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토요일 오전 10시 유림동주민센터 앞 광장
10시가 가까워지면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금방 도착하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7회차, 익숙해져서 그런지 호시탐탐 친구들이 여유를 부리는 듯 합니다.
10여분이 지나서 참여자 확인과 함께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용인학연구소장으로 계시는 이종구선생님과 용인의 고려유적지를 찾아 용인의 역사를 더듬어 봅니다.
초기백자를 만들었던 서리백자요를 찾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도로를 건너 마을길을 지나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 구릉지 같은 곳에 고려백자요지라는 안내판이 있어 이곳이 백자요지라는 것을 알려줄 뿐..... 아이들이 서로 수근거립니다.
"이게 뭐야?"
"여기 들어가야해?"
풀들이 우거져 발걸음을 주저하게하는 곳을 성큼성큼 용감하게 들어가는 멘토형님들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호시탐탐 친구들은 백자를 굽던 도공들의 흔적, 가마의 흔적을 찾아봅니다. 이리저리,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조각들이 갑발이고 사금파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수많은 갑발들 사이에 백자 사금파리를 찾아보는 보물찾기를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사금파리 조각들을 가지고 옵니다. 녀석들이 갑발을 알고 사금파리를 안다는 것입니다. 쓰담쓰담....
저멀리 우뚝하게 자리를 잡은 아파트 사이에 아는 사람만 보이는 숲이 우거진 저기 저쪽... 그랬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처인성, 누가봐도 성이라고 할수 없는 그 곳 처인성으로 우리는 갔습니다.
처인성전투
-몽고의 고려 침입. 고려의 강화 천도... 당시 처인은 천인들이 거주하는 부곡(部曲)이었으며, 성안에는 몽골군을 피하기 위해 부곡민들과 인근 백성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경기 평택의 백현원(白峴院) 승려인 김윤후(金允侯)도 끼여 있었다. 김윤후는 몽골군이 흙으로 쌓은 처인성을 공격해 오자, 부곡민과 합세해 화살 공격을 퍼부었다. 이때 살리타이는 김윤후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당황한 몽골군은 처인성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승려와 부곡민이 힘을 합쳐 파죽지세의 몽골군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아무리 봐도 성으로 보여지지 않는 처인성. 그저 과거에 오색딱따구리를 만났던 예쁜 추억을 가진 숲으로만 기억에 두었을 뿐입니다.
폭염에 가까운 더운 날씨, 차가운 음료만 찾습니다. 그래서 먹었습니다, 우리는. 빠삐코를, 탱크보이를 그리고 메로나를....
*갑발:고온에 잘 견디는 점토로 만든 원기둥꼴 그릇. 도자기를 구울 때 이것을 도자기 위에 씌워서 불길이 도자기에 직접 닿지 않게 하고 도자기에 재가 앉는 것을 방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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