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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일국 경전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 효 정
가슴 뛰는 꿈을 향해 청춘을 바쳐야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아픔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이 못나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한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해 버릴까'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문득 고개를 들고,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시대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렵고 힘들수록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청춘 시절에는 유혹도 많고, 고민도 많고, 욕구도 많습니다. 그것들을 이기는 방법은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청춘 시절에 뜻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그 젊음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가슴 뛰는 꿈을 향해 자신의 청춘을 아무런 미련 없이 완전히 바쳐야 합니다. 그때 어떤 뜻을 지니고, 누구와 더불어 그 뜻을 펼쳐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하루 생을 개척해 나가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살지 않으면 비관과 낙망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청년들은 불평불만을 터뜨립니다.
"노력하면 된다고 어른들은 말하는데 ·······누군들 노력하지 않나요? 노력해도 안되니까 일찌감치 포기하는 거죠."
"내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것 같아요."
비관적인 청년들의 불만과 불평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늘 타인을 향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하얗게 불태워 노력한 적이 있는지 진정으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청년이 걸어야 할 길은 불평과 불신의 길이 아닙니다. 희생과 봉사, 사랑을 할 수 있는 순수의 길이어야 합니다.
나는 한국의 대학생과 청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대학 순회강연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1993년 가을에 40개 대학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는데 그 노정은 몹시 길고 험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는 반대하는 학생들로 인해 교문에서 돌아서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모든 대학에서 강연이 이루어져, 대학생들에게 청년시절의 뜻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모스크바, 베이징, 워싱턴DC 등에서 청년대학생세미나를 열어 남북한 대학생과 교수들이 참석해 서로를 이해하고 통일을 찾아가는 뜻깊은 자리도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 무엇보다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미래의 지도자를 길러 내기 위해 전 세계의 열정적인 청년들을 모아 '글로벌 탑건(Global Top Gun)'이라는 이름 아래 인류 구원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좋아합니다. 둘 다 명문가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들은 80세가 넘도록 하늘 앞에 충성했습니다. 갈렙은 부족할 것이 없었던 사람인데 여호수아와 하나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나는 '글로벌 탑건'의 인재들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늘 앞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고 있습니다.
신라는 나라의 장래를 보고 지도자를 길렀습니다. 지도층 자녀들로 구성된 화랑도라는 단체를 만들어 나라의 지도자를 양성했습니다. 화랑이란 '꽃처럼 아름다운 젊음'이란 의미로, 충절과 미래를 향한 도전을 상징합니다. 화랑도는 청소년들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쳤으며, 자연을 찾아 마음을 다스리고 계급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으며, 포로가 되기보다는 당당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화랑도정신에 의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부모보다도 더 크게 하늘 앞에 충효를 다한다는 각오 아래, 공부는 물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천일국 건설의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화랑도를 능가하는 '효정랑'이란 이름으로 특별히 교육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주인은 청소년과 젊은 청년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스스로를 갈고 닦아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가리지 말고 몸과 마음을 불살라 하늘부모님과 역사에 길이 남을 효자 · 효녀,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 내일의 든든한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청년의 열정은 꺼지지 않는 횃불
사무엘 울만의 <청춘>은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입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라는 시구를 그 중 좋아합니다. 청춘을 꼭 젊은 시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슴 뛰는 마음만 있으면 나이를 떠나 누구든 청춘처럼 푸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1984년 세계대학원리연구회(W - CARP) 회장을 맡은 문효진은 1987년 제4회 총회를 서독 베를린에서 열었습니다. 행사장 밖에서는 공산주의자 수백 명이 모여 온갖 소란을 피우며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총회가 끝날 때 효진이는 용감하게 선언했습니다.
"이제 베를린장벽을 향해 행진을 시작합니다!"
반대자들의 위협과 방해를 뚫고 행진 두 시간 만에 베를린장벽에 도착했습니다. 그곳까지 따라온 공산주의자들과의 몸싸움 끝에 그들을 전부 행사장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효진이는 눈물 어린 연설로 청중들을 감동시켰습니다. 2천여 명의 청년들이 베를린장벽을 붙잡고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목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습니다. 그 기도와 노래가 씨앗이 되어 몇 년 후 베를린장벽은 무너졌습니다.
