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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물론 ‘불법과 탈법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독재를 하든 방임(放任)을 하든 실적만 좋다면 대부분 정당화되고 결과적으로 리더십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실적이 나쁘면 리더십이고 뭐고 갖다붙일 여지가 없어진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리더십과는 다른 대목이다. 그래서 ‘투명경영’이란 말은 있어도 ‘민주경영’이란 단어는 없는 모양이다.
기자가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생전에 현대그룹을 취재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느닷없는 사장단 인사였다. 그것도 기사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불쑥 내놓는 헤비급 인사로 몇 번이나 소동을 벌였다.
요즘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간간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도 그랬다. 지금까지 몇몇 의외의 인물이 사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정기 시즌이 아니라 오너의 뜻에 따라 수시로 단행되는 ‘번개 인사’는 현대가(家) 리더십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정몽구(鄭夢九·67)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그렇듯 가부장적 경영을 해오면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집에 은둔해 있는 오너도 아니고, 회사 공장을 한두 번 순시하면서 현장경영한다고 홍보하는 오너도 아니다. 실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다그친다.
요즘 중국 베이징에서는 ‘현대속도(現代速度)’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현대차가 막차로 중국시장에 진입했지만 금방 기존의 메이저 업체를 제치고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을 빗대는 말이다.
현대차는 2004년에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41만8615대를 판매해 점유율 2.5%의 벽을 넘어섰다. 기아차 판매분을 합치면 점유율은 4.1%에 이른다. 2005년 1분기 성과는 더 좋다. 현대차는 2004년 세계시장에서 228만대를 팔아 판매증가율 16%를 기록했다. 이는 도요타, 혼다의 10%나 GM의 4%를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기자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롯데호텔 세면장에서,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 갑판 위에서, 신라호텔 미니룸에서. 그때 본 정 회장은 상당한 눌변(訥辯)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각종 국내외 행사를 많이 치러서인지 달변은 아니라 해도 분명하고 명쾌한 의사표시를 한다. 당초 정 회장의 눌변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2000년 현대차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는 과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런 의심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라이벌
정몽구(MK) 회장을 지켜보면 그 내면에 아버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여러 동생과 자식에게 근검을 가르쳤다. 정몽구 회장은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 나이 예순을 앞둔 터여서 아버지가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 측근은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일념으로 사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하를 관리할 때 믿고 맡기긴 하지만 상호경쟁을 시키는 방법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5년 전 벌어졌던 ‘왕자의 난’은 한편으로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독립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일반인에게 ‘뚝심 경영인’과 ‘보스형 경영인’으로 각인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초기의 정 회장을 ‘보스형 오너’로 불렀다. 임직원에 대한 장악력과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10년, 10만마일 무상 보증수리’의 경우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오늘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엔 일관제철소 사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INI스틸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성공시키고, 이곳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하자고 그는 결심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외환위기 직후 적자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0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환차익(換差益)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현대차는 2004년 국내외에 167만7818대를 팔아 1조7846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4년 연속 순이익 1조원을 넘어섰고 조만간 순이익 2조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기아차도 2005년 3월 수출 500만대 기록을 달성하는 등 현대차에 못지않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룹 안팎에서는 정 회장을 ‘전략가형 CE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하를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 장기 비전을 세우고 향후 이슈를 예측하여 이를 추진력있게 실행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측은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세 가지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 요체”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옥의 카레이스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다.
품질에 진짜 목숨을 걸었다
현대차는 1986년 4995달러짜리 엑셀 승용차를 가지고 최초로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 소비자는 싼 맛에 끌려 현대차를 많이 샀지만 금방 품질이 들통났다. 판매는 하향곡선을 그었고 현대차는 미국인의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현대차는 미국에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올 4월엔 미국 컨슈머리포트지(誌)가 쏘나타를 ‘가장 신뢰할 만한 차’로 선정했다. 타임(TIME)은 4월 25일자에서 “정몽구 회장이 철저한 품질경영을 통해 과거 영욕의 현대차를 글로벌 성공 메이커로 변신시킴으로써 세계 자동차업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다”고 칭찬했다.
