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육의 지옥과 천국
- 누가 공부를 더 잘할까? -
초등학교 시절에 학원에 많이 다닌 아이가 공부를 잘할까? 아니면 다니지 않는 아이가 잘할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다들 학원에 많이 다닌 아이가 당연히 잘할 거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유치원부터 학원에 보낸다. 비싼 학원비 내고 많이 배운 아이가 당연히 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도 그럴까?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아이를 학원에 보냈다. 조기교육한다고 유치원부터 보냈다. 그 아이들이 다들 공부를 잘할까? 아니다. 일부 소수는 잘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니다. 기초학력은 형편없이 뒤떨어졌고, 수업 시간에 잠자고, 깨우면 발길질한다. 유아기부터 다닌 학원 사교육은 결국 아이들에게는 힘에 겨운 교육 중노동이었을 뿐이다. 학습에 흥미와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하나만 낳아서 왕으로 키우려는 학부모와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교사를 못살게 들볶았고, 견디지 못한 교사는 자살한다. 그것까지도 사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덮으려고 급급해왔다. 사교육비는 점점 올라서 맞벌이 부부도 감당이 안 된다. 고액의 자녀 사교육비가 두려운 젊은이는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겨우 하나만 낳는다. 2022년 출산율은 0.78명, 세계에서 가장 낮다. 금년은 0.6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영국의 어느 학자는 빙하가 녹아서 바다 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몇몇 태평양 섬나라와 함께 대한민국을 국가 소멸 1순위에 올려놓았다.
공교육이 붕괴되면서 일어난 현상들이다.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 서이초등 여교사가 교실에서 자살한 사건에 이어 수많은 교사들이 상복 차림으로 광화문 거리를 점령하자 우리 교육계에 박혀있던 옹이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 남을 탓하고 제도와 법규를 탓한다. 우리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책임 없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내 탓이라고 시인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그게 더 안타깝고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전교가 3학급이고, 전교생이 24명인 안동시 근교 농촌에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서선초등학교. 1,2학년, 3,4학년, 5,6학년을 각각 한 사람의 교사가 가르치는 복식학급. 학교 부근에 학원이 없었고, 시내학원에는 보낼 형편이 안되었다.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은 절반도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를 불법으로 시내 학교로 전학 보내고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 24명이 남아 있었다. 이 장난 같은 학교에 나는 2002년 부임해서 3년 동안 근무했다.
서선초등 아이들은 수업을 마쳐도 집에 가지 않고 저무는 것도 모르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놀이하고, 그게 힘들면 교실에 가서 동화책을 읽으면서 선생님과 대화도 나누고, 수업시간에 다 익히지 못한 것을 개별지도 받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을 그렇게 놀면서 자랐다.
그 아이들과 종일 행복하게 웃고 지내면서도 속으로는 사실 걱정도 되었었다. 도시 아이들은 종일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종일 공놀이하거나 동화책 읽는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되었다.
이런 걸 기우(杞憂)라고 했을 것이다. 24명 중의 하나는 훗날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고 졸업했다. 그 아이만이 아니다. 동생들도 잘 자랐고, 졸업생 몇 사람을 만나고 소식을 들었는데, 학원에 많이 다닌 아이들보다 어쩌면 훨씬 더 잘 자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복식학급에서 공부하고, 학원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아이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 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 교육만으로 충분하며, 학원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은 아닐까?
아무도 믿지 않지만, 초등학교 어린이는 학교 교육만으로 충분하다. 40년을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직접 겪고 확인한 일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많이 놀고 운동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건강하고 공부도 잘한다. 서선초등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 그게 천국이고 초등교육의 본질이고 정답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키워야 한다.
김진호 / 동악골과수원 대표/
전 서선초등학교 교장/
‘정답은 서선초등학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