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상계에 태어나 버리면, 동시에 저 세상의 기억을 잊어서,
기억하고 있는 의식(意識)은 100% 잠재되어 버린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 양친의 교육, 사상 등에 의해서
점점 성장하여 감에 따라,
표면에 나오는 의식이 10% 정도까지는 성장하여 간다.
잠재되어 있는 90%의 의식 속에는,
전생윤회(轉生輪廻)의 일체가 기억되어 있다.
반대로 저 세상, 실재계(實在界)에서는,
(잠재의식의) 90%가까이가 표면의식(表面意識)으로 나오고,
잠재의식(潛在意識)은 10%정도로 되어 있다.
잠재의식이 줄어든다는 것은, 성장인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調和度)에따라
잠재의식이 표면화하는 정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으로 타인과 자유롭게 의지가 통하도록 되어간다.
나의 수호령(守護靈) 포와이 신 포와이 신포오는,
“혼의 진화에 따라서,
광명(光明)으로 충만해지고,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 서서히 표면으로 나온다.”
라고 말한다.
그것은 신의 마음과의 조화등에 의해,
생활하는 환경의 영위기(靈圍氣)가,
정묘하게 변해가기 때문이다, 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2억 년 전에,
다른 조화된 천체로부터,
이 지상계를 조화시키기 위해 이동해 왔던 것이다.”
또 다른 지도령인 아가샤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는, 평화로운 불국토(佛國土), 낙원이었는데.
현대인의 과거세도 그 체험을 하고 있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눈먼 인생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하고,
보다 넉넉한 혼을, 스스로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만들어내고,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하는’
자애에 찬 사회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전생윤회(轉生輪廻)에서 만들어왔던
나쁜 성격, 부조화한 업(業)을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신의 자식으로서,
이 지상계의 동물, 식물, 광물로 하여금,
지상의 조화에 역할을 다하도록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진화론에 대해서 말해보자,
인간은 아메바로부터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설도 있다.
북경원인(北京原人), 남방제도에서 발굴된 두개골을 보고
인간의 진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아메바설에 대해서 말하면 아메바 그 자체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아메바를 만드는 데에는 아메바의 원(元)이 있어야 한다.
수소(水素)나 헬륨 등, 100여 종의 원소에 대해서,
그러면 왜 원소는 존재하는가,
하는 점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의 자연과학은, 하나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그 벽이란 물질의 원(元)인 원자(原子), 소립자(素粒子)에 관한 상태는 설명 가능해도,
그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
그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양심있는 과학자는,
그 에너지를, 신불(神佛)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자는 빛의 입자로 구성되고,
빛의 입자는 영자(靈子)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여도.
이것은 아직 객관적으로는 증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영자(靈子)와 그 존재에 대해서 설명해 가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북경원인(北京原人)과 고대인(古代人)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만약 인간이 원숭이의 진화라고 한다면
진화 도상의 유인원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도상의 유인원은, 현재는 없다.
북경원인이나 남방제도(南方諸島) 원시인의 두개골의 대부분은,
인간과는 다른 유인원이다.
인간의 두개골, 골격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이 없다.
백만년 전도,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고,
장래는 원숭이의 진화가 아니라는 것이 한층 더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진화론이 옳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 앞에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변해 가는 과정의 인간이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문명 문화의 진화의 과정을 들어,
인류에 있어서도 진화의 과정이 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여도 할 수 없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의 이집트의 문명이나,
잉카의 문명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잉카의 경우,
고양이과 동물을 모티브로 한 상(像)이나,
힘 찬 토기, 금, 은, 동 등의 장신구,
웅대한 석조 신전, 대규모의 관개공사, 계단식 밭의 조성,
이같은 기술과 경제의 발전은 지방적이기는 하나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도, 그 신비가 풀리지 않는
1,300미터에 걸친 사크사와 만의 방벽,
접착제를 쓰지 않고,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석축(石築)은 지금도 끄떡없다.
돌과 돌의 접착부분은,
얇은 면도칼의 칼날조차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밀착돼 있어서
몇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이집트의 문명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특히 회화(繪畵)에 있어서는,
일상생활의 모든 정경이 살아 있는 듯 그려져,
몇천 년의 세월의 흐름도 잊게 할 만큼 신선한 매력에 차 있다.
당시의 이집트 사람은,
정신적으로 매우 뛰어났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첫째로 인간에게는 내세가 있으며,
그래서 다시 현세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저 거대한 피라밋은,
인간이 죽었다가 현세로 다시 태어났을 때,
그것을 사용해서, 이집트 문명을 보다 번영시키기 위해,
필요한 재보(財寶), 자료를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다.
4,000년 이상이나 지난 기제의 쿠프왕의 피라밋은,
밑변의 한 변이 230미터, 높이가 146.5미터나 된다.
석회석의 무게는 평균 2.5톤, 개수로는 230만개에 이른다.
2.5톤이나 되는 절석(切石)을, 100미터 넘는 높이까지 운반해 올린 방법은,
지금도 불명이라고 말하여진 정도로.
당시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는지 알만한 일이다.
쿠프왕의 피라밋은 일설로는, 2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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