올 1월 비즈니스위크도 정 회장을 자동차 부문 최고 CEO로 선정하면서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차를 맡으면서 품질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을 시작, 회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보도했다.
모두 정 회장이 광적으로 품질경영에 집착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품질’이란 단어는 선대(先代) 때는 그렇게 강조하지 않던 단어였다.
정 회장은 과거 수년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아보면서 품질 문제가 회사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발견했다. 그는 5년 전 현대차 품질본부 서병기 사장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품질은 우리 생존의 핵심이다. 얼마의 비용이 들든 간에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정 회장의 지시는 단호했지만 현장 직원에게까지 전달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빨리, 값싸게 만드는 습관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회장은 직접 공장의 세세한 부분까지 품질을 직접 체크했다.
2002년 8월에는 기아 오피러스 수출차량을 직접 시험주행하다가 전문가도 찾기 힘든 미세한 소음을 발견하여 선적을 40여일 미루며 즉각 저소음 엔진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당시 남양연구소의 한 간부는 “그렇게 하면 손실이 매우 크다”고 보고했으나 정 회장은 “품질 때문이라면 상관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서울 양재동의 현대-기아차 사옥 1층은 3개의 품질 관련 공간(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이 차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우리 차가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멈춰 서있는 것을 상상해봤느냐”면서 품질상황실의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24시간 가동되는 품질상황실은 해외판매망으로부터 제기되는 하자(瑕疵)를 실시간으로 체크한 뒤 연구개발부서에 자료를 넘긴다. 관련 임원은 물론, 정 회장에게도 밤새 발생한 하자가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직원 사이에 ‘정몽구 회장은 품질본부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현대차에서는 해외시장 전략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 중엔 ‘렉서스’ 같은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 회사 이미지를 한 단계 상승시키자는 안도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품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추진하면 도리어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면서 ‘선(先)품질향상’을 강조했다. 최고급 브랜드의 유혹을 물리친 정 회장의 결단은 현재까지 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진정한 현장경영은 발로 뛰는 것
기자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현장경영을 하는 재벌총수는 거의 없다. 정몽구 회장은 예외적인 사례 중 하나다.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현장에서 느끼고, 현장에서 해결한 뒤 확인까지 한다는 ‘삼현주의(三現主義)’는 정 회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불러온 부실기업 기아를 빠르게 정상화시킨 것도 그의 현장경영 덕분이라고 한다.
기아차를 인수한 초기에 정 회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화성을 비롯해 광주, 소하리에 있는 기아차 공장을 찾아가 직접 현장을 점검했다. 피(被)인수기업으로서 인수기업 총수의 방문이 힘이 됐을 것은 분명하다. 그는 엔진공장, 주물공장, 보일러 배관실 등 구석구석을 샅샅이 점검했다.
그의 현장경영 철학에는 배경이 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를 거친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지시로 현대자동차의 애프터서비스(AS) 전담회사인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는다.
당시 포드와 손을 잡은 현대차는 포드로부터 자재가 적기에 조달되지 않아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를 타개하려고 임직원과 함께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 순회서비스를 직접 다녔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비차량이 개천에 빠져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면서 고객 불만을 직접 접했던 경험이 지금의 ‘현장경영’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현장경영을 하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 이전에 출근해 관련 임원을 불러 밤새 고민한 주제를 일러주고 토론한다. 회장의 생각을 임원들이 따라가기가 벅찰 만하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에게 써주었던 휘호이기도 하다.
그의 현장경영 습관 덕분에 해외 생산거점도 신속하게 구축됐다. 현대차는 5월 20일 준공식을 거행한 미국 앨라배마공장을 비롯, 슬로바키아공장, 중국공장 등 해외거점에 자동차 생산기지를 착착 구축시키고 있다.
