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의 감정
빗소리에 꽃잎이 닿으면
수요일이 되는 방식을 믿기로 해요
바람의 휜 등은
탈출을 궁리하는 자세로
잃어버린 요일을 복구해요
내일은 비요일
붉은 파동으로 망명을 타진할 것이고요
우리는 무른 목덜미에 서식하는
입김 한 장의 간격이 필요했던가요
그치지 않는 비처럼
자갹자갹 일렁이는 감정
마침내 자기야로 변주되는
불온한 예감은 들뜬 적막처럼
지키지 않은 약속처럼
캄캄한 나의 바깥을 기웃거려요
눅눅해진 눈빛으로
창밖 사소한 기미를 엿보는 것도
수요일의 방식
자꾸만 밖으로 번지는 당신을 위해
내 안의 꽃을 지우기로 해요
2023년 학산문학 봄호
부재와 부재 아닌
길을 가다 사라진 벚꽃에게
당신이라고 불렀다
휴업 중인 봄밤 곁을 서성이는 당신
나른한 날들이 지겹지 않나요
밀린 잠 속에서 잊지 않고 발랄한 당신은
어두운 크레바스에서 태어나고
입김처럼 지워지는 당신은
맑거나 흐리거나
후미진 기억 끝으로 유기된 당신은
어린 가지에서 바글바글
기지개를 켜는 눈부신 부재
어디에서도 흥행한 적 없는
환청으로 지속되는 당신
고원 끄트머리로 읽히는 당신
이우는 계절 공복 어디쯤에서
팝콘처럼 태어나고
팝콘처럼 흘려버린 당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분실물 같은
당신, 어딘가요
넘쳐 보이지 않는
어쩌다 놓쳐버린 나는, 당신은
2023년 아라문학 4월호
카페 게시글
***김해리 시
2023년 발표 시
김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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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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