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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심령권 여행
무 대륙 아카식 레코드 세계의 여행
우리는 라티오누시를 따라 도코의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양실이었다. 외부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라톨리와 장로 2명은 떠났다. 라티오누시, 타오, 비아스트라, 그리고 나만 남았다.
타오는 나의 영력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중요한 체험을 하려면 특수한 약물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1만 4,500년 전 무 대륙이 사라질 당시 지구의 심령권(心靈圈, psychosphere)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이었다.
내가 이해하는 ‘심령권’ 이란 이런 것이다: 모든 행성은 생성 시부터 심령권에 둘러싸여 있다. 심령권은 거대한 누에고치 같은 것으로 광속의 7배로 돌면서 진동한다. 심령권은 행성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흡수하는(‘기억하는’ 저자의 동의를 얻은 편집자 주) 일종의 압지(押紙)같은 작용을 한다. 지구인들은 심령권의 내용에 접하지 못한다. 그 속의 내용을 ‘읽을’ 방법이 없다(고대 인도의 신앙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사건은 아카샤[Akasha]라는 미묘한 매체에 영원히 아로새져진다. 아카샤는 ‘에테르, 정기, 영기, 하늘’이란 뜻이다).
미국에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고용해 ‘타임머신’을 개발하려 애쓴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타오에 따르면 그 이유는 물리적 파장보다는 심령권의 진동에 적응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의 일부로 구성돼 있는 만큼 성기체 형태를 통해 심령권에서 원하는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미셸, 이 약이 심령권에 들어가도록 도와줄 거예요.”
우리 네 사람은 특수한 침대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나는 타오, 비아스트라, 라티오누시에 의해 형성된 삼각형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나는 액체가 담긴 유리잔을 건네받고 그것을 들이마셨다.
비아스트라와 타오는 자신들의 손가락을 내 손과 명치 위에 가볍게 얹었고, 라티오누시는 검지를 나의 송과선 위쪽 머리 부위에 댔다. 그들은 내게 긴장을 완전히 풀고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성기체 형태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그들의 안내를 받을 것이므로 안전할 것이었다.
그 순간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타오가 내게 천천히 부드럽게 말할수록 나의 두려움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무척 겁이 났다. 갑자기,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가지각색의 빛깔들로 눈이 부셨다. 빛깔 들은 춤을 추듯 빛을 내뿜었다. 나를 둘러싼 세 동반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반투명하게 빛났다.
마을은 우리의 아래쪽에서 천천히 희미해졌다. 네 개의 은줄(유체이탈시 영혼과 육체를 연결해주는 끈)이 우리들의 성기체를 육체에 연결시키고, 우리의 육체가 산(山)처럼 커지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백금색의 눈부신 섬광이 나의 ‘시야’ 를 가로지르면서 한동안 아무것도 안 보이고 느낌도 없었다.
우주 공간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은색의 공이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은빛의 대기층 같았다. 우리는, 아니, 나는(그때는 이미 세 친구들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허둥대며 움직였다. 그 은빛 대기를 뚫고 지나가자 나를 둘러싼 ‘안개’ 만이 보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안개가 순식간에 흩어져 없어졌다. 낮은 천장의 네모난 방이 나타났고 안에는 두 남자가 다리를 포갠 채 화려한 색상의 쿠션 위에 앉아 있었다.
방의 벽은 섬세하게 조각된 돌 벽돌로 돼 있었고, 당대 문명의 여러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투명해 보이는 포도송이와 처음 보는 과일류 그리고 동물그림도 있었다. 몇몇 동물은 인간의 머리 형상을 했고, 동물의 머리 형상을 가진 인간들 모습도 보였다.
잠시 후 나와 세 친구가 기체 형태로 하나의 덩어리를 이뤘음을 알게 됐다. 그런 상태에서도 서로를 분간할 수는 있었다.
“우리는 사바나사 피라미드의 주실에 들어와 있어요. 라티오누시가 말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안하던 라티오누시가 내게 프랑스어로 말했던 것이다! “텔레파시에요, 미셸. 아무 질문도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명확해지고, 당신은 반드시 알아야할 내용들을 배우게 됩니다.”
주실의 천장에는 창문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어떤 별이 보였다. 그 두 남자가 별과 ‘눈에 보이는’ 생각들을 교환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들의 송과선으로부터 은백색 담배 연기 같은 실선이 흘러나와 천장의 창문을 통과해 나가더니 먼 우주에 있는 그 별로 연결됐다.
