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연(金熙淵) : 1895년(고종32) 2월28일∼1971년. 일제강점기의 유학자로, 자는 경임(景臨)이고, 호는 수암(守庵)이다.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경남 창녕군(昌寧郡) 고암면(高岩面) 계팔리(桂八里)에서 태어났다.
김굉필(金宏弼)의 후손으로, 고조는 김택곤(金宅坤)이고, 증조는 김석규(金錫圭)이며, 조부는 벽계(碧桂) 김호귀(金浩龜)이다. 생부(生父)는 김계동(金桂東)이며, 1897년(광무 1) 3세 때에 숙부 김후(金后)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조석기(曺錫基)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배움에 있어서도 온 힘을 기울여 입으로 암송하고 손으로 필사하였다. 이에 학문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으며, 몇 년 되지 않아 경전(經傳)과 백가서(百家書)에 능통하였다.
일찍이 부모의 뜻에 따라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문장(文章)과 시가(詩歌)에 능숙해지기 보다는 오직 마음으로 깨닫는 경지를 목표로 하여 성리학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눌하(訥河) 정해원(丁海元)·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 등의 학자들과의 교유하면서 경전을 강독하고 연구하였다. 벼슬에 출사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향년 77세로 생을 마쳤다.
옛날에 한훤당선생께서 오십이 되어도 늘 ‘소학동자’라 칭했으니,
소학은 쇄소(灑掃) 응대(應對) 애친(愛親) 경장(敬長)을 늘 일상생활에 행하는 것에서 벗어남이 없으니, 그렇다면 도가 어찌 높고 먼 곳에 있겠는가.
이 쇄록을 편찬한 것은 아마도 이 쇄록에 소학가법을 전하여 받은 것이 있을 것이니, 다시 만약에 소학가법을 얻으려면, 이 쇄록 때문에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감탄해서 이 글을 지었노라.
天與我純粹之性而 하늘이 나에게 순수한 성품을 주었으나
我乃亡失之 나는 곧 그것을 잊어버리고,
天與我聰明之才而 하늘이 나에게 총명한 재질을 주었으나
我乃暴棄之 나는 곧 그것을 포기해 버리니
可不哀且惜哉 참으로 슬프고 애석하지 아니한가?
存心之術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은
譬如掌中有物 비유하면 손안에 있는 물건과 같아서,
握則破 너무 세게 쥐면 깨지고,
不握則亡 세게 쥐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된다.
一死一生乃知交情 死生을 함께 하면 서로의 정을 알게 되고
一貧一富乃知交態 貧富를 함께 하면 서로의 태도를 알게 된다.
處順境易處逆境難逆境者實天地鬼神以試其人而鍊之也處此者可不順受而警省哉
순경에 대처하기는 쉬어도 역경에 대처하기는 어려우니
역경은 진실로 천지의 귀신이 그 사람을 시험해서 단련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역경에 처한 사람은
순순히 받아들여서 경계하고 성찰해야 되지 않겠는가.
毁之而不怒 나를 헐뜯어도 성내지 않고
犯之以不較 나를 범해도 따지지 아니하고
辱之而不屑 나를 욕해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斯可謂大勇也 이것을 큰 용기라고 말할 수 있다.
人有質問雖淺近說話
必俟小間而答之愼之道也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비록 천근한 말이라도
반드시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대답을 하는 것이 말을 삼가는 방법이다.
出入進退有信有漸
不可來如驟雨去如飄風
나가고 들어오고,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징조가 있고 조짐이 있어야 하니,
가고 오는 것을 갑자기 소낙비처럼 하고 회오리바람처럼 해서는 안 된다.
與人同遊山水隨伴一心行休
不可別生異議或先或後至
或孤坐他處以失同遊之義
남들과 함께 산수를 유람할 적에, 한 마음으로 가면서 기쁨을 수반해야 되니,
별도로 다른 계획이 있어서, 혹 먼저가고 혹 뒤에 이르거나 해서는 안 되며
혹 혼자 외톨이로 다른 곳에 앉아서 함께 유람하는 뜻을 잃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