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質問)
질문(質問)이라는 단어, 한자의 뜻은 ‘質問’ 바탕 질에, 물을 문입니다. 바탕을 물은 것. 본질을 묻는 것이 질문입니다. 본질을 물어 알게 되면 사람은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질문하면 성장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엄마 이것 뭐예요?” “아빠 이것 뭐예요?”라고 질문할 때 가장 성장할 때입니다. 커가면서 질문이 멈추고 사라지면 사람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질문하면 생각이 바뀝니다. 생각이 꺾입니다. 예컨대, ➀“너 뭘 벌어났니?”라는 질문에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실 것입니까? 1.000만 원, 1억, 돈을 생각할 것입니다. 더 깊이 생각하신다면 가족, 친구, 지식, 지혜, 경험, 기도, 전도 열매, 상급도 벌어났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벌어 놓은 거로 다른 것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있는 것 가지고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남아 있는 기름과 밀가루로 흉년 동안 먹고 살게 했습니다. 남은 기름과 빈 그릇과 자식들로 모든 빚을 청산하게 하셨습니다. 빈 항아리와 물로 포도주를,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벌어 놓은 것들, 있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고 역사하신 줄 믿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감사해야 합니다. ➁카카오톡 김범수 회장이 자기 핸드폰에게 “너는 뭐니” 질문을 했습니다. 핸드폰이 “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소통’이라 대답을 얻었습니다. 좋은 질문을 통해 좋은 답을 얻어 ‘카카오톡’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끼리 핸드폰으로 소통하게 만들어 지금은 수조 원을 가진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습니다.
질문이 좋아야 합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질문은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 세상을 살까? 말까?”입니다. 질문이 잘못되었으니 ‘살지 말고 죽자’ 라는 답을 찾아 자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질문이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 세상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였다면 이런 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살다 보면 분명 좋은 일도 있을 거야”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니 죽을 용기로 살면 못 살 것도 없겠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이니 내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겠지” 생각하면서 살 이유를 찾으면 더 있겠지요. 그래서 질문이 올바르고 좋아야 합니다.
테니스 슈퍼스타 아더 애쉬(Arthur Ashe)는 심장 수술 중 수혈과정에서 에이즈에 감염되어 마흔아홉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위대한 운동선수 이상이었습니다. 테니스 코트 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범적인 행동으로 많은 사람을 고무시키고 격려하는 신사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윔블던에서 우승할 수 있었나? 왜 아름답고 재능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여 훌륭한 자식을 가질 수 있었나?" 기쁨과 감동의 순간에, “왜 나지?”라고 묻지 않았으니 고통의 순간에도, 내 죽음에 대해서도 “왜 나지?”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내 고통에 대해서 '왜 나야?'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픔 앞에서만 하나님께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제는 받은 은복 앞에서 “하나님!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