그날 효진이가 청년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는 세계 역사를 급격히 바꾸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청년의 열정은 국경을 초월하고 장벽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부 청년들은 도전정신이 퇴색된 것처럼 보입니다. 도전정신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참된 청년입니다.
오래전 우리의 지혜로운 조상들은 화랑도와 국선도를 만들어 청년들을 수련의 장으로 보내서 몸과 마음을 닦게 했습니다. 그런 전통을 옛 시대의 유물이라 하여 등한시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살려 참된 가치를 찾고 마음을 올바르게 정화시키는 수련의 도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청년들이 현실의 암울함에 매몰되어 꿈을 포기하거나 목표없이 방황하는 모습에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한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혼자 힘으로 이루기 벅차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청년들을 하나로 묶는 세계평화청년연합(Youth Federation for World Peace, YFWP)을 만들었습니다.
1994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애천, 애인, 애국'의 마음으로 참가정을 실현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워싱턴에서 막을 올린 뒤 세계로 뻗어 나가 1년도 안 되어 160개 나라에 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토록 발전한 것은 청년들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잘 보여 주는 증표였습니다.
그 동안 청년연합은 국제교류, 윤리 도덕의 확립과 참가정 실현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또한 남북 청년과 세계의 청년들이 모여 민족의 소원이요, 세계평화의 지름길인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왔습니다. 유엔이 저마다 자국의 권익만을 앞세워 지구촌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참된 비전을 제시하는 '참부모유엔'을 만들고 세계 곳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은 일생에 걸쳐 해야 할 일이지만, 특히 청년기에 그 중요성은 참으로 큽니다. 갈림길에 섰을 때 단지 이기적인 욕망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 선한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결정되는 시기가 청년기입니다. 제2의 인생이 펼치는 그 시기에 찬란한 용기와 꿈을 지닌 '아름다운 청춘'이 되어야 합니다.
파란 바다에 미래의 푸른 꿈이 있습니다
평안도 안주의 고향 마을 앞 편에는 작은 개울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을 제외하면 항상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렸습니다. 나는 그 물과 친구가 되어 여러 진리를 배웠습니다.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또 물은 주변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 가면서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그러면서도 물은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잔잔하게 고여 있을 때는 평안함과 낭만을 안겨 주지만 화가 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켜 버립니다. 그래서 바다는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바다를 무척 사랑합니다. 바다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고 인류의 앞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물을 사랑한 것처럼 남편도 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바쁜 일과 중에도 조금씩 짬을 내서 강과 바다로 나갔습니다. 단지 바다의 멋진 풍광을 감상하거나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거친 파도를 넘으면서 세계인들에게 인류의 미래는 바다에 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남미의 아마존강과 파라과이강, 미국의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해양 섭리의 중심으로 삼고 청년들을 훈련시키면서 강과 바다 개척에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어류와 크릴새우를 이용한 고단백 식량인 어분을 생산해 가난한 나라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2000년대초부터는 물이 맑은 여수를 개발해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여수 소호동에 디오션리조트와 호텔을 세워 한국을 해양레저산업 선진국으로 만들어 갈 터전을 닦았습니다. 여수로 들어와 대륙으로 퍼져 나가는 경제 핏줄은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글로스터 인근 해역은 참치잡이로 유명한 곳입니다. 남자들도 두려워하는 그 바다에서 새벽부터 배에 올라 어른 키보다 큰 참치와 씨름했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 참치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하루종일 파도에 시달려야 합니다. 짙푸른 바다에 내 몸을 맡기고 하루를 온전히 파도 위에 떠 있는 일은 엄청난 고행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 고행을 일평생 수행하면서 인류 구원과 세계평화의 길을 찾아 고심하며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때마다 바다는 나에게 포용심과 평등의 깨달음을 주었고 나의 발걸음에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또 식구들에게도 고기 잡는 훈련을 많이 시켰습니다. 험난한 바다낚시를 통해 앞으로 세계 어디를 가든 일할 수 있는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알래스카 코디액섬에 머물 때 우리 부부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세계 여러 곳에서 청년들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설교나 연설을 하지 않고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로 나가세요. 바다에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무릎까지 오는 투박한 장화를 신고 얼음처럼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먼 바다로 나갔습니다. 온 천지가 파란 물 밖에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연어나 할리벗(halibut)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였습니다. 할리벗은 광어라고도 부르는데, 주로 수심이 깊은 바다에 엎드려 사는 물고기입니다. 나는 코디액에서 90킬로그램이 넘는 할리벗을 낚았습니다. 그렇게 큰 물고기를 낚아 올려 배 위에 오르면 바닥을 치는 요동이 대단합니다. 세워 놓으면 여자 세 사람이 뒤에 숨어도 안 보일 정도입니다. 울음소리도 얼마나 요란한지 모릅니다.
