 누구나 싫어하는 그 죽음도 아침에 도만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고 했어요.

도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어떤 옛날에 큰스님은 도를 깨치고 나서 사흘이나 덩실덩실 춤을 추시더라는 것이에요. 하도 춤을 추기에 주위 사람들이 "무엇이 그렇게 좋기에 춤을 추느냐?" 물으니 "자네는 모를걸세. 자네는 모를걸세." 하면서 추더라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마나 좋기에 사흘이나 춤을 추겠습니까? 도(道)로 가는 길이 바로 기도(祈禱)입니다. 깨침으로 가는 길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대단한 것이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라 마라 할 필요가 없어요. 안 하면 자기 손해예요. 기도를 알고 안 하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신도 여러분께서는 더욱 신심을 내시고 발심을 해서 기도를 해서 소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하시고, 불교신도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꼭 느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참 행복은 도에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도를 떠난 삶은 허망하고 괴로울 뿐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일념 중에 드니
산하대지 온누리가 그대로
법왕의 몸을 드러내도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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