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맛 집에서 생긴 일
남편은 병원을 다녀온 날부터 아내의 일상을 후배가 말해준 병명들을 떠올리며 체크를했다.
“음, 저건 불안 초조증상? 저건 논리가 맞지 않아 무 논리 증? 별거 아닌 말에도
발끈 하는걸 보면 피해망상증? 아니 충동 조절장애?”
자신의 작은 질병들을 체크하고 병원을 찾던 버릇이 이번엔 아내의 질병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하루가 정신이 복잡하도록 살펴 보았다.
“어우~이러다가 내가 병이 생기고 이상해지는 것 아니야?”
아내의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하려고 커피숍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들어오는 아내였지만 즐거울 때 신는 하이힐을
신지 않아서 물었다.
“어? 오늘같이 좋은 날 하이힐을 안 신었네?”
“응, 요즘들어 허리가 자꾸 아프네? 나도 늙었나봐 호호호.”
“그래? 어짜쓰까나 내가 그걸 몰랐네?”
“내가 말 안하면 당신은 모르잖아요 안 그래요 여보 호호호.”
“그래~ 잘 살펴보지 못한 내가 죄인이네 여보.”
“비약 하기는~무슨 죄인까지나 호호호.”
공여사는 남편이 요즘들어 다른 날보다 자상하다고 느꼈다.
생일이라 평소보다 더 잘 챙겨 주는것이 아닐까하며 더 즐거워 웃는 웃음이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노년의 행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자꾸만
'혹시 조증이 아닐까?' 떠 올리며 물었다.
“여보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뇨? 나야 항상 즐겁게 살잖아요? 당신은 그것도 몰랐어요?”
“아니~그럴리가 있나요. 그럼 무슨 커피를 주문 해 드릴까요 여사님?”
“음~ 나는 아포카또?”
“예~알았습니다.”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 모퉁이에 있는 카운터로 갔다.
아포카또를 주문하고 나는 어떤 커피를 마실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60대 중반으로 보이고 보기부터 남다르게 차려입어서 눈길이 가는 여자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가와 아가씨를 눈 아래로 깔아보며 먼저 주문을 했다.
“아가씨 여기 베트남 산 족제비 커피 있어?”
“네? 족제비 커피요?”
아가씨가 놀라 반문을 하는 모습에 남편도 놀란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자는 또 아랫사람에 거만한 투로 말했다.
“아 내가 수준 떨어지게 꼭 변자를 넣어서 족제비 똥 커피라고 해야 알아듣나 이 아가씨가?”
“예? 아 죄송합니다. 그건 없고요....메뉴를 보시고 주문해 주세요.”
하지만 여자는 그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말만 하였다.
“아, 그럼 인도네시아 산 야생 사향 루왁은?”
“저...없는데요.그건 건너편에 루왁 커피숍에서 파는데.”
말하는 도중에 여자는 점원의 말을 잘랐다.
“뭐야, 이렇게 큰 커피숍에 그런 것도 없어? 그럼 그냥 카페오레나 줘.”
남편은 반말을 하는 여자를 보며 자신은 비싼 고급 커피를 먹고, 다른 사람과 다르며
우월하게 산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질병이 떠올랐다.
‘저 여자도 신경정신과 병원에 가 봐야 겠구만 쯧쯧쯧....’
그 생각에 혀를 끌끌 차다가 주문할 커피가 떠오르지 않아 그녀가 말했던 카페오레를
덩달아 주문하고 허탈하다는듯이 웃었다.
"허허 나참."
남편이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모퉁이를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그 여자가 어디에 앉을까 슬쩍 바라보는데 여자는
아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깜짝 놀라며 아내를 마치 잘 아는 듯 놀란 발걸음을 멈추고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어?ㅇㅇ대학 선배님 맞으시죠?”
남편은 대학이라는 의외의 말에 가던 발걸음을 모퉁이에서 멈추었다.
'뭐? 아내가 대학 선배? 우리 와이프는 상고를 나왔는데 잘못 봤겠지’
남편은 슬쩍 숨어서 아내가 어떤말을 할지 두사람을 주시했다.
“네? 누구시죠?”
“제 동기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전에 00 컨설팅하셨던....사장님 맞죠?”
“네, 그건 맞는데요.”
“맞다 맞아...하하하 저는ㅇㅇ대학 00학번 후뱁니다."
"아 예?"
"언제 한번 간다간다 하면서도 못 찾아뵈었는데 여기서 뵙네요 선배님.”
“아 네~”
아내는 남편을 의식한 듯 여기저기를 살피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말을 하려고 의자를 당겨 앉으며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제 동기가 핸드폰에 저장한 사장님 사진을 보여 주었는데 제가 한 눈썰미를 하잖아요~
지금도 여전히 멋쟁이십니다 선배님.”
