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평화와 위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오 10,7-13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의 레위 지파 출신이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본디 이름은 요셉이며(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콜로 4,10 참조)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오늘의 전례에서)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키프로스 출신으로 본이름이 ‘요셉’인 바르나바 사도의 성품에 대하여 성경은 짧지만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 후덕할뿐더러 신앙으로 뜨거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뵙지는 못하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였습니다. 이러한 그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고(사도 4,37 참조)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에 동참하였으며, 독자적인 선교 여행으로도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바르나바 사도는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시대’에 사도로서, 또한 선교사로서 산다는 것의 모범을 보여 준 사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르나바 성인은 사람들을 품어 주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데 각별한 능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본이름 대신에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바르나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생각합니다(사도 4,36 참조). 그러한 까닭에 바르나바 사도는 ‘우울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도 일컬어집니다.
복음을 온몸으로 전하는 사람이란 결코 아집이나 우월감 또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자가 아니라, 만나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격려하고 포근하게 안아 주는 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바르나바 사도처럼, 주님께서 만나도록 섭리해 주신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위로의 자녀’가 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명이라 하겠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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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무엇이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사건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걱정거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의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죽음이란 것도 본래 그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이것이 진정으로 두려운 것이었다면 가톨릭 안의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지 않았겠지요.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모두 죽음 앞에서 당당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무섭고 두려울 것이라는 우리들의 선입견 그 자체가 아닐까요?
*<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쉴 줄만 알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터 없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아무 쓸모가 없다(헨리 포드)>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오 10,7-13)
行って、『天の国は近づいた』と宣べ伝えなさい。
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家の人々がそれを受けるにふさわしければ、
あなたがたの願う平和は彼らに与えられる。
もし、ふさわしくなければ、その平和はあなたがたに返ってくる。
(マタイ10・7-13)
As you go, make this proclamation: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As you enter a house, wish it peace.
If the house is worthy, let your peace come upon it;
if not, let your peace return to you.
(MT 5:13-16)
聖バルナバ使徒の記念日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ノヒガ コジョ バダッスニ コジョ チュオラ。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ク チビ ピョンワル ヌリキエ マッタンハヨン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ノヒエ ピョンワガ ク チベ ネリゴ、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マッタンハジ アヌミョン ク ピョンワガ ノヒエゲ ドラオル コシダ。
(마태오 10,7-13)
行って、『天の国は近づいた』と宣べ伝えなさい。
잇테 텐노 쿠니와 치카즈이타토 노베츠타에나사이
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타다데 우케타노다카라 타다데 아타에나사이
家の人々がそれを受けるにふさわしければ、
이에노 히토비토가 소레오 우케루니 후사와시케레바
あなたがたの願う平和は彼らに与えられる。
아나타가타노 네가우 헤에와와 카레라니 아타에라레루
もし、ふさわしくなければ、
모시 후사와시쿠 나케레바
その平和はあなたがたに返ってくる。
소노 헤에와와 아나타가타니 카엣테쿠루
(マタイ10・7-13)
As you go, make this proclamation: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As you enter a house, wish it peace.
If the house is worthy, let your peace come upon it;
if not, let your peace return to you.
(MT 5:13-16)
Memorial of Saint Barnabas, Apostle
MT 5:13-16
Jesus said to his disciples: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salt loses its taste, with what can it be seasoned?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bu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foot.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set on a mountain cannot be hidden.
Nor do they light a lamp and then put it under a bushel basket;
it is set on a lampstand,
where it gives light to all in the house.
Just so, your light must shine before others,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glorify your heavenly Father.”
2024-06-11「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聖バルナバ使徒の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聖バルナバ使徒の記念日です。
み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み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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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バルナバはキプロスのレビ族出身です。バルナバは「慰めの子」という意味で、本名はヨセフです(使徒4・36参照)。彼は聖マルコの従兄弟でもあります(コロ4・10参照)。「聖霊と信仰に満ちた人」(使徒11・24)として称賛される聖バルナバ使徒は、ユダヤ教から改宗した後、自分の財産を売り、初代教会共同体に捧げ、他の使徒たちと共に熱心に宣教しました。伝承によれば、聖人は60年頃にキプロスのサラミスで殉教しました。
(今日の典礼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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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タイによる福音
<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そのとき、イエスは使徒たちに言われた。10・7「行って、『天の国は近づいた』と宣べ伝えなさい。8病人をいやし、死者を生き返らせ、重い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を清くし、悪霊を追い払いなさい。ただで受けたのだ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9帯の中に金貨も銀貨も銅貨も入れて行ってはならない。10旅には袋も二枚の下着も、履物も杖も持って行ってはならない。働く者が食べ物を受けるのは当然である。11町や村に入ったら、そこで、ふさわしい人はだれかをよく調べ、旅立つときまで、その人のもとにとどまりなさい。12その家に入ったら、『平和があるように』と挨拶しなさい。13家の人々がそれを受けるにふさわしければ、あなたがたの願う平和は彼らに与えられる。もし、ふさわしくなければ、その平和はあなたがたに返ってくる。」(マタイ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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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のミサの「毎日の黙想」です。
今日は聖バルナバ使徒を記念する日です。キプロス出身で本名が「ヨセフ」であるバルナバ使徒の人格について、聖書は短くも明確に言及しています。彼は「良い人で、聖霊と信仰に満ちていた」人物です。彼は人間的にも寛大で、信仰心が熱心な人物であったことでしょう。
バルナバ使徒はイエス様を直接見たことは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すべてを捨ててイエス様に従った弟子でした。そのような彼は、自分の財産を売って教会に捧げ(使徒4・37参照)、パウロ使徒の宣教旅行に参加し、自身の宣教旅行でも多くの人を主に導きました。伝承によれば、バルナバはキプロスのサラミスで殉教しました。
彼は「教会の時代」に使徒として、また宣教師として生きる模範を示したと言えます。聖バルナバは人々を包み込み、励まし、勇気を与える特別な能力を持っていたことでしょう。だからこそ、彼は本名の代わりに「慰めの子」という意味を持つ「バルナバ」と呼ばれたと考えられます(使徒4・36参照)。そのため、バルナバ使徒は「憂鬱な人々の保護聖人」とも呼ばれます。
福音を全身で伝える人とは、決して我執や優越感、または自己陶酔に浸っている者ではなく、出会う人々に力と勇気を与え、励まし、暖かく抱いてくれる人物であることを改めて考えさせられます。バルナバ使徒のように、主が出会わせてくださる人々と共にし、彼らに慰めを伝える「慰めの子」となることこそがキリスト者の真の召命と言える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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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たちも聖バルナバのように温かく慰める良きキリスト者になれる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