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가장 빠른 말을 대신할 동물은!
믿거나 말거나 서커스 무대에 마린과 코코로가 올라와 연주를 시작했다. 무대 한 쪽에서 불갑산 호랑이도 외줄타기에 집중하고 있다.
“조금만 더!”
“조그만 더!”
조금만 더 가면 외줄타기 끝이었다. 불갑산 호랑이는 그동안 끝까지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불갑산 호랑이가 외줄을 탈 때마다 열심히 응원했다.
“조심해!”
호랑이 몸이 흔들릴 때마다 어린이들은 소리쳤다. 불갑산 호랑이도 두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흔들어 가면서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와! 성공이다.”
불갑산 호랑이는 처음으로 외줄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대에 쟌이 올라왔다.
“여러분! 뱀을 대신할 동물이 결정되었습니다.”
“와!”
“여러분은 어떤 동물이 결정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전갈!”
“거미!”
“전갈!”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믿거나 말거나 서커스 장에 가득 찼다.
“여러분! 뱀을 대신할 동물은 바로 전갈입니다.”
“와!”
어린이들은 뱀을 대신할 미래의 12지신 상으로 전갈을 선택했다. 별자리와 사막을 지키는 노력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힘과 스피드가 중요한 시대이다. 하지만 스피드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힘보다는 지혜를 가져야 하고 스피드 보다는 느림의 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러분! 잠시 후 말을 대신할 새로운 12지신 동물들에 대한 오디션이 시작됩니다. 모두 화장실에 다녀오기 바랍니다.”
어린이들이 화장실로 다녀오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말을 대신할 동물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달팽이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
“언제 자리까지 갈 수 있을까?”
달팽이는 하얀 바지를 입고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는 우산처럼 컸다. 아마도 햇빛을 가리기 위한 것 같았다.
“펜더다!”
달팽이 다음으로 빨간 장화를 신은 펜더가 들어왔다. 펜더도 한 손에 골프채를 들고 나왔다.
“고슴도치다!”
고슴도치는 노란 조끼를 입었는데 옷 사이로 바늘이 삐죽 튀어 나왔다. 바늘처럼 보이는 것이 무서웠다.
달팽이가 무대 중앙에 있는 의자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어린이들은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봤다.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사회를 배우게 된 어린이들은 달팽이에게 힘찬 박수로 응원했다. 펜더와 고슴도치도 달팽이 뒤에서 응원했다.
사람들은 빨리 가고 앞서가려고 하는 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의 자동차만 봐도 앞에서 가지 않으면 빵빵 거리는 데 믿거나 말거나 서커스 무대에서 펜더와 고슴도치가 달팽이에게 배려하는 행동은 칭찬 받을 만 했다.
달팽이는 부지런히 움직여서 의자에 앉았다. 펜더와 고슴도치도 의자에 앉고 심사위원들이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고슴도치는 왜 몸에 가시 같은 털을 가지고 있나요?”
봉황이 물었다.
“다른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한 뒤로 부드러운 털이 지금은 날카로운 털이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털이 부드럽다면 고슴도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스핑스크가 물었다.
“아마도 고슴도치도 멸종되었을 겁니다. 들판의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토끼나 들쥐들도 아직 멸종되지 않았는데 고슴도치가 정말 멸종되었을까요?”
켄타우로스가 물었다.
“토끼나 들쥐들은 빠른 동물이지만 고슴도치는 느린 동물이기 때문에 육식동물들에게 더 많이 잡아먹히고 멸종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달팽이나 지렁이도 멸종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봉황이 다시 물었다.
“육식동물들은 달팽이나 지렁이는 잡아먹지 않습니다.”
“지금 가시 같은 털을 가지고 있어서 만족하나요?”
스핑크스가 물었다.
“만족하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는 가시 털을 가진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집에서 반려동물로 키우는 것은 싫어했다.
“펜더는 나무 위에서 노는 것이 좋은가요?”
“모르겠어요. 나무에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는 게 싫어요. 그래서 나무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는 것 같아요.”
“대나무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스핑크스가 물었다.
“대나무 잎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대나무에 올라가서 놀면 재미있습니다. 다른 나무에 비해 휘어지고 흔들리는 재미가 있는 대나무를 펜더들이 좋아합니다.”
“그 외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까?”
컨타우로스가 물었다.
“대나무는 천년 이상을 살 수 있고 지진이 일어나면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에 펜더들이 대나무 숲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펜더는 다른 곰에 비해서 게으르고 느린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요?”
스핑크스가 다시 물었다.
“먹고 노는 게 행복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먹을 것을 항상 푸짐하게 주니까 게을러진 것 같습니다.”
팬더는 정말 움직임이 없는 동물이다. 먹고 자고 뒹굴고 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외모가 너무 귀엽게 생겨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어쩌면 말을 대신할 동물로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할 수도 있다.
“무대가 넓어서 힘들었죠?”
봉황이 달팽이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달팽이는 무대를 올라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린이들도 심사위원도 달팽이를 지켜보면서 기다려줬다. 그리고 함께 오디션에 참여한 고슴도치와 팬더도 달팽이를 응원했다.
“왜 12지신 상이 되고 싶은가요?”
봉황이 다시 물었다.
“달팽이는 정말 느립니다. 하지만 느린 만큼 장점도 있습니다. 몸을 길게 늘어뜨려서 건너기 힘든 곳도 건널 수 있고 더듬이를 이용해 위험한 순간을 잘 넘기기도 합니다. 물론 도로를 건널 때는 너무 느려서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달팽이는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나요?”
켄타우로스가 물었다.
“달팽이는 어린이들이 집에서 관찰 대상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채소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달팽이를 보면서 어린이들이 착하고 올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또 과학기술의 발달이 빠름과 스피드만 요구하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빠른 것보다 느린 것이 더 좋다는 말인가요?”
스핑크스가 물었다.
“느린 것이 빠른 것보다 좋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빠름이 중요하고 또는 느림이 우선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빨리 어른이 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분이 없는 곳에서는 달팽이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될수록 달팽이가 살아가기 힘들 텐데 앞으로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나요?”
봉황이 물었다.
“달팽이들은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말라죽고 차에 치여 죽기도 합니다. 또 생태계 파괴와 인구 증가로 인해 달팽이 살 곳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달팽이는 지금까지 들판과 숲속에서 잘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달팽이는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동물들의 오디션이 끝나자 믿거나 말거나 서커스 무대에 마린과 코코로가 올라와 연주를 시작했다. 모짜르트의〈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첼로와 비올라에 맞게 편곡한 곡이었다.
불갑산 호랑이도 외줄타기 공연을 시작했다. 이제는 줄 위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처럼 잘 다녔다. 가끔 흔들리는 줄 때문에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떨어질듯 하다가도 위기를 벗어났다.
“어떤 동물이 될지 정말 어렵습니다.”
봉황이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번에도 어떤 동물이 말을 대신해서 12지신 상이 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힘과 스피드를 모두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펜더가 힘이 세지만 느리고 고슴도치는 빠른 것 같지만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핑크스가 말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힘도 없고 스피드도 없는 달팽이가 유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켄타우로스가 말했다.
“힘보다는 빠름의 문화에 익숙해진 어린이들이 느림에 대한 미학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문제일 것 같습니다. 어떤 동물이 결정되든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의 몫입니다. 지혜를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할 겁니다.”
케르베로스의 말을 끝으로 심사위원들은 회의를 마치고 모두 무대를 내려갔다.
-아홉 번째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