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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마 붓다 스크랩 제 7 장(Chapter Seventh)
리알레토 추천 1 조회 168 16.04.13 11:2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7 (Chapter Seventh).

 

 

여러분들 인생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나의 인생에서도 고타마(Gautama)였을 때에도 전쟁이 많았습니다. 우리 부족은 토속 부족이 아니었으며, 조상 때에 다른 지역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습니다. 당연히 주변 지역과의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 샥카(Shakya)부족은 평화를 사랑하였으나 주변 상황이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많이 볼 수밖에 없었고, 전염병이나 돌림병도 많았으며, 유랑하는 백성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커다란 제국도 아니었으며 커다란 왕국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나 후대에 기록자들이 그렇게 확대 해석해서 그렸던 것입니다.

 

사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늘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었으나 여러분들 표현대로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관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에도 수행을 하던 구루들(Gurus)이 많았으며, 고행을 하던 수행자들이 많았습니다. 나도 수행을 하던 시절에는 인도 전 지역을 다녔었고 유명한 구루 밑에 들어가서 수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것처럼 거창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수많은 수행자들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화려하지도 않으며, 보이는 것이 그저 그렇다는 것입니다. 단지 내면의 변화가 세상을 뒤바꿀 정도로 바뀐다는 사실을 외향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는 고요한 평안과 평화가 찾아왔으며, 더 이상 어둠과 같은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동안 마음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이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진 것입니다. 오직 밝은 빛만이 내면을 비추었으며, 더 이상 폭풍이나 태풍과도 같았던 마음의 흔들림은 찾아오지 않았으며,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고 투명한 고요함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Lifes)이 보였으며, 하나하나의 인생(人生)들이 존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였으며,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아름다운 교향악처럼 보이면서 파노라마가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나의 인생들이 되었으며, 하나의 우주가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거대한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회전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작은 곤충 속에도, 작은 들풀 속에서도 인생이 같이하고 있음을 보았으며, 서로의 인생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가 되어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내가 찾은 평안과 평화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인생들에게로 전파되어 나간다는 것을 알았으며, 하나의 빛이 어떻게 전도체가 되어 전체의 등불들을 밝힐 수 있는지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면에 찾아온 평화는 두 번 다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괴롭혀 오던 모든 번뇌(煩惱)들이 평화가 찾아오면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나는 내면의 자아(自我)와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수행을 붙들고 있었을 때에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오히려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을 너무 과대 포장하여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화려함만을 뒤좇고 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은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격식이나 형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을 위한 깨달음의 길을 가고 계십니다. 그러면 결코 깨달음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내면의 자신과 싸워서 승리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괴롭히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보이는 장소와 자리도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현대화된 도시에서는 소음공해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사실 그 어디라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조용한 골방이든 아니면 시장(市場) 한 가운데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며, 마음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싸움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전쟁에 임하는 여러 가지 유형의 전술전략들이 있겠지만 이미 마음은 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회피하려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만만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거인 골리앗(Goliath)과 맞서는 소년 다윗(David)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꼭 그런 형국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년 다윗(David)이 거인 골리앗(Goliath)을 작은 조약돌 하나로 쓰러뜨린 것처럼, 거대한 마음이라는 거인도 작은 바람으로 쓰러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해님과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기는가의 내기에서 강한 폭풍으로도 벗기지 못한 외투를 해님의 따사로움이 벗겨내어 내기에 이겼다는 우화(偶話)처럼, 인생에 있어 마음과의 대결에서는 강한 창이나 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볼품없지만 용기(勇氣)와 사랑과 진실(眞實)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온전히 비우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수행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용맹정진(勇猛精進)은 몸을 해칠 수 있습니다. 동안거(冬安居)나 하안거(夏安居)와 같은 격식과 형식으로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산들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기운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에어컨(air conditioner)의 강한 냉기보다는 숲속이나 강가에서 부는 산들바람이 더 시원하고 상쾌한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들이 치이고 차여서 그 어디에서도 평화를 찾지 못하시고 계신 것은 사람이나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마음이 평화로 와야 보이는 세상도 평화로운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평화스럽지 못하고 번잡하며 시끄러운 것은 인생들의 마음속이 그렇기 때문인 것입니다.

