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스포츠사격 탄생 그리고 올림픽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 고대 올림픽은 4년마다 그리스의 여러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한데 모여 경기를 펼쳤는데, 이때 정치적 대립은 금지됐으며 평화를 숭배했다. 그 후 약 1,500년이 지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던 올림픽은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의 노력으로 1896년 그리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으로 부활했고 ‘평화’의 정신으로 올림픽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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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아테네올림픽이
열린 파나티네코 경기장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있다>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는 13개국 280여명이 참가했다. 이 때 과연 어떤 종목들의 경기가 이루어 졌을까?
정답은 9개 종목으로 육상, 수영, 체조, 역도, 사이클, 레슬링, 테니스, 펜싱 그리고 사격이다. 총기가 그렇게 발달이 되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총기가 인류에 최초로 선보인 것은 1500년경 독일 및 유럽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총에 대한 인식은 범죄, 인마살상, 무기, 무력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인데 세계 인류의 평화와 화합의 제전인 올림픽에 사격 종목은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유는 총기의 사용 목적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총기의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격 스포츠를 행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평화의 나라인 스위스 국민들이 사격을 세계 전파에 힘쓰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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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당시 태릉국제종합사격장 건립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 사격은 5종목(권총 3종목, 소총 2종목)을 실시했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경기는 50M권총과 50M소총 경기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50M권총 경기에 진종오 선수가 50M소총 경기에는 한진섭 선수가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이 두 종목은 화약총인 실외 사격경기로서 우리와도 친숙한 종목이다. 50M소총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종목이며, 이 바통을 이어 다른 종목에서도 메달 획득에서 선전한 소식이 우리를 기쁘게 했고, '04년 아테네올림픽과 '08년 베이징올림픽의 50M권총 종목이 뒤따라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했다. 또 떠올려 보아도 기쁘기 그지없는 때였다. 이런 사격 메달 획득의 역사적 일들에 대한 모든 밑거름이 된 것은 바로 ‘태릉국제종합사격장’이었다. 우리나라의 국력과 스포츠를 몇 단계 끌어 올린 메가 이벤트로 '88 서울올림픽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 '88 서울올림픽과 태릉국제종합사격장과의 알려지지 않은 담화가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올림픽이 대한민국을 알리고 경제성장의 중요한 기틀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으나, 가난에 대한 싸움과 경제력 뒷받침이 힘겨운 상황이었다. 당시 대한사격연맹 박종규(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회장께서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의 유치를 제안했고, 1978년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태릉국제종합 사격장에서 치뤘다. 단일종목으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행하는 국제경기이자 전 세계 이목을 주목시킨 중요한 스포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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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태릉국제종합사격장에서 개최된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의 개막식... 그리고 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태릉국제종합사격장의 폐막식...당시 세계신기록을 세운 선수에게는 금관을 수여해 화제도 되었다. 전 세계 사격 VIP임원들은 전체적인 대회 진행을 지켜보면서 "한국은 올림픽을 치룰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박대통령께 전했으며, 이어 서울올림픽에 대한 의지를 세웠다. 19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 일본의 나고야와 올림픽 유치 결정전을 치루는 상황...서울 52표, 나고야 27표 "세울 코리아!" 압도적인 승리였다.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올림픽이 개최되는 순간이었다. 160개국 참가, 대한민국 지위 격상, 신용도와 국력 향상, 2520억 흑자...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이것이 사격스포츠와 '88 서울올림픽과의 관계이자 인연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구호는 이 때부터 시작 되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Writer. Lee, Jong-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