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시냇물
겨울의 끝자락 2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 나는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춘천 근교의 구곡폭포를 찾았다. 주차장 입구에는 나처럼 성급하게 봄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시끌벅적 붐볐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에도 봄내음이 가득하였고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입만 뾰족이 내밀고 있는 산골짜기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서도 봄기운이 묻어났다. 머지않아 노랗게 꽃을 피울 생강나무에도 붉은 빛이 도는 작은 꽃망울이 어느새 움트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는가 보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경이롭다.
구곡폭포에 이르러 빙벽을 타는 전문산악인들의 모습을 보며 산골짜기 봄이 오는 소리에 취해 있는데 주머니속의 휴대폰 진동음이 나를 깨운다. 중학교 때부터 늘 같은 반 친구였던 복실이가 3월에 있을 고등학교 동창모임 소식을 전해 주었다. 고향에서 하는 모임이기에 이번엔 꼭 참석 해야겠다 결정하고 나니, 나의 마음은 봄마중도 잊은 채 까만 시냇물이 흐르던 고향산천으로 달려갔다.
고향……. 고향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정겨운 언어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고향은 그리 썩 반갑거나 달갑지가 않은, 기억 저 편에 남아있는 연민의 수레바퀴 같은 곳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태어난 곳과 자라난 곳이 다르다.
나는 경기도 양평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되던 해, 부모님이 함백광업소가 있는 정선 신동에 정착하면서부터 탄광촌이 고향이 되었다.
무일푼으로 고향을 떠나오신 부모님은 살길이 막막하셨던지 그 시절 중등교육까지 마치셨던 아버지는 광산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가 되셨다. 광부생활을 석 달쯤 하셨을 무렵 광산사고가 발생하였다.
어느 날 새벽 쾅! 쾅! 쾅! 세차게 부엌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갱이 무너졌어요! 빨리 나와 보세요!” 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새벽잠을 곤히 자고 있던 우리 네 식구를 깨웠다. 그날 아버지는 막장에서 작업하시다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척추를 크게 다치셨고, 그에 대한 보상금으로 부모님께서는 가게가 딸린 작은 집을 마련하셨는데 집 옆에는 까만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요한 밤이면 더 크게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도 시끄러웠고, 물놀이도 할 수 없었던 까만 시냇물은 내겐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여름 장맛비로 까만 물이 뿌연 색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상류에서 큰물이 내려와 바닥에 고여있던 석탄침전물들을 모두 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록 며칠 동안이었지만 동네 친구들과 첨벙 첨벙 물속에 뛰어 들어서 허우적거리며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즐거움도 주었다.
까만 시냇물은 내게 고통도 안겨 주었다. 우리 집은 물가에 바로 붙어 있는 가옥이라 장마철만 되면 집안으로 물이 넘쳐 들어와 가재도구 모두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가게를 하시는 어머니께서 바쁜 탓에 중학생이던 나는 물에 흠뻑 젖어 불어난 옷가지들을 머리에 이고 먼 샘터까지 올라가서 다시 빨아 널어야만 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럴 때 마다 시냇물 가에 살고 있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인들 오죽하셨을까…….
사람들은 탄광촌의 냇가에 흐르는 까만 시냇물을 보고 타부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있어 유년시절의 까만 시냇물은 내 어린 영혼을 키워낸 자양분이자 반려가 되어 주었다. 나는 시냇물이 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지, 시냇물 소리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시냇물이 졸! 졸! 졸! 소리를 내는 것은 물속에 있는 돌멩이들 때문이다. 흐르는 물이 돌멩이에 부딪히며 그 아픔 속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들쭉날쭉 제멋대로 생겨먹은 크고 작은 돌멩이들, 이 돌멩이들이 없었다면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탄광촌의 까만 시냇물에 대한 유명한 옛 일화가 생각난다. 태백 탄광지역의 어느 초등학교에 부임한 선생님께서 미술시간에 시냇물을 까맣게 칠한 아이의 그림을 보고는 놀라서 “얘야, 물은 파란색이란다. 파랑색 물감을 칠해야지!” 그러자 아이가 “ 선생님! 한번 냇가에 나가 보세요. 물이 새까맣거든요.” 그 아이가 까맣게 칠해 놓은 시냇물 그림은 대통령상을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나를 키워준 고향의 까만 시냇물도, 봄날 분홍빛 진달래꽃을 따러 거친 산야를 헤매기도 했던 기억도, 여름날 벌거벗고 물장구치던 동내 꼬마 친구들도, 가을날 둑방길을 따라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잎을 한 묶음 꺾어 총각선생님께 선물했던 아득한 시절의 그리움도 물길따라 세월따라 모두 띄워 보냈다.