 

평화의 빛을 가지고 있는 인생 하나가 전쟁터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잦은 전쟁과 전염병과 가난과 죽음 앞에 내팽개쳐졌던 인생들에게 내가 찾은 평화를 찾아주고자 애썼습니다. 외부의 보이는 세상은 어지러움과 번잡스러움으로 평화가 깨지고 질서가 무너졌지만 그것을 조장(助長)했던 마음속의 분쟁(分爭)들과 전쟁들을 모두 평화와 자비의 기운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평화의 빛, 자비의 빛을 통하여 중생들의 마음을 치유하였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평화와 자비를 심었던 것입니다. 나는 평화라는 씨앗을, 자비라는 씨앗을 중생들의 마음 밭에 파종(播種)하였던 것입니다.

 

마음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혼(soul)과 연합해야하고 영(spirit)과 연합해야 합니다. (soul)과 연합하는 것은 쉽지 않은 부분인데, 지금까지의 인생들이 물질세계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것입니다. 인생들은 감정과 돈의 기운에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은 돈에 의해 모든 구조가 지배당하고 있어서 돈이 없이는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물물교환은 옛 방식이지만 지금 사라져 버렸고 현금(cash)과 카드(card), 어음(bill), 수표(check), 채권(bond) 등이 인생전반(人生全般)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생겨난 우상(偶像)이라 할 수 있지요.

 

지금의 종교단체들도 돈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음이니, 돈을 빼고서는 지금의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주 강력한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데, 돈이 없다면 사회구조가 무너져 내리겠지요. 현상계(現象界)의 충격보다는 여러분들의 무너져 내린 마음들의 충격이 매우 클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에서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도시를 떠나 전원(田園)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정글 오지(奧地)에 들어가거나 티베트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의 돈과는 친근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삶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넘쳐남과 풍족함은 인생들이 경험해야 되는 과정이지만 자신의 욕망과 욕구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만족하고 충족할지는 모른다는 것인데, 마음은 쌓고 쌓아도 항상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세상의 누구를 만나보아도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기 보다는 더 올라가고, 더 쌓으려고 한다는 것인데,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처럼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물질욕구에서 나오는 탐욕이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만족을 할까요? 인생을 종료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을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켜서 멸망의 길로 진입시키고도, 물러설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mind)을 혼(soul)이 주관하고 있는데, 과연 혼()과 타협할 수 있을까요. 타협은 물질에 안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입니다. 물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식으로 마음을 죄어 옵니다. 불안하게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이용하여 물질을 떠나게 되면 즉시 죽는 것으로 이끕니다. 마음은 절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물질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분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마음은 끝없이 움직이며 생각들과 환영들을 만들어 내면서 여러분들이 영(spirit)을 깨우는 노력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식을 깨우려는 노력들을 모두 수포(水泡)로 돌아가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조정하여 물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끊으면 여러분들이 죽는 것처럼 프로그램 하였다는 것입니다. 2천년을 얼마 앞둔 여러분들은 컴퓨터가 숫자를 인식하지 못하여 사용불능 상태가 된다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불능(不能)이 되었나요.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기우(杞憂)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콜럼버스(Columbus)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나가자마자 대양의 끝에서 끝없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고 하였지만 결과는 신대륙 발견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인류들이 종말론(終末論)을 이야기하고 또 받아들이면서 집단 패닉(panic)상태에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종말(終末)은 왔나요? 아니면 아직 더 남았나요?

 