정 회장은 인구 25만명의 앨라배마주 소도시 몽고메리를 가로지르는 65번 고속도로에 한글로 적힌 ‘현대자동차를 환영합니다’라는 안내판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수입 구두 신어본 적 없어
경복고 출신인 정몽구 회장은 운동을 좋아해서 학창시절 럭비부 주장을 맡았다. 그는 “럭비에서 팀워크 정신을 배웠다”고 사석에서 자주 말한다.
듬직하고 의협심이 강했던 정 회장 주변에는 항상 친구가 따랐으며, 지금까지도 그런 유대는 지속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 교내 깡패를 혼내주기도 했다. 그의 고교동기인 손병두 전(前) 전경련 부회장은 “몽구가 ‘공부 잘하는 병두 건드리지 마라’며 교내 불량배를 혼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사람을 거느리고 부리는 데 익숙하다.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았을 때였다. 집이 멀었던 그는 회사 인근의 친구 아파트에서 잠을 자며 감색 점퍼와 군화 차림으로 늘 현장을 지켰다.
밤이면 공장 한편에 드럼통을 놓고 소주와 삼겹살을 수리공들과 나눠 먹으며 동고동락했다. 서울 원효로 3가 정비공장 앞 수퍼에서 작업을 마친 정비공들과 소주를 자주 마셨는데, 당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을 지금도 기억하여 안부를 묻는다.
정 회장은 직원과의 팀워크를 잘 만들어나간 덕분에 1977년에는 현대정공을 설립, 국내 레저용 차량의 새 장을 연 갤로퍼라는 히트작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수련회에 2001년부터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재벌 오너 총수가 매년 신입사원을 직접 대하며 기업비전을 제시하고 격려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 회장이 사람을 모으는 비결 중 하나는 소탈함과 검소함에 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풍이다. 즐겨 신는 신발은 오래된 국산 금강제화다. 외제 브랜드는 신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음식도 설렁탕과 불고기, 삼계탕 등을 좋아한다.
자동차 내수부진·노사분규 등이 과제
정몽구 회장의 앞에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우선 자동차 내수시장이 계속 부진하다. 세계시장에서는 이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됐다.
점점 줄어드는 마진도 또다른 문제점이다. 환율 문제 등으로 2005년 1분기 영업이익은 30.1%나 줄었다.
단골로 터지는 노사분규, 오너 일가와 측근 핵심인력 중심의 의사결정,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지 못한 이사회 운영 등에 대한 비판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새로 진출한 일관제철소 사업은 조만간 중국의 본격적인 철강공급으로 국내에서 심각한 공급과잉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삼성의 이재용 상무 케이스와는 달리, 정 회장은 아직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에 대한 지분승계를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인 엠코와 글로비스 등을 활용하려고 하지만 감시의 눈길이 워낙 많다.
현대차의 성장은 그야말로 이제 시작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 7위에 머무를 뿐이다. 2010년의 세계 5위 달성은 그리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과연 정 회장의 리더십은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미래 인재경영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미래인재경영
정몽구 회장은 25일 제주 해비치 리조트에서 열린 \'2004년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 참석, CEO 특강을 가진 자리에서 \'글로벌 기업인의 자세\'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 회장은 특강에서 "현대·기아차 신입사원은 ▲투명하고 공정한 일처리로 신뢰받는 인재 ▲전문능력 배양과 상호간 협조 ▲도전과 개척의 벤처정신 ▲현대·기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주역 역할 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선배직원들이 노력한 결과 현대·기아차는 획기적 품질향상, 비약적 수출확대, 해외시장에서의 성공경영 등을 이루어 낼 수 있었고 현재 세계7위의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경기 침체 속에서도 현대·기아차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고용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며 "향후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가 되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회장은 그러나 "그동안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업체와의 기술격차, 아직은 약한 브랜드 이미지 등 분발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차세대 자동차산업 주역으로서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해 세계 초일류 자동차회사를 만드는 주역이 되고, 그에 손색없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스타일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다.
