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농악 시연 / 1996 (전경환 선생님과 문한준 선생님)
전라도 농악의 구분과 우도농악
전라도 농악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동북부와 서북부 그리고 남해안이다. 서북부지역에서 연행되는 농악을 우도농악이라 하는데, 우도농악은 전북의 김제, 이리, 정읍, 고창으로부터 전남의 영광, 장성, 광주, 나주, 함평, 영암까지에 이르는 지역에서 생성되어 전수된 농악을 칭하여 우도농악이라 한다.
우도농악의 복색은 쇠꾼을 제외하고는 고깔을 쓰며 의상이 화려한 것이 특색이다. 쇠꾼의 전립은 좌도에서 ‘부들상모’를 쓰는 것과 달리 ‘뻣상모’를 쓴다. 대게 전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윗놀이는 별로하지 않으며 밑놀이가 다채롭고 멋지게 행해진다.
가락은 주로 느린 가락을 사용하면서도 빠른 가락을 다양하게 곁들여 친다. 우도농악에서는 외마치질굿․세산조시․늦은삼채․된삼채․벙어리삼채․오채질굿․호호굿 등과 같은 쇠가락이 흔히 쓰이는데 이 중 오채질굿은 우도농악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가락이다. 이처럼 우도농악은 어느 지역보다 가락이 다양한데 이러한 가락들이 다채롭게 변주되는 것은 우도농악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판굿에는 좌우질굿․오방진․호호굿․달어치기․미지기․노래굿․풍류굿․등지지굿․개인놀이․도둑잽이굿․탈머리굿․군영놀이굿 등이 행해진다. 이 중 잡색놀이가 다양하게 펼쳐지는데 쇠꾼들의 부표놀이와 설장구춤, 소고놀이 같은 개인놀이가 특색이다.
영광의 우도농악 이라고 불리어지는 무형문화재 제17호(도 지정 무형문화) 우도농악은 전라도 서남해안 지역인 영무장농악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영무장 농악이란 영광, 무장(고창), 장성 등지에서 행하는 우도농악을 말하는 것으로 낭걸립패 들의 걸궁굿이다.
영무장농악은 예능적인 면에서 다양하고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영광․장성․무장(고창) 이 세 지역의 농악 중에서도 영광우도농악은 영무장농악의 맥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장성은 그 맥이 끊어지고 고창은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되어 현재 전승되고 있다.
상쇠부포놀이, 설장구놀이, 고깔 소고춤 등 개인놀이가 잘 발달하였고 가락은 약간 느린 편이며 벙어리 가락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잡색의 기능이 중요시되며 나무로 만든 탈을 쓰고 연극놀이를 하는 것은 영광지역의 우도농악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1) 영광우도농악 계보
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7호 상쇠는 최화집(장성)으로부터 강성옥, 박성근, 신두옥(고창), 전병남, 김명준, 김성락(영광), 성기만, 조바우(함평)등이 있었으며,
영광에는 전경환(1921.11.01~1999.09.03)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1990년 영광우도농악보존회를 창립하고 영광읍 백학리에 전수관을 건립, 전수 등의 활동을 하다가 작고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상쇠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문한준(전남무형문화재 우도농악 상쇠예능보유자, 2008.04.11. 지정)이 활발하게 전수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수장학생으로는 강덕순, 김명희 등이 활동하고 있다.
우도농악 설장구 예능보유자는 법성면 출신의 김명선(예명; 오채, 1924~1994)으로 평생을 장구와 함께 살았다. 그의 설장구에서 자반뒤집기는 그의 특기로서 공중을 회전하는 ‘새처럼 나는 김오채’ 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그의 조부 김창환金昌煥(1855~1937)은 국창, 부친은 마을 농악의 상쇠였고 외삼촌이 장구의 명인 신기남이였기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농악을 접했다. 당시 낙월도 농악단의 김학준·김명준을 따라 다니며 가락을 익히고, 처음에는 소리를 하려고 하였으나 목이 좋지 못해 기악을 택했는데, 장구 외에도 가야금·아쟁 피리 등 모든 악기를 소화했다고 전한다.
