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작가집중조명/ 김 원 시인
한강
잊을 수 없는
눈물의 강 입니다
흐르는 꿈이며
생솔가지 태우는
불의 가슴으로
노 저어 가야할
사랑의 길입니다.
한강 1
고조선
순박의 석기시대
훨씬 그 이전
젊은 낭자와 낭군이
물장난 치던
수줍게 흐르는
냇물이었다.
한강 2
어미와 아비가
버드나무 그늘 아래
발가벗고 멱을 하던 곳
목마른 별과 허기진 달
스러지던 서편의 태양도
슬그머니 손님으로 찾아와
고달픈 가슴을 닦고
하늘의 집으로 날아가는 곳
한강은 푸르른 한강은
나의 원시인이 살아있는
흐르는 사랑의 젖줄이다.
한강 4
수수만년
별빛 내려와
물결의 그림자를 애무하네
버드나무는 살아가도 몇백년
늙은 가물치와 메기도
하얀 수염의 순간들 뿐이지
언 땅의 살얼음이 갈라지고
봄 아지랭이 꽃새 울음에
조용히 알몸을 떨 때마다
외마디 기척 없는
너와 나의 한강은
길다랗게 혓바닥 늘어뜨려
무심히 흘러갈 뿐이다.
한강 6
맑고 푸른
무릉의 수로여
목마른 시간의 삶이
빈 손으로 널 찾을 때
살촉한 어미의 젖가슴으로
반기어 주누나
한 장 가랑잎의 돛배와
님 실은 뗏목의 오래된 유랑을
애환의 눈물마저 삼키며
말없이 흘러 보내는구나
기억의 날과 날들이
아득한 반환의 세월을 돌아
다시금 이곳을 찾아오기까지
홀로의 꿈 아랫배로 지키며
묵묵히 실바람 부딪어
살아가는 것이냐.
한강 7
무엇을 싣고
흐르어야 하나
반도의 쌀 한 톨
모질게 익은
도원 뜰가에 뒹구는
붉은 실과 하나
아니다 그럴리는 없어
내 어미와 애비
태고의 시간 꽃 피우던
애련한 사랑 하나만은
품에 안듯 실어만다오
한강이여
푸른 저고리 출렁거리는
고요한 나의 한강이여.
한강 9
침묵의 길손이여
그리운 나의 한강이여
빛 맑은 어느 날
문득 이곳을 찾아오실 때
잔잔히 푸른 물결
네 가슴에 부서지어
덩실 덩실 춤추며
흐르고 싶구나.
한강 17
세상이
물처럼 흐르지 못함을
탓하지 않는다
달빛의 연인들이
꿈처럼 내려 앉고
들바람의 슬픔도
가랑이 풀어헤치는
그리움의 낙원이여
물방울로 살아있는
축축한 우리들의
집이여.
한강 19
붉은 해가
살갗을 태울 때
발가벗은 원시인과
홀라당 옷을 벗고
물장구를 치던 곳
무엇이 잠시 그립다하면
논 개구리도 마실을 나와
펄쩍 펄쩍
장고춤을 추시던 곳
세월의 낮고 깊음이
어디 있느냐
삶의 이별과 아픔이
그 어디에 있느냐
너와 내가 노 젓는
하얀 가슴의 배
후회 없이 띄우시는
푸르른 한강이다.
한강 20
응어리의
가슴 풀어헤쳐
한강은 흐른다
꽃댕기 오색치마
님의 눈물
모두 끌어 안고
말없이 흐른다
통곡하는 어제의 달빛을
찢어지는 오늘의 슬픔을
통째로 부딪으며
너와 나의 목마른 집을 향해
한강은 흐른다
거룩한 시간의 길을
온몸으로 노 저으며
고요히 흘러간다.
김 원 약력
강원도 원주, 중원상사, 아세아의료기 대표 역임/ 《창조문예》 등단, 《한빛문학》 자문위원, 《경의선문학》, 세계여행작가회의 감사, 현대시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선교회 부회장 역임/ 시전집 : 《빛과 사랑과 영혼의 노래 1》, 시집 : 《물방울 꽃들은 바다로 흐른다》 외 1,000 편의 詩 상재
시작노트
존재의 지평에
낯설고 외로운 낭인으로
서 있을 때가 빈번하다.
그러나 해 오름의 비밀과
진지한 낮과 밤을 맞이할수록
생명의 근원적 가치와 의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시의 원형과 신화의 속성
통합적 기억의 입자들이
유쾌하게 충돌하며
재구성의 제3세계를 창조하는
감동적 교감을 늘상 그리고 있다.
궁핍한 시대의 몰골 앞에서
낮은 능선 위에 곱게 떠오른
저녁별들의 빛나는 자태를 바라본다.
시는 꿈과 사랑으로서의 미래이고
현재로서의 희망과 자유임을
한 톨의 쌀 보다 비좁은 가슴이지만
나름대로 불변의 의지로 확신하고 있다.
시작의 일상적 태도에 관한
내 스스로의 문학적 소견이다.
한민족의 혈류이며 젖줄인 ‘한강’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다.
수년을 오가며 유유히 흐르는 그를 만났다.
두 해전에 몇 수 그리고 2018년 여름
몇 날에 걸쳐 졸시 60편을
내 하얀 인식의 노트 위에
무심히 기록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