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나기
시그나기는 ‘피난처’를 뜻한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은 ‘사랑의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백만 송이 장미’의 노래 주인공인 조지아의 국민 화가 피로스마니의 (1862 ~ 1918)고향이라서 별명이 생겼다고.
사랑하는 여인의 집 앞에 장미꽃 백만 송이를 가져다 놓고 사랑을 고백했다는 이야기에 라트비아의 작곡가가 노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을 다 팔아 꽃을 바쳤지만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그나기가 사랑의 마을인 까닭은 결혼을 손쉽게 할 수 있어서라고. 새벽에도 결혼식이 열릴 정도라니 결혼에 대해 아주 특별한 아량이 있는 것 같다.
시그나기는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이었다. 경사진 골목으로 좁은 가게들이 있고, 곳곳에 동상들이 보였다. 박물관 뒤편으로 가면 진정한 시그나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멀리 코카서스 산맥을 병풍처럼 두른 성 조지 교회와 마을이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체코나 오스트리아의 어느 산등성이 마을 같은 느낌이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한 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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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베수도원
시그나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녀 니노의 혼이 살아 있는 보드베 수도원이 있다. 쭉쭉 뻗은 싸이프러스가 수도원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더 특별하게 보였다. 넓고 잘 가꾸어진 정원뿐만 아니라 주변을 감싸는 경사지 풍경도 아름다웠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니노는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부모가 요르단으로 선교를 떠난 후 니노는 기독교인에 의해 자랐다. 어느 날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따르게 되었다고.
니노는 자신의 혼을 바친 전도를 마치고 보드베 골짜기로 들어가서 347년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조지아 왕국은 니노에 의해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는데 당시 왕인 미리안 3세(284-381)가 니노의 무덤 위에 지은 작은 성당을 지었다. 이 성당이 바로 보드베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니노는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기적을 행했는데 미리안3세의 부인인 나나왕비도 낫게 해주었다고.
1924-1991년까지 소련은 이곳을 병원으로 사용했고 소련이 붕괴된 후 재정비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