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법사는 1980년대 종로통 청년불자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키던 악명높은 인물이었어요. 창신동 봉제공장들에서 일어나던 사원화
운동이 사원화사건으로 번지면서 정권에 의해 아작이 나던 시절이었어요. 이 일로 관음종 묘각사의 홍파스님은 안기부(중정)에 불려가서
고초를 당했고 사찰로 돌아와서는 급히 반공대회를 개최해야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어요. 묘각사의 청년회였던 성불회는 사라져버렸어요.
이렇게 청년불자들의 저항수단이었던 민중불교와는 달리 최법사는 대불련 지도법사를 역임하면서도 지금과 다름없이 자신이 하던 말을 계
속했어요. 그당시 출판사 이름에 사회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도 누런 갱지에 인쇄된 최석호법사의 글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불교학자들의 불교학에 관한 내용도 아니었고 사회변혁수단으로서의 민중불교도 아닌 애매모호한 알 수 없는 난수표같은 책이었어요.
그 분이 어느날 좋은 일하는 스님으로, 즉문즉설의 한소식한 스님으로 나타났는데, 그 분이 하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었어요.
달라진건 한국사회였어요. 1980년대 당시의 한국사회와 최근의 한국사회가 달라진겁니다. 개인주의화의 시대가 되었어요.
최석호법사가 하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는데 한국사회가 변했고, 엘리트불교를 조장한다는 평을 들었던 최법사는 조계종보다
영향력이 커진 정토회를 이끌고 있어요. 즉문즉설에서 최법사가 하는 답변은 꼭히 질문한 사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자신에게도 계속
말을 걸고있는 수행의 일종이에요. 최석호법사의 구더리에 관한 법문을 빌려서 이 글의 결론을 내려고합니다.
어릴때 아이들이 놀던 들판에 죽은 개 한마리의 사체가 있었어요. 한 아이가 나무 꼬챙이로 그 사체의 배를 쑤시자 구더리들이 우르르
밀려나왔어요. 그 구더리들도 하나하나 잡아서 조사해보면 서로들 다를겁니다. 우리 인간사회에서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르다는 식으로
이야기할때와 마찬가지로 다른겁니다. 인간사회에 대해서 글을 쓰는 학자들은 인간사회는 곤충이나 짐승사회와 이러이러하게 다르다는
식으로 몇줄 이야기한뒤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구더리들이 볼 때 인간사회가 과연 구더리들의 사회가 달라 보일까요? 별차이 없어요.
최석호법사는 변한게 없는데, 한국사회가 변하면서 그 분이 뜬겁니다. 이 정도로 마칩니다.
첫댓글 사원화운동 - 민중불교 - 통불협 - 전불련 - 참여불교재가연대 순이라 할 수 있겠다. 통불협 가회동 사무실에 최 법사님 유발에 청바지 입고 오셨지 ..
법륜스님과 그 외연에 있는 활동가들에 대해서 청년여래회 출신 어떤 분은 꽤 부정적이던데.. 그 연유는 물어보지 못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