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가 던진 신발 한 짝과 인간관계에서의 배려
간디가 여행을 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기차에 올랐을 때 신발 한 짝이 플랫폼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미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디는
지체 없이 나머지 신발을 벗어 다른 한 짝이 떨어진 곳으로 던졌다.
놀란 사람들이 왜 그랬냐고 묻자 간디는
"서로 나누어진 신발 한 짝은 누구에게나 쓸모가 없지요. 그렇지만 저렇게 두 짝이 되면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게 되지요. 가난한 사람이 줍는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지요"라고 대답했다.
하지현의 '소통의 기술' 중에서 (미루나무, 198p)
배려와 양보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소통에서 이 배려와 양보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천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때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진정 행복한 인간관계, 의미 있는 소통이 만들어지기가 어렵습니다. 관계는 꼬이고 커뮤니케이션은 복잡해지기 쉽습니다.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아예 끊어버리는 것이 좋다. 관계를 통해 남으로부터 얻게 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내 안의 만족,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배려를 하고 이를 자기만족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라고 조언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대차대조표'를 보듯이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신발 한 짝을 떨어뜨리자 나머지 신발 한 짝도 기차 밖으로 던진 간디. 그는 그 신발을 누가 가져갈지, 그 사람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양보하고 배려한 겁니다. 그리고는 "쓸모 있는 신발을 가난한 사람이 줍는다면 좋을 일이다"라고 스스로 만족했습니다. 내가 준 만큼 상대방에게 당장 받지 못한다고 해서 섭섭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손해를 볼 것 같아서 아예 주지도 않는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지요. 오히려 다소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사실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줄 때도 많습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족하면 됩니다. "상대에게 이해받기보다는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면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게 된다." 정진석 추기경이 소개한 프란체스코 성인의 말입니다.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소학'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서의 배려와 양보. 지금 나는 한 짝을 떨어뜨려서 쓸모도 없어진 나머지 신발 한 짝을 품에 움켜쥐고, 인간관계의 대차대조표만 계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간디를 떠올리며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예병일의 경제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