"아 예~"
공 여사는 동기라는 말에 누가 이 이야기의 진원지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빨리
이 여자가 자리를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오면더욱 곤란해 질것 같아 마음이 졸여 핑계를 댔다.
“저, 손님이 올 때가 되어서 화장 좀 고치려는데...”
“아, 그래요? 그럼 선배님 제 동기에게 선배님을 뵈었다고 전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공여사의 포커페이스와 형식적인 감사 인사를 들으며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공 여사는 손거울을 꺼내 황당하여 붉어진 얼굴을 살피며 내 이야기를 한 사람이
누굴까 떠올렸다.
‘00대학? 나는 대학을 안 나왔는데....’
공 여사는 그제야 생각났다.
유명하다고해서 갔던 00 맛 집에서 거래처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다섯 살 아래였지만
식사도 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었다.
거래처 친구는 대학 동기모임을 왔다면서 모두가 편한 사이이니까 혼자 왔으면 합석을
하자고해서 우연히 함께 앉았던 일이 떠올랐다.
거래처 친구는 입담 좋던 이 여자와 동기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공여사에게 눈을
찔끔거리며 말했다.
"우리대학교 선배님인데 인사해요."
"아, 선배님 정말 멋쟁이십니다 파리에서 막 도착하신 분 같습니다."
"모자가 아무나 소화하지 못할 패션으로 예사롭지 않습니다."
공여사는 칭찬을 들으며 졸지에 대학 선배가 되었고, 고개를 끄덕인 것 밖에 없는데
다들 대학 선배로 아는 대졸자가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동기라는 사람들은 다시 만난 적이 없어 잊혀 진 사람이 되었고,
사업을 그만두어 거래처 지인도 잊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여기서 엉뚱한 사람을 만나
다시 곤욕을 치르는 공 여사였다.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실수야 실수 아닌것은 아니라고 했어야 하는데.”
남편은 화장실에 갈 생각을 잊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내가 '대학졸업자라고 거짓말을 하다니' 했지만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아내가 그녀와 만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안심시키려는 말을 했다.
“여보 커피가 늦네? 식당에 예약을 했는데 빨리 마시고 가야하는데 어쩌지?”
“그래요 빨리 가요, 가면서 마시게 일어나요.”
“그럴까.”
남편은 서둘러 앞서 나가는 아내를 보며 전후사정은 모르지만 아내가
‘설마 학력 포장까지 해야 했을까?’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후배의 허언증이 떠올랐다.
나오다가 돌아보니 앉아있던 그녀가 돌아보지도 않는 아내 등 뒤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공 여사는 식사를 하러 가면서도 00맛 집에서뜻하지않게 했던 거짓말 사건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 여자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서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날 밤.
즐겁지 않은 생일 만찬을 먹고 밤새도록 끅끅 올라오는 트림을 남편 몰래 목구멍으로
삼키는 곤혹을 치루었다.
공 여사는 늘 누군가하고 자꾸만 말이 하고 싶었다.
속내를 털어놓고 황토방에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공 여사에게 하루란 시간이 너무 길고 따분했다.
그렇다고 조금 떨어져있는 무등산 등산은 언제나 깔끔한 성격탓에 땀을 흘리는 것이 싫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날에는 공주나 소녀처럼 잘 차려입고 마실 길을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소녀 감성의 공 여사에게 산책은 사색하기에 좋고 누구를 만나든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만나면 발길을 멈추고라도 기다렸다.
함께 걸으며 이것저것 마실 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다.
초면인 사람도, 잘못 걸려온 전화도 공 여사는 말을 만들어 한참이나 받았다.
컨설팅 일을 그만두자 남는 많은 시간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마음속 외침이었다.
“뭘 하지?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딱히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다.
급기야 초조가 밀려와 어디든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수다 여행'이었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인 노년에 들어선 공 여사는 수다에 맛 집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가 되었다.
그것만이 참 맛이라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배 안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말이 어느 것이 진실이고 가짜인지를
누가 밝혀내고 추궁하는 것도 아니라 부담 없이 즐겼던 거짓말 수다가 새롭게 찾은
행복의 절정 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다의 행복을 맛보지 못한 날에는 소화도 되지 않아 자주 끅끅 거렸다.
혼절상태서 경험한 천상계를 속였던 신선한 충격이야기들도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 굿판을
벌여야 하는데 이미 한 이야기를 같은 친구에게 하기도 민망하고 모든 것이 바닥이 난 듯 심심했다.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무기력에 빠지는 날도 늘었다.
조증에 빠졌냐고 물으면 벌컥 화를 내곤했다.
그런 아내의 속마음까지는 알 까닭이 없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학원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친구들을 만나도, 술잔을 기울여도,
온통 아내의 부풀려진 말들을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만 떠올랐다.
"아~ 이러다가 내가 병 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