우리는 미래(未來)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억울하신가요? 아니면 부러우신가요? 미래를 안다는 것은 아는 미래가 왜곡되지 않도록 책임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욕망(慾望)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공개하여도 마음에서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떨까요? 마음이 미래를 보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나타난 미래에 펼쳐진 모습들 속에서 개인의 이득과 욕망을 채우려는 인생들이 있을 것이고, 종말(終末)과 관련 되었다면 준비하거나 포기하거나 두려움에 쌓이거나 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영화(movie) 등을 통하여 종말을 바라보는 마음들을 보았습니다. 바로 두려움과 공포(恐怖)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상태로는 어떤 형태의 재난을 대비하고, 준비하려고 하는 마음보다 두려움에 휩싸여서 모두 분열(分裂)되고 분리(分離)되는 것을 허용(許容)하는 그러다 결국 모두 사라지는 그런 상태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선이 와서 데려간다, 자신은 빛으로 바뀐다, 나머지는 모두 멸망한다는 엉뚱한 형태의 메시지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집단적인 어둠의 기운을, ()의 기운들이 불러들이는 대표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 나타나는 현상(現想)들에 마음들이 집단적으로 흔들리고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우치며,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평화는 사라진지 오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죽음의 체험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물론 육체의 죽음은 아닙니다. 생각의 죽음, 마음의 죽음을 표현한 것인데, 여러분들의 마음들은 움직임이 없으면 그것을 참지 못하거나 견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끝없이 생각을 일으키고 마음을 채찍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과, 그 생각들을 멈춰 세우게 하고 꼬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계속해서 흔적들을 지워나가기 바랍니다. 생각의 속도를 뛰어 넘어서 지워버리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음이 원하는 데로 들어주었던 부분들을 이제는 거부하고 수용하지 않는 상태로 전환하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습니다. 마음은 이러면 죽는다고 여러분들을 유혹하고 협박하겠지만 그 장벽을 허물고 넘어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 지운다고 하여도 죽지않는다고, 세상에서 도태(淘汰)되어 소멸되지 않는다고, 물질을 떠나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마음에서 모두 놓아버리라고 여러분들에게 주문(呪文)합니다. 결단코 죽지 않습니다. 내일 무엇을 먹을까? 내일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 예수의 이야기를 새겨들으세요. 여러분들 마음 깊은 속에 잠들어 있던 그리스도의 영이 깨어 일어나 여러분들을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닐 도날드 윌시(Neale Donald Walsch)’가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마지막 심정으로 벼랑 끝에 서 있었을 때, 지금까지 자신을 이끌던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내면의 중심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을 때에, 나와의 만남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들은 절대, 영의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물질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회유(懷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유혹을 뿌리치고 마음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실체와 만나십시오. (spirit)은 여러분들을 끈질기게 참고 참으며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spirit)은 초월자아(超越自我)와 연결되어 있어서 빛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navigation)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spirit)은 여러분들의 내면의 신으로서 물질의 인생을 영혼의 인생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가면서 자신의 빛을 가슴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빛이 허약해서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점점 밝아지면서 마음을 온통 밝은 빛으로 채울 것입니다. 평화는 이렇게 찾아옵니다.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이런 마음은 종말(終末)과 같은 물질적 현상들에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평화의 기운을 방사(放射)시키는 것입니다.

 

지금은 물질세계에 집중하는 인생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영혼의 길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마음이 지향(志向)했던 목표도 새롭게 다시 정립(定立)해야 되는 때인 것입니다. 시야를 넓혀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점검해야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출세였나요? 아니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나요? 아니면 건강하게 사는 것인가요? 아니면 취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요? 배우자를 잘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인가요? 여러 형태의 인생의 목표들이 있어서 새해에 소원들을 비셨을 텐데, 잘 성취되기를 바랄까요.

 

