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덕헌(愛德軒)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 그들은 그곳에다 특별한 이름을 붙인다. 고개는 높은 산들이 붙어 있다면 령(大關嶺)으로 명명(命名) 되기도 한다. 지정된 고갯길에 특별한 이름이 붙혀지는 그 순간, 그 곳은 아기가 세상을 향한 첫 울음처럼 비로서 인간의 삶 속을 깊숙이 파고든다. 그곳을 지나는 수 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 수만큼 이런저런 사연을 품고 그 고개를 넘나든다. 산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인적이 끊어진다면 고갯길 역시 사라진다. 사람따라 또는 세월따라 변심(變心)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그곳을 넘나드는 사람들일 것이다. 산은 예나 지금이나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애덕 고개는 은이 성지에서 미리내 성지로 가는 길목, 즉 신덕, 망덕, 애덕 고개 중 하나이다. 애덕 고개를 넘으면(400m) 바로 미리내 성지이다. 애덕 고갯길, 팔부 능선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愛德軒), 그 집 주인이 바로 권대복 아오스딩이었다. 그는 정치 생활을 마감하고 신앙 생활에 몰입하던 중 바로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이다.
권대복 아로스딩(1932. 3.15~2000.11.1.) 그는 분명 삶의 긴 시간 동안 유명 정치인이었지만, 말년에 정치를 포기하고 종교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와 같은 그의 삶은 유별난 굴곡이 있었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의 형식을 취하지만, 우선적으로 그의 종교인의 모습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자 한다. 종교적인 것이라 할찌라도 천주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 받거나 승인된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유품중 필자의 개별적인 선택과 그것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들어내고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필자(이영호 비오-벨라도)는 수원교구 중국선교후원회 단체장으로써 중국 선교라는 공통 과제로 권대복 아오스딩 회장과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천주교 수원교구 중국선교후원회는 회원과 임원 그리고 후원회 자금(資金)까지 권대복 아오스딩 회장이 이끌던 한겨레선교단과 직결되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한점의 인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배라는 점에서 존경과 예의를 드리며, 중요 유품과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많은 것에서 턱없이 부족하지만 더 많은 사랑과 아량을 독자들에게 부탁드린다. 한 토막의 글이 끝나면 5분 명상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는 대단한 유학자(儒學者)이기도 했다. 중국어(中文) 성경(聖經) 소개는 권대복 아오스딩 회장의 유별난 중국 선교 열망과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기 위함이었다.
천주교는 신앙인의 모습을 글로 표현할 때, 유의 해야할 점, 몇 가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애덕 고갯길 아래 김대건 신부 기념 경당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 부터 강도영 마르코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페레올 요한 요셉 주교, 최문식 베드로 신부등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이곳 성지 안에는 중요 인물에 대한 성상이 보이지 않는다. 광활한 성지내 김대건 신부 외에 누구의 성상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이 우연한 일인가?
경당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함께 모셔진 강도영 마르코 신부, 그는 선종후 안성 시민으로부터 공적비(功績碑) 소동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천주교회의 공적비 건립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공적비 설립 반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1929년 선종 당시 강도영 마르코 신부(1863~1929)는 살아있는 동안 안성군의 계몽 운동가로써 다양하고 특별한 활동을 하였지만, 그의 활동 전부는 천주교 미리내 성당 주임 신부로써 사목 활동의 일부라는 것이 천주교회의 공적비(功績碑) 건립(建立) 반대 이유였다. 사목 활동이란 신부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해야할 일일 뿐이었다. 사목 활동등은 공적비등으로 유별나게 세상에 들어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 천주교의 공식 입장이었다.
천주교회는 위와 같은 이유로 교회 사목에 관련된 일로 인하여 성직자는 물론하고 신자들의 공적비와 동상, 초상 및 영상과 출판물 등 개인에 홍보에 관한 모든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국회 의원등, 심지어는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명함(名銜)등에 사진을 첨부하고 있으나,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들은 명함에 사진을 첨부할 수 없다. 그것은 초상권에 대한 교회의 엄격한 제한 때문이다. 홍보물에 대한 교회 규정을 참고하면서 모범적인 신앙인으로써 권대복 아오스딩 삶의 모습을 살펴 보고자 한다.
차례
1. 인우보증서(시편 55)
2. 「행동하는 신앙인 권대복씨와 인터뷰」(시편 56)
3. 어머님전 상서(上書)(1요한4,7-21)
3-1. 어머니의 선종
3-2. 남편 권대복 아오스딩께서 선종하신지...,
3-3. ♡꿈 많은 소녀, 세레나의 추억
3-4. ♡영원한 내 사랑, 세레나여-1
3-5. ♡영원한 내 사랑, 세레나여-2
3-6. ♡영원한 내 사랑, 세레나여-3
3-7. ♡영원한 내 사랑, 세레나여-4
3-8.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나의 하영이와 윤중에게)
3-9. 작은 내 딸의 면회
3-10. 구로구 권대복, 의원 후보 이력서
3-11. 구로구민들에게 드리는 글(1코린토13장)
4. 중국 선교의 필요성(한겨례복음선교회)
5. 천주교 수원교구 중국성소후원회의 뿌리(略史)
6. 권대복 아오스딩의 예화집
6-0. 백발 노신사, 권대복 회장님...(李芳遠, 1367-1422)
6-1. 노 유학자의 개종(시편 51)
6-2. 중국 소팔가자 성당에서(시편 146)
6-3. 두 교감 부부의 반목(反目)(시편 8)
6-4. 여인과 묵주(시편 31)
6-5. 성남 아줌마(잠언 5장)
6-6. 구두쇠 영감(시편 39)
6-7. 친절의 시작과 끝(시편 37)
6-8. 벼락 감투(敢鬪)(시편 100)
6-9. 일본 성령 대회(요한 16장)
6-10 믿음과 자비(시편 91)
6-11 심장병 자매의 부활(시편 40)
6-12 양양 성당의 기적(잠언 10장)
6-13 인디언 족장의 부족 사랑(잠언 8장)
6-14 나팔수 소년(루가 15장)
6-15 친구를 죽인 소년(시편 130)
6-16 나 환자들의 위문 공연(시편 51)
6-17 시흥동 성당(시편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