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학교에는 반드시 수영장을 갖추어야 한다. 평양은 4계절을 다 이용할 수 있지만 지방은 겨울은 이용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중앙집권적 유일영도체제이기에 수영장을 모든 지역에 있는 학교에 짓도록 합니다. 사회인도 1년에 1번씩 체력검사를 해야합니다.
김일성대는 전국 광역단체에 똑같이 배분합니다. 그래서 70%가 지방출신입니다. 이들은 기숙사생활을 합니다. 평양에 있는 대학은 지방출신이 지방대는 평양에 사는 학생들이 많이 다닙니다. 이런 정책은 지방을 평양수준을 하려는 의지입니다. 대학은 이론 공부기간이 6년이고, 노동현장 실습기간이 3년으로 총 9년입니다. 이는 이론과 현장의 실습의 통합하려는 정책입니다.
북측에서는 특권층은 대학이나 아파트에 우선 배당을 받습니다. 특권층은 항일무장투쟁을 한 집안의 4대까지이고 군대에서 부상당한 군인입니다. 그리고 우대계층은 교원과 의사인데 이들은 사회에서 우대.배려받습니다. 이들은 옥류관은 보통 100명 정도 줄을 서야 차례가 오는데 이들은 우선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체육소조-학교끼리 경쟁하여(군단위-광역단위-전국)전국 1등이 국가대표로 대회에 참가합니다.여자는 배구.농구.송구 등이 남자는 축구.야구 등에 관심을 가집니다. 학생은 1인 1기와 1인 1악기를 하도록 합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선생님을 하기 위한 교원대학에 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전에는 이곳을 개방하지 않았지만 작년에 개방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느 소조에 들어갈지 물어봅니다. 몇 개월 지켜보다가 소질에 따라 담임선생님이 소조를 다시 배치합니다. 초등학교는 5년동안 동일 담임선생님이 책임집니다. 생활지도, 책임지도, 교과지도를 책임집니다. 중.고교는 생활지도로 담임은 바뀝니다. 물론 같은 반으로 계속이어집니다. 북측도 경쟁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씩 학급시험을 봅니다. 반 게시판에 개인별로 성적을 전체 붙힙니다. 꼴등은 모둠에서 잘한 학생이 책임지고 탈피시키려고 노력합니다. 북측은 중2병이 없습니다. 이는 교육의 영향으로 봅니다. 남측에서는 중2병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에게 맞추라고 하는 듯 합니다. 남측의 자본주의체제의 무한경쟁도 중2병을 만드는 데 기여하다고 봅니다. 북의 통일교육은 남처럼 따라 하지 않습니다. 남북은 한 가족이기에 같이 사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남북 교원 교류가 먼저 해야됩니다. 왜냐하면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교육에서 가져오기에
일상생활
혼인신고하면 주택 무상제공합니다. 자녀를 낳거나 부모님을 모시면 식구 숫자에 따라 더 큰 주택으로 교환해줍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직장을 정해줍니다. 고교 후 직장을 갖고자 할 때는 성적을 고려하여 3군데 직장을 지원합니다.
담당의사와 식품점은 정해집니다. 폭염일 때인 7~8월은 8~12시 까지 일하고 이후 집에서 쉬었다가 오후 4시부터 8시 까지 일합니다. 남자는 60세에 퇴직하는데 이전에 그만두면 불법입니다. 만약 아프면 국가가 책임을 집니다. 여자는 결혼 전에 일이 의무이나 이후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일을 합니다. 55세까지 일을 합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하루 700그램의 표와 쌀을 제공받습니다. 저녁을 하기 싫으면 표로 받아서 밥공장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여서 먹습니다. 이는 주로 맞벌이 부부가 합니다. 북측은 임금이라 하지 않고 생활비를 받는다고 합니다. 국가가 식품점에 제철 과일을 그곳에 사는 주민의 수에 맞게끔 공급합니다. 더 먹고 싶은 과일 등이 있으면 사회주의 시장에서 구입합니다. 이 시장을 경영하는 사람은 55세 이상만 판매할 수 있습니다. 북측은 단독주택인 경우 30~40평 정도의 텃밭을, 농촌은 70~80평의 텃밭을 제공받습니다. 가족이 먹고 난 다음 남은 것은 시장에서 팔 수 있습니다. 관리를 하지 몸하면 국가에 반납합니다. 소작도 주어서 안됩니다. 퇴직할 시점이 되면 낚시대를 구입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단지 믿을 때 조선 사람은 조선의 정신으로 갖고 믿으라고 합니다. 스님과 목사는 국가가 키우나 천주교 신자는 키울 수 없어서 외국에서 신부를 초빙하여 세례를 줍니다. 주체사상을 배우면 종교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시상은 물물교환으로 민중무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80년말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물물교환이 되지 않아서 부족한 식량과 약을 달러로 구입하지 못한 북측과 쿠바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기에 북측은 93~95년에 대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95~98년에 기아사가 속출했습니다. 여기에 남측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소로 농사를 못짖게 하려고 소꼬리를 잘라와라 구리선을 가져오라하면서 북측의 삶의 기반을 붕괴하려고 부단히 공작을 하였습니다. 실례로 당시 최고 지도자가 함경도 산간벽지로 현지지도를 갔을 때 아이 울음소리가 나서 가보니 솥단지에 밥 한 그릇은 비워있고 한 그릇은 반 정도 먹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모친을을 찾아보라고 하여 찾아보니 인근 공장의 선반을 끌어안고 죽어 있었습니다. 곧 죽어도 국가의 기반시설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답니다.
미국과 유엔에서 북의 인권을 거론하는데 이는 북에 한 번도 가지 않고 탈북자의 증언에 의지하기에 허위사실이 대부분입니다.
군대에 자원입대하면 1년은 보호를 받고 3년이 되면 당에 입당할 수 있습니다. 행군할 때 남측처럼 양말을(이는 물집이 생깁니다.) 신지 않고 발싸개로 싸고 군화를 신고 훈련합니다. 당원은 신병의 양말을 세척해주고 눈을 치워줍니다. 북측에서는 혁명적 동지애가 사랑 중 최고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