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몽골의 침입-10 : 팔만대장경 조판
04.09.25
몽골군의 3차 침략 중 두번째 공격이 있던 1236년,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의 판각작업이 시작된다. 전란중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온 국력을 쏟아부어 16년 만인 1251년에 완성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고, 보관처인 장경각과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37호로 등록되어 있는 중이다.
대장경은 부처의 설법을 기록한 경經, 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나 규범인 율律, 그리고 경과 율에 대한 후대의 해석을 기록한 논論의 삼장三藏의 경전을 총칭하는 말로 일종의 불교 전집이라 할 수 있다. 대장경을 간행하려면 우선 경, 율, 논 삼장의 경전을 모두 수집해야 하고 불교 경전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장경을 간행하려면 불교 경전을 빠짐없이 수집하는 한편, 경전을 판각할 판목도 마련해야 한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목재는 산벚나무, 돌베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등 여려 수종이다. 이런 나무들이 한 지역에만 자생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전국 각지에서 목재 마련을 위해 수많은 인력들이 동원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판목을 8만여장이나, 그것도 전쟁중에 마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이 정도 판목을 마련하려면 최소한 굵기 40센티미터 이상 되는 원목을 1만 본 내지 1만 5천 본을 베어야 하며 이러한 원목을 찾아서 벌채하고 운반하는 데만 연인원 8만 내지 12만 명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니 그 정성과 노력이 무겁게 다가온다.
팔만대장경 조판을 주도한 인물은 최고권력자인 최이였다. 그는 대장경을 간행하기 위해 강화도에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관청까지 설치하고, 남해(경남)에도 그 지부 격인 분사대장도감을 두어 일을 추진해 나갔다. 여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경비는 최이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 마련했으니, 대장경 간행에 그가 얼마나 많은 집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최이는 왜 이렇게 전란중인 와중에 엄청난 재력을 쏟아 대장경을 간행했을까? 부처의 힘을 빌어 몽골군을 물리치겠다...란 명분은 신앙 차원의 이야기일 뿐이다. 최이는 대장경 조판을 통해 현실적으로 노리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강화도로 천도한 최이 정권은 민심의 이반을 겪었다. 몽골군이 쳐들어 올때 대규모 상비군을 동원해 내륙에 살던 백성들을 보호해 주지도 않았다. 국가의 상비군은 최이 정권의 사병 역활에만 충실했고 그런 상황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몽골군의 침략이 거듭될수록 민심의 이반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백성들의 민심이 최씨 정권에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팔만대장경의 조판이 아닐까?
고려는 불교 국가이니 부처의 힘을 빌어 침략군을 물리친다는 명분도 있으니 안성맞춤이었다. 불교에 대한 신앙심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통합하려 한 것이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론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것은 정권 안보를 위해 백성들의 눈을 속인 것에 불과했다. 국론 통합에 성공한다면 몽골군의 침략이 아무리 계속된다고 해도 백성들을 항쟁으로 내몰 수 있었다. 내륙의 백성들이 이반하지 않고 끈질기게 항쟁을 지속해야만 최이 정권도 몽골에 저항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화도에 안주할 수 있었다. 이는 곧 내륙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무방비 상태로 몽골군 앞에 그대로 방치한 꼴이었다.
또 하나, 과연 팔만대장경은 최이 정권의 강요와 압력에 의해서만 조판되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연인원 수십만이 동원되어야 할 대사업을, 그것도 전쟁중에 강제로만 추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백성들의 자발성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자발성은 호국 불교라는 종교적 광신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의 제작사는 호국 불교였고 총감독은 최이였으며 배우는 고려의 백성들이었다.
이런 주위 환경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탄생된 것이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계의 위대한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팔만대장경과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