밤이 이슥해져서야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었으나 마음에는 희열이 가득했습니다.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해도 인내심과 험한 파도에 대한 도전과 극복, 자연의 이치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래스카정신'이라 불렀습니다.
청년들이 배포를 기르고 싶다면 바다로 가면 됩니다. 육지에서는 길을 따라가면 편하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까지는 잔잔한 호수 같았던 바다가 오늘 아침에는 흉포한 파도가 일렁이는 곳으로 변합니다. 그 파도 위에서 스스로를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청년은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물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한 끼를 먹을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낚시만 할 수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부족하기는 해도 물이 있고 호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양식하는 법을 전수해 주면 됩니다. 우리 부부는 그 일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내가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는 강인한 몸과 마음을 길러 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넓습니다. 깊은 파도 아래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금은보화가 묻혀 있습니다. 바다를 먼저 개척하는 사람이 곧 세계를 이끄는 사람이 됩니다. 바다는 푸릅니다. 청춘도 푸릅니다. 둘이 만나면 미래가 달라집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청년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바다로 뛰어드는 용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과 사람과 나라를 사랑하고
나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태어나 억압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광복이 되어서는 공산당의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다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또 전쟁을 치르면서 서울, 대구, 제주, 춘천 등의 학교를 전전하며 부평초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한국전쟁 후의 혼란기에 서울의 성정여중을 어렵사리 졸업을 했습니다. 그곳은 나의 모교이자 평생 잊을 수 없는 청소년기의 요람이었습니다. 30여 년 뒤 교명은 '선정'으로 바뀌었지만, 모교에 찾아가니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 몇 분이 여전히 봉직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분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쁨에 겨워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습니다.
나의 모교인 선정중학교는 지금 통일 가족이 되었습니다. 참된 가르침을 실천해 교육의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의 학교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학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라 그들이 배고프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나아가 모든 청소년과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한국은 물론 6개 대륙 곳곳에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다양한 학교를 세웠습니다. 미국에 중 고교, 신학대학, 종합 4년제 대학이 있고, 한의학을 가르치는 대학도 있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농업, 의학을 가르치는 전문기술학교를 포함해 꼭 필요한 학교들을 세웠습니다.