지금, 나는 생각해 본다.
까만 시냇가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나는, 궁핍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견디어 낸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삶이 때로는 힘들어 지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그렇게 감내하고 기다리면 밝은 미래가 찾아온다는 것을 까만 시냇물은 내게 가르쳐 주었는지 모른다.
돌아다보면, 소녀시절 내 마음 속에 흘러갔던 까만 시냇물은 아마도 넓은 바다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탄광촌의 어린 소녀아이가 넓은 도회로 나와 살고 있듯이.
다시 봄이 오고 있다. 헐벗은 나뭇가지에도 구곡폭포 산비탈아래 얼음을 뚫고 녹아내리는 시냇물에도 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은 오늘도 흘러가고 냇물은 큰 강으로 흐르고 흘러가는데 물러설 곳 없는 나의 삶도 어느 덧 저 시냇물처럼 흘러서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다.
지금의 내 일상도 먼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다가 오겠지. 내 어린 날의 기억 저 뒤편에 숨어있는 까만 시냇물처럼.
첫댓글 먼 훗날...또다른 그리움으로 내게 다가올 까아만 시냇물이여!...멋진 마무리가 이 글을 새삼 돋보이게 하지요... 잘 했어요! 자만하지 마시고 더욱 정진하시고 문운이 더욱 가득하시길^*^
이 모든게 울 회장님 덕분입니다.. 꾸벅^^
어느덧 우리 곁에도 초대 받지 않은 파아란 새싹과 시냇물이 골을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비록 그물이 까만물일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수 없습니다. 아울러 박회장님이 참석은 못하셔서 아쉬움은 있지만 성대한 파티를 열어 주신 소리님, 그리고 축하의 꽃다발을 삼페인에 가득 담아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신 큰형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4월14일 장도에 오르시는 큰형님을 비롯한 이프로님, 소리님께 다시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안 사봉님 댓글이 심상치 않습니다.. 머지않아 " 애인이 생겼어요.." 라는 글을 읽을수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다시 읽어도 마음을 감동시키는구나?지금의화선이가 탄생할수있었던 그 과거시절 좋은추억이였기에 더 기분이좋은것 같아 성공뒤에 멋진추억이라 그시절이 없었으면 지금의 화선이도 아름답지 않았을거야 소리님 다시 한번더추카해요 미리등단을♥♥♥♥♥
에궁 친구야 고마워

친구의 응원 덕분에 더 힘을 낸듯 싶다.^^ 나의 유년시절을 다 보이고 나니 홀가분하네.. 다음은 " 울 엄마"...라는 제목으로 다시한번 나의 어린시절을 보이고 싶구나..그땐 눈물이 펑펑 흐르겠지...
글 잘 읽었습니다.
진작에 등단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오늘 소리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이곳에 올리신줄 알았습니다.
네... 가슴이 콱 막혀옵니다.
고맙습니다.. 약간의 취기가 있으신 상태에서 읽어 주심에 전 더 큰 영광입니다..
글쓰기전엔 어린시절의 좋지않은 기억을 끄집어 내는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여겨졌었는데..
나의 진솔함을 한층더 높여 주는듯 싶어 꺼내놓길 잘한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픔을 함께 느껴주실 구인회 님들이 계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