경쟁업체들 은 현대자동차의 빠른 의사결정을 높게 평가한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충 분한 검토 없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몽구 회장 개인의 경쟁력
매경이코노미는 ‘ CEO 경쟁력’ 평가를 위해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성수 경희대 교수, 김태현 연세대 교수, 이항구 산업연구원 팀장, 주우진 서울대
교수(가나다 순) 등 5명 이 참여하는 평가단을 구성했다.
평가위원들은 전략 및 비전수립능력, 업무추진능력, 이해관계자와의 조정능력, 윤리경영 및 투명경영, 경영권 안정 등 5가지 기준으로 ‘CEO’경쟁력을 평가 했다.
현대차 그룹현황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요즘 '엔도르핀'에 충만해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실천해 온 '월드 베스트 전략'을 열매맺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올해 '중간 시장을 공략하는 그저그런 자동차 메이커'라는 딱지를 완전히 벗어던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실천 경영, 모범 경영을 몸소 실행하는 등 절치부심한 결과 현대차를 한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의 경영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어눌하다',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차 내부 평가는 사뭇 다르다. \'총수\'로서 정몽구 회장은 비전, 꿈을 전파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채찍질하는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미래 비전은 곧 현대차 미래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정 회장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약간은 툰탁하게 느껴지는 언행 속에 감출 줄 아는 진정한 '고수'라는 평가다.
정 회장은 그 자신의 '인생 로드맵'과 '현대차그룹의 발전'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일이 곧 내 인생'이라는 구세대(?)에 속해 있지만 그와 현대차의 향후 업적은 새로운 경지를 펼치려 한다.
정 회장의 경영철학
정몽구 회장은 그룹 '총수'다. 과거 총수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을 대접받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확실한 비전, 실현가능한 과제, 전체 그룹을 슬기롭게 이끄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몽구 회장은 실천을 중시한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론과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현장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정 회장은 말로 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행동인'을 원하고 있고 스스로 그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01년. '품질 지상주의'를 표방한 정몽구 회장의 실천력은 그룹 전반에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정몽구 회장은 결단력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마일 보증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그룹 안팎의 우려를 잠재우며 과감히 중국 현지 투자에 나선 것은 정 회장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현대차 관계자는 말한다.
정 회장은 2001년 이후 국내 공장을 비롯해 미국 인도 중국 등 해외 생산거점을 직접 돌며 직원들을 두루 격려하고 있다. 일일히 사소한 문제까지 직접 챙기며 '애정어린'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현대차 직원들의 시선은 따사롭다. 다른 그룹 총수들로서는 부러울 법하다. "단순히 그룹 2세라는 지위로 평가할 수 없다. 정몽구 회장은 그룹 창업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되 일단 개입하면 '신속, 과감, 결단\'을 요구한다. 정몽구 회장이란 존재 자체가 그룹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현대차 고위 임원)
2004년=현대차, 환골탈태의 해
현대차는 이달 '쏘나타(프로젝트명 NF)' 출시를 시작으로 잇달아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 차종을 쏟아낼 계획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 자동차 메이커들도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의 변신에 놀라워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1년 '품질 경영'을 최대 화두로 제시했다. 1999년 이후 옛 현대그룹을 휩쓸었던 '왕자의 난'을 겪은 뒤 정 회장이 제시한 화두는 '월드 베스트 카를 만들자'였다.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거듭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자는 비전이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을 정점으로 한 현대자동차 과연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가 던지고 있는 답변은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휴대폰,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부문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우뚝 선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현대차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만년 하위 메이커가 될 것이라고 다른 업체들은 우리를 얕잡아 보지만, 이제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현대차는 새로운 미래를 써 나갈 것이다. 월드 베스트는 가까운 미래다."
정몽구 회장. 그와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한국 기업사에 새로운 장을 펼쳐 나갈 지 예의주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