김오채는 임방울과 가설극장을 열어 전국을 순회하였고, 해방 후 김연수·임방울·김영철 등과 우리국악단에서 활동하였으며, 여성국악단 삼성에서도 활동하였다. 법성포 농악을 이끌던 오채는 1986년 전남도립 남도국악단에 입단, 1987년 지방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 설장구 기능보유자, 전남도립 남도국악단 지도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4년 별세하였다. 현재는 김동언 예능보유자가 김오채의 뒤를 이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광우도농악의 구성과 복색
영광우도농악은 앞치배와 뒷치배로 나뉘어 구성된다. 상쇠를 우두머리로 하여 쇠(꽹과리)․장구․북․징․소고등과 같이 악기를 연주하는 잽이들을 통틀어 ‘앞치배’라고 부르고, 대포수를 우두머리로 하여 할미․조리중․우창․좌창․양반․참봉․각시․홍적삼․비리쇠·큰애기까지 11명의 잡색들을 통틀어 ‘뒷치배’라고 부른다. 여기에 농악대의 맨 앞에 서서 농악대를 이끄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쓰여진 농기農旗와 농기의 뒤를 따르는 영令자가 쓰인 영기令旗와 나팔수, 쇄납(태평소)등으로 구성된다.
농악의 인원 구성을 보면 보통 농기 1명, 영기 2명, 나팔수 1명, 쇄납수 1명, 꽹과리(쇠)3~6명, 징 2~4명, 장고 3~8명, 통북 3~8명, 소고 7~10명으로 흔히 앞치배만 40~50명이 구성되며, 뒷치배라 불리는 잡색은 대포수1, 양반1, 할미1, 조리중1, 각시1, 큰애기1, 참봉1, 좌창1, 우창1, 비리쇠1, 홍적삼1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된다.
복색은 다음과 같다. 농기, 영기, 나팔수, 쇄납, 징, 장구, 북, 소고까지 상쇠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앞치배들은 흰색의 한복바지, 저고리에 남색 조끼를 입고, 그 위에는 왼쪽어깨로부터 오른쪽 허리를 향하도록 청색 드림을, 오른쪽 어깨로부터 왼쪽 허리를 향하도록 적색의 삼색 드림을 매고 허리에는 황색드림을 매어 허리 뒤쪽에서 묶는다. 머리에는 황색, 청색, 적색, 백색의 사색 꽃을 단 화려한 꼬깔을 쓴다. 다만 장구는 사색 고깔 대신 모두 백색의 꽃을 단 흰색 꼬깔을 쓴다.
쇠꾼들은 흰색의 한복 바지, 저고리에 남색의 조끼를 입고 그 위에 색동으로 반소매를 단 적색의 쇠복을 입는다. 쇠복의 등 뒤쪽에는 청색, 황색, 적색의 삼색 드림을 무릎까지 닿도록 길게 늘어 뜨려 다는데 항상 황색의 드림은 중앙에 오도록 하여야 한다. 황색의 드림이 중앙에 오도록 하는 이유는 청색은 동쪽, 백색은 서쪽, 적색은 남쪽, 흑색은 북쪽, 황색은 가운데라는 오방에 각기 다른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데서 기인한다. 청색, 황색, 적색의 삼색 드림이나 잽이들의 어깨와 허리에 묶는 드림 또한 모두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 쇠꾼들은 꼬깔 대신에 뻣상모를 단 전립戰笠을 머리에 쓴다.
대포수는 상쇠와 동일한 의상을 입지만 등 뒤쪽에 있는 삼색 드림이 없고, 얼굴에는 나무로 만든 대포수탈을 쓰며, 노루털 위에 꿩의 깃털을 달아 만든 투구를 머리에 쓴다. 등에는 짐승의 털로 만든 총망태를 메고 손에는 나무로 만든 가짜 총을 들고 가느다란 나무 끝에 붉은색 드림을 묶은 막대기를 손에 든다. 대포수는 잡색의 우두머리이지만 모든 잡색이 그렇듯이 그 복장이나 놀이 형태가 골계와 해학으로 일관되기 때문에 대포수의 한쪽다리를 붉은색의 띠로 묶는다. 나머지 잡색들은 자신들 만의 독특한 복색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