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형문화재 - 기억따라 세월따라/ 난정 신순애
<여창> 가곡
- 평조 우락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궂은 비는 붓듯이 온다
눈 정에 거룬 님을
오늘밤 서로 만나자 하고
판첩처서 맹세 받았더니
풍우 중에 제 어이 오리.
-난정 신순애 시조시인이 기억하는 <여창> 가곡
* 국악의 향기 3 - 구술체/ 신순애
시조창 하면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 가곡 예능보유자 김월하 회장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 천상의 음색에 반하여 종로 2가 회장님댁 한옥에서부터 마포구 아현3동 월하문화재단 2층에 이르기까지 열심으로 다녔다.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일원으로 평시조 경조 3분 40초 소요되는 연습시간은 참으로 즐거운 시절로 회상됨을 어쩌랴. 아현3동 1층에는 이매방 무용연구소 즉 춤꾼들로 번창의 한 때였으리라 믿는다.
돌이켜 생각하면 회장님께서 고인이 되신지도 20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으나 고귀한 특색의 음색은 어제 일만 같다. 40년 전쯤 어느 날 종로 4가 한국정악원 벽파 이창배 선생님 민요반 회원께서 저에게 동행의 안내로 찾아간 곳이 월하 회장님과 처음 만남이었다. 첫 시간부터 시조창 강의에 심취되어 마침내 종강일에는 필자가 자작시까지 낭송하게 되었다. 다음은 낭송시다.
한 줄기 하이얀 가르마 사이로
얌전한 까아만 머리를 보노라면
향긋한 동백기름 내음이
온 방 안에 풍기는 듯하고
온화한 밝은 미소엔
세월을 초월한 젊음이 있네
어진 눈매 사르르 감고
청아한 시조창 흘러나올 젠
엄숙과 황홀이 나래를 펴네
이젠 남몰래 웃고 울은 흘러간 세월
때로는 한숨도 시조로 달래셨으리
다만 한 가닥 이 땅의 얼을
이으려는 고운 뜻의 삶의 보람이
날마다 날마다 찾아들 오네
삶의 보람이 멀리서 가까이서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골고루 뻗어가는 그 음향이여
가녀린 자태에 그 굳센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 생애 태어나
시조의 이정표를 향한 걸음걸음 자국마다
고달픔과 눈물의 이슬이 열렬한 갈채 속에
소리 없이 고요히 나리고 있네
찬란한 햇살이여 맑은 달빛이여
아낌없이 바치소서 숭고한 연꽃을 보호하소서.
- 난정 신순애 <월하 회장님께> 全文
낭송이 끝나자 회장님은 나를 와락 안아주시며, 동백기름은 6.25 난리통에도 바르셨다고 하시며 기뻐하신다. 지금 내 어디에서 동백기름 내음을 맡으며 전무후무한 그 음성을 어디에서 들으랴 싶다.
평소 회장님은 근검절약이 철두철미한 분으로 회원들에게 많은 짐 심부름도 택시보다는 버스를 이용하도록 권유하셨다. 밥이 약간 변한듯하면 찬물로 여러번 씻어버리고 잡수시는 걸 본 일도 있다. 즉 사치스러움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단아함과 진솔한 표상으로 남아있다.
후배양성에는 적극적으로 장학금과 후원금을 선뜻 내주시는 걸 본 후 존경과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어느 날인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시기에 “왜 그라요? 왜 그라요?”하며 다가갔더니, 용돈을 아무도 모르게 손에 살짝 쥐어주신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기에 참, 정 많은 분이시다! 하고 여지껏 마음 속 깊이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
평시조창 “청산리 벽계수야~” 연습을 집에서 하던 중 중학생이던 아들이 “엄마, 배 아프요?” 하고 묻는 말에 당황하여 그 후 다시는 집에서 시조창 연습을 하지 못했던 생각과 “일년 삼백 육십일은” 지금도 어쩌다 마음 속으로 읊조려 보기도 한다.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 김경배 이사장님의 간행사 ‘삶의 참된 발자취’로, 회고문집을 회장님 가신지 5년 후 2001년 11월 369 페이지의 자세한 보석 같은 문집을 출간하셨다. 출판기념회도 각계각층의 구름 같은 모임으로 고인을 추모한 그날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나의 젊은 시절이었기에. 국악은 우리민족의 고유한 얼이 담긴 가락이므로 잘 가꾸어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