두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주위에는 은은한 황금빛이 감돌았다. 그들은 우리를 볼 수 없었고, 우리 때문에 방해를 받지도 않았다. 우리는 다른 차원의 관찰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더욱 주의 갚게 살펴봤다.
한 사람은 노인이었고 긴 백발이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머리에는 유대교 랍비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노랑색의 테 없는 모자를 썼다.
소매가 긴 누런색의 헐렁한 겉옷은 몸 전체를 감쌌다. 앉은 자세에서 발은 보이지 않았지만 맨발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손은 손가락 끝만 살짝 닿아 있었고 손가락 둘레에서는 푸른빛의 작은 섬광이 번득였다. 그가 얼마나 강하게 정신집중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다른 남자는 윤기 나는 흑발이었지만 나이는 비슷해 보였다. 겉옷의 색깔이 밝은 오렌지색인 점만 제외하면 거의 같은 차림새였다. 두 사람은 숨도 쉬지 않는 듯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저들은 다른 세계와 교신 중이에요, 미셀.”
갑자기 그 ‘장면’ 이 사라지고 곧바로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지붕이 황금으로 뒤덮이고 여러 개의 탑과 관문이 딸린 파고다 형태의 궁전이 보였다. 거대한 전망창은 화려한 정원과 연못을 향해 열려있고 연못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정오의 햇빛과 어울려 찬란한 무지개를 연출해냈다. 광대한 공원의 나무들 사이에서는 수백 마리의 새들이 날아다니며 이미 신비한 풍경에 화려한 색상을 더했다.
나무 아래나 연못 근처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긴 겉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산책했다. 일부는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정자 아래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궁전 너머 먼 곳에서는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방금 떠나온 피라미드였다. 나는 무 대륙의 수도인 사바나사의 장엄한 왕궁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궁 주변으론 타오가 말했던 고원 지대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단일한 돌 벽돌로 만들어진 듯이 보이는 약 40m 넓이의 도로는 정원 중심부에서 고원지대로 연결됐다. 도로의 양옆에는 큰 가로수들이 늘어섰고 그 사이사이에 거대한 석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일부 석상의 머리 위에는 넓은 테가 달린 붉은색 혹은 녹색의 모자들이 얹혀 있었다.
우리는 그 도로 위를 활공하듯 지나갔다. 말을 탄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돌고래처럼 생긴 이상한 네발짐승을 타고 다녔다. 타오에게서 들은 적이 없는 동물이었다.
“ ‘아키테파요’ 라는 동물이에요 미셸, 지금은 멸종됐어요.”
그 동물의 크기는 아주 큰 말 정도였다. 꼬리는 여러 색상의 털이 섞여 있었고 가끔 공작의 꼬리처럼 활짝 펼쳐졌다. 뒷다리와 엉덩이는 말보다 훨씬 펑퍼짐하고, 몸통은 비교적 길쭉했다. 어깨는 코뿔소의 등딱지처럼 몸통에서 불거져 나왔고,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길었다. 꼬리를 제외하고 몸 전체가 긴 회색 털로 덮였다. 뛰는 모습은 낙타와 비슷했다.
동료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는 산책 중인 사람들 사이를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쳐갔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 언어의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듣기에 매우 좋았고 자음보다는 모음이 많은 언어인 듯했다.
순식간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마치 영화를 볼 때 한 장면이 갑자기 다른 장면으로 바뀌는 식이었다. 고원지대 변두리의 넓은 평지에 공상과학 소설가들이 즐겨 쓰는 ‘비행접시’ 처럼 생긴 비행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사람들이 그 비행체에서 내리거나 타고 있었고 옆에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일종의 공항 터미널이었다.
불현 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들은 이미 수 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발’ 밑의 도로를 유심히 관찰했던 일도 기억난다. 언뜻 봐선 하나의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도로처럼 보였지만, 실은 여러 개의 대형 판석들을 이어붙인 것이었다. 판석들은 너무도 정교하게 절단된 상태로 맞물려 있어 이음새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원지대의 가장자리에서는 광활한 도시와 항구, 그리고 그 너머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우리는 도시 한 복판의 넓은 대로에 들어와 있었다. 도로 양편에는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주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걷거나, 소음이 전혀 없는 ‘원반 형태’ 의 작은 비행 플랫폼을 타고 지상 20cm 높이로 날아다녔다. 나다니기에 매우 즐거운 운송수단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다녔다.