어디에 있건 그 학교들은 모두 '애천, 애인, 애국'의 건학정신에 따라 세계에 헌신하는 인재들을 길러 냅니다. 하늘사랑(愛天)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사랑과 진리의 본체이시고 인격의 원형이신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사랑(愛人)은 '위하는 삶'을 실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정신을 키워 줍니다. 나라사랑(愛國)은 내 조국을 사랑하고, 자신이 부여받은 달란트를 계발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세운 학교는 리틀엔젤스예술학교였습니다. 한국 문화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62년 온갖 고생 끝에 리틀엔젤스예술단을 만들었습니다. 리틀엔젤스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한국의 아름다움과 전통문화를 보여 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 천사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1974년 리틀엔젤스예술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선화예술중고등학교로 발전해 예술 분야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발돋움했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면 'Gateway to the world(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맞이합니다. 이 학교 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와 발레리나 등이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을 누비며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몇 년 후에는 경복초등학교, 선정중학교와 선정고등학교,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가 우리 통일 가족의 자랑스러운 학교가 되었습니다. 경복초등학교는 1965년에 개교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입니다. 선정중고등학교는 지식 교육을 넘어 인성과 심정 교육에 온갖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나아가 세계적인 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아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는 '관광산업의 선도적 인력 양성'에 목표를 둔 특별한 학교입니다. 매년 스승의 날에는 탈북 교사를 초청해 '남북 교사가 함께하는 스승의 날 행사'를 진행하며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청심국제중고등학교는 청평의 푸른 호반은 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중고등학교입니다. 세계적인 지도자로 활약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최고의 학교로 만들었습니다. 2009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많은 졸업생들이 국내 우수대학은 물론 미국의 아이비리그, 일본의 명문대 등 세계적인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장차 청심이 길러낸 글로벌 인재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면 그것이 청심의 몫이며 자랑이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청심의 졸업생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날이 다가옵니다. 그때 한국은 교육 선진국으로 그 이름을 빛낼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교육에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인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단지 점수 따기 공부로는 더더욱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계적으로 청소년과 청년을 올바르게 양성할 수 있는 인성교재를 개발해 보급했습니다. 튼튼한 체력과 올바른 인성 위에서 지식과 지혜를 갖추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참된 인재를 길러 내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천지개벽 선문학당, 세상을 변화시키면서
1989년 11월 3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들 중 하루입니다. 그날 천안 성화대학교에서 열린 인가축하식에 참석하기 위해 식구들과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서울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이 위독하세요. 곧 하나님 품에 안기실 것 같습니다."
나는 축하식이 끝난 후 서울로 급히 올라왔습니다. 점차 의식이 사위어 가는 어머니 홍순애 여사를 둘러싸고 식구들이 성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품에 안자 잠시 눈을 뜨고 나를 그윽이 바라보시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것이 나와 어머니의 이생에서의 작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성화하고 나서 종친 자격으로 찾아온 사람이 내가 선학평화상 위원장으로 위촉한 홍일식 박사입니다. 1970년대 그가 《중한사전》을 만들고자 했을 때 정부나 대학에서 돕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문 총재와 나는 흔쾌히 도와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어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분보다 항렬이 높아 고모뻘이 됩니다. 그래서 성화식에 와 예를 갖춘 것입니다. 이분 또한 평생 대학교육에 헌신했으며, 효(孝)분야의 일가를 이룬 대가로서 우리 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성화대학교가 정식으로 인가받은 것을 무척 기뻐하셨는데, 축하식이 열리는 날까지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후 성화대학교는 선문대학교로 새롭게 탈바꿈해 오늘날 세계의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그 뿌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기도 구리 중앙수련소에 통일신학교를 개교하면서 대학으로 발전할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20여 년 후 성화대학을 거쳐 1994년 선문대학교라는 새 이름을 가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대학이 되었습니다. '천지개벽 선문학당'이란 휘호로 선문대학교의 설립정신을 표방했습니다. 이는 교육을 통해 사람은 물론 천지간 모든 원리와 이치를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근본 철학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대학교육을 시작할 무렵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학문 발전을 위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외의 유명 박사를 초빙해 자주 강연을 하도록 했습니다. 단 한 시간 강연을 위해 어떤 때는 수천만 원을 썼습니다. 학교 옆에 비행기 착륙장을 지어 아예 해외 전문 분야의 학자를 직접 데려온다는 계획까지 세웠을 정도입니다.
문 총재는 교수들을 매우 존중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게을리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교수를 평가하는 사람은 설립자나 다른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이자 서서히 우수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학으로 올라섰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각종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고 정부가 주관하는 사업에 여러 차례 선정되어 내실을 다지고 있습니다.
