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3/08/01/202308010900141538.html
원문출처_사단법인.사회적기업 행복한아침독서_월간그림책181호_당신을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_따뜻한 안부, 시니어 그림책 4
기억상자
조애너 롤랜드 글 / 테아 베이커 그림 / 신형건 옮김 / 40쪽 / 15,000원 / 보물창고
책 표지의 선명한 빨간색 풍선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바람 부는 언덕의 풀밭에서 한 소녀가 날아가는 풍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 풍선은 놓아버린 건지 아니면 놓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책장을 넘기고 “풍선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 꼭 잡으려고 애썼다”는 글을 통해 실수로 놓쳤다는 걸 알았습니다.
풍선은 바람을 타고 나무보다 높이, 구름 위로, 볼 수 없는 곳까지 멀리 날아갑니다.
그런 풍선 때문에 슬프기는 하지만 언제든 다른 풍선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슬프지는 않다고 위로합니다.
책 제목인 『기억 상자』를 의식하고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니 풍선의 선명한 빨간색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과 대조됩니다.
언덕의 묘지에 꽃을 바치는 소녀를 보고 누군가와 이별함을 알았습니다.
새삼스레 ‘기억’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기억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입니다. 소녀의 기억도 떠난 ‘당신’을 다시 만지거나 직접 볼 수 없으니 아무리 그리워도 생각으로만 머릿속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잊지 않으려고 억지로 붙잡고 있을 수도 없고, 반대로 싫다고 강제로 지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가끔은 정확하지 않기도 하고, 서로 섞여버리거나 왜곡되어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러다 보면 ‘당신’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소녀도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마주합니다.
그럴 때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남은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절망을 안겨줍니다. 떠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일 경우는 더욱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슬픔과 그리움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이런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이별에 대한 저마다의 사연에 따라 각자 견뎌내야 하는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떠난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모두 버림으로써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합니다.
노년에 겪는 배우자의 사별은 이 방법이 남은 사람이 홀로 잘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여 이사나 집수리를 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억지로 잊고 지우기보다는 함께한 추억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을 꺼내 보며 기억을 불러내기도 합니다.
‘애도에 관한 책’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이별 후 기억에 대해 후자의 방법으로 이야기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겪은 화자인 ‘나’는 ‘당신’이 떠나버린 지금 가끔은 여전히 함께 있어서 당신을 꼭 안아주고 부둥켜안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워하는 절절함이 함께 마음 깊숙이 전해집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기억이 희미해져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잊게 된다는 사실에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나는 지금 기억 상자를 만들어서 당신과 같이 갔던 곳들의 사진이나 사소한 기념품 등을 넣어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여행한 곳을 찾아갑니다.
어떤 날은 잘 지낼 수 있어 웃기도 하고 미소도 짓지만, 다른 날엔 당신이 떠나서 슬퍼하는 걸 멈출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당신을 기억나게 해서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날 때는 가족들과 그 기억 상자를 열어 보고 당신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당신이 영원히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기억의 힘은
내가 다시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태껏 안 해보았던 롤러코스터를 처음 타 보게 하고,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하게 하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게 하는 등 일상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됩니다.
사랑하는 당신을 떠나보낸 고통과 절망 속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결국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을 통한 기억이라는 사실을.
책 속의 그림은 파스텔톤의 편안한 컬러와 인물의 울고 웃는 표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화려하지 않은 일러스트로 잔잔하게 보여주어 애도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다시 표지로 돌아와 제목을 손으로 만져보니 『기억 상자』 네 글자는 살짝 도드라진 질감으로 표현되어 눈을 감고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기억은 그런 것 아닐까요?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의 화자인 ‘나’는 어느새 ‘내’가 되고, 떠나버린 ‘당신’은 각자의 곁을 떠난 소중한 누군가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기도, 배우자이기도, 혹은 친구이기도 한 당신이 제게는 ‘엄마’였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제게는 당신을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기억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상자에 담긴 기억은 당신과 함께한 추억 그대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당신과 함께한 기억들이 늘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해서 남아있는 기억과 남아있어서 소중한 기억을 잘 간직하겠습니다.
손효순_어른그림책연구모임 활동가, 『어른 그림책 여행』 공저자 / 2023-08-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