도로 끝에 다다르니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상점 같은 것은 전혀 안 보였다. 대신 천장에 덮개가 씌워진 시장이 한군데 있었다. 그곳의 ‘진열대’ 들에는 사람들의 마음과 입맛을 자극할 각종 물품들이 놓여 있었다. 생선류 가운데 다랑어, 고등어, 가다랑이, 가오리 등이 보였다. 각종 육류와 채소류도 풍부했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시장을 가득 메운 꽃들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꽃을 손에 들거나 머리에 꽂고 다녔다. ‘쇼핑객’ 들은 원하는 물건을 그냥 집어갔다. 물건 값으로 돈이든 다른 무엇이든 내놓는 법이 없었다. 나의 호기심 때문에 우리 일행은 시장 한가운데까지 들어갔다. 물론 사람들의 몸을 그냥 뚫고 지나가는 방식이었다. 나로선 가장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모든 의문사항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답변이 주어졌다. “미셸, 저들은 돈을 사용하지 않아요. 모든 것은 공동체 소유거든요. 속이는 사람도 없어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공동생활이에요. 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자신들에게 가장 잘 맞는 훌륭한 법과 제도를 갖추고 준수하게 됐지요.”
대다수 사람은 키가 160~170cm이고, 피부는 밝은 갈색, 머리털과 눈동자는 검은색이었다. 지구의 폴리네시아 인종과 비슷했다. 백인들도 섞여 있었다. 신장은 약2m로 큰 편이고,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졌다. 백인보다는 수가 적지만 흑인들도 있었다. 흑인은 백인처럼 키가 컸고, 여러 종족이 있는 듯했다. 일부는 타밀족(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에 사는 종족)을 닮았고, 일부는 호주의 애버리지니족을 빼닮았다.
우리는 항구 쪽으로 갔다. 온갖 형태와 크기의 선박들이 정박 중이었다. 부둣가는 무 대륙 서남쪽의 노토라 채석장에서 운반돼온 거대한 돌들로 건설됐다고 들었다.
항구 전체는 인공적으로 건설됐다. 복잡하게 생긴 각종 기계 장비들이 작업 중이었다. 한쪽에선 배를 만들었고, 다른 쪽에선 하역 작업이 진행됐다. 수리작업 중인 기계도 있었다…….
정박 중인 선박의 종류도 다양했다. 18~19세기풍의 범선과 현대적 요트, 증기선과 초현대적 수소엔진 화물선 등이 보였다. 항만에 닻을 내린 거대한 선박들은 앞서 얘기를 들었던 반자기(anti-magnetic) , 반중력 수송선이었다.
이 수송선들은 보통 때는 다른 배들처럼 수면에 접한 채로 떠다녔지만, 수천t의 화물을 운반할 때면 수면 위로 부상한 채 70~90노트의 속도로 이동했다. 그런데도 전혀 소음이 없었다.
앞서 말한 ‘고전풍의’ 선박들은 무 제국의 식민지인 인도, 일본, 중국 등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배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진보가 덜 된 지역들이었다. 라티오누시의 설명에 따르면 무제국의 지도자들은 과학지식의 상당부분을 비밀로 유지했다. 예컨대 핵에너지, 반중력, 초음파 같은 과학지식이었다. 이런 정책으로 그들은 지구의 선주민들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했다.
화면이 ‘끊어지고’ 우리는 다시 착륙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시의 밤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시는 대형 구체 모양의 광원들에서 나오는 빛으로 밝게 빛났다. 사바나사궁전으로 이어지는 대로인 ‘라의 길’ (The Path of Ra)도 마찬가지였다. 대로를 따라 늘어선 기둥들에 부착된 발광 구체 덕분에 길은 대낮처럼 밝았다.
내가 들은 설명에 따르면 이 발광 구체들은 핵에너지를 빛으로 변환시켜 조명에 이용하는데, 수천 년 동안 작동한다고 했다. 솔직히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 졌다.
장면이 다시 바뀌었다. 이제는 낮이었다. ‘라의 길’ 과 왕궁 정원에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다. 모두들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흰색 구체가 매달려 있었다.