선문대학은 전통을 중심 삼고 시대를 변혁시켜 나가는 대학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서 모범이 되고, 세계 지성인들과 학문을 교류하기 위해 깊은 밤에도 연구실의 불이 환하게 빛납니다. 그 불은 새벽이 되어서도 꺼질 줄 모릅니다.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잘 자르듯 학문연구와 가르침의 뿌리가 깊어야 대학이 성장합니다. 선문대학은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해 실질적인 인재를 육성하고, 학문을 위해 해외 교류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세계의 명문대학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선문대학을 세운 목적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세상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에서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천상의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어디에서든 반짝반짝 빛을 발합니다. 축복가정 2세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나는 선문대학을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2세들이 세계에 나가 "선문대 출신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세계 최고로 만들 계획입니다. 선문대학은 또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할 것입니다. 특히 신학과는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사관학교로서 세계 지도자 양성 과정의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평생 동안 우리가 세운 학교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무척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학교를 세계 곳곳에 세운 이유는 하나님의 심정을 지닌 더 많은 인재들이 평화세계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결하고 아름답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부모가 열정적인 땀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 아들딸들을 핏줄의 아들딸이 아니라 건학 이념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로 자랑스럽게 기르는 것이 우리의 참된 희망입니다.
YSP는 우리의 미래이자 소망
"문 총재께서 애용하시던 선교용 헬기를 판다고요?"
"역사적으로 귀한 것이니만큼 박물관에 전시해서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 총재 성화 후 내가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원모평애장학원 설립이었습니다. 전도를 하고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대를 양육할 수 있도록 탄탄한 기반을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 총재가 사용하던 헬기를 처분해 종잣돈으로 넣고 여러 사업의 수익금을 합쳐 매년 100억 원 이상의 돈을 장학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문 총재가 국내에서 기동력을 발휘하기 위해 사용하던 헬기를 처분하는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표했지만, 나는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그 동안 땅끝까지 말씀을 전파하고 많은 사람들이 축복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큰 비중을 둔 것이 미래인재 양성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팽이를 돌리는데 처음 시작할 때가 어렵지 한 번 돌게 만들면 계속 채찍을 가하지 않아도 돌게 되어 있습니다. 장학재단도 마찬가지여서, 처음 시작할 때가 힘들 뿐 일단 설립한 후에는 어렵지 않게 운영해 나가면서 후진 양성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히 청소년 교육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름답고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설치해 바람막이를 해주면서 24시간 돌봐야 합니다. 한 생명체가 탄생하기까지 어머니의 배 속에서 열 달이라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준비해서 탄생했지만, 그 아기가 하루아침에 걸을 수는 없습니다. 성장기간이 또 필요한 것입니다.
문 총재와 나는 1994년 7월, 163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워싱턴DC에서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Youth and Students for Peace, YSP)을 창설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95년 사회단체로 등록되었습니다. YSP는 좌우익의 이념을 초월해 화해와 위하는 삶인 참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한 대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남북한 청년 교류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두고 청소년 순결 캠페인을 비롯한 에이즈 예방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2017년 2월, 경기도 가평에 있는 효정국제문화재단 대강당에서 총회 및 출정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참석자들에게 "천일국 건설을 위해 특공대가 되라"고 주문했습니다. 같은 해 6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YSP아시아 ·태평양권 창설대회에는 1만 2천 명의 청년이 참석했는데, "효정의 심정문화 주역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자"고 요청했습니다.
2019년 9월, 아프리카 상투메프린시페에서는 아프리카서밋(Africa Summit)과 축복행사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청년학생 4만 명이 모여 '청년학생축제'가 열렸습니다.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드넓은 광장 전체가 청년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효정문화원을 통해 YSP청년학생가요제와 다양한 효정문화 공연, 가수들의 특별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상투메프린시페의 가장 큰 청년학생축제로, 모든 청년학생이 참석한 국가 단위 축제였습니다. 영부인을 비롯해 각부 장관이 모두 참석해 청년학생축제를 축하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상투메의 희망은 여러분입니다. 퓨어워터인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상투메에 하늘부모님이 바라시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면서 희망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루이 16세는 자기 나라 백성을 믿지 못해 스위스에 용병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 용병이 프랑스 왕궁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원이 사망할 때까지 한 사람도 도주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완수했습니다. 현재 바티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스위스 용병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부모를 모신 가운데 하나님의 꿈을 이루고자 천일국의 역사를 펼쳐 가고 있습니다. 천일국 시대에 참부모를 모시는 YSP는 마치 스위스 용병과 같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참부모님을 자랑하고 뜻을 전파하는 효자효녀, 천일국 충신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