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죽음을 잘 알아야
환자들이 고통을 덜 받고
편안하게, 또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요"
김종운(60) 경희한의원 원장은 원주 한의사들 사이에 대부로 통한다. 본인은 "선배들 보기 부끄럽다"며 손을 내젓지만, 이제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됐다.
김 원장이 원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친 1983년이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잠시 머물 생각으로 내려온 원주에 한의원을 개원하고 이후 34년간 의술을 펼치게 될 줄 당시에는 그도 알지 못했다.
당시 원주에는 최용재한의원, 한일한의원, 안흥한의원 등 김 원장보다 앞서 한의원을 개원해 운영 중인 선배들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불로한의원을 운영하다 원주역 앞에 불로요양병원을 개원한 이병학 원장이 현재 생존해 있는 유일한 선배다.
'한의사계 대부'로 불리는 것에 대해 김 원장은 "자신을 기준으로 선후배들이 위·아래 10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를 아는 주위에서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구한의과대학과 상지대 한의과대학에 출강하며 많은 후학들을 배출했고 원주시와 강원도 한의사회 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단합과 화합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34년간 성실을 모토로 약자를 돌보고 모든 환자들을 공평하게 대한 김 원장의 한결같은 자세가 많은 후배 한의사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 스스로도 "자신의 환자 중에는 VIP가 없다"고 자신한다. 노골적으로 특별대우를 요청하는 환자들은 물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했다.
3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귀한 아들을 얻은 삼대독자 집에서 '돌떡'을 들고 왔을 때와 '생전 어머니가 늘 원장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고인의 자녀들이 인사를 왔을 때 등 평범한 사람들과의 정감 있는 관계와 신뢰를 큰 보람으로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원장은 "아픈 사람들은 돈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 약자들"이라며 "의사라면 아프고 힘든 약자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의사로서 충실히 환자를 돌보는 것 외에도 청원라이온스클럽과 빈의자 의사회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곳에는 늘 함께했다. 기술자가 아니라 인술(仁術)을 펴야 한다는 배움을 그대로 따르고 의료와 봉사의 융합을 통해 의료인의 새로운 전형을 만든 실천가로 평가받는 이유다.
지면칼럼 등을 통해 꾸준히 건강상담을 하면서 지금까지 '사람사정 병사정'과 '건강+행복코드' 등 두 권의 건강서를 펴낸 김 원장은 최근 준비된 죽음 즉, 웰다잉에 대한 전방위적인 고민을 풀어낸 '아름답게 떠날 권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앞서 두 권의 건강서가 질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 등을 기술했다면, '아름답게 떠날 권리'는 '온전한 건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몸과 마음, 영혼의 건강'을 화두로 5년의 준비 끝에 첫 번째 마침표를 찍은 책이다.
현실로 실감하는 죽음, 준비된 죽음, 생명과 죽음에 대한 탐구, 영혼 찾기, 영혼의 건강 등 5부로 구성된 책에서 김 원장은 "자연스럽게,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으려면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둬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공부해야 그동안 잘 살아왔음을 감사하며, 슬프지만 찬란하게 빛 가운데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이 찾은 죽음의 본질은 '영혼의 건강'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의학적인 관점에서 영혼에 접근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의료인으로서 비과학적이거나 신비주의자로 매도당할 수 있음에도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영혼이 죽음 이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실체이며 실체로서 영혼의 건강은 의학의 중요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가 죽음을 잘 알아야 환자들이 고통을 덜 받고 편안하게, 또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말속에서 세상과 삶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과 진정이 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