피라미드의 주실에서 명상을 하고 있던 사람(그 사람이 국왕이었다)이 방금 전에 사망하면서 군중이 몰려든 것이었다.
굉음과 함께 그 흰색 구체가 폭발하자 군중들로부터 기쁨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개 죽음은 슬픔을 유발하는 법이다. 나의 동료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셸, 우리가 가르쳐준 것을 잊었군요. 육체가 죽으면 성기체(영혼)는 해방됩니다. 저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왕의 죽음을 축하하는 것이죠. 3일 뒤 국왕의 성기체는 지구를 떠나 성령과 재결합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그는, 국왕으로서 여러 어려운 책무가 남아있었지만, 임종에 이르러 품행을 정갈히 하며 떠날 준비를 해왔어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타오에게 나의 건망증을 들킨 것이 부끄러웠다.
장면이 순식간에 다시 바뀌었다. 우리는 왕궁의 정면 계단위에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군중이 운집했다. 그리고 우리 옆에는 고위 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중 한 사람은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었다. 무 대륙의 차기 국왕이 될 사람이었다.
그에 관한 어떤 점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친숙한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분장을 해서 알아보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 순간 라티오누시로부터 대답을 들었다. “미셸, 바로 나에요. 다른 생애를 사는 중이죠. 나를 알아보진 못해도 저 육신 속에 있는 나의 성기체 진동을 미셸이 느낀 거예요.”
그랬다! 라티오누시는 비범한 현상 속에서 비범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현생에 존재하면서 전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신임 국왕은 고위 인사 중 한 사람으로부터 화려한 왕관(주교관[主敎冠]하고도 비슷하게 생겼다 저자의 설명에 따른 편집자 주)을 받아 머리에 썼다.
군중 속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나라이자 지구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는 무 제국에 새로운 왕이 등극했다.
군중은 열광했다. 심홍색과 밝은 주황색의 작은 풍선 수천 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케스트라’ 의 연주도 시작됐다. 적어도 200명은 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정원, 궁전, 피라미드 인근에 정박 중인 비행 플랫폼들에서 악기를 연주했다. 각 플랫폼마다 상이한 악기가 연주됐는데,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악기였다. 거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는 마치 거대한 스테레오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인들이 아는 음악과는 전혀 달랐다. 매우 특별한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플루트처럼 생긴 악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악기가 자연의 소리를 연주했다. 예컨대 바람 소리,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의 소리, 새의 노랫소리, 호수에 떨어지는 빗소리,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 등이었다. 그 모든 소리들은 매우 정교하게 퍼지도록 배치됐다. 예를 들어 정원에서부터 시작된 파도 소리가 사람들에게 다가와 머리를 지나쳐 대피라미드의 계단에 부닥치면서 끝나는 식이다.
오늘날 음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그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정교한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중과 귀족들과 새 국왕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마치 영혼의 심연에서부터 그 음악을 ‘체험’ 하는 듯했다. 나는 그곳에 계속 남아 더 오랫동안 음악을 듣고 싶었다. 자연의 노래에 흠빽 젖어들고 싶었다. 비록 성기체 상태로 심령권에 들어와 있었지만 그 음악은 나를 ‘관통해’ 흘렀고 나는 마법에 흘린 듯했다. 그 때, 우리가 즐기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군가가 내게 일깨워줬다. 그 장면은 사라졌다.
