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면 장년회 호국보훈의 달 모임 / 6.25 휴전회담 중에도 중면은 자유진영 인줄알았다. (2021.6.26. 일산에서)
호국보훈의 달 6월 중면 장년회 모임 계기로 중면인 6.25 참전 유공자 어르신에게 당시 상황 생생한 증언 들어본다.
개풍군과 개성 38선 이남 지역은 휴전이 되어도 자유대한민국 인줄 알았다.. 중면인은 휴전회담 기간 중에도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부모님께서 집과 땅을 지킨다며 머물렀고 밤에는 공산군 낮엔 한국군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1953년 7월 27일 까지 되었다.
광복과 전쟁 그리고 38선 복구 휴전선 합의 모스코바 회담이 지금의 한강 임진강 휴전선으로 바뀐 정치적 판단으로 분단의 역사는 동족상잔 비극과 혈육의 생이별 아픔. 이산가족의 한은 오늘도 계속 진행형이다
6.25 전쟁 일지
1950년 6.25전쟁 발발 북한군 T37전차 남침.
1달여 만에 낙동강 전선 한국군 후퇴.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9월 18일 서울을 탈환. 서울수복.
10월 1일에는 국군이 38선을 돌파.
11월에는 압록강과 함경도까지 진격.
중국이 100만 대군을 투입하며 참전.
1951년 1월4일 후퇴. 전쟁 장기화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가 유엔방송을 통해 휴전협상을 제의.
1951년 7월 8일 첫 예비회담
장소는 개성 북쪽 고려동 396번지
옛 요정 내봉장(來鳳莊).
휴전회담은
"6·25전쟁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이 1951년 7월 10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지속한 군사회담."
중략
"유엔군측에서는 유엔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미국이 전쟁이전 현상에서의 휴전정책을 확정한데 이어, 공산군측에서도 소련이 중심이 되어 1951년 6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조·중·소 회담에서 “38도선의 경계선을 복구하는 조건에서 휴전이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담은 1951년 7월 8일 개성에서 쌍방의 연락장교회의를 통하여 절차문제를 합의한 후 7월 10일부터 개성시 고려동 내봉장(來鳳莊)에서 본회의가 개최되었다. (다음 백과사전 인용)
7월8일 휴전 예비 회담지역은 개성벌판에 텐트를 치고 절차문제 제의 후 7월10일 이곳 보다 남쪽 내봉장으로 옮겼으며 이후 현 판문점에서 애초 38선 복구 휴전에서 한강 임진강 경계 최종 휴전선으로 합의한다.
북은 38선에서 남으로 남으로 휴전회담 진행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도 개풍군과 중면민에게 한강. 임진강 경계선으로 휴전이라는 사실을 고지 하지 않았다.
왕래하던 고향길이 갑자기 막혔다.
이 사실을 미리 귀뜸해주었다면 더 많은 미수복지구 경기도 개풍군 중면 가족이 자유대한 찾아 남하 했다면 이산가족도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백신접종 1.2차 완료 일산 모임.
6.25전쟁 발발에서 휴전회담 기간 동안에 개풍군 중면 젊은이들은 군번없는 군인으로 참여하며 특공작전 정보수집 군부대 통신장비 등에 지고 전장을 따라 이동하는 등 참여했지만 휴전이후 오랜세월 지나면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꽤 않다.
이유는 간단 했다.
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물적 증거물과 인적 증인이 필요했는데 당시 허술한 관리로 군번 없는 군인이였다. 그리고 월급명세서가 없다. 유공자 등록 신청 접수 당시 소속 상사와 부대원 이미 사망하여 증인을 세울수가 없어 전쟁에 참여하고 유공자가 되지못한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몇몇분은 전쟁에 참여하고도 전쟁과 무관한 노병에서 노인으로 남았다.
현역 군인과 1사단 예하 중박부대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한 중박부대는 전쟁기록 어디에도 없는 비밀부대가 되었으니 유공자 신청은 더욱 어려웠고 실제로 신청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탈락한 몇몇 전쟁 참전용사는 역사속에 사라졌고 생존하신 몇몇 본인만이 증언하며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참전용사가 되었다.
6.25 전쟁 71주년 즈음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건 전쟁이야기 생생한 증언에 숙연해졌다.
휴전회담에 관한 기록은 많이 있지만 두어시간 동안 중면민 전쟁 참여하고 동료 죽음과 살아남은 전장 이야기는 추후 세세히 꼭 육성과 함께 기록해야겠다. 살아계신동안에..
중면 유공자 대부분 참가했던
켈로부대 ( KLO / Korea Liaison Office) / 미국 극동사령부의 첩보/게릴라 부대이다. 미군이 관할, 운용했지만 한국인으로 구성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휴전때까지 계속 활동하였다. 이 부대는 "주한 첩보연락처" 혹은 "주한국연락반", "켈로 부대", "제8240부대"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HID [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 육군 첩보 부대 / 해병수색대 .
중박대대 / 기록없는 육군1사단 예야 수색중대.
의용군과 학도병 등이다.
당시 젊은 청소년을 M1소총 한자루, 슈류탄 2발을 손에 줘주고 "방아쇠 당기면 총알 나가는것 . 슈류탄 안전핀 뽑고 3초후 던진다"는 두마디 군사교육 후 전장에 나갔다.
젊은 청년들을 적군으로 오해하고 갖은 고초와 불이익 당하면서 전장에서 죽다 살아난 비극의 이야기를70 여년 세월이 흐른 노병들은 아직도 잊을수 없는 전쟁 똑똑히 기억하고 덤덤하고 진진하게 말씀이여갔다.
중면인 어르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그날의 일들을 다시 상기시키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청춘을 받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아야 겠다.
백신 ㅣ차.2차 모두 접종 한 금일 일산모임 일정은 중면 고향 마을 보이는 파주 임진강가에서 고향바라보며 고향이야기 할 예정이였으나 궂은비로 취소 되었지만 실향민 1세의 부모 형제 그리운 마음은 늘 그곳에 있다는 것을 어르신 만나뵐때 마다 간절하고 애절함이 가슴깊이 전해온다,!
서울 경기 등 각기 다른 장소 개최한 중면 장년회 모임 중 둑립유공자 4분 참여한 일산에서 호국보훈의 달 6.25 전쟁 71주년 생생한 증언 듣는 계기로 전쟁 유공자 예우와 누락된 참전용사의 값진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겠다.
90세를 바라보는 老兵!
어르신께 존경과 깊은 감사드려요!
고맙습니다 김옥환 올림 ^^
참고자료. 다음백과사전. 파주바른신문.
국방홍보원. 국방일보. 대한민국 국방부.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당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