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요 12:1-8)
이 시간에 “가룟 유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귀태(鬼胎)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얼마 전에 정치권에서 귀태라는 말 때문에 첨예한 신경전을 편 적이 있었습니다. 귀태란 귀신 귀(鬼), 태아 태(胎)를 써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 의미가 너무나 심각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에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용어는 다르지만 이 말을 쓰신 분이 계십니다. 한 번 쓰셨지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 하신 말씀이 귀태입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막14:21)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1.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마리아는 자기 오빠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께 그 무엇을 주고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었습니다. 나흘 되어 냄새가 났는데도 살려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300데나리온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유대에서는 귀한 손님이 집에 오면 환영의 표시로 그 몸에 향유를 뿌려주는 풍습이 있는데 300데나리온이면 300일 품삯입니다.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이것을 본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겉으로는 가난한 자를 생각한 것 같으나 내심은 돈을 착복하지 못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돈을 사랑하면 가룟 유다가 됩니다. 돈 때문에 양심을 팔고 믿음을 팔고 주님을 팔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세상 영광과 돈을 하나님보다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메시아를 배척했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동생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하여 어머니와 형을 죽인 사건이 인천에서 발생했습니다. 돈만 주면 청부살인이라도 해주겠다는 광고도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현실입니다.
2009년 10월 중국 흑룡강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물에 빠진 소년들을 구하다 익사한 중국장강대학 대학생들의 시체를 건져놓고 시체를 건지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장사하듯이 돈을 달라고 흥정했습니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살신성인들을 존경은 못할망정 시체 가지고 흥정한 것입니다. 이 일로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오르자 형주시정부에서는 늦게야 구류와 벌금형을 내리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이처럼 돈을 사랑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딤전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경고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돈만 아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돈을 사랑하면 양심도 팔고 믿음도 팔고 예수도 판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가룟 유다는 위선자였습니다.
4-5절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동정심이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말로 삥땅이라고 하죠. 돈을 떼어 먹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였다는 기사는 성경에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철저한 위선자였습니다. 이름부터가 그렇습니다. 유다라는 말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따라 다녔으나 예수를 믿지 않았던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요6:70-71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이렇게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얼마나 위선자였는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그 시간에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님이니까 잡으라.
유다는 예수님의 입을 맞추면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마26;49) 얼마나 위선적입니까? 가장 사랑하는 표시인 키스로 예수를 잡아 넘기려는 가룟 유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한 사람입니다.
위선자란 앞뒤가 다른 사람입니다. 안팎이 다른 사람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과 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입니다. 밤과 낮이 다른 사람입니다. 혼자 있을 때와 사람들이 있을 때가 다른 사람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입니다. 충신 같은데 배신자인 사람입니다. 몸은 이리이면서 양의 탈을 쓴 사람입니다.
죄짓는 자가 위선자가 아니라 죄짓고 안 지은 척하는 사람이 위선자입니다. 죄를 짓고 통회 자복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은 위선자가 아니라 진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은 용서하지만 위선자는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 하면 좋을 사람이 위선자입니다.
3. 가룟 유다는 마귀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요13:2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귀의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생각 속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다가 이 생각을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죄를 새에 비유하면서 "새가 당신의 머리위로 날아가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 새가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틀게 내버려두면 그건 죄다." 말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붙들고 실망하거나 악행하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죠?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6:70) 가룟 유다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밤낮 돈 생각만 한다면 돈의 종입니다. 밤낮 술만 생각한다면 술의 종입니다. 밤낮 이성만 생각한다면 이성의 종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가룟 유다는 밤낮 예수 팔 생각만 하였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원어로 디아블로스라고 합니다. 분리시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유다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예수님과 분리시켰습니다. 미귀가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을 분리시킵니다. 교회를 분리시킵니다. 나라를 분리시킵니다. 유다는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악역을 맡은 이가 연극이나 영화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라면 이런 이는 불행합니다. 악한 자도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입니다. 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감당할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입니다.
4. 가룟 유다의 가장 큰 문제는 불신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마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유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기는 했지만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극한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의 생각, 세상 사람들의 방법 대로 하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나지 아니 하였더면 좋을 사람들입니다. 지옥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고, 마귀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종이 되시기 바랄 뿐 아니라 지옥으로 달려가는 인생들에게 전도하여 하나님의 백성 만드는 귀한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