곧바로 국왕이 주재하는 임시회의 장면이 보였다. 참석자는 왕과 6명의 고문들로 제한됐다. 사안이 심각할 때만 그런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국왕은 이미 상당히 노쇠했다. 우리는 20년 뒤의 미래로 뛰어든 것이다. 모든 참석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들은 지진계의 기술적 가치를 토론하고 있었다. 나는 0.01초 만에 토론의 주제를 모두 파악했다. 마치 회의에 참석한 사람처럼 토론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고문 중 한 사람은 지진 측정 장비의 신뢰성이 없었던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지진계가 매우 정확하며 과거 무 대륙의 서쪽에서 발생한 첫 번째 지진 때도 똑 같은 모델의 지진계가 정확히 예측했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궁전이 바람속의 나뭇잎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왕이 벌떡 일어섰다. 크게 뜬 두 눈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어렸다. 고문 중 두 사람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궁전 밖 도시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장면이 바뀌고 우리는 다시 궁전 밖에 나와 있었다. 정원에는 보름달 빛이 가득했다. 세상이 다시 조용해졌다. 너무 고요했다. 우르르 하는 둔탁한 소리만이 저 멀리 도시 외곽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갑자기 시종들이 궁궐 밖으로 뛰쳐나가 사방으로 달아났다. 길바닥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박살난 채 쓰러져 있었다. 대로를 비춰주던 발광 구체들을 떠받치던 기둥들이었다. 국왕과 측근들은 신속히 궁을 빠져나와 비행 플랫폼에 올라타고 공항으로 날아갔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갔다. 공항 이착륙장의 비행기들 주변과 터미널 안팎은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서로를 밀치면서 비행기 쪽으로 달려갔다. 국왕이 탄 플랫폼은 다른 비행기들과는 떨어진 곳에 있는 비행기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왕과 측근들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미 이륙한 비행기들도 있었다. 그 순간 귀청을 찢는 천둥 같은 굉음이 땅속 깊은 곳에서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비행장이 순식간에 종이처럼 찢겨지더니 그 사이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방금 이륙한 비행기들이 불기둥에 휩싸여 폭발했다. 비행장에서 미친 듯이 달려가던 사람들은 갈라진 땅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이륙하지 못했던 국왕의 비행기가 불길에 휩싸이더니 결국 폭발했다.
그 순간, 국왕의 죽음이 신호였다는 듯 대피라미드가 갈라진 땅속으로 통째로 기울었다. 지표면의 균열은 고원지대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시시각각 틈이 넓어졌다. 대피라미드는 갈라진 틈의 가장자리에 잠시 걸려있는 듯했지만 곧바로 불기둥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우리는 항구와 도시가 함께 보이는 지점에 있었다. 도시가 대양의 파도처럼 굽이치는 듯이 보였다.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공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얼굴들이 화염 속에서 나타났다간 사라졌다.
귀청이 터질 듯 한 폭발이 일어났다. 땅속 깊은 곳에서 발생한 폭발이었다. 모든 ‘주변부’ 지역이 땅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무 대륙의 한쪽도 내려앉았다. 그 광활한 틈새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서 사바나사 고원 전역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마치 초대형 여객선이 빠르게 침몰하는 듯했다. 거대하고 강력한 소용돌이가 형성됐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1만 4,5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임을 알고 있었다 해도 그런 대재앙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끔찍했다.
대륙 전역을 신속히 돌아봤지만 모든 지역이 똑 같은 재앙을 겪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남은 펑야 지대를 덮쳐 수몰시켰다. 우리는 방금 분출을 시작한 화산 근처로 다가갔다. 근처에서는 바위들이 규칙적인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손이 용암의 흐름위로 바위들을 들어 올려 우리 눈앞에서 산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산이 형성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바나사 고원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 정도였다.
다시 그 장면이 사라지고 다른 것이 나타났다.
“우리는 지금 남미 지역에 가고 있어요, 미셸. 이곳까지는 아직 재앙이 미치지 않았지요. 이곳 해안지대와 티아쿠아노 항을 살펴볼 거예요. 지진의 첫 번째 진동이 발생하기 직전의 과거로 잠시 돌아갔어요. 무 대륙의 국왕이 측근들과 회의를 하던 때죠.”
우리는 티아쿠아노 항구의 부둣가에 있었다. 밤이었고 보름달이 비치고 있었다. 곧 달이 졌다. 동쪽하늘의 희미한 빛이 새벽을 알렸다. 만물이 고요했다.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에선 경비병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작은 야간 등이 비치는 건물 안으로 몇 명의 떠들썩한 술꾼들이 들어갔다. 여기에서도 발광 구체를 몇 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운하 상공을 날아갔다. 몇 척의 배가 내해(지금의 브라질) 쪽을 향해 운항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어느 멋진 범선의 선교(船橋) 위에 내려앉았다. 부드러운 서풍이 뒤쪽에서 범선을 밀어주고 있었다. 범선은 수많은 선박들로 복잡한 운하를 빠져나가기 위해 작은 돛을 사용했다. 갑판에는 세 개의 돛대가 있었다. 높이가 70m 정도 되는 상당히 현대적인 스타일의 돛대였다. 선체의 형태로 보아 넓은 바다에서는 상당한 속력을 낼 수 있을 듯했다.
