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독립운동가 이준(李儁 1859~1907)의 묘이다. 이준은 1907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 등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압력과 방해로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1907년 7월 14일 숙소였던 데 용(De Jong)호텔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이준의 흉상부조가 부착된 벽체 아래에 태극기가 새겨진 석판이 놓여 있는데, 그 석판 밑에 이준열사가 묻혀 있다.
헤이그 특사 고종의 신임장
이준의 시신은 헤이그 서쪽 외곽에 있는 니우 에이컨다위넌(Nieuw Eykenduynen) 시립공동묘역에 묻혔다가 사후 56년이 되던
해인 1963년 고국으로 운구하여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의 현위치에 안장되었다. - 위 사진은 현재 수유동에 이준묘역 왼쪽에 위치
(헤이그 외곽의 옛 묘지에는 지금도 ‘일성이준열사의묘적’이라고 새겨진 비석과 동상이 남아 있다.)
묘역 입구에는 위훈비와 홍살문이 서 있고, 묘역으로 올라가는 숲속 오솔길 곳곳에 이준이 남긴 말을 적은 비석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준 어록이 묘역 입구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이준의 사인(死因)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자결설, 병사설, 분사설(憤死說; 분에 못 이겨 죽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다.
'자유 평화 수호의 상'이 이준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