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화사한 5월 성모님의 달을 맞이하여 행복한 배론성지 순례를 다녀온
미카엘(지용호) 인사 올립니다.
저희 가족 4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대학생인 딸이 갑자기 일이 생겨
불참하여 아쉬움 속에 하느님 은총, 사랑 가득 받은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부족하지만 배론성지의 짧은 하루를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 봅니다.
어제의 향기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미카엘 올림.
■ 배론성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 구학리에 있다. 이곳은 1791년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마을이 위치한 계곡이 배[舟] 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舟論]으로 불렸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에는 황사영(黃嗣永)이 배론의 토굴에 숨어 백서를 집필하였고, 조선 교회의 박해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백서(帛書)를 베이징[北京]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그해 능지처참을 당해 순교하였다.
1855년(철종 6)에는 배론에서 조선 최초의 성요셉신학교가 개교하였는데, 11년 만에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강제 폐쇄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배론은 해방 이후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1855년에는 배론 공소회장 장주기(張周基)의 집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교장 푸르티에 신부, 교사 프티 니콜라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고, 1861년 최양업 신부가 문경(聞慶)에서 병사하자 푸르티에 신부 일행이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다.
'성요셉 신학당'은 한문이나 한글뿐 아니라 수사학·철학·신학 등도 가르쳤으며 한국 천주교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나, 1866년 병인박해 때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 니콜라 신부가 체포되어 순교함으로써 폐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신학당 터와 최양업 신부 묘소, 박해시대의 옹기굴 흔적 등이 남아 있다. 1932년 몇몇 사제들이 매입하여 보존해오다가, 1977년 원주교구에서 성지개발위원회를 구성하여 개발을 시작했다. 양기섭 신부에 의해 '성요셉 신학당'이 복원되고 각종 기념물이 세워져 순례지로 되살아나고 있다.
70여 호의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배론은 주변의 자연 환경 여건상 인근에서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인들은 숨을 곳을 찾아 배론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 위치
제천 배론성지는 행정 구역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다. 이곳은 제천 중심가에서 13.9㎞ 떨어져 있으며, 원주 시내에서는 35㎞ 떨어져 있다.
●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를 지나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후 배론은 자연스럽게 다시 교우촌으로 형성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2년에는 장호원 본당 관할에 있던 배론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공소 회장으로 안창현을 임명하였다.
또한 1929년 4월 30일 원주본당 정규량 레오신부가 경향잡지에 배론의 역사, 지형, 학당, 최신부 묘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군난 때 미담' -군난시대를 감상케하는 제천 배론-을 기고하였다.
1940년에 배론은 제천 본당 관할로 구역이 정해지며 그해 제천 본당 박일규 신부가 배론을 방문하여 최양업 신부의 묘소에 묘비를 세우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지만 일제의 압력으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후 1945년에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정비되었다.1956년 배론공소에 79㎡짜리 강당과 26㎡짜리 사택을 완공하였다. 원주교구는 1972년 성지개발 10주년 계획을 수립하고 교구 재단과 성심학원재단이 1976년 제천 배론성지를 공동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개발사업에 들어갔다.
1988년에 이르러 당시 배론 관리소 소장 신부였던 양대석 신부가 서울대학교 이원순 교수의 고증에 의해 토굴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6·25 전쟁 때 불탄 성요셉신학교는 2003년에 복원되었다. 2006년에는 제천 배론성지 내의 배론공소가 준 본당으로 승격되어 배론성당이 되었으며, 2010년에는 성지 내에 배론문화영성연구소가 개관되었다.
● 현황
제천 배론성지가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것은 이곳이 천주교가 시작된 초기에 순교 신앙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곳에 지금도 남아 있는 여러 유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백서를 썼던 토굴이 있으며, 최양업 신부의 묘가 남아 있다.
또한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보존되어 있다. 제천 배론성지는 현재 재단법인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이외에 제천 배론성지 경내에 종교 시설로 ‘순교자들의 집’, ‘성요셉성당’, ‘황사영순교현양탑’, ‘사제관과 경당’, ‘최양업신부기념성당’ 외 많은 부속 건물들과 ‘봉쇄수녀원’이 있으며, 사회복지 시설인 ‘살레시오의 집’이 있다.제천 배론성지는 천주교사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천주교 성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성립 과정에 있어 중요한 성지로, 지금도 전국 각지의 성지순례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특히 천주교 원주교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 원주 지역의 교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교인들을 위한 순례 코스를 만들어 놓았는데, 약식 코스, 기본 코스, 묵주 기도 코스, 박달재 산행 코스, 묘재·용소막 코스, 제천 관광 경유 코스가 있다. 순례자는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피정의 경우 개인 피정과 단체 피정이 있어 미리 신청해서 방문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