잠시 후 우리는 커다란 선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10여 개의 침대에서는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3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두 명만이 깨어 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무 대륙에서 온 사람인 것 같았다. 그들은 탁자에 앉아 게임에 몰두했다. 마작 게임인 듯했다. 그 중한 사람에게 관심이 쏠렸다. 동료보다는 약간 나이가 많아 보였고, 긴 검은 머리를 뒤로 벗어 붉은 수건으로 묶었다. 나는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그에게로 이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 친구들과 함께 그의 위에 겹치듯이 내려앉았다.
그의 몸을 관통해 지나치는 순간 나의 온몸이 감전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랑의 감정이 북 받쳤다. 그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일체감을 느꼈다. 나는 거듭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쉽게 설명해 줄게요, 미셸. 이 남자 속에서 당신은 자신의 성기체와 재결합됐어요. 이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의 여러 전생 중 하나에요.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 관찰자로 와 있어요. 이곳의 삶을 다시 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그러니 개입하지 마세요.”
나는 안타까웠지만 친구들을 따라 선교로 돌아갔다.
갑자기 서쪽 멀리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잠시 후 폭발음이 가까워졌다. 서쪽 하늘이 빛나기 시작했다. 훨씬 더 날카로운 폭발음이 더 가까이에서 들리면서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경 30km 정도의 서녘 하늘이 밝게 타올랐다.
운하와 항구에서 비명과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급하게 달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선원들이 선교로 뛰어올라왔다. 그들 중에는 나의 성기체를 ‘입고 있는’ 선원도 있었다. 그 선원 역시 동료들처럼 공포에 휩싸였다. 그 겁에 질려 있는 ‘나 자신’ 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
도시 외곽의 화산폭발 지역에서 빛나는 구체 하나가 빠른 속도로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맞아요. 우리의 우주선이에요.” 타오가 설명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거예요. 승무원은 17명인데,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겁니다. 하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할 거예요. 지켜보세요.”
땅이 요동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해변 인근의 바다 속에서 갑자기 세 개의 화산이 치솟더니 다시 파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로 인해 발생한 약 40m 높이의 해일이 지옥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내며 해변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해일이 도시에 도달하기 직전, 우리 발밑의 땅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항구 도시 시골 지역 등 땅덩어리 전체가 급격히 솟구치면서 해일의 공격을 피했다. 거대한 동물이 은신처에서 나온 뒤 기지개를 펴며 등을 활처럼 구부리는 모습이 연상됐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높이 올라갔다.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우리들에게까지 들려왔다. 도시 전체가 승강기처럼 솟아오르자 사람들은 겁에 질려 미친 듯이 소리쳤다. 땅덩어리의 상승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선박들은 바다에서 날아온 바위들에 부딪쳐 산산조각 났다. 우리가 남기고 떠난 그 선원이 글자 그대로 분쇄되는 광경을 나는 지켜봤다. 나의 ‘자아들’ 중 하나가 지금 막 근원으로 돌아간 것이다.
지구가 스스로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려는 듯했다. 서쪽에서 두터운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오면서 도시는 사라졌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과 화산재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내 마음에는 두 개의 단어가 떠올랐다. ‘장엄하다’ 와 ‘종말론’ 이었다.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동료들이 내 주위에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은회색 구름이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우리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러곤 티아우바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기다리는 육체로 신속하게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은줄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처럼 거대해졌던 육체는 우리가 다가갈수록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악몽 같은 대재앙을 겪었기 때문이었을까. 내 영혼의 눈에는 ‘황금빛’ 행성의 각종 색깔들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내 육체에 닿아있던 손들이 떠나가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내 친구 타오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주 좋아요. 고마워요. 아직도 대낮이라니 놀랍군요.”
“물론 아직도 낮이에요, 미셸.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5~6시간정도?"
“아뇨.” 타오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대략 15분이에요.” 말문이 막혔다. 타오와 비아스트라는 폭소를 터뜨리며 내 어깨를 한쪽씩 잡고 나를 ‘휴양실’ 에서 데리고 나갔다. 라티오누시도 따라 나왔지만 그들만큼 재미있어 하지는 않았다.
9장
‘이른바’ 현대 문명
첫댓글 침몰한무대륙의 살아서도망치지못한마지막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