우리 대사들(Masters)도 목표들이 있습니다. 대원인자(大元因子)의 뜻이 지구 행성에 펼쳐지는 것에 기쁘고, 감사한 봉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인류들 또한 각각의 인생들이 설계한 계획대로 잘 경험하고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 길에서 영혼의 길을 발견하여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빛의 일꾼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들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면서 적극적인 도움과 봉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목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부터는 새롭게 설정하여야 하는데, 영혼을 깨우기 위한 인생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왜일까요. 혼자서 극락(極樂)에 가기 위해서요. 그렇다면 산속에 들어가시거나 동굴 속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인류들을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깨달았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들의 깨어남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진실을 얻었다면 그는 그 진실을 알리는 이가 될 것입니다. 진실을 알리는 것에는 어떤 대가도 없이 봉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진리(truth)를 알고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인류들을 위한 봉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truth)가 아닌 것이고, 깨달음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도 붓다(Buddha)로서, 그리스도(Christ)로서 많은 선언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것이 봉사로서 실천되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모양만 그럴싸하게 흉내 낸 가짜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봉사(奉仕)라고 표현하는 것은 예수와 내가 걸었던 길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흉내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따라 그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했고,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인류들의 숫자 또한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들이 개발되어 한 마디로 지구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어떤 방법과 방식이 맞는지를 스스로 찾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했던 모습들 속에서 참조할 것과 비교할 것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현명(賢明)하고 지혜(智慧)와 사랑이 넘치는 인생이라면 스스로가 답을 찾아서 행동하게 될 것이기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 프로그램을 관리하면서 그때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드리고자하는 메시지들이 있는 것인데,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소중하게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때입니다. 물질에서 경험하며 생활했던 제1막의 인생이 종료되고, (spirit)을 찾아 영혼의 길을 가야되는 제2막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이들을 고려하여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이미 밝힌 것처럼, 스스로들이 자신에게 주어졌던 인생들을 재점검하여 다시 편집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인생에서 영혼의 인생으로 다시 조정해야 되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면 중심의 신()인 영(spirit)은 쉽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스무고개 하듯이 단계들과 절차들이 있어서 그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지만, 의식의 죽음을 불사(不死)하는 그런 용기와 간절함이 있다면, 그 믿음이 바탕이 되어 굳게 닫혀 있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영(spirit)과 조우(遭遇)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련단체나 수행기관에 오래 머물렀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전국의 사찰에 소속된 스님들과 수행단체의 회원들은 모두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시()에도 있는 것처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워 비바람이 불었나보다, 라는 표현을 보면 여러분들의 머리 위쪽 정수리에 있는 천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는 연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실천들이 있어야 하겠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어렵다고 해놓았기에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한 번의 인생으로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700세를 살아보아야 인생을 좀 안다는 옛 속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몇 번의 인생을 살아야 하겠는지요. 이천 오백년 전의 고타마(Gautama)는 몇 번의 생이었을까요? 진화하는 인류의 마지막 인생이었습니다.

 

행성 지구의 문명주기가 약 5,200년 정도 되는데, 한 주기의 인생을 살면 깨달음의 기회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잘 잡느냐 하는 문제와 부딪히게 되겠지요. 여러분들의 역사 속에 스스로 깨달은 이는 고타마(Gautama)가 한 주기 속에서 나왔으니 깨달음의 길이 쉬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세월동안 인생을 살다간 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러니 역시나 어려운 것입니다.

 

역할과 사명을 위해서 태어난 인생들은 제외하였습니다. 지난 과거의 상황들을 정리해 드렸는데, 실망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때는 열매를 거두는 수확의 계절인 우주적 가을의 주기에 행성지구가 진입하고 있어서 인생의 환생(還生)을 종료하고 다음 주기로 넘어가려는 영혼들이 많이 태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인생에서 깨달음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인생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단에서는 마무리하는 주기를 맞이하여 인생의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기회를 가질 인생들을 집중하여 환생(還生)시킨 것입니다.

 

자신의 영(spirit)인 초월자아(超越自我)와 만나서 잊어버렸던 기억들을 회복하고 우주의 정보들을 공유하는 그런 인생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설령 자신이 그런 자격을 갖추고 태어났다 해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만큼 뼈를 깎는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완성시킨 인생들은 의식이 열려서 우주의 네트워크와 소통을 하여 정보 공유도 하고 존재들과의 소통도 자연스럽게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이 열려서 오직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와 사랑(love)만을 가지게 되니, 주변을 그렇게 변화시키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인생들을 집중 관리하고 있으면서 빛의 길을 스스로 잘 가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단(Hierarchy)이 약속한 부분들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들을 잘 마무리하시고 새 시대를 준비하는 제 2막의 인생들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들을 하시기를 부탁합니다. 빛의 길을 선택한 인생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평화(平和)와 자비(慈悲)의 빛이 여러분들을 빛의 길로 안내하기를 바라면서 영단(靈團)의 대사(大師)들과 함께 힘찬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나는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마르테우찌(Marteuzz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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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2.06 17:07

    첫댓글 초월자아인 영과의 소통을 이루어내면 영에 의해 빛의 길에 진입하게 되면서 그리스도, 붓다로서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들에게 주어진 이 기회들을 잘 활용하여 빛